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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과 오래된 별빛을 관측하면서, 시간의 시작점과 아득히 먼 우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라는 종이 이해하고 있는 지식의 일부를 공유한다. 나는 내 아이들이 지금 나와 함께 보고 있는 별들을 나중에 자신의 아이들과 관찰하게 되기를, 그래서 먼 과거를 응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것은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별빛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그 별의 윤곽이나마 손에 쥘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종합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p. 24 우주는 인간 불확실성의 근원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난관이다. 우리가 우주를 경외시하며 탐구하는 것은 드넓은 우주에 오직 우리뿐이라는 단 하나의 명백한 발견에 대처하는 방어책이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경외심은 태초부터 뼈에 사무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 p. 30 마지막으로 개인 삶에 대한 고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 삶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게 될까? 하는 물음은 대단히 흥미로운 문제다. 지금 언급한 세 가지 갈래의 물음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주학과 블랙홀,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에 관한 연구가 한 축이라면 태양계 바깥 행성에 관한 연구가 또 다른 축을, 삶에 대한 탐구가 마지막 축을 이뤄 거대한 질문을 형성하는 것이다. --- pp. 48~49 우주 식민지 건설이나 우주에서 대립적이지 않고 허용할 수 있는 행위에 명확한 법적 지위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과거에는 새로운 땅이 발견되면 여러 나라가 공평한 방식으로 그 땅을 나누기로 합의하는 대신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퉜다. 화성이나 다른 천체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질까? 지구상 모든 국가가 우주에서 영토를 차지할 권리가 있을까? 아니면 우주 영토를 차지할 우월한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갖춘 국가가 소유권을 결정해야 할까? 당장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우주 식민지 건설이 실현되기 전에 대답해야만 한다. 아니, 어떤 대답을 내려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아울러 우주 개척에 선구적인 국가와 집단이 어떤 정부 형태를 채택해야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 p. 72 나는 계속 주류 천문학에서 벗어난 문제들을 연구했기 때문에 나만의 속도대로 연구하면서 시류에 따라야 하는 압박을 받지 않았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방식을 모범으로 제시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과학에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과학에는 분명히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나는 여러분 중 일부가 복잡한 과학사회학을 통과하여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학은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며 까다롭다. 또 과학은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고 고무적이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여러분은 별의 구성 물질로 이루어져 우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p. 120 |
꼭 필요한 도전 vs. 아직은 시기상조
《뉴필로소퍼》 15호는 “우주를 생각한다”를 주제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 성찰한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20세기 중반부터 본격화되었지만, 사실상 신화의 시대부터 인류는 우주를 동경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로스는 새의 깃털을 실로 엮고 밀랍을 발라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끝없이 날아올랐다. 밀랍이 녹아 곧 바다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태초의 인간들은 별의 움직임을 따라서 수시로 삶의 자리를 옮겼다. 신화와는 달리 인간의 욕망은 생生을 향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태양과 별로 상징되는 우주는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기술철학자이자 작가 톰 챗필드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를 생각하는 것이 “그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 번의 깜박거림에 지나지 않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우주가 갖추게 된 웅장한 모습 속에서 생명체들의 진화 전략”이 진행되었다면서,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본분임을 역설한다. “결국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것은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광대한 우주를 연구하면서 인간의 경계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과 경험으로 판단”하려는 마음이다. 귄터 하싱어 유럽우주국 국장은 인터뷰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서 우주를 동경하는 인간 앞에 놓인 질문은 단 하나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게 될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주를 연구하는 일이 인간 본연의 자리를 탐구하는 일과 같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더듬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현재의 우주 관광 등을 포함한 탐사 경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아직은 시기상조이며, 우려할 부분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당장 우주 관광으로 큰돈을 벌 수는 없다. 