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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 양장, 개정판 ]
리뷰 총점9.1 리뷰 124건 | 판매지수 36,552
베스트
한국소설 47위 | 소설/시/희곡 top100 4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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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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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0 (10% 할인)

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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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4월 1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32g | 128*188*30mm
ISBN13 9791162203620
ISBN10 116220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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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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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 안 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한다는 핑계도 대지 않아. 개개인의 정의 실현이라면 그거야말로 웃다 숨넘어갈 소리지. 하지만 말이다.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로 모은 돈을, 나중에 내가 쥐나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대로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구나.
그렇게 말했던 사람과, 함께 밥상을 나누고 머리카락에 싸락눈이 내려앉는 평범한 일을, 그녀는 잠시나마 그려본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코웃음 칠까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한 소박한 풍경을, 바라선 안 되는 나날을. --- p.34

그녀는 자신이 무용을 데려와 이름을 지어줬던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누구나 선뜻 내켜 데려가고 싶어 할 만큼 작거나 귀엽지 않았다는 기억만은 남아 있다. 아니, 기억보다는 지금의 외모로 보아 그때라고 썩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소급에서 비롯된 사고로, 어쩌면 아무도 데려갈 것처럼 생기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집어왔을 것인데, 당시 정황의 세부를 되살리지는 못하나 자신이 살아 있는 걸 주워왔다는 데 대한 당혹감, 살아 있는 것에 마음이 움직여 충동만으로 예정에 없던 행동을 한 데 대한 낭패감만은 선명하다.
집 안에 자신 말고도 살아 있는 누군가가 존재해서 그것에게 인사를 하게 될 줄은, 집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또는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봐 초조해질 줄은, 자기 인생에서 그런 날이 다시 올 줄은, 무용을 데려오기 전에는 몰랐다. --- p.138~140

무언가를 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가벼운 인사일지라도, 언제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렇다. 돌아서면 곧바로 자기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고 마는 일상이니까. 그녀는 무용의 머리를 서너 번 쓸어내리며 한 음절씩 확고하게 말한다.
“다녀, 온다.”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올 것이다. 손발이 움직이는 한은, 언젠가 이 녀석이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그 존재를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그녀는 현관문을 닫는다. --- p.168~169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집에 와서 그녀는 꼭 한 개를 먹었을 뿐이고, 그 뒤로 잊어버린 모양이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채소 칸 벽에 붙어 있던 걸 떼어내느라 살짝 악력을 높였더니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건져 봉지에 담고, 그러고도 벽에 단단히 들러붙은 살점들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긁는다. 그것들은 냉장고 안에 핀 성에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쯤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 나오자 무용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짖기 시작한다. --- p.225

방역업을 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그것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논거를 깔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일찍 죽기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던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것은 훌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류를 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 p.264~265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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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

그녀의 이름은 조각(爪角). 한때 ‘손톱’으로 불리던 그녀는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으며, 날카롭고 빈틈없는 깔끔한 마무리로 ‘방역 작업’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한편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평생을 되뇌어온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는가 하면, 청부 살인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발견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외면하고 살아온 조각의 눈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조각의 마음에 온기가 스며든다.

이 소설은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파과’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다. 부서진 과일, 흠집 난 과실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나이 16세 이팔청춘, 즉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한다. 우리 모두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주어진 모든 상실도 기꺼이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결심할 때 비로소 ‘파과(破瓜)’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소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여성 서사의 탄생

노인, 여성, 킬러.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가지를 조합한 주인공 조각은 65세 여성 킬러다. 한국 소설 가운데 이토록 파격적인 주인공이 또 있을까. 그동안 아가미를 가진 소년(『아가미』), 인간을 닮은 로봇(『한 스푼의 시간』) 등 환상적인 상상력을 통해 독특한 주인공들을 탄생시킨 구병모 작가는 한국 소설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60대 여성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여성 서사를 써내려가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사회의 최약자로서 차별받아온 ‘노인’과 ‘여성’이라는 인물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 ‘킬러’라는 강렬한 이름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자신을 치료해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된 조각, 그런 조각을 경멸하는 투우, 킬러들에게서 가족을 지키려는 강 박사. 마침내 투우가 강 박사의 딸을 납치하고, 조각이 투우에게 총을 겨누며 생애 마지막 작업을 실행키로 결심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향한다. 읽는 내내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듯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이 소설의 말미에서 조각과 투우가 벌이는 총격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파과』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이 지독하고 잔혹한 현실 속에서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이,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기꺼이 살아내는 모든 것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위로를 전한다.

