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4월 04일 |
---|---|
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438g | 130*205*30mm |
ISBN13 | 9788954650694 |
ISBN10 | 8954650694 |
발행일 | 2018년 04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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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438g | 130*205*30mm |
ISBN13 | 9788954650694 |
ISBN10 | 8954650694 |
수상작 대상 박민정 · 세실, 주희 임성순 ·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현 · 그들의 이해관계 정영수 · 더 인간적인 말 김세희 · 가만한 나날 최정나 · 한밤의 손님들 박상영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심사위원 성석제 신수정 신형철 이장욱 정이현 선고위원 노태훈 이은지 이재경 김녕 안지영 이지은 한설 |
그동안 젊은작가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는 신선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새로운 작가를 알아간다는 느낌도 중요했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신예 작가들을 알지 못했을테니. 마치 조바심을 내는 것처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수상작품집도 구입하고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한 해가 지나 2018년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작년 수상작품집에서 보았던 작가의 이름이 또 보여 반갑기도 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온지 9년이 되었다. 작품을 읽어오면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작가들의 면면을 안다는 게 무척 반가운 일이었는데, 올해의 작품집에서 이름이 익숙한 작가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무척 새로웠다면 새로웠달까. 그만큼 새로운 작가들의 탄생되었다고 봐야겠다. 일곱 명의 작가의 이름을 되새기고, 그들의 작품의 느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책들의 내용은 신선했다. 어디선가 본듯한 작품들이 별로 없었다는 게 새로웠다. 총 일곱 편의 소설 들에서 작품에 몰입해 읽었다. 대상 수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에서는 친구 J에게 의지해 미국 여행중 한 축제장에서 벌어졌던 일로 인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있던 자신의 영상을 바라보며, 일본에서 한국인 가수를 좋아해 한국에서 살며 한국어를 배우는 세실과의 이야기를 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란 어렵다. 역사를 배우지만 피상적일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단 얘기다. 주희가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인이처럼 대화하고 행동하는 J를 부러워했던 감정과 세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느끼는 감정들, 위안부 집회를 하는 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쟁피해자라고 말했던 것에서 주희는 뉴올리언스에서의 자신을 떠올렸다. 이런 상황들은 반복되는 것일까.
두번째 이야기는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비자금의 한 형태로 보았던 미술계에 몸담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다. 미술계의 사건으로 그림들을 소개하고 부풀리기에 앞장섰던 그가 그 길로 들어선 자신의 이야기와 한국에서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꾸었던 것들을 말한다. 세번째는 2017년 대상 수상작가이기도 했던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 다. 아내가 안개에 휩싸인 도로를 건너던 버스안에 있어 사고를 당해 죽었다. 원래는 다른 버스였지만 출발한 버스로 인해 다른 버스를 타야 했던 일이 나중에야 밝혀졌다. 사고를 피했던 운전자가 해고를 당한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가해자가 될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이런 불꽃을 쏘아올릴 수 있다면 삶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이곳에 내가 발굴한 작가의 그림을 걸고 싶었다. 불꽃은 되지 못하겠지만, 불꽃을 쏘아올리는 발사대 같은 것이라도 되고 싶었다. 나는 그림 앞 벤치에 앉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 (70페이지,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중에서)
정영수의 「더 인간적인 말」은 죽음은 누가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변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아내와의 이혼을 담당하는 변호사인줄 알았지만 이모의 유산 상속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화였다. 여기에서 자신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는 이모가 현재 살아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젤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며 스위스로 갈 계획을 짜둔 이모를 방문해보지만 이모는 계획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존엄사에 대해 아내와 논쟁을 벌이지만 결정은 이모가 해야 한다. 어느 소설에서도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이가 있었잖은가.
전체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절대량 같은 게 있어서 그게 늘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확률상으로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다만 엄청나게 큰 분모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분자 값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항상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사고를 당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던 건 아닐까. (109페이지,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중에서)
블로그 후기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며 채털리부인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광고를 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과 어두운 거리의 오로지 한 곳에서만 빛을 발하는 한 식당에 들어선 여자와 그녀의 엄마와 동생을 오리와 돼지라 칭하며 일어나는 이야기인 최정나의 「한 밤의 손님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퀴어 영화를 만드는 남자의 이야기인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있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혔다. 한 동성애자의 고백처럼 여겨지기도 했는데, 퀴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나가 만났던 왕샤의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마음이 열린것일까.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 퀴어 이야기이지만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걸 보면. 결국 성적 취향의 차이인걸까.
