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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 바람 세트
전10권
열린책들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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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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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 바람 세트 (큰글자도서)
[도서]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 바람 세트 (큰글자도서)
윤동주,이용악,이육사 등저 열린책들
200,000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 바람 세트 (큰글자도서)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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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카프 시인집 김창술·권환·임화·박세영·안막 | 104면
현해탄 임화 | 200면
낡은 집 이용악 | 72면
헌사 오장환 | 56면
와사등 김광균 | 64면
태양의 풍속 김기림 | 184면
초롱불 박남수 | 48면
육사 시집 이육사 | 56면
오랑캐꽃 이용악 | 80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 88면

저자 소개12

1903년 전주에서 태어나 노동을 하면서 독학을 하였고 1950년에 사망하였다. 1924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프로 문학 운동이 아직 활발하지 않았던 1920년대 중반에 비교적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김창술의 다른 상품

본명은 권경완(權景完)이며, 1903년 2월에 경남 진주부 진해군 서면 오서리(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경행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중동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야마가타(山形)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였다. 1924년에 단편소설 「아즈매의 사(死)」가 『조선문단』현상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 후 소년소설, 동화 등을 발표하였다. 1929년에 교토제대를 졸업한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에 가입하였고, 카프 도쿄지부와 무산자사에서 활동하였다. 조선으로 돌아와 프로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프
본명은 권경완(權景完)이며, 1903년 2월에 경남 진주부 진해군 서면 오서리(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경행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중동학교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야마가타(山形)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였다. 1924년에 단편소설 「아즈매의 사(死)」가 『조선문단』현상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 후 소년소설, 동화 등을 발표하였다. 1929년에 교토제대를 졸업한 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에 가입하였고, 카프 도쿄지부와 무산자사에서 활동하였다. 조선으로 돌아와 프로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프로문학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에 공동시집 『카프시인집』을, 1933년에 공동소설집 『농민소설집』을 출간하였다. 1931년, 1934년 두 차례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러는 동안 폐결핵으로 고생하였다. 1935년에 석방된 후 낙향하여 김해의 하자마(迫間) 농장에서 일하였다. 1939년에 재차 상경하여 문학에 매진하였다. 1943년에 첫 단독시집 『자화상』을, 1944년에 두 번째 시집 『윤리』를 출간하였다.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서기장을 비롯해 여러 직책을 맡았으나, 폐결핵의 악화로 활동하지 못하였다. 1946년에 시선집 『동결』을 출간하였다. 194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좌익세력 검거의 와중에 귀향하여 경남 마산에 머물렀다. 가난과 병마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1954년 7월에 영면하였다.

권환의 다른 상품

1902년 경기도 고양에서 출생하여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25년 카프에 가입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카프 해산 이후 배재고보에 재직하던 그는 1938년 시집 『산제비』를 상자하였다.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89년 사망하였다.

박세영의 다른 상품

1910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안필승이고, 일본 와세다 대학 노문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 귀국하여 임화 등과 함께 카프 제2차 방향 전환을 주도하였다. 주로 평론가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대에 창작 방법 논쟁을 일으켰다.

안막의 다른 상품

林和, 임인식林仁植

임화는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월북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이다. 필명으로 성아(星兒), 청로(靑爐), 김철우(金鐵友), 쌍수대인(雙樹臺人), 임다다(林DADA), 다임다(DA林DA) 등이 있다. 1908년 10월 13일 서울 낙산에서 태어나 1953년 8월 6일 북한에서 처형당했다. 십대 시절 보성고등보통학교 중퇴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경성거리를 방랑했던 문학청년 임화는 스무 살 때 영화 [유랑]과 [혼가]의 주연 배우로 활약했다. 수려한 외모로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며 1929년 연기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난다.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
임화는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월북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이다. 필명으로 성아(星兒), 청로(靑爐), 김철우(金鐵友), 쌍수대인(雙樹臺人), 임다다(林DADA), 다임다(DA林DA) 등이 있다. 1908년 10월 13일 서울 낙산에서 태어나 1953년 8월 6일 북한에서 처형당했다. 십대 시절 보성고등보통학교 중퇴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경성거리를 방랑했던 문학청년 임화는 스무 살 때 영화 [유랑]과 [혼가]의 주연 배우로 활약했다. 수려한 외모로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며 1929년 연기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난다.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32년 조선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통칭 카프의 지도자가 되어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 운동에 매진했다. 1938년 [해협의 로맨티시즘]이 포함된 첫 시집 《현해탄》을 출간하고, 2년 뒤 평론집 《문학의 논리》를 낸다. 해방 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약했고, ‘조선의 레닌’ 박헌영을 열렬히 추종하여 1947년 월북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문화공작대로 남한에 들어오지만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퇴각하자 다시 북한으로 간다. 1953년 남로당계 인사들의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임화는 이해 8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복 음모와 미국의 고용 스파이 등의 죄목으로 처형당해 생을 마감했다.

