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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노트
콜라주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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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스무 살 김하나 작가에게 엄마가 건넨 노트 한 권. 바로 그가 태어난 날부터 다섯 살 생일까지 생의 첫 5년을 기록한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였다. 누군가 나의 태어남을 기뻐하고 기억도 못 할 유아기의 자신을 한없이 귀여워한 기록은 평생의 보물이 된다. 김하나 작가의 보물을 나눠보는 설렘. - 에세이 MD 김주리

책소개

목차

서문

하나. 귀여워, 귀여워
만 1세 1976~1977년
만 2세 1978년
만 3세 1979년
만 4세 1980년
만 5세 1981년

둘. 인생이란 무엇인지 늙을수록 즐거워
인생이란 무엇인지 늙을수록 즐거워!!!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명상
내가 콩나물을 사기 싫어하는 이유
나의 17년 된 고물차
보따리를 싼 쪽이 행랑채에 사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독서 지도가 꼭 필요한가?
맛있는 5분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
너무합니다
커피 커피 커피
부지런 금지
우리 동네 개판
운이 좋았다
살고 싶은 집
노인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달빛 교교한

저자 소개2

1948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1948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에서 3년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교사 생활을 하는 부산으로 왔다. 이후로 쭉 그때는 있지도 않은 단어인 경단녀라, 그냥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그게 또 취향에도 맞았다. 비바람 부는 날 식구들은 다 학교에 가고 나는 집에 있어도 되는 게 아주 맘에 들었다. 하지만 전업주부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유휴 노동력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 덕분에 온갖 데 다 불려 다녔다. 이 책도 그렇게 어느 날 난데없이 불려간 자리에서 시작되
1948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1948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에서 3년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교사 생활을 하는 부산으로 왔다. 이후로 쭉 그때는 있지도 않은 단어인 경단녀라, 그냥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그게 또 취향에도 맞았다. 비바람 부는 날 식구들은 다 학교에 가고 나는 집에 있어도 되는 게 아주 맘에 들었다. 하지만 전업주부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유휴 노동력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 덕분에 온갖 데 다 불려 다녔다. 이 책도 그렇게 어느 날 난데없이 불려간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지은 책으로 딸 김하나를 낳은 날부터 다섯 살 생일까지 기록한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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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오랜 기간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힘 빼기의 기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공저), 『빅토리 노트』(공저) 등의 책을 썼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진행하며 수많은 책과 작가를 소개했으며, 2022년부터 동거인 황선우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것들에 대해 천천히, 오래오래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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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616g | 170*235*22mm
ISBN13
9788954686815

책 속으로

만 5년이 지나면 아이들도 인격이라는 것이 생길 테고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을 테니 육아일기는 5년 동안 쓰기로 작정을 하고, 실제로 첫 아이의 일기를 5년 될 때 끝냈고 그로부터 2년 뒤 둘째의 일기도 끝냈다. 그것은 내가 손으로 만들어낸 보석 같았다.
--- 「서문에서(이옥선)」 중에서

‘빅토리 노트’는 엄마가 나를 낳은 날로부터 내가 다섯 살 생일이 될 때까지 쓴 육아일기다. 나는 이 놀라운 책을, 대학 시험에 낙방하고 상심해 있던 어느 날 저녁 엄마로부터 받았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꺼내 내게 건네준 100페이지 남짓의, 20년이 지나 종잇장이 누렇게 바랜 일기장을 받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니 스무 살 생일 되면 줄라꼬 감춰놨던 건데, 힘이 될까 싶어 좀 땡겨서 주는 거다.”
--- 「서문(김하나)」 중에서

10시쯤 맹조산소에서 산파가 왔다가 곧 입원하라고 했다. 조산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쯤. 심한 진통이 왔다. 신음을 하며 어머니를 보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딸을 갖고 싶어 하는 나, “딸이구나” 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이제까지의 진통이 가시는 것만큼 시원한 기쁨이 왔다.
--- p.23

우리 어머니 시대에는 산모한테 태기가 있으면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산파를 모셔 와서 출산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이것은 동생들이 태어날 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이후 조산소라는 곳이 생겨났는데, 아마 이런 산파역을 하는 분들 중에 조산원 자격증을 얻고 점차 발전한 곳이 아닐까 짐작된다.
친정어머니의 진두지휘로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곳이 괜찮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계셨을 것이다. 첫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사람들이 볼 때는 좀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 p.24

