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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매일이 모여 특별한 사람으로] 귀찮 작가의 매일이 담긴 에세이. 그가 1년 365일을 자신을 들여다보며 쓴 매일 하루치의 발견들은 하루씩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길이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지는 방법은 꾸준한 것임을 알게 된 귀찮의 가장 나다운 나를 찾는 1년의 기록이 담긴 책. - 에세이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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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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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귀찮
관심작가 알림신청본명 김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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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돈 버는 일, 각박한 세상 어딘가에 내 자리를 잡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했는데, 요즘은 싱크대 거름망을 씻거나 나물을 먹기 좋게 다듬는 것과 같이 내 살림을 가꾸는 일이 돈 버는 일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언젠가는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 곳곳을 누비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끊임없이 영감을 받고, 그리고 쓰고…. 이게 꿈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림살이, 세간살이를 구석구석 보살피고 사용하고 정리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정성껏 요리해 든든히 먹고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여유를 잃으면 더 슬플 정도로.
--- p.16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평소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글과 그림이래도 매일 그리고 쓰고 있어야 진짜 좋은 생각이 났을 때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아홉 번의 형편없는 글 없이 열 번째의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부족하고 엉망일지라도 매일 그리고 쓰기 위해 나 스스로 하는 다짐. 그러니 오늘도 이토록 형편없는 일상을 기록하자. --- p.35 언젠가 ‘죽음’ 하면 무슨 색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나는 검은색을 떠올렸는데 아빠는 갈색이라고 했다. “나무가 처음부터 갈색인 건 아냐.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보면 흰색이 나오거든. 죽어가면서 서서히 갈색이 되는 거지. 사과도 마찬가지야. 금방 쪼갰을 땐 흰색인데 죽어갈수록 갈색으로 변하지. 그걸 갈변이라고 하고….” 지난주만 해도 우중충한 갈색이던 앞산에 조금씩 연둣빛이 감돌고 있다. --- p.201 오후 8시 무렵 마을 전체에 정전이 되었다. 불도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된다. 옆집 할머니가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며 바꿔주셨다. LTE인 동생과 내 폰은 안 되고 할머니의 2G폰은 되는 것이다. 다행히 물은 나온다. 라디오도 된다. 라디오에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이유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가 나온다. 동생은 심각한데 나는 뭔가 웃기다. 이 노래가 이렇게 달달했나. 손전등을 켜놓고 설거지를 했다. 6시에 광고 콘텐츠를 올려놓고 효율이 잘 안 나와 심란하던 차였는데 확인할 수도 없다. 가만히 나무 심지로 된 초가 타닥타닥 타는 소리만 듣고 있다. 이대로 계속 안 되면 냉장고 속 음식이 다 상할 테고, 온수가 안 나와 샤워도 제대로 못 할 텐데 왠지 자꾸 미소가 지어진다. --- p.274 할머니의 88번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집업실로 모시고 왔는데 도리어 내 생일처럼 할머니가 곳곳을 돌봐주고 있다. 다부진 표정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할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잡초를 뽑고 메마른 겉흙을 파서 보드랍게 일구셨다. 그리고 지난해 뿌리째 뽑아 말린 뒤 그대로 창고에 넣어두었던 조선배추와 삼동초를 손으로 슥슥 문질러 까만 씨를 받아내고, 후 불어 지저분한 겨를 정리하고, 동생과 내가 심어둔 가지와 고추의 지저분한 가지들을 잘라내셨다. 서른셋의 내가 하루 종일 해도 티 안 나던 밭이 여든여덟 할머니의 손에 반나절 만에 번듯해졌다. 오랜 시간 흙과 친하게 지냈던 사람의 몸에 밴 지혜와 습관은 따라갈 수가 없다. --- p.305 집업실에 오니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목포와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떠오른 생각과 영감을 정리하게 된다. 설거지를 하며, 가지와 토마토를 따며 ‘이렇게 해봐야지, 저렇게 해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시골에 살아서 좋은 점은 이거다. 반짝거리는 곳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휩쓸리다 끝났을 텐데 여기선 물리적으로 고립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반짝임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 좋은 것들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p.318 나는 언제나 당장을 바랐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당장 성공하길, 오늘 심었으니 내일모레 싹이 트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 여겼다. 하지만 이 작은 삼동초조차 때가 맞아야 싹이 튼다. 