임화 의 다른 상품

1914년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면에서 태어났다. 1932년에 도일하였고 1935년 3월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신인문학』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37년 도쿄 산분샤三文社에서 첫 시집 『분수령』을 발표하고 1938년에 두 번째 시집 『낡은 집』을 같은 출판사에서 펴냈다. 1939년에 귀국하여 다수의 잡지,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1943년에 모종의 사건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해방 후 1947년 아문각에서 『오랑캐꽃』, 1949년 동지사에서 『이용악집』을 발간했다. 1950년에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의
1914년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면에서 태어났다. 1932년에 도일하였고 1935년 3월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신인문학』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37년 도쿄 산분샤三文社에서 첫 시집 『분수령』을 발표하고 1938년에 두 번째 시집 『낡은 집』을 같은 출판사에서 펴냈다. 1939년에 귀국하여 다수의 잡지,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1943년에 모종의 사건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해방 후 1947년 아문각에서 『오랑캐꽃』, 1949년 동지사에서 『이용악집』을 발간했다. 1950년에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북한군의 서울 점령에 의해 풀려나 월북한다. 1955년에 민주청년사에서 산문집 『보람찬 청춘』을, 1957년에 조선작가동맹출판사에서 『리용악 시선집』을 발간했다. 1963년에는 공역으로 『풍요선집』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발표했다. 1971년 폐병으로 사망했다.

이용악의 다른 상품

1918년 5월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에서 해주 오씨 오학근(吳學根)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한학수(韓學洙)는 오학근의 첩실로 들어왔으나 본처인 이민석(李敏奭)이 사망함에 따라 적실(嫡室)로 재혼 신고되었고, 오장환 또한 적출로 재신고되어 4남 4녀 중 3남이 되었다. 그는 안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해 1933년 11월 오장환은 15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문학]에 시「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 후 오장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에 있는 지산(智山)중학교에 입학·수료했으며, 19
1918년 5월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에서 해주 오씨 오학근(吳學根)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한학수(韓學洙)는 오학근의 첩실로 들어왔으나 본처인 이민석(李敏奭)이 사망함에 따라 적실(嫡室)로 재혼 신고되었고, 오장환 또한 적출로 재신고되어 4남 4녀 중 3남이 되었다. 그는 안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해 1933년 11월 오장환은 15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문학]에 시「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 후 오장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에 있는 지산(智山)중학교에 입학·수료했으며, 1937년 일본 메이지(明治)대 전문부 문예과 별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낭만,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정적인 시와 동시 등을 발표하며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렸다. 그의 첫 시집인『성벽』은 1937년 8월 풍림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이 시집의 발행으로 오장환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세 천재’로 화려한 주목을 받는다. 그 뒤 그는 자신이 경영하던 남만서방(南蠻書房)에서 두 번째 시집인 『헌사』를 1939년 7월에 발간했으며, [삼천리], [문장], [춘추] 등에 이따금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제 말기까지 문단 활동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던 열망이 국토 분단에 의해 좌절되면서, 그는 월북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월북 이후 오장환은 북한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고, 소련 기행 체험을 담은 제5시집 『붉은 기』를 발간했다. 그다음 해인 1951년 신장결핵으로 사망했으며, 1988년 납·월북 작가의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남한에서 잊힌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처음으로 『오장환 전집』(창작과 비평사, 1989)이 간행되고 그의 미발표 유고인 장시 「전쟁」과 「황무지」가 발굴·공개됨으로써, 오장환의 문학에 대한 평가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장환의 다른 상품