회원리뷰 (124건) 리뷰 총점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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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서평]파과-구병모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나* | 2018.05.21 | 추천7 | 댓글7 리뷰제목
"다녀,온다"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 -올 것이다.(168p) '다녀온다'라는 말은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오지 않을 거라면 굳이 저렇게 말할필요가 없다. 그저 간다라는 말을 할뿐. 나는 오늘도 집에 남아있는 개 무용에게 다녀온다고 인사를 한다. 무용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나에게는 하나뿐인 가족 그만큼 유용한 녀석에게 말이다. 의뢰를 받는다. 표적을 확인한다.;
리뷰제목

"다녀,온다"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 -올 것이다.(168p)


'다녀온다'라는 말은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오지 않을 거라면 굳이 저렇게 말할필요가 없다. 그저 간다라는 말을 할뿐. 나는 오늘도 집에 남아있는 개 무용에게 다녀온다고 인사를 한다. 무용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나에게는 하나뿐인 가족 그만큼 유용한 녀석에게 말이다.


의뢰를 받는다. 표적을 확인한다. 의뢰받은 작업을 행한다. 그것을 방역이라 부르고 그 일을 행하는 나같은 사람을 방역업자라 부른다. 나는 육십이 넘은 노년의 여자다. 방역업자와는 조금은 거리가 멀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문가이고 지금까지 한번도 어긋남이 없이 이 일을 행해왔다. 처음 의도하지 않게 쇠꼬챙이 하나로 깔끔하게 사건을 저지른 이후부터 말이다. 아직도 나는 현역에 있다. 


물러버린 과일, 그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 그런 과일, 쓰레기일뿐일 그런 과일인 파과. 어떻게 보면 내지금의 나는 파과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서의 삶, 그런 것이 나에게 존재했었을까. 자식 많은 집의 아이로 태어나서 집안일을 하는 아이로 친척집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좋은 위치에 올라가는가 했으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갈곳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나는 우연히 한발을 들여놓은 그곳에서 평생을 보낼 일을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냉정하게 누구와도 관계를 만들지 않고 아빠처럼 연인처럼 생각했던 류의 마지막 말대로 의지할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그 말대로 그렇게 혼자서 살아온 나는 우연히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에게 관심이 가고 그의 가족에 대해서 궁금해지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정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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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엄마는 해외로 학술세미나를 떠났고 단기 가사 도우미만 존재하는 집이었을 것이다. 그런 오후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나를 맞이하는 것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아버지였다. 발을 누르고 있는 아버지. 


거실쪽에서 들리는 창문소리에 따라 들어갔다. 이 지경을 만들어 놓은 여자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창문으로 뛰어 내리려는 것일까. 어린 마음에 내가 본 그녀가 나를 죽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단지 그저 궁금한 마음에 소리를 쫓아갔던 뿐이었다. 그녀는 엄마가 고용한 단기 가사 도우미였다. 내 밥과 약을 챙겨주던 그녀. 그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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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라는 노년의 방역업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동료라고 할수 있는 '투우'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녀를 쫓아왔던 그 투우. 아들뻘 되는 그와 어머니뻘 되는 그녀 사이에는 어떠한 이해관계가 얽힌 것일까.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그들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파과라는 제목은 철저하게 조각이라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생활을 통해서 망가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설명하고 싶었을까. 아니 파과도 과일이라는 것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다 짓물러졌어도 상하기 전에는 먹을수 있는 과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을수도 있겠다. 전무후무한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 말미암아서 작가는 우리네 삶이 또다른 모습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5년전 처음 파과를 읽었다. 그저 조각이라는 신기한 인물에 흘려서 줄거리에 집중해서 읽었다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는 파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파과를 버리는 쓰레기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녀의 존재는 아직도 살아있음을,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나도 파과인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늙어가고 있음으로 말이다.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댓글 7
누군가 여성 서사를 묻는다면 '파과'를 읽게 하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글*향 | 2020.08.15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데.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 집에 가면 으레 느끼던 그 감정을 요즘 내 모습에서 어렵지 않게 찾는다. 팔자 좋게 무료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책을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의 연속이다. 항상 나보다 한 발짝 앞서가고 있는 사회를 따라가기 바쁘다는 구실로 수집해놓고 구석에 박아 놓은 '언젠가' 읽고 싶은 책 목록. 그걸 꺼내들 때가 온 거다. 구병모 작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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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팔자가 상팔자라는데.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 집에 가면 으레 느끼던 그 감정을 요즘 내 모습에서 어렵지 않게 찾는다. 팔자 좋게 무료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책을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의 연속이다. 항상 나보다 한 발짝 앞서가고 있는 사회를 따라가기 바쁘다는 구실로 수집해놓고 구석에 박아 놓은 '언젠가' 읽고 싶은 책 목록. 그걸 꺼내들 때가 온 거다. 구병모 작가의 『파과』.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꽤 다양하다.


