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금곡 홍릉으로 봄 소풍을 갔다. 4학년 12반 여자 담임으로 관광버스 안에서 인사를 했다. 점심시간에 반장 어머니가 도시락을 주고 갔다. 그 속에 돈 봉투가 들어있다. 처음 받아보는 봉투였다. 소풍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복도에 4학년 열다섯 반 선생 모두 모였다. 주임 교사가 돈을 거두었다. “교장에게 왜 상납을 하는지 물어봐도 돼유?” 관행으로 한다며, 모처럼 받은 돈을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이래유, ~그랬대유. 정 선생이 강원도 사투리 쓴다고 ‘촌닭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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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상욱이는 불량배와 함께, 동관 교실에 주전자며 값나가는 비품을 도둑질했다. 도둑은 눈이 손바닥에 달려 있다. 그 손은 도둑질하는 더러운 손이다. 참으로 손은 오묘하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능력의 손, 사랑의 손, 돕는 손이 되기도 한다. 반성문에는 용돈이 궁해서 저질렀다고 한다. 다른 생각 못 하도록 일거리를 주어야 한다. 변두리라 이발하려면 천호동까지 버스 타고 가야만 했다. 이발 기구 도매상에서 이발 기계 두 개, 가위 두 개, 머리빗과 흰 커버를 사 들고 왔다. 우리 반 복도 끝 모퉁이를 포장으로 가렸다. 그곳에 무료 이발관을 차렸다. 이발사로는 상욱이와 명철이, 숙희, 영광이가 자원했다. 먼저 정 선생이 시범을 보였다. ‘사각사각’ 머리 깎는 소리가 첫눈 밟는 소리로 들렸다. 네 명의 꼬마 이발사 눈망울이 빛났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대여섯 명씩 이발을 해 주었다. 성급한 상욱은 쥐가 썰다 남은 머리처럼 깎아 놓았다. 머리카락이 이발 기계에 끼어 따갑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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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형 뜻을 모아 새 교실 짓기로 했다. 허드렛일은 기성회에서 맡고 교육청 예산은 정 선생이 신청했다. 교육청에서 회답이 왔다. 금년 사업에 없는 예산이라, 스스로 짓겠다면 승인하겠다는 내용이다. 맨주먹으로 어떻게 교실을 짓는담? 고민 끝에 좋은 생각 떠올랐다. 노 상사와 피나무골 산판으로 갔다. 트럭 앞바퀴에 피대 걸고, 제재를 하고 있었다. “새 교실 지으려는데 목재 구하려 왔습니다.” 노 상사가 말문을 열었다, 매부리코 지목상은 화통했다. 선뜻, “기둥감 스무 개, 그리고 서까래 서른 개 기부하겠소.” 이런 방법으로 두서너 산판 돌아다니며, 목재를 구했다. 낡은 교실 헐었다. 일에 동원된 일꾼들은 황소처럼 일해 하루 만에 땅고르기가 끝났다. 공사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대들보 올라가는 상량식을 가졌다. 김 면장과 조 교장이 참석했다. 조 교장은 대들보에 상량문을 섰다. 좌에는 ‘용龍’을, 중간에 ‘개공대길開工大吉’, 우에는 ‘귀龜’ 자를 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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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변화시켜야 발전한다’는 생각에 서울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구 교사를 자원했다. 2년 동안 두 번 공개수업 해야 하고, 연구 논문도 써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벌떡 일어나 행운을 찾아보자. 지금 도전해보자. 여건을 만들어가는 길목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겠지? 6학년 남자 반을 대상으로, 학년은 무시한 산수 ‘개별학습카드’로 결손 보안하는 것이 목표였다. 각자 어디가 결손인가를 진단한 후, 교사가 출발점을 정해 준다. 선수학습의 결손을 보안하기 위한 보안학습카드와 본 학년의 목표 도달을 위한 심화학습카드를 작성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생각의 열쇠’를 도입한 발견 학습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교사가 예시해준 몇 가지 힌트를 말한다. 편안하고 예측 가능한 일에 안주하기보다는 일단 시도해보자. 창의력은 곧 용기다. 누군가의 아이디어에 자기 것을 결합해 탁월한 새 아이디어를 만들어보자. 2년 노고 끝에 금상을 받았다. 금상의 의미는 도공의 달인처럼 서울 교육청 관내 수학 분야에서 우수 교사라는 명예다. 특전으로는 교사가 장학사로 들어갈 자격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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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학관 집무실로 남산초등학교 34회 제자들이 찾아왔다. “스승님 환갑잔치를 우리가 해드리려고 왔습니다.” 뜻밖의 말에 극구 사양했다. 이미 강남 대한교육연합회관에 예약을 해놓았다고 한다. 춘천경찰서 최명호 경위가 사회를 보았다. 여자 제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 안내를 했다. 손님은 주로 교육부 교육원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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