호는 우두(雨杜). 1913년 경기 개성에서 출생했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 누님」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뒤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식민지 시대에 제1시집 『와사등(瓦斯燈)』(1939)을, 해방기에 제2시집 『기항지(寄港地)』(1947)를 펴냈다. 6·25전쟁 이후에는 건설실업주식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제3시집 『황혼가(黃昏歌)』(1957)를 펴냈다. 김기림에 의해 도입되고 이론화한 시론을 바탕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김기림이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조”를 가졌다고 상찬하였듯이, 그는 사물의 외관과
호는 우두(雨杜). 1913년 경기 개성에서 출생했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 누님」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뒤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식민지 시대에 제1시집 『와사등(瓦斯燈)』(1939)을, 해방기에 제2시집 『기항지(寄港地)』(1947)를 펴냈다. 6·25전쟁 이후에는 건설실업주식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제3시집 『황혼가(黃昏歌)』(1957)를 펴냈다. 김기림에 의해 도입되고 이론화한 시론을 바탕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김기림이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조”를 가졌다고 상찬하였듯이, 그는 사물의 외관과 속성을 정교한 회화적 이미지로 담아내는 데 집중한 모더니스트였다. 그는 정서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독특하게 그려내면서, 도시 문명과 현대성에 부합하는 시어를 개성적으로 사용하였다. 현대 문명이 시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았으며, 대상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감각어를 자주 썼다. 또한 그는 비애의 정서를 자주 발화함으로써, 객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즘이 아니라, 낭만적이고 따듯한 이미지즘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속성은 과거 및 고향에 대한 상실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사에 대한 비판의식이나 소외의식으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그는 다수의 산문과 비평을 통해 ‘시인 김광균’ 못지않게 ‘논객 김광균’의 면모도 적지 않게 남겼다. 특별히 해방기에는 날카롭고 시의적인 평문을 다수 남겨 이 시기의 중요한 논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을 만하다. 말년에 시집 『추풍귀우(秋風鬼雨)』(1986)와 『임진화(壬辰花)』(1989)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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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손金仁孫, 편석촌片石村

1908년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인손(金仁孫), 편석촌(片石村)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서울 보성고보와 일본 니혼 대학을 거쳐, 도호쿠 제국대학 영어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대 초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고 문학활동은 구인회에 가담한 1933년경부터 시작했다. 영미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에 근거한 모더니즘 문학 이론을 자신의 시에 도입하여 우리나라에 소개한 것은 문학사적 공적으로 꼽힌다.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대학교에서 영미문학을 강의하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저서로는 시집 『기상도』, 『태양의 풍속』, 『
1908년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인손(金仁孫), 편석촌(片石村)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서울 보성고보와 일본 니혼 대학을 거쳐, 도호쿠 제국대학 영어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대 초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고 문학활동은 구인회에 가담한 1933년경부터 시작했다. 영미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에 근거한 모더니즘 문학 이론을 자신의 시에 도입하여 우리나라에 소개한 것은 문학사적 공적으로 꼽힌다.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대학교에서 영미문학을 강의하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저서로는 시집 『기상도』, 『태양의 풍속』, 『바다와 나비』, 『새노래』 등과 수필집 『바다와 육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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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918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상업학교와 일본 주오(中央)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한국시인협회 창립. [사상계] 편집위원. 감각과 인식의 적절한 조화로 언어의 자각과 사물의 이원성을 탐색함.1939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을 통해 등단했으며 초기 시들을 정리하여 1940년 첫 시집 『초롱불』을 간행했다. 이후 『갈매기 소묘』(1958), 『신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1970) 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1994년 미국 뉴저지주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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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陸史, 이원록, 이활

본명은 ‘원록’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독립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7년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 등을 발표했다.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
본명은 ‘원록’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독립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7년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 등을 발표했다.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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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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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952쪽 | 1354g | 114*199*93mm
ISBN13
9788932922102

책 속으로

그리하여 현실을 메스대 위에 던져라
--- 「오월의 훈기(薰氣), 카프 시인집」 중에

한 방울 눈물 속엔
일찍이 네가 알고 보지 못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자라난 요람의 옛 노래가 들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뜯던 봄나물과 꽃의 맑은 향기가 들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꿈꾸던 청춘의 공상이 들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갈아 부친 땅의 흙내가 들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어루만지던 푸른 보리밭이 있다.
이 속엔 그이들이 안아 보던 누른 볏단이 있다.
--- 「눈물의 해협, 현해탄」 중에서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냄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 「낡은 집, 낡은 집」 중에서

곡성이 들려온다. 인가에 인가가 모이는 곳에.