초판은 2013년에 발행됐는데, '파과'는 그 당시에도 '새로운 여성 서사'라는 문구로 소개됐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서사 작품하면 누구나 1순위로 떠올리는 소설이다. '파과'의 후기를 보면 꼭 붙는 말이 있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영화로 보고 싶은 이야기란 어떤 이야기일까. 그런 의문이 드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은, 결론은 이랬다. 활자로만 쓰인 이야기를 영상으로 '또' 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다는 말이겠지. 90년대생들이라면 '위저드 베이커리'를 모르는 게 더 어려울 테다. 청소년 판타지 소설을 쓴 사람이 써낸 여성 서사는 어떻기에 이리도 유명할까. 호기심이 동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의외일 수라고 있는 순간이다. 구병모 작가는 "어느 선생님이 '요즘 한국 문학에서 잘나가는 작가들은 다 여성 작가야, 다음에 공모전 하면 나는 여성 작가라면 안 뽑고 싶을 것 같아'라는 말에 마침 공모전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필명을 사용하게 됐다"라고 말했다고. '구병모'라는 가명의 이유를 안 순간, 어찌 정의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만감이 교차했고 그 끝에 떠오른 한 문장은 그저 '파과를 꼭 읽고 싶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계기가 주절주절 길어졌다. 그만큼 이 책이 재밌었다는 말이다.


파과:

1. 破果 _ 흠집이 난 과실.

2. 破瓜 _ 여자의 나이 16세를 이르는 말


책의 제목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구병모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가 냉장고 속 수명이 다해 썩은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생명이 있는 것은 죽는다는 그 만고의 진리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바스러져가는 60대 살인청부업자 여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니, 역시 참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거기다 이야기의 계기가 된 '파과'를 제목에 붙이는 대담함까지! 가장 놀라운 건 그 '파과'가 소설의 주인공 조각(爪角)의 이야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도 많다. 부족한 말솜씨로 감히 이 책을 소개해보겠다.


등장인물


조각(爪角) : 65세 방역업자.

투우 : 조각과 같은 에이전시에 소속된 30대 초중반의 방역업자. 푸제아 계열의 향기를 몸에 두르고 다닌다.

류 : 조각에게 살인 기술을 가르쳐준 사람.

강 박사 : 36세 내과의. 페이 닥터. 다친 조각을 대가 없이 치료해 주고 조각의 비밀을 지켜준다.


줄거리


65세의 조각이 하는 일은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를 받는 방역업.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불리지만 실상 조각이 하는 일은 '살인청부업'이다. 그런 조각은 언제 데리고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반려견 '무용'과 함께 살며 늙어가는 몸이지만, 방역업을 지속한다. 그런데 같은 에이전시에 들어온 젊은 방역업자 투우는 그런 조각을 볼 때마다 깐죽거리며 사사건건 걸고넘어진다. 그러던 중, 조각은 방역을 하다가 크게 상처를 입고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방역업자들을 치료해 주던 장 박사에게 연락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집으로 가려던 조각은 새벽, 장 박사의 병원에 불이 켜진 걸 보고 장 박사가 다른 방역업자를 치료하나 보다 생각하고 병원에 오르지만, 조각이 마주한 건 장 박사가 아니라 강 박사다.