지금의 나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책이 때를 놓친 삼동초 씨가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실패라 여기지 말자. 할머니 말처럼 계절은 돌고 도니까. 지금 안 나면 늦게라도 날 것이다. 그때까지 낙담하지 말고 실망하지 않고 계속, 그리고 쓰자. --- p.446 |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 ─ 프란츠 카프카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면 알게 된다, 나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대부분의 우리는 매일을 별일 없이 산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스치듯 흘려보내는 날도 수두룩하다. 그러고는 내 인생은 특별하지 않다고 아쉬워한다.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내는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번에 출간된 『귀찮지만 매일 씁니다』는 작가가 자기 인생의 관찰자가 되어 평범한 일상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고 발견하면서 1년 365일을 기록한 책이다. 지난 1년 동안의 ‘귀찮 관찰일기’인 셈이다. 30대를 앞두고 퇴사한 작가는 경북 문경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화려하고 치열한 도시에서의 삶도 아닌데 재미있을까 싶지만, 오히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상에 더 마음이 간다. 뭐라도 되려고 꾸역꾸역 하는 삶 대신 구석구석을 보살피고 정리하며 정성껏 요리해서 든든히 먹고 지내는 작가의 일상은 따스한 위로와 응원이 된다. 평범한 일상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는 과정을 보면 작은 희열마저 느껴진다. “반짝거리는 곳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휩쓸리다 끝났을 텐데 여기선 물리적으로 고립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반짝임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 좋은 것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7월 22일 기록 중에서 무엇보다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고민하는 데서는 천생 작가임을, CMYK와 RGB의 간극을 고민하며 신중히 색감을 고르는 데서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섬세한 모습도 발견한다.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길러 먹고 미생물 처리기를 활용하는 자연생활자의 모습도, 계산서 발행과 세금에 대해 고민하는 사업가도 같은 사람이다. 방탄소년단 팬인 ARMY도 보이고, 가끔 흙탕물이 나오는 수도 시설을 걱정하는 모습에서는 시골인의 귀찮도 있다. 이번 책을 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모습들이다. 카프카의 말이 옳았다.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이 책은 깨닫게 해준다. “아홉 번의 형편없는 글 없이 열 번째의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다.” ─ 11월 24일 기록 중에서 “돌이켜보면 반짝임은 늘 완성의 순간보다 과정에 있었다. 모든 게 정리된 순간보다 미완의 순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내 감정, 느낀 바가 더 생생히 살아 있었다. 설령 부족하고 어설플지라도 과정 속에 있을 때만큼 완성물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을 때는 없는 것이다.” ─ 12월 6일 기록 중에서 “1년 365일 매일 가벼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만 계속하다 보니 가장 나다운 내가 되었다! 이번 책은 원고가 완성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작가가 게을러서도, 책 쓰기가 괴로워서도 아니다. 1년 365일 매일을 꾸준히 기록해보기로 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물리적인 시간 1년이 필요했던 것. 물론 중간에 ‘난 누구? 여긴 어디?’ 하며 괴로운 날도 있었을 테지만 그 기억들조차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책에 담았다. 우리네 인생이 좋은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고, 알찬 날도 있고 허무하게 날려버린 날도 있듯이.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이제 작가는 사소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이루었다. 전업 작가도, 만화가도, 일러스트레이터도, 강연 전문가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라던 작가는 매일을 발견하고 기록하면서 책 속에 등장하는 ‘삼동초 씨앗 같은 사람’(446쪽)이 되었다. 때를 놓치고 뿌려도 봄에 안 나면 늦게라도 돋아나는 삼동초 같은 사람. 오늘 심었으니 내일모레 싹이 트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길 바라기보다 매일을 꾸준히 점-선-면을 채우며 커가는 사람 말이다. ‘귀찮지만 매일 쓴’ 덕분이다. 작가의 지난 1년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든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부담스럽고 귀찮을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작가는 ‘공들인 한 방보다 매일의 가벼운 시도를 좋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이다. 그저 발자국을 남기는 거라 생각하면 쉬워진다고 말이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잃지 않고 꾸준히 뚜벅뚜벅 가다 보면 가장 나다운 내가 되고 자아가 튼튼해진 기분이 들 거라고. * 이 책은 1월 1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서른셋이 되기 바로 전날인 11월 5일부터 서른넷 생일을 맞이한 다음해 11월 6일까지의 기록이다. * 모니터나 액정화면에서만 만나왔던 사랑스러운 귀찮을 손으로 종이 질감을 직접 느끼며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무려 365일 365번이나. 소장 가치 확실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