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는 식물들
: 뮤지션 임이랑이 말하는 ‘균형 잡힌 식물 사랑이란’
화초를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이를 키우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며 곡을 만드는 뮤지션이면서, 식물 전용 방과 식물을 위한 테라스를 만들고, 오로지 식물의 생장 조건을 위해 365일 내내 식물등과 선풍기를 켜두는 사람, 팟캐스트에서 식물 전문 방송을 진행하고, 두 권의 식물 에세이를 쓴 사람이 있으니, 밴드 『디어클라우드』 멤버 임이랑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엔 시각적이고 미학적인 이끌림에 식물을 좋아했었지만, 언젠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던 슬럼프 한가운데에서 그 누구도 아닌 식물들이 보내는 무언의 위로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물 앓이가 시작되었다.
임이랑이 식물을 대하는 자세는 한 마디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사랑’이다. 한 식물을 집에 들일 때 그 식물의 특징을 알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수시로 지켜보는 등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느새 시들어 생을 끝내가는 식물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한다. 초보자들에게 하는 조언 중 ‘물 주기 3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임이랑은 가드닝의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게 ‘많이 죽여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화초를 떠나보낼 때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지만, 이제는 일년생 식물이 1년의 삶을 잘 살고 떠나듯, 이제는 그 화초의 생이 거기까지였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떠나 보내주게 되었다. 그만큼의 경험치와 각각의 생장 특성을 공부한 결과들은 식물 돌봄이의 머릿속에 착착 쌓여갈 것이다.
식물을 이렇게까지 정성껏 돌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식물의 포텐이 보고 싶어서요.” 최적의 조건을 맞추었을 때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성장의 포텐도 기대하지만, 거의 죽어간다고 생각된 화초가 한겨울을 힘겹게 지나더니 봄이 되자 새순이 돋는 것을 목격하자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생명력의 포텐’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사람을 구원하는 세 가지 방법
: 김수경, 배보람, 이아롬의 가드닝 에세이
가장 소중한 것을 한꺼번에 잃은 절망보다 더 추스르기 힘든 시련이 있을까. 원예치료사이자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김수경은 소중했던 존재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아픈 경험 뒤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순간들이 멈춰버린 시간을 보냈다. 몸을 일으켜 단순한 행동조차 하기 힘들었던 멈춤의 시절이었지만, 어느 날 집안 곳곳에서 주인의 끊어진 손길에 메말라가는 식물들을 보며 회초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괴로움을 추슬러 다시 화분에 물을 주고 시든 이파리를 떼어내는 작은 행위에서부터 서서히 상처와 절망이 씻기고 있음을 말이다.
배보람의 위트 가득한 옥상 정원 이야기는 식물이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새삼 확인하게 만든다. 이웃끼리 오가는 식물 돌보기의 품앗이 현장이 펼쳐지지만, 그 품앗이가 본의 아니게 원치 않는 피해를 야기하는 난처한 사정이 펼쳐지는데,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독자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든다.
공동체 가드너인 이아롬은 상업적인 판매에 주력하는 농산물의 생태에서 벗어나, 환경 보존적 가치를 지켜내고자 불모지와 같았던 쓰레기 가득한 텃밭을 일구어 계단식 공동정원을 만들어냈다. 식물 가꾸기를 사랑하는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 취미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의무와 개인의 사명감을 모두 이루고자 하는 공적인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Follow your bliss” 당신만의 희열을 추구하라
『우먼카인드』의 해외 필자들이 이번 호에 다함께 집중한 이야기는 ‘Follow your bliss’ 곧 자신만의 행복, 혹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희열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의 얘기다. 누구나 인정하고, 누구나 안정된 길이라 여기는 출세와 안위의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말로 원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길을 담담히 선택하여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자기만의 모험으로 이끄는 부름’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어떤 곳에서 희열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아야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직업화가의 길을 마다하고 오래된 옛 성의 내부를 꽃과 식물 그림으로 채우는 사람, 뉴질랜드 웰링턴 시내에서 전통의상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는가 하면, 안정된 한 직장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인생 주기에 맞춰 직업을 바꿔보는 새로운 도전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팬데믹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수시로 자녀들과 바다를 찾는 엄마, 눈물을 글썽이며 희열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황홀함을 설명하는 음악가도 이 주제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하지만, 실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너는 ~를 해야 한다’라고 무언의 명령을 내리는 외부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 직관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자세를 회복하고자 하는 용기 말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일진대, ‘자유에는 결정이 뒤따르며, 모든 결정은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캠벨의 말처럼 자기만의 모험은 스스로 시작하고 끝내야 함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