'노화'가 삶의 가장 큰 변화였던 조각에게 찾아온 다른 '변화'들. 과연 조각의 삶은 어떻게 될까…?


작품의 매력 포인트


1. '65세 여성 살인청부업자'를 오직 '조각'이라는 인물로 풀어내는 서사.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로 모은 돈을, 나중에 내가 쥐나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대로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구나.

p. 36

조각의 손에, 또 다른 방역업자들의 손에 죽어간 이들은 쥐나 벌레로 묘사된다. 근데 그들만 쥐나 벌레일까. 돈과 성공 또는 복수를 위해 살인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아닌가? 조각은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도 '쥐나 벌레'가 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살인청부업자라서도 아니고 여성이어서도 아니고 무릇 원래 사람은 그러하다는 듯. 이 이야기는 65세 여성 킬러 조각의 이야기이면서 그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심금을 울리는 여러 대목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조각이 자신에게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저는 그쪽 어머니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65세 노인, 여자, 방역업자. 그를 설명하는 숱한 설명이 있음에도 사회는 그저 조각을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조각은 이를 부정한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조각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난 이미 내연남들을 내 손으로 두 명 보내봤지. 그것도 한 번은 상대 아이를 배 속에서 키우면서 말야. 더 들려줘?"


10대 때부터 65세까지 살인청부업을 하고 있는 조각이 여느 여성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심지어 조각은 그 나이 대의 여느 노인을 연기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조각은 늙어감에 걱정도 하고, 강 박사에게 연정을 느끼고, 강 박사의 딸을 보고 진심이 담긴 미소를 내비친다. 그걸 보며 나는 그저 조각의 삶이 가진 다름이 여느 사람들에게 있는 '다름'과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살인청부업자란 직업은 엄청나게 특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조각의 이야기는 조각의 이야기. 어느 누구를 대표하지도 않고 그저 조각이라는 사람의 이야기. 살아본 적도 없는 시대, 겪어본 적도 없는 직업.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나 또한 '노화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서.


2. 세상의 클리셰를 깨버리는 인물들 간의 관계성 (스포주의!)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p. 236

조각과 류

류는 거리로 홀로 나온 조각에게 클럽의 부엌일을 소개해 줬다. 미군 한 명은 클럽에서 본 조각을 성폭행하려 하고, 조각은 그를 꼬치 하나로 죽인다. 류는 죽은 미군을 보며 조각의 솜씨를 칭찬하고 둘은 본격적으로 함께 살인청부업을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살인청부업. 류의 아내와 아이는 살해당한다. 어쩌면 류로서는 당연한 말. 지키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더니. 그렇게 말한 류는 조각을 지키다가 죽었다. 조각은 어떤 상황이 닥칠 때마다 류가 했던 말을 곱씹는다. 명백한 그리움이다. 조각에게 류는 사랑했던 이, 스승, 10년간의 동료다. 하지만 이 관계의 특이성은 조각이 성폭행당할 뻔한 상황을 알고도 도와주지 않은 류의 행동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류는 조각에게 사랑했던 사람, 스승, 동료 그리고 파과지년의 나이인 소녀 조각을 절망으로 만신창이가 되게 한 장본인이니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p.129

조각과 투우

조각과 투우의 관계성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 아닐까 싶다. 애증. 하지만 그보다는 한층 더 복합적인 마음. 개인적으로 투우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심리 상태가 복잡한 사람이라고 느꼈기에 나는 그가 어렵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했다. 피를 흘리며 죽은 아버지를 목격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조각을 보면서 '어째서 당신의 얼굴에는 피가 튀지 않고 깨끗하냐'고 묻던 여섯 살의 투우. 확실히 범상치는 않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지, 무려 자식뻘하고, 남들이 알면 어울리지 않네부터 할망구가 늘그막에 정신 나가 더럽다고 손가락질할 일이지만, 늙어버린 다음엔 피차 똑같을 텐데 말야. 당신은 얼마든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할 자유가 있어."