백날이라고 잔치를 해봐야 하나에게는 아무 영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하나를 못 돌봐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생략하고 사진만 찍어주기로 아빠랑 약속을 하고 그날 아빠가 일찍 퇴근을 해 와서 같이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는데 못 하고 말았단다. 이유는 하나가 자라면 아빠에게 직접 물어봐라.
--- p.39

아빠는 평생 가족들에게 욕먹을 짓을 참 많이도 했다. “다음 휴일 때쯤”에도 사진을 못 찍었는지 내게는 백일 사진이 없다.
다음 휴일에도 아빠는 밖에 나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빠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분이다….
--- p.41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하나야가 못난이라고 놀려주는구나. 엄마가 보기론 그렇게 못난이가 아니고 오히려 귀엽고 예쁘게 보이는데 외할머니는 하나야를 보고 “모개야” 하고 부르고 외할아버지께서는 진짜로 못났다고 “참못난아” 하고 부르신단다. 앞이마도 튀어나오고 뒤꼭지도 툭 튀어나왔다고 남자애 같다고도 하시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기엔 괜찮단다.
--- p.47

나는 이쯤에서 대부분 사람은 겪어보지 못했을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와, 나 되게 귀엽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 자기 사진을 보고 ‘나 되게 귀엽구나’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래보다 키가 작은 편이고 오동통한, 겨우 두 돌 지난 앞뒤짱구 못난이 하나야가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이런 말들을 종알거리는 걸 생각하면 너무 웃기고 귀엽다. 엄마가 내가 말하는 걸 잘 관찰 요약해서 옮겨둔 것 같다.
--- p.161

성질도 사납고 고집불통에다 자존심이 강해서 매를 맞기도 하지만 인정이 많고(만약 오빠가 매를 맞거나 하면 엄마에게 항의를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건강하고(키는 작지만 오동통하다) 정말 정말 귀엽다.
그리고 자기 분수를 알아서 오빠와 놀이를 할 때는 항상 오빠의 부하가 될 줄 알아서 “대장님 나쁜 놈이 나타났읍니다” 또는 “박사님 공룡이 나타났읍니다” 등의 역할을 즐겁게 할 줄 알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수건을 가져오라, 휴지를 가져오라 등) 씩씩하게 잘한다. 하나는 아주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는 것 같구나.
--- p.221

하나가 중간쯤에서 집에 가자고 생떼를 써서 엄마가 혼이 났는데 비치호텔 앞에서 소풍 따라 온 엄마들이 많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데서 하나가 엄마를 발로 차고 소리소리 지르고 땡깡을 놓는데 다른 사람들이 달래도 안 되고 엄포를 놓아도 안 되고 할 수 없어서 엄마가 도망을 갔더니 그래도 한참 앙살을 부리다가 갑자기 사태를 깨닫고 울음을 뚝 그치더구나. 그래서 엄마가 하나 앞에 가서 “이제부터 엄마 딸 하지 말자. 엄마는 니 같은 딸 필요 없다”고 했더니 하나가 하는 말이 “야! 그래 잘못했다 안 하나”였단다. 그 소문이 우리 아파트 계단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단다 .
--- p.243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내 배경음처럼 깔리는 고성과 파열음 사이로, 한편 아주 대조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떠올라 그 소란함을 덮으며 시야를 가득 채운다. 성당과 바다의 이미지다. (…)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바다가 항상 근처에 있다. 갯비린내와 반짝이는 물결, 파도 소리, 모래밭, 일렁이는 물속, 검은 바위들. 그 탁 트인 푸름과 반듯한 수평선.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끝없이 움직이는 물의 공간.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면 갑갑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바다를 본 지 오래됐을 때 그렇다. 어린 시절의 여러 기억들 중에 나를 가장 안도하게 하는 것은 성당과 바다의 이미지다.
--- p.264~265

열여덟에 시집오셔서 나하곤 딱 스무 살의 차이가 난다. 내가 열 살이라고 해봐야 어머니는 서른 살이었을 테니 제사에 파묻혀 질식당한 젊음이었지 않나 싶다. 그래도 그렇게 당찬 어머니가 계셔서 부모 없는 조카들도 시집· 장가 들이고 우리 육 남매를 대학까지 다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콩나물 반찬을 해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 「내가 콩나물을 사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서