매 수상작품 마다 신예 작가의 평론이 수록되어 있어 소설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소설을 바라보는 방법, 느끼는 방법들을 알 수 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도 평론가들의 글로 명쾌하게 드러나는경우도 있다. 새로운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 일이 좋다. 마치 굳었던 생각들을 유연하게 해준달까. 소설을 읽는 일도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을 읽는 일도 유연한 사고의 일환이 아닐까.
우리네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 하루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도, 그 인생이 지속되어도, 시간이 흘러 내 삶을 뒤돌아보면 우린 나름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하루하루가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우리 네 고민이 들어 있고, 인생의 어려움이 들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고민과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며 살아가게 된다. 멀리서 내 인생을 바라봤을 땐 아무런 특이사항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 희로애락이 숨 쉬고 있다. 오늘은 이런 일이 내일은 저런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일이 나를 성장시키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간다.
단편 소설을 읽다보면 그게 우리 네 인생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지, 이 사회의 단면을 몽환적으로 혹은 절망적으로 묘사할 때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 소설을 읽게 되는지 모른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소설과도 같으니까. 매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구매하려고 한다. 새로운 작가를 아는 것도 좋지만, 올해는 어떤 이야기들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잡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에 만난 수상작들의 작가들은 몇 명 빼고는 모르는 작가라 더 반갑다. 훗날 이 작가들의 다른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
대상작인 ‘세실, 주희’는 비슷한 또래의 다른 국적의 세실과 주희의 이야기다. 미국에 갔을 때 친구에게 당(?)했던 일을 마음에 품고 불편함을 느끼던 주희가 자신과 같이 일하는 일본인 세실에게 자신의 친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족적 차이와 혐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미술 작품이 어떻게 자본과 결탁해 부풀려지고 배불려지는지 그 모습을 흥미롭게 그렸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버스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와 우연히 그 사고를 피해 살 수 있었던 운전자에 대한 이야기다. ‘더 인간적인 말’은 스위스로 가 안락사 하겠다는 이모의 결정에 논쟁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되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가만한 나날’은 첫 직장에서의 일이 사회문제와 겹쳐지면서 승리자의 기쁨 어린 모습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반의 손님들’은 식당에 모인 엄마와 두 딸의 대화에서 인간의 탐욕과 속물근성을 볼 수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게이, 영화감독, 그리고 실패한 청춘이라는 선상에서 청춘의 심란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이야기 한다.
읽을 때엔 어렵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다시 한 발짝 뒤에서 보면 이야기의 핵심들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이 중 가장에 기억에 남는 건 ‘가만한 나날’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새로운 물건이 나왔을 때 좋은 댓글을 써주는 곳에 입사한 주인공은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이라며 좋아한다. 같이 입사한 친구가 이건 아닌 것 같아. 하며 퇴사를 할 때도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칭찬한 제품을 쓰고 아픈 아이의 사진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산소통과 거기에 연결된 호스 그리고 호흡기.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한다고 해서 아픔이 없어지는 건 아닐 터. 좋은 댓글을 쓰는 게 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댓글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댓글을 100% 믿는 편은 아니고 가능하면 나쁘다고 말하는 댓글을 보며 나름 평가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게 물건뿐이겠는가? 이렇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엄청난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무섭기도 하다. 책이야 읽다가 그만 두면 되지만 가습기 살균제 같은 건 쓰다가 아이가 아팠으니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상상할 수 없다. 나만 아니면 되고, 돈을 받았으니 유리한 검사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 오는 누군가의 피해는 어떻게 감당하게 되는 건지.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그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편 소설을 읽으며 지금 현재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소설들은 결국 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경우가 많으니까. 이번에 만난 작가들. 기억해야겠다. ^^
책을 읽으면서 강박적으로 작가의 이력을 찾는다. 언제 태어났고 언제 이 글을 썼는지, 그리고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더없이 친절하다. 젊은 작가들의 이력뿐만 아니라 작가노트, 작품 해설, 나아가 심사평까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와 수상 작품을 논하기 전에 ‘젊은작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등단 십 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일곱 편을 선정하는데, 그중 한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기는 하되 그것은 축제의 흥겨움을 배가하기 위한 것일 뿐, 일곱 작가에게 돌아가는 상금의 액수는 동일하며 이들 모두는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로 공평하게 호명된다.(p. 335) 2019년 10회를 맞아『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 에둘러 이야기하는 소설을 만날 때면 곧바로 알아들은 척했지만, 의혹에 시달렸다. 과연 잘 알아들은 것일까. 한편으로는 작가도 정답을 모를 것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말이다.『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젊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축제의 흥겨움을 제공하는 것 같다. 의혹에 시달리지 않으니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고 할까.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취향일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해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의견을 들어 보자.