"근데 자격은 없지." (p.219)


투우는 조각과 강 박사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근데 난 꼭 이 말이 투우가 자신과 조각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순전히 내 해석이다. 조각을 죽이고 싶지만 조각에게 기억되고 싶었던 투우는 조각의 말을 들었을까?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요.

p.273

조각과 강 박사

강 박사는 한 마디로 부드러운 사람이다. 아픔을 갖고 있지만 그 아픔을 이겨내도록 노력하는 사람. 조각 때문에 딸이 납치당했는데도, 신고할 거라고 울부짖으면서도, 당신을 치료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그리고 조각에게 지키고 싶은 것을 만든 사람. 내가 조각이었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조각이 연을 맺은 그 어떤 인물들보다도 강 박사와의 인연이 가장 씁쓸하다. 그 아이러니함이 한편으로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총 감상평


조각(爪角)이라는 이름마저 좋았다. 재료를 깎아 만든 입체 형상도, 어느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분이 아닌 조각(爪角).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가 읽은 이 인물의 삶은 확실히 '조각' 같은 삶이었으니. 「파과」에서 구병모 작가의 문체는 길다. 개인적으로 긴 문체를 어려워 하지 않고 좋아해서 술술 읽었다. 한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단어, 생소한 단어가 많아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지만,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알아가는 기쁨을 느꼈달까. 책을 다 읽고 나면 항상 나는 책의 결말에 멈춰있고 앞으로 펼쳐질 책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지 못하는 걸 굉장히 서글퍼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파과'는 헛헛함을 느끼지 않았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에 대해 너무도 잘 알게 되어서일까.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 낯설지만 좋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 또한 '파과'의 영화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 아, 그리고 내일 구병모 작가의 다른 소설을 또 읽을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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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조각, 윤여정씨가 딱이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슈**살 | 2020.01.19 | 추천4 | 댓글3 리뷰제목
 ‘강렬하다.’   이 책을 읽은 나의 한 줄 평이다.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책 「아가미」를 사둔 지 한참 되었지만 읽지 않고 있었다. 이 책 「파과」는 순전히 출판사의 기민한 카피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60대 여성 킬러의 이야기”라니!! 평소 미스터리 장르와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금방;
리뷰제목

 강렬하다.’

 

 

이 책을 읽은 나의 한 줄 평이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책 아가미를 사둔 지 한참 되었지만 읽지 않고 있었다. 이 책 파과는 순전히 출판사의 기민한 카피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60대 여성 킬러의 이야기라니!!

평소 미스터리 장르와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금방 책을 읽은 후 내게 책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영화로 만들면 무조건 윤여정이야, 윤여정

  

  

  매사에 쉽게 흥분하지 않는 아내가 꼭 읽고 리뷰를 쓴 후, 그 리뷰를 보여달라고 했다. 아내는 진이, 지니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재미있다고 했다. 진이, 지니는 아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 최고로 꼽는 책이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꼭 읽고 리뷰를 보여달라 하시니 그 명령 따르는 수밖에.

  

  

 아니면 자기가 그 폐휴지 더미 가운데 가장 작고 얇은 데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상자 한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나.” (p.218)

 

    

한때는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방역업자였다. 책에서는 방역업자라고 표현되는 그녀의 직업은 흔한 말로 살인청부업자. 말 그대로 킬러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이유를 묻지 않고 오로지 죽이는 것이 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녀를 방역업계에 끌어들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갖게 한 가 떠난 이후 줄곧 그랬다. 물론, 생물학적인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 60이 넘은 킬러라니. 그녀는 이제 업계를 떠날 것을 꿈꾸지만 깊이 디딘 발을 쉽게 빼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일은 40여 년을 이어온 방역의 개인사에서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모로 뉘어진 상태였고 뒷목부터 허리까지 이물감이 느껴졌다.” (p.78)

어째서 이런 중요한 순간에 목표물을 놓치고 타인을 버렸을까. 단지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서,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이 위험한 도로에서 신문지 한 장까지 포기 못 하는 장면을 바라볼 때 자연히 생겨날 법한 동조와 연민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p.188)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그녀의 몸은 점점 흠집이 난다. 깊게 팬 사과의 단면이 시간이 지날수록 짙게 물 들어가 짓물러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뭉개져 가고 있었다.

