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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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608쪽 | 728g | 131*191*35mm |
ISBN13 | 9788934940715 |
ISBN10 | 8934940719 |
발행일 | 2022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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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608쪽 | 728g | 131*191*35mm |
ISBN13 | 9788934940715 |
ISBN10 | 8934940719 |
우리의 삶은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원하고자 하는 길 위에 서 있기도 한다. 어떤 순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삶을 살지도 모른다.
우리가 읽었던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삶의 한 방법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책의 내용을 더 이해하고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띄엄띄엄 읽었던 소설에서 다 느끼지 못할 감정을 영화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삶이 버거울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 버리고 떠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상상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족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하지만 다른 가족이 없다면 훌쩍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정해진 시계처럼 살았던 문두스, 그레고리우스가 인생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그의 삶은 열려 있었다. 갇혀있었던 마음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 어디로든 향할 수 있었다. 다리에서 만난 포르투갈의 여성 때문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의 수업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전의 그라면 전혀 생각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부딪혀 낯선 세계로의 여행, 즉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연히 책에서 만난, 낯선 언어로 된 문장이 삶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꿈꾸어보지 못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프라두의 삶을, 자신의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31페이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서 고전어를 가르치는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그레고리우스였다. 단 하나의 사건이 그를 바꿨다. 학교를 뒤로하고 무책임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학교에서 걸려 오는 전화도 무시하고 타인의 삶을 좇았다. 이미 그는 새로운 삶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낯선 도시는 우리를 훨씬 자유롭게 만든다.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의 삶을 생각한다. 그 연결고리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배운다.
시간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안다는 신이 왜 이것은 모르는가? 견딜 수 없는 단조로움을 의미하는 무한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37페이지)
철학적인 사유가 가득하다. 밑줄을 그어가며 문장을 읽고 기억 속에 저장하려고 애쓰게 된다. 중요한 순간마다 책을 펼쳐 아마데우의 언어를 음미했던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을 살핀다. 베른을 떠나 리스본을 향해 기차에 오르던 장면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과 흥분을 엿볼 수 있다. 리스본에서 다시 베른으로 돌아가면서도 리스본으로 돌아갈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낯선 도시를 걸었듯, 영화 속의 포르투갈의 거리가 머릿속에 맴돈다. 그 길 위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걸어보고 싶게 만든다.
_영원한 젊음
젊은 시절 우리는 자기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산다.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런 상황은 언제 바뀌는가? 이 끈이 우리를 점점 휘감고 결국에는 목을 조르는 건 언제인가? 이 끈이 절대 느슨해지지 않으리라는, 부드러우면서도 굽히지 않는 압박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이런 압박을 깨달을 수 있는 징후는 무엇인가 (320~321페이지)
『자기결정』의 페터 비에리가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십여 년 전쯤에 『레아』와 함께 읽었던 소설인데 그때는 어떤 감정으로 읽었는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왜 프라두의 삶에 그토록 매달리는가. 프라두의 삶을 알기 위해 평온했던 삶을 버릴 만큼 변화를 바랐던 것인가. 낯선 도시를 걸으며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299페이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그였더라면 어땠을까, 깊이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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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책으로도 영화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는데, 이번에 비채에서 새롭게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파스칼 메르시어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피터 비에리로,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났다. 베른 고등학교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배웠고, 독일어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3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했으나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대학에 회의를 느껴 은퇴했다.
2014년 독일 최고의 철학 부문 에세이에 수여하는 트락타투스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을 집필할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책날개 중)
리스본행 야간열차 줄거리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 교수로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도 조예가 깊고 진짜 학자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p.16 약간 지루한 선생일지는 몰라도 학교 제도의 기둥으로 존경받았고, 고전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 때문에 대학에서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는 우연히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곧 뛰어내릴 것 같은 포르투갈 여자를 구해준 후,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 서서 바라보게 되고 어떤 포르투갈 의사가 마치 자신에게 쓴 것처럼 느껴지는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면서 그의 흔적을 찾아 리스본으로 간다.(p.89)
그레고리우스를 리스본으로 떠나게 했던 책의 저자는 아마데우 드 프라두로 의사이자 저항운동가이자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p.103 아마데우 드 프라두는 인기가 좋고, 존경도 받았지. 사람들이 인간 백정이라고 부르던 비밀경찰 후이 루이스 멘드스의 목숨을 구하기 전까지는 말이오. 1960년대 중반, 그 의사가 마흔다섯 살쯤 되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소.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피했고, 그 사람은 상처를 아주 많이 받았지. 그다음부터 그 의사는 사람들 모르게 저항 운동에 참여했다오, 인간 백정을 구한 죄를 그렇게 씻으려는 듯이...... 저항운동을 했다는 건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알려졌소.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가 쓴 책을 읽어가며 그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프라두의 철학적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생애 동안 느낀 깊은 고뇌를 마주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책 한 권을 만남으로써 완전히 변할 수도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며 나도 그 가능성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22년 비채(김영사)에서 새로운 감각으로 다듬어 한 권의 양장본으로 새롭게 출간했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묵직한 두께감이 책의 내용과 잘 어울렸다.