다 자란 딸이 엄마가 책을 전집으로 사주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었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어서 참 좋았다는 말을 한다.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찾아 읽기 마련이다.
--- 「어릴 때부터 독서 지도가 꼭 필요한가?」 중에서

젊었을 때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무엇을 바라며 갈등이 많았다. 나이 들수록 안정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환갑을 지나면서부터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는데 요새가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 올 날보다 지금이 제일 젊은 시기이고 젊었을 때보다는 시간상으로나 경제적으로나(젊었을 때만큼 구매 욕구가 안 생겨요~) 그리고 마음 자체도 여유가 생겼으니, 또 행복해야 하는 책임까지 있다고 하니 지금 마음 놓고 행복해하기로 한다.
--- 「노인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중에서

보름달이 뜬 밤에 데이트해보셨나? 아마도 요즘 같은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날씨는 삽상하고 억새들이 지천으로 피어서 은빛으로 하늘거리고 구릉은 멀리 뻗어 있는데, 지금 막 거리가 가까워지려고 하는 남(요즘 용어로 썸남)과 인공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다만 달빛 교교한(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음) 그곳을 한없이 걷고만 싶던 밤이 있었다.

--- 「달빛 교교한」 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하나 작가가 살면서 가장 많이 읽은 책
“이 일기는 놀라울 정도로 힘이 세다”


1976년 12월 16일, 진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고 ‘빅토리 노트’라는 이름의 육아일기가 시작된다. 46년 전 처음 쓰인 일기는 아이가 다섯 살 생일을 맞는 날까지 계속되고 약 20년 뒤 딸이 대학 시험에 떨어지던 날 그 손에 쥐여진다. 그 딸은 바로 김하나 작가, ‘빅토리 노트’는 작가의 책 『힘 빼기의 기술』을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당시, ‘빅토리 노트’의 일부만 보고도 감동받았다는 후기들이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육아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도 많았다.

엄마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빅토리 노트’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곳으로 씨앗을 퍼뜨렸을 것이다. 꼭 육아일기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 이런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누군가의 가슴속이 환하고 따뜻해진다면, 그 또한 ‘빅토리 노트’의 열매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내자는 제안에 응했다.
_「서문」에서(김하나)

『빅토리 노트』는 이러한 독자들의 염원에 답하는 책이다. ‘빅토리 노트’의 원본을 스캔해 싣고 엄마와 딸인 이옥선, 김하나 작가가 지금의 시점에서 코멘트를 더했다. 46년 전에 시작된 일기가 2022년에 비로소 완성에 이르게 된 것. 더불어 이옥선 작가가 틈틈이 써온 에세이를 실어 70대 여성의 우리 시대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다정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독자들은 여느 젊은 작가보다 현대적이고 리듬감 넘치는 문장에 어느새 저자의 나이를 잊고 글에 빠져들 것이다. 또한 미디어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 평범한 70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자기 삶을 그려볼 수 있다.

가끔 내 블로그나 SNS에 엄마가 60~70대 커뮤니티에 쓴 글을 올리면 젊은 독자들의 반응이 쇄도했다. 이옥선 작가의 글은 문체가 현대적이고 리듬감이 좋다. 그리고 항상 참 재미있다. 육아일기와 함께 엄마의 에세이를 묶어내게 되어 오랜 독자로서 기쁘다. 엄마가 20년 동안 몰래 간직하고 내가 27년 동안 머리맡에 간직해온 나의 보물 1호가 이제 씨앗이 되어 세상으로 날아간다.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_「서문」에서(김하나)


딸 46년 인생의 보물 1호가 된, 엄마의 5년 육아일기
“다섯 살 생일로부터 40년이 지났는데도
‘빅토리 노트’를 열면 여전히 축하를 받는다”