거듭되는 실수와 뭉개져 가는 몸만으로도 벅찬 그녀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투우는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가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남겨진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직감하지만, 실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p.325)

 

    

  투우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방역업계에 뛰어든 젊은 킬러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유유히 베란다 밑으로 뛰어내린 중년의 여자 킬러를 기억하고 있었다. 파과되어 가는 킬러 조각은 물론 그것을 알지 못한다. ‘투우가 왜 자신의 일을 거듭해서 방해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십수 년을 갇혀 군만두만 먹다 나온 오대수에게 이우진은 이유를 찾으라고 했었다. 오대수는 죽을힘을 다해 그 이유를 찾아낸다. 하지만 조각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강 박사의 아이를 납치한 투우를 제거한 후 아이를 살려내지만, 자신의 한쪽 손도 함께 잃어버렸다. 오대수는 미도와의 관계를 폭로하려는 이우진을 향해 몸부림을 치며 사과하고 자신의 혀를 잘라내 버리지만, 조각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않는 것인지, 못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p.130)

    

 

  투우는 게임을 하고 싶었다. 잔인한 게임을 말이다. 스무고개를 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오대수를 가지고 노는 이우진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막상 먹잇감을 앞에 두고는 확실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여자 킬러를 찾아내 죽이는 것이 목표였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삶은 잔인하다. 예측하지 못한다. 방향을 설정하고 그곳으로 제대로 걸어가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생각일 뿐인 경우가 많다. 뒤늦게 잘못을 발견하지만 이미 갈 만큼 가버려 돌이킬 수 없다.

    

 

이거 소질 있네.” (p.166)

  

  

  조각이 에게 발탁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미군의 목에 꼬챙이를 찔러 넣은 것도 조각이 예상하고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일은 벌어지고 삶은 마음대로 움직였다.

    

 

 주무시는 동안 새벽 시장에서 사 온 겁니다. 취향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비슷해 보이는 걸로 골랐는데 어떠세요.” (p.88)

   

 

  방역을 하다 다친 몸을 끌고 찾아간 병원의 장 박사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얼마간의 돈도 찔러 줬겠지. 오랜 인연을 이어가다 보니 척하면 척이다. 우연히 장 박사가 부재한 시간에 찾아간 병원에서 낯선 의사 강 박사를 만난다. 장 박사가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치료가 끝난 이후였다. 장 박사보다 더 입이 무겁고 신중하며 살뜰한 사람이었다. 뭉개져 가는 노년의 킬러에 불과한 그녀의 마음 한켠으로 강 박사가 들어왔다. 밀어내려 하지만 이겨낼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강 박사라는 사람을 만나고 삶은 또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p.342)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녀가 방역업을 그만두고 더 이상 킬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여느 방역이 그러했듯, 투우를 방역하고 잡히지 않아 세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여전히 꼬장꼬장한 할머니로 예의 어머~ 어머님~”이라고 만면에 웃음을 띤 서비스 업종의 장사치들에게 일갈을 날린다. 이제는 한쪽 손밖에 네일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뭉개져 가는 제멋대로인 자신의 삶에 반짝이는 웃음을 짓는다. 잠시나마 반짝이다 사라질 네일처럼 비록 파과(破果)되었지만, 다시 한번 반짝일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를 찬란한 햇빛에 흩뿌린다.

    

 

  책을 읽는 내내 아내의 윤여정이 딱이야.”라는 말이 맴돌았다. 오기는 아니지만 다른 배우를 떠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말이 옳았다. 윤여정 배우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개봉하자마자 아내 손을 잡고 보러 가고 싶은 내용이다.

  검색을 해보니 윤여정 씨가 47년생이시다. 아이구 이런~ 작품 속 조각보다 10년이나 더 위다. 더 늦기 전에 영화로 만들어지고 조각을 열연하시는 윤여정 씨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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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57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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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구병모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책
3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3
YES마니아 : 로얄 나* | 2018.08.20
구매 평점5점
투우에마음이가네요..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플래티넘 t*****6 | 2022.10.27
구매 평점4점
구병모의 문장과 조각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b*******b |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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