겨울밤 깊이 사유하며 읽기에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솔직하게 쓴 후기
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강렬한 소설을 만났다. 빨리 읽고픈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문장을 곱씹게 되는 소설. 느낌으로만 어렴풋이 인지하던 그 감정을 정말 언어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감동받았다.
또한 작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파스칼 메르시어는 일전에 읽었던 《자기 결정》의 작가이기도 했다. 김영하 북클럽 이 달의 도서에도 선정되어 많은 분들께 사랑받았던 그 책의 저자는 페터 비에리라는 인물이었다. 알고 보니 같은 인물이 필명을 쓰고 있었다.
소설을 집필할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로, 전공인 철학 저서를 집필할 때는 페터 비에리로. 아, 이조차 매력적이라니. 이 매력적인 인물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 내 삶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 중 하나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라 한다. 이 소설도 그런 의의를 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스위스 베른의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학교에서 '걸어 다니는 사전'으로 불리며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다리를 건너 출근하는 그는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다리가 막혀 돌아가야 했다.
그날 폭풍우 속에서 이름 모를 포르투갈 여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무한한 경험과 가능성을 마주한 학생들과 달리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 자신의 인생엔 무엇이 남았는지? 잠시 생각하던 그는 수업을 중단하고 학교를 뛰쳐나온다.
알 수 없는 불안과 해방감이 섞인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는 몇 년 만에 에스파냐 책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발견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에서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문장을 발견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일은 그에게 처음이었다. 매일 같은 삶을 반복하던 그레고리우스는 강한 끌림을 느끼고 실행에 옮긴다. 물론 이후에도 잠시 갈등하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자기 인생에서 이렇듯 옳고 의미 있는 일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하며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를 직접 만나고 싶어 주소를 알아내 찾아가지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아마데우의 일생을 추적한다.
살라자르의 독재 정권 아래 누구도 믿을 수 없던 시절 아마데우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존경받는 의사였지만 비밀경찰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그동안의 명성을 모두 잃고 죽기 직전까지 저항 운동에 참여했던 아마데우 드 프라두.
그레고리우스는 무엇을 위해 타인의 삶을 쫓아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떠난 것일까? 알 수 없는 충동, 불확실한 열정으로 그는 낯선 도시에 있었다. 아마데우의 생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탄압받던 격정의 시대를 관통하며 그레고리우스의 삶과 연결되었고 이를 통해 그는 한 뼘 성장한다.
아마데우는 독재 정권 아래에서 표현의 억압에 저항하고 독재자의 가치 없는 구호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메멘토 모리. 죽음이야말로 매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아름답게 할 수 있고, 죽음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이야 올 때가 되면 오는 거지. 달라질 거라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데우는 이렇게 답해준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 그렇다면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메멘토에 대한 대답도 이어진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깨부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 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을 떠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타인의 빈정댐, 잘난 척, 그 외의 변덕스러운 판단 등 지나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말을 소리 내어 발음하기..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를 우리의 죽음을 기억하며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에 의식을 집중하라고 그는 일러준다.
한때는 어린 마음에 삶이 영원하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소설은 메멘토 모리가 일깨워주는 현재,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존재하는 죽음을 의식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고 있었다.
상당히 관념적이지만 유려한 문체에 매혹되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한 사람의 인생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시선도 좋았고, 불확실함으로 인해 삶이 버거워질 때 언제든 이 소설을 다시 펼치면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함께 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