육아일기를 5년 넘게 쓰고, 그것이 주인공에게 전해지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조산원에서 태어나 받은 출생증을 시작으로 돌을 축하하는 외삼촌의 편지, 엄마가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 두 살 터울의 오빠가 한 낙서, 전화 개통 소식 등이 담긴 ‘빅토리 노트’는 산부인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한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유선전화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사람이 만나고 살아왔는지, 또 낙서 한 조각으로 어린 시절의 오빠가 홀로그램처럼 겹쳐지는 경험까지 하게 한다. 김하나 작가는 대학 시험에 떨어진 후에 비로소 ‘빅토리 노트’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일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약 20년 만에 ‘빅토리 노트’를 전해 받은 것이다. “갑자기 인생의 제일 첫 5년을 선물받”은 작가는 본가를 떠나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늘 머리맡 잘 보이는 곳에 이 일기를 두고 매년 자신의 생일에 펼쳐보았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한없이 귀여워하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기록으로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작가는 “다섯 살 생일로부터 40년이 지났는데도 ‘빅토리 노트’를 열면 여전히 축하를 받는다”(본문 273쪽에서)라고 말한다.
서른 즈음의 엄마가 딸아이를 키우며 한없이 귀여워하면서도 고된 육아에 지쳐 그 마음을 다 표현해주지 못하는 것에 한탄하고, 점점 자라 당시의 엄마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딸은 독박육아에 지친 그 시절의 엄마를 다시금 바라본다.

1948년생인 엄마는 이때 겨우 서른 무렵인데 벌써 애 둘의 엄마이고, 남편은 나돌아다니는 술쟁이여서 독박육아를 하면서도 노트를 펴고 엎드려서 플러스펜을 꺼내 내가 귀엽다고 한 자 한 자 쓰고 있다. 그렇게 쓰인 글자가 내 눈앞에 있다. 45년이 지나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꿍했던 나의 마음은 너무 작은 것이 되어 어느새 형체도 없이 녹아버린다. 이 일기는 매번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놀라울 정도로 힘이 세다. 서른 무렵의 엄마는 이제 40대 중반이 된 나보다 훨씬 크다.
_본문 49쪽에서

육아일기라 해서 감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정직하게 말하는 엄마의 성정은 여기서도 빛을 발해 “지금도 ‘헤어빨’이 없으면 인물이 안 난다”라며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고, 여기에 딸은 “이 책에서까지 이런 대쪽 같은 정직함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라며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본문 61쪽에서) “침을 흘리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 일기는 한층 입체적이고 재미가 더해지는데, 어디선가 욕을 배워 와서는 여과 없이 내뱉거나 “쉬하고 싶을란다” “밥바 먹고 싶을란다” 같은 말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배어 나오기도 한다.(본문 169쪽에서) 한 아이의 아주 사적인 기록이지만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주택정책을 비롯해 부마항쟁, 10?26 사태 같은 사건을 겪어낸 보통 사람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더불어 유선전화를 개통하던 날의 기록을 통해 우연히 주어진 번호가 훗날 한 가족의 휴대폰 번호가 되어 “때로는 전화번호가 가계도가 되기도” 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 빛바랜 종이 위, ‘빅토리 노트’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금 엄마의 나이는 서른네 살이지만 이 노트를 받게 될 때 엄마는 쉰 살쯤 되겠지. 젊었을 시절의 엄마의 생각, 생활이 조금은 지각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낳아서 젖 물려 재우고 따로 서고 첫발을 내딛고, 기저귀를 떼고, 말을 한마디씩 배우고, 글자를 익히고, 순간순간이 엄마의 기쁨이었고, 고생이었고, 가슴 두근거림과 놀람 그리고 보람이었다.
다시 한번 하나야, 잘 자라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깨닫고,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며 또한 만족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_본문 271쪽에서

2부 「인생이란 무엇인지 늙을수록 즐거워」에서는 이옥선 작가가 기존에 인터넷 매체에 연재한 글과 각종 카페에 올렸던 글을 더해, 세월을 따라 켜켜이 쌓여온 한 사람의 인생과 늙을수록 즐거워지는 삶 그리고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는 노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에 태어나 결국 늙어가게 될 우리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46년 전 시작된 일기는 김하나 작가의 든든한 바위섬으로 자리 잡았고, “모든 시절의 제일 앞 장에 놓여 내 삶의 마지막 장까지 소중한 빛을 비추어줄”(본문 255쪽에서)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한 아이의 사적인 기록이 어느새 씨앗을 퍼뜨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김하나 작가의 말처럼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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