평론가로서 글을 쓸 때는 ‘취향’보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 좋고, 또 ‘입장’ 표명보다 더 좋은 것은 ‘인식’의 생산이라고 믿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취향이 없을 수야 없다. 어떤 소설과 독자 사이에는 입장이나 인식 말고 취향만이 또렷이 남을 때가 있는데 그런 독서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p. 348 심사평)
임현의『그들의 이해관계』가 그랬다. 더없이 친절한 느낌에 쭉쭉 나아가다가 우뚝 멈추게 되었는데, 바로 이 대목을 읽을 때였다.
병원을 빠져나오던 그날 나는, 불안해하는 해주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는데 해주는 그런 나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에는 그게 너무 슬퍼 보일 뿐 다른 무얼 뜻하는 줄은 몰랐다. 그랬으므로 빠른 보폭으로 저멀리 나를 앞장서 걸어가는 해주를 가만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게 다 해주를 위하는 거라고,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p. 101~ 102 임현|그들의 이해관계)
가만 내버려두었으면서도 왠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 나는 자기 합리화를 잘 알았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할 뿐이었는데, 글에서 마주하니 묘했다.
무얼 하긴 했는데 그건 해주가 아니라 다 나를 위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해주가 분명 보았다고 했을 때, 아무도 보지 못한 걸 왜 혼자만 봤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었다. 왜 너만 계속 다르게 듣냐고, 괜한 일에 제발 걱정 좀 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려고 애쓸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화를 내던 해주를 말릴 게 아니라, 뭐가 그렇게 너를 암담하게 만들었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말해보라고, 그게 뭐든 같이 견디자고. 아니면 그냥 옆에서 가만 듣다가, 듣고 싶어할 말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내 말만 해버렸다는 생각에 외로워졌다. 그걸 해주 혼자 견디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p. 104 임현|그들의 이해관계)
임현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해관계’를 계속 검색했다. 분명히 알고 있는 단어였는데,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임현 작가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하다.
매번 그렇듯,「그들의 이해관계」를 쓰는 동안에도 누구나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혼자 텔레비전을 보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현관의 흐트러진 신발들을 정리하다가 가까운 빈 벽에 대고 가만히 “너무 나 같다······” 중얼거려주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누구 한 사람 정도에게는 그런 순간이 몹시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별다른 이유 없이 지금을 조금 견디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p. 126~ 127 작가노트|일인칭들)
그런 순간이 몹시 필요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덕분에 지금을 조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뛰어난 소설가들의 능력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세 개의 단계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관계 역시 그러해서 인간관계란 언젠가 내부적 한계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인물들이 제3자를 만나면 그 앞에서 비로소 그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문득 성숙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개별 인간 혹은 인생에는 깊이라는 것이 있고 그 깊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그 깊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고 또 그것을 미묘한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뛰어난 소설가들의 능력이다. 그런 소설은 ‘가르친 사람은 없지만 배운 사람은 있는’ 이상한 상황을 만든다. (p. 348 심사평)
언젠가 벤야민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세 개의 단계를 언급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발상과 감각에 해당하는 ‘음악적 단계’, 두번째는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세번째는 문장 단위로 직조하는 ‘직물적 단계’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단계’이면서 동시에 ‘요소’들이기도 하다. 작가마다 이 세 요소의 비율과 배치를 본능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개성들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p. 362 심사평)
무턱대고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사실 지금도 꿈꾸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자극도 받았다.「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쓴 박상영 작가의 작가노트에 이런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가 불이 켜진 아무 카페에나 들어갔다. 샷이 추가된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신 뒤 정신없이 소설을 썼다. 어깨가 떡처럼 굳어버리면 거짓말처럼 아슬아슬하게 지각하지 않을 시간이었고, 눈곱을 뗄 틈도 없이 통근 버스를 타러 갔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 음향장치가 고장난 기계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일을 했다. (p. 319~ 320 작가노트|한없이 평범한 날들)
지금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만 닮았지만, 행동력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박상영 작가의 행동력은 여전히 대단한 것 같다. 그는 2019 제10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대상이다. 노력한다고 모두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누구도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