그러나 100년 전 사람들도 비행기가 이렇게 상용화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언젠가는 우주 관광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다만 염려스러운 부분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분야에 몰리면 우주 공간이 붐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주선들이 우주에다 버리고 오는 우주 쓰레기가 위험 요소로 떠올랐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쓰레기가 많아지면 새로운 우주선을 내보내는 위험도 커지기 마련이다.” 경쟁, 갈등, 충돌 아닌 협력이 필요한 때 작가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는 [골칫거리만 짊어지고 온 거야!]에서 화성 식민지 건설이 극복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위험은 몹시 큰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화성 환경을 지구인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영하 60도의 온도, 높은 이산화탄소 비율 등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화성에 자원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구 자원을 무한정 화성으로 퍼 날라야 한다. 그는 미국의 항공우주공학자 로버트 주브린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 개발에서 핵심 문제는 운송이다. 정착에서 핵심 문제는 해당 행성의 원료를 자원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 화성에서 식량을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 강철과 유리, 플라스틱, 세라믹 같은 모든 종류의 자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난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 우주 탐사나 개발은 이른바 선진국만의 리그다. 신경과학자이자 지정학자인 나이프 알-로드한은 인터뷰 [우주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에서 우주에 대한 소유권 경쟁을 경계한다. 그는 1967년 유엔이 제정한 우주조약에 따라 누군가 우주를 독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조약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이 조약이 문제가 되리라 상상도 못했다. 당시로서는 우주 식민지 가능성은 말 그대로 희박했다. 하지만 21세기 시작과 동시에 우주 식민지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쟁에 이은 갈등, 갈등이 불러온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과거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면 “공평한 방식으로 그 땅을 나누기로 합의하는 대신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툰” 인간은 우주에서도 그럴 것이 분명하다. 나이프 알-로드한의 해법은 결국 협력이다. “장기적으로 보아 우주 재산권과 관련한 가장 큰 위협은 한 국가가 우주 일부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고 그 영토를 지키고자 군사력을 동원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장은 우주가 우주 잔해물로 훨씬 더 혼잡해지고, 우주 군사화가 더욱 심각해져서 각국이 무기화한 위성을 쏘아 올리고, 우주나 지구를 향해, 혹은 다른 나라를 향해 사용하는 상황이 더 위험하다. 우주 군사화를 멈추고 지구 궤도에서 점점 늘어가는 우주 잔해물을 없애려면 공동의 노력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엄청난 재정 및 기술 자원이 필요할 것이 고, 반드시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우리가 영생할 곳은 우주가 아닌 지구 궁극적으로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살면서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혹은 정복하려는 욕망 자체가 문제다. 철학자 팀 딘은 [3차원에서 살면서 우주 이해하기]에서 지구에 살면서 우주를 다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의 모순적 행태를 지적한다. 그는 “철저히 이 땅에 발붙이고 진화해 온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인간이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신경 쓰는 것은 “지나친 수고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우주를 실제 모습 그대로 인식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면” 우주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사실상 헛발질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후손을 더 많이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세상을 인식했을 뿐이다. 3차원 평면과 시간만 인식하면 임무를 완성하기에 충분했다. 철저히 이 땅에 발붙이고 진화해 온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차원으로 휜 시공간과 쌍곡 다양체까지 신경 쓰는 것은 지나친 수고일 뿐이었다.”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통섭統攝의 학자로도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시선은 늘 인간 존재 혹은 본성을 향해 있었다. 그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을 넘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더 단순”한 존재인 인간은 “자수성가한 독립적이고 고독하고 허약한, 생물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적응한 생물 종”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각 종에게 맞는 서식 가능한 행성은 단 하나밖에 없으며, 따라서 불멸한 기회도 단 한 번뿐”이라고 강조한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과학은 그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 가야겠지만, 윌슨은 우리가 두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아울러 그곳에서 불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시선은 항상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향해 던지면서도, 우리 손과 발을 나와 내 주변을 향해 있으면 어떨까. 그것이 우리가 지구에 태어난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