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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24g | 118*188*11mm
ISBN13 9791191816167
ISBN10 1191816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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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가 아닌 선배들은 더 현실적이었다.
“학점은 고고익선. 밥은 혼밥이지.”
“그 말, 왠지 모르게 완전 슬픈데요?”
신혜의 말에도 준아는 그저 덤덤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보단 뭐든 혼자 해결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거다.
“너도 곧 내 말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준아 선배는 스펙이 될 만한 것들을 쌓느라 허덕이느니, 차라리 회계사 시험에 올인하겠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거절을 당하더라도 확실한 기준이 있는 거절이 낫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어차피 희생해야 한다면, 난 시간 하나만 담보 잡을 거야.”
“거절이요? 담보요?”
“너도 미리 생각해놔. 1년 금방 간다?”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고 선배는 사라졌다. 낭만은 불쑥 다가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연기 같은 것. 대학만 가면 있다던 백만 가지 즐거움은 어디로 간 걸까. 현실의 대학은 낭만과 설렘이 섞인 또 다른 전쟁터 같았다. 준비운동도 없이 바로 실전투입이라니 너무 잔인하잖아. 이 슬픔은 갓 튀긴 치킨으로도 치유하기 힘들 것 같다. 치킨만도 못한 대학이라니, 좌절이 쏟아져 내렸다. 어른이 된 후에도 매뉴얼 같은 게 필요한 걸까? 세상은 무심한 듯 그저 냉정하기만 하다.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 같아. 진정 우울한 밤이 될 것 같았다.
--- p.25

톡. 톡. 톡. 이제 그 소리가 들릴 시간. 신혜는 누워서 가만가만 그 소리를 기억해낸다. 엄마가 얼굴을 두드리는 소리. 기본 케어를 시작하는 소리다. 스킨소프너를 화장 솜에 묻혀 살살 닦아내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두드렸다. 가녀린 손가락이 얼굴 위에서 춤을 추는데, 바닥을 두드리는 빗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아서 어린 시절 신혜는 발끝을 세우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는 손짓은 빨랐고, 눈 주위를 두드릴 땐 더 섬세하고 더 빨랐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남주의 시간 속에서 어린 신혜는 학생이 되고 또 스무 살이 되었다. “엄마아.”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은 남주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린 신혜는 그 반짝임이 좋았다.

그때를 신혜는 지금도 가끔 떠올렸다.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는 그 소리. 때론 뿌연 상상 속 장면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는 흐릿한 기억 어딘가에서 또다시 톡.톡.톡. 순간, 귀로 들어왔던 단순한 소리가 음률이 되어 다시 신혜의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톡톡톡. 톡톡. 톡. 톡. 갑자기 신혜가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방안을 움직였다. 뭔가 좋은 예감이 몸속 깊이 파고든다. 마음을 두드리는, 당신의 얼굴을 두드리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톡톡톡. 신혜는 유레카를 외쳤다. 찾았다. 네 이름!
“안녕하세요? 당신을 특별하게 해주는 기분 좋은 이야기. 마음을 톡톡. 얼굴을 톡톡. 《톡톡톡TV》 크리에이터 토키입니다.”
--- p.43

1호 고객은 체육특기생인 주선영이었다.
“쌩얼이 예쁘게 보이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남친이 자꾸 자기 전에 영상 통화를 하자고 하는데, 나 쌩얼 자신 없다고.”
선영이 툴툴댔다. 그럴 만도 하지. 선영은 솔직히 좀 못생겼다. 하드웨어가 저런 경우, 달변인 신혜도 좀 난감한 게 사실이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스타일이나 분위기로도 극복이 어려운 하드웨어가 있기 마련이었고, 그럴 때마다 신혜의 오작교 활동은 위기에 봉착했다.
“음. 최대한 조명을 이용해 보는 건 어때? 방은 좀 어둡게 하고 스탠드 조명을 얼굴에 직접적으로 비춰 봐. 전체가 환해 보이게. 빛이 떨어지는 부분에 쿠킹 포일 같은 걸 깔고 반사판 대용으로 써도 좋지. 환하면 일단 예뻐 보여. 그리고…… 전화를 좀 빨리 끊어.”
선영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놀랐겠군. 신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자기 전에 얼굴 안 예쁘다 어쩐다 하는 놈이랑은 당장 헤어져. 나쁜 놈 아니냐?”
--- p.51

“영화는 어땠어? 재미있었어?”
덕준이 먼저 물었다. 일생일대의 난감한 질문이었다. 덕준이 자꾸 눈치를 보는 걸로 봐서 자신의 반응을 이미 읽었나 싶어 신혜는 조금 미안해졌다.
“음악 영화라고만 듣고 잘못 예매했네. 미안해. 재미없었지?”
덕준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신혜의 얼굴이 풀어졌다. 사랑은 오묘하다. 그 감정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서 다른 감정을 덮어버리거든. 신혜는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덕준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봤다. 처음 대화를 나누던 날부터 혹시 자신을 마음에 둔 건 아니었을까, 하는 기대감에 탐정처럼 곳곳을 살피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첫눈에 반한 흔적 따위는 없었다. 덕준의 마음은 신혜보다 한발 늦게 시작됐던 모양이었다. 그 사이 덕준은 새 포스트를 올렸다. 영화 티켓 두 장의 사진을 올리고 ‘시작’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웃다가, 해시태그를 보는 순간 신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영화추천한새끼누구냐#잡히면죽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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