날마다 떠오르는 달이 오늘도 다시 떠오고

누런 구름 쳐다보며
망토 입은 사람이 언덕에 올라 중얼거린다.
--- 「할렐루야, 헌사」 중에서

이름 없는 항구의 조수가에 앉아
나는 나의 목화를 씻고
흘러가는 SEA BREEZE의 날개 위에
이지러진 청춘의 가을을 띄워 보낸다
--- 「SEA BREEEZE, 와사등」 중에서


훌륭한 아침이 아니냐?
쿵 ? 쿵 ? 쿵
나는 저 자식의 발자취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아……
--- 「훌륭한 아침이 아니냐?, 태양의 풍속」 중에서

흔들리던 초롱불은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
--- 「초롱불, 초롱불」 중에서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 피진 말아라
--- 「교목(喬木), 육사 시집」 중에서

몇천 년 뒤

닮지 않은 어느 아이의 피에 남을지라도
그것은 헛되잖은 이김이라

꽃향기 숨 가쁘게 날아드는 밤에사
정녕 맘 놓고 늙어들 보자오
--- 「구슬, 오랑캐꽃」 중에서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병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에서

출판사 리뷰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된 한국시 탄생의 순간

다가오는 2023년,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가 출간 100주년을 맞이한다. 열린책들은 한국시사 100주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100년을 맞으며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을 출간한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20세기 초는 시대적 고통과 개인의 천재성이 만나 탁월한 시집이 다수 출간된 시기이다.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시리즈는 당대 시인들이 남긴 시집을 엄선한 것으로, 오늘날의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이들 시집을 접할 기회가 될 것이다. 총 두 세트, 스무 권의 시집으로 구성된 기념판은 한국 현대시 탄생의 순간을 충실히 재현하여 예술사의 가장 높은 성취를 현재화함으로써 이를 다음 세대에 계승하고자 한다. 가격은 세트당 38,000원으로, 권당 3,800원의 저렴한 가격이다. 세트로만 판매하며, 각 세트는 합지로 만든 견고한 박스에 담았다.

일반 독자가 20세기 초의 시집을 접하는 데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시집 자체가 망실되거나 절판됨에 따라 입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간 한글 표기법의 변화나 출간 당시의 오식 등으로 인해 독서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본 기념판은 당시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초간본 그대로 배열 및 편집하였고 말미에 정확한 간기(刊記)를 수록하여 초간본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였다. 동시에 시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의 표기를 오늘날의 법칙에 맞춰 바꾸었으며 이남호 고려대 명예교수의 책임편집 아래 오기를 수정하는 등 철저한 교정 과정을 거쳤다. 나아가 시에 대한 상세한 각주와 시집이 가진 문학사적 의의를 설명한 해설을 첨부함으로써 일반 독자들의 접근성을 더욱 높였다.
시집을 선정함에 있어서는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 남아야 할 작품성이 있는 시집, 그중에서도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시집에 주목하였다. 그렇게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부터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까지 사반세기를 아우르는 스무 권의 시집이 선정되었다.
각 열 권으로 구성된 세트는 독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시집을 읽어 나갈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테마로 구성하였다. 하늘 세트에는 주로 이상적인 세계(자연, 종교, 고향, 유년 시절 등)에 대한 향수를 서정적이고 차분하게 노래한 시집을 모았으며, 바람 세트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과 당대 현실로 인한 고통을 이야기하는 시집을 모았다. 각 테마는 수록된 시집 간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며 읽을 수 있게 함으로써 독서에 추가적인 재미를 부여할 것이다.

『카프 시인집』(1931) 김창술·권환·박세영·안막·임화
카프, 즉 조선프롤레타리아동맹(KAPF) 문학부가 기획하여 펴낸 시집. 당시 카프 맹원이던 김창술, 권환, 임화, 박세영, 안막 등 다섯 명의 시를 담은 이 시집은, 카프 시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1931년에 발간되어 이들 시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보여 준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예 운동의 정치 투쟁화를 주장하며 발간된 시집으로서 구체적인 현장성이 돋보인다.

