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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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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540쪽 | 572g | 128*198*35mm
ISBN13 9791191114454
ISBN10 119111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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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고통─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젊을 때는 추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늙음’이 두뇌와 전신을 덮칠 뿐만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모두를 덮치는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것을 향해 살아갈 뿐인 인생인 것인가.
--- p.491

너무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기다렸기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날이 왔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 p.478

어머니라는 존재─체념을 모르고 호시탐탐 틈을 노려 뭔가에 감동하고 살아 있다는 증거를 계속해서 찾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얼마나 역겨웠던가. 늙음은 잔혹해서 정신이 하늘 높이 비상하고 피가 끓어오르기를 아무리 원해도 감동을 생명의 원천으로 담을 수 있는 잔 자체는 해마다 얕아진다. 어머니가 인생에서 계속 감동을 찾는 모습은 결국 늘 굶주림과 갈증에 괴로워하는 아귀도에 떨어진 망자 같은 양상을 띠었다. 어쩌면 색에 빠지는 일이 불가능해진 인간이 다시 한번 쾌락의 찰나를 좇아 더욱 격렬하게 색을 찾는 것과 비슷했다.
--- p.490

“그건 여자의 꿈 이야기야. 너는 신데렐라야, 우리 세대의.”
“이게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그렇지.”
“백마 탄 왕자도 없이?”
“그게 특별한 점이지. 오십대에 어머니만이 아니라 남편까지 없어지고, 금화가 지천인 큰 부자니까. 다른 여자가 들으면 화날 거야.”
--- p.530

거기서 사라지는 것은 한 남자의 그림자만이 아니었다. 사라지는 것은 하나의 정신이기도 했다. 그것은 미쓰키의 정신을 가두는 정신이었다.
--- p.501

“내 돈이 생긴 것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오십대에 그 사람한테서 해방되었다는 게 기뻐. 오십대에 해방이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행운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아왔거든.”
“정말 그렇겠다.”
“게다가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장수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강해지고, 어쩐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건 나도 그래.”
어머니에게 휘둘리는 사이에 살아갈 욕망이 눈에 띄게 시들어갔다.
--- p.17

앞으로 자기 인생은 이런 일의 반복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 어렸을 때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방치되어 자랐는데도 앞으로는 자기 어깨에 친정인 가쓰라가의 성가신 일이 덮쳐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 p.183

파리의 그 다락방에서 촛불이 깜박깜박 흔들리는 가운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데쓰오. 그 데쓰오에게 미쓰키는 경박하게도 얼마나 큰 것을 투영하고 말았던가. 〈라 보엠〉의 로돌포만이 아니다.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도,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도. 아마 『금색야차』의 간이치도. 무일푼이지만 하늘의 별에 손을 뻗고, 세속을 벗어난 야심을 품고, 또한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들. 소녀 시절부터 소파나 침대에서 나뒹굴며 천장을 향해 눕기도 하고 몸을 구부리고 옆으로 누워 센베이를 먹으며 되풀이해서 읽은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 어찌 그들의 모습을 경박하게도 데쓰오에게 투영하고 혼자 들떠버렸던 것일까.
--- p.361

어머니 집의 장이나 서랍에서 흘러나온 분에 넘치는 사치의 잔해는 1970년대에 개축해서 모르타르로 마무리한 일본의 집에─필경 꿈도 아무것도 없는 시시한 공간에 일종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농담이 뒤섞인 색이 눈을 자극하고 나프탈렌 냄새를 뚫고 향수나 비단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꿈 없는 공간에 꿈의 잔해가 농후하게 깃들어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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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사이의 복잡하고 불안한 관계에 대한 매우 감동적인 탐구. 미즈무라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인물들의 표면 아래 꿈틀거리는 혼란과 분노를 한 겹 한 겹 드러낸다. 모두에게 와닿는, 훌륭하게 쓰인 소설.
- 카리 루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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