『현해탄』(1937) 임화
임화의 첫 번째 개인 시집. 대체로 1934년 카프 제2차 검거 사건 이후 쓰인 41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카프의 해체, 폐결핵 등 개인적 고통이 불러일으키는 좌절감과 그에 굴하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당시 우리 문학사에 새로운 도덕적 열정과 문학관을 가져온 카프 문학을 대표하는 시집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낡은 집』(1937) 이용악
이용악의 두 번째 시집. 15편의 시를 담고 있다. 시인의 관심은 줄곧 현실의 피폐한 실상을 구체적 정황을 통해 제시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낡은 집〉이라는 심상을 통해 삶의 피폐와 절망이 서정성과 결합하여 절실하면서도 격조 높은 비애로 승화되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될 만한 시집이다.

『헌사』(1938) 오장환
오장환의 두 번째 시집. 자신이 운영하던 남만서방에서 발행되었으며 총 17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수록된 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젊음의 비애와 허무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1930년대의 어두운 시대와 그 속에서 절망하는 젊은이의 내면 풍경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와사등』(1938) 김광균
김광균의 첫 시집. 1930년대 출간된 시집 가운데 가장 개성적인 시집으로 꼽힌다. 낯선 근대 문명의 분위기를 포착하여 한국 현대시의 시적 공간을 확장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근대의 풍물과 이국적 관념들을 회화적인 묘사를 통해 환기함으로써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태양의 풍속』(1938) 김기림
김기림의 두 번째 시집으로 그의 초기시 91편이 실려 있다. 김기림은 기존 시의 병약한 허무주의와 감상주의를 비판했으며 건강하고 건설적 시론을 주장하였다. 이 시집은 그러한 시론을 뚜렷하게 드러내어 과거의 어둠과 결별하고자 하는 의지와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고 지향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김기림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뚜렷하고 일관된 관점을 통해 근대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태양의 풍속』은 그의 시론과 시적 새로움을 확인해 주는 시집이다.

『초롱불』(1939) 박남수
박남수의 초기 시들을 모아 펴낸 첫 시집. 빛과 어둠의 대비와 비유를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암시하는 한편 토착적 풍물과 자연을 배경으로 민족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기도 하는 이 시집은 일제 말 암흑기에 국어의 순수성을 지키고 민족 고유의 정서를 살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육사 시집』(1946) 이육사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이육사의 유고 시집. 여기에 실린 총 20편의 시들은 독립투사로서의 그의 삶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동시에, 개인사와 특정한 시대를 넘어서도 공감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우아한 귀족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시와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비애와 슬픔을 노래한 시들이 한 예이다. 1940년대의 중요한 시집 하나로 평가된다.

『오랑캐꽃』(1947) 이용악
이용악의 세 번째 시집. 시인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인 현실에 대한 묘사가 이 시집에서는 보다 내면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제시됨으로써 높은 서정적 밀도를 가지게 된다. 이용악은 시에서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이 미적인 성취도와 양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최초의 시인이며, 총 29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 시집 『오랑캐꽃』은 바로 그 점을 확인하여 주는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윤동주
독립투사로 활동하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순절한 윤동주의 유고 시집. 아름다운 화해의 세계를 지향하는 본성과 가혹한 시대에 저항하고자 했던 양심 사이에서 갈등했던 윤동주 시인의 내면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시집이다. 자전적이고 내성적인 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바탕을 둔 실존적 윤리 의식, 그리고 시대와의 갈등에 성실했던 민족의식을 시로 표출했으며, 이러한 주제를 고도의 상징과 은유적 기법으로 독특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추천평

우리는 어떤 시간을 거쳐 간 사랑과 이별, 그에 수반된 기쁨과 슬픔을 알 수 있다. 시가 시간의 감옥으로부터 마음을 끄집어내 우리 앞에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쏟아지던 사랑의 아침과 이별로 무너지던 저녁의 얼굴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직 이 책에서만큼은, 시는 그 시간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마법이 된다. - 신용목 (시인)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을 읽다가 샛별눈이 되었다. 빙산의 일각을 마주했다가 빙산을 상상하고 나아가 빙하를 직면하는 일이었다. 이 시리즈와 함께라면 수심(愁心)에 잠길 때마다 더 깊은 수심(水深)을 생각하며 수심(修心)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닦는 데 시기가 따로 없듯, 하늘 아래 으레 바람이 불듯, 언제고 이 책들을 펼치면 시심(詩心)의 거울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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