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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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432g | 128*188*30mm |
ISBN13 | 9791162203620 |
ISBN10 | 1162203625 |
발행일 | 2018년 0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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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432g | 128*188*30mm |
ISBN13 | 9791162203620 |
ISBN10 | 1162203625 |
"다녀,온다"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 -올 것이다.(168p)
'다녀온다'라는 말은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오지 않을 거라면 굳이 저렇게 말할필요가 없다. 그저 간다라는 말을 할뿐. 나는 오늘도 집에 남아있는 개 무용에게 다녀온다고 인사를 한다. 무용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나에게는 하나뿐인 가족 그만큼 유용한 녀석에게 말이다.
의뢰를 받는다. 표적을 확인한다. 의뢰받은 작업을 행한다. 그것을 방역이라 부르고 그 일을 행하는 나같은 사람을 방역업자라 부른다. 나는 육십이 넘은 노년의 여자다. 방역업자와는 조금은 거리가 멀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문가이고 지금까지 한번도 어긋남이 없이 이 일을 행해왔다. 처음 의도하지 않게 쇠꼬챙이 하나로 깔끔하게 사건을 저지른 이후부터 말이다. 아직도 나는 현역에 있다.
물러버린 과일, 그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 그런 과일, 쓰레기일뿐일 그런 과일인 파과. 어떻게 보면 내지금의 나는 파과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서의 삶, 그런 것이 나에게 존재했었을까. 자식 많은 집의 아이로 태어나서 집안일을 하는 아이로 친척집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좋은 위치에 올라가는가 했으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갈곳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나는 우연히 한발을 들여놓은 그곳에서 평생을 보낼 일을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냉정하게 누구와도 관계를 만들지 않고 아빠처럼 연인처럼 생각했던 류의 마지막 말대로 의지할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그 말대로 그렇게 혼자서 살아온 나는 우연히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에게 관심이 가고 그의 가족에 대해서 궁금해지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정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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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엄마는 해외로 학술세미나를 떠났고 단기 가사 도우미만 존재하는 집이었을 것이다. 그런 오후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나를 맞이하는 것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아버지였다. 발을 누르고 있는 아버지.
거실쪽에서 들리는 창문소리에 따라 들어갔다. 이 지경을 만들어 놓은 여자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창문으로 뛰어 내리려는 것일까. 어린 마음에 내가 본 그녀가 나를 죽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단지 그저 궁금한 마음에 소리를 쫓아갔던 뿐이었다. 그녀는 엄마가 고용한 단기 가사 도우미였다. 내 밥과 약을 챙겨주던 그녀. 그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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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라는 노년의 방역업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동료라고 할수 있는 '투우'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녀를 쫓아왔던 그 투우. 아들뻘 되는 그와 어머니뻘 되는 그녀 사이에는 어떠한 이해관계가 얽힌 것일까.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그들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파과라는 제목은 철저하게 조각이라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생활을 통해서 망가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설명하고 싶었을까. 아니 파과도 과일이라는 것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다 짓물러졌어도 상하기 전에는 먹을수 있는 과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을수도 있겠다. 전무후무한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 말미암아서 작가는 우리네 삶이 또다른 모습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파과:
1. _ 흠집이 난 과실.
2. _ 여자의 나이 16세를 이르는 말
조각() : 65세 방역업자.
투우 : 조각과 같은 에이전시에 소속된 30대 초중반의 방역업자. 푸제아 계열의 향기를 몸에 두르고 다닌다.
류 : 조각에게 살인 기술을 가르쳐준 사람.
강 박사 : 36세 내과의. 페이 닥터. 다친 조각을 대가 없이 치료해 주고 조각의 비밀을 지켜준다.
쥐나 벌레를 잡아주는 대가로 모은 돈을, 나중에 내가 쥐나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런대로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구나.
p. 36
"난 이미 내연남들을 내 손으로 두 명 보내봤지. 그것도 한 번은 상대 아이를 배 속에서 키우면서 말야. 더 들려줘?"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p. 236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p.129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지, 무려 자식뻘하고, 남들이 알면 어울리지 않네부터 할망구가 늘그막에 정신 나가 더럽다고 손가락질할 일이지만, 늙어버린 다음엔 피차 똑같을 텐데 말야. 당신은 얼마든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할 자유가 있어."
"근데 자격은 없지." (p.219)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요.
p.273
‘강렬하다.’
이 책을 읽은 나의 한 줄 평이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책 「아가미」를 사둔 지 한참 되었지만 읽지 않고 있었다. 이 책 「파과」는 순전히 출판사의 기민한 카피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60대 여성 킬러의 이야기”라니!!
평소 미스터리 장르와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금방 책을 읽은 후 내게 책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영화로 만들면 무조건 윤여정이야, 윤여정”
매사에 쉽게 흥분하지 않는 아내가 꼭 읽고 리뷰를 쓴 후, 그 리뷰를 보여달라고 했다. 아내는 「진이, 지니」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재미있다고 했다. 「진이, 지니」는 아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 최고로 꼽는 책이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꼭 읽고 리뷰를 보여달라 하시니 그 명령 따르는 수밖에.
“아니면 자기가 그 폐휴지 더미 가운데 가장 작고 얇은 데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상자 한 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나.” (p.218)
한때는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방역업자였다. 책에서는 방역업자라고 표현되는 그녀의 직업은 흔한 말로 살인청부업자. 말 그대로 킬러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이유를 묻지 않고 오로지 죽이는 것이 ‘업’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녀를 방역업계에 끌어들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갖게 한 ‘류’가 떠난 이후 줄곧 그랬다. 물론, 생물학적인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 60이 넘은 킬러라니. 그녀는 이제 업계를 떠날 것을 꿈꾸지만 깊이 디딘 발을 쉽게 빼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일은 40여 년을 이어온 방역의 개인사에서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모로 뉘어진 상태였고 뒷목부터 허리까지 이물감이 느껴졌다.” (p.78)
“어째서 이런 중요한 순간에 목표물을 놓치고 타인을 버렸을까. 단지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서,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이 위험한 도로에서 신문지 한 장까지 포기 못 하는 장면을 바라볼 때 자연히 생겨날 법한 동조와 연민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p.188)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그녀의 몸은 점점 흠집이 난다. 깊게 팬 사과의 단면이 시간이 지날수록 짙게 물 들어가 짓물러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뭉개져 가고 있었다.
거듭되는 실수와 뭉개져 가는 몸만으로도 벅찬 그녀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투우는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가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남겨진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직감하지만, 실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p.325)
투우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방역업계에 뛰어든 젊은 킬러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유유히 베란다 밑으로 뛰어내린 중년의 여자 킬러를 기억하고 있었다. 파과되어 가는 킬러 ‘조각’은 물론 그것을 알지 못한다. ‘투우’가 왜 자신의 일을 거듭해서 방해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십수 년을 갇혀 군만두만 먹다 나온 오대수에게 이우진은 이유를 찾으라고 했었다. 오대수는 죽을힘을 다해 그 이유를 찾아낸다. 하지만 조각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강 박사의 아이를 납치한 투우를 제거한 후 아이를 살려내지만, 자신의 한쪽 손도 함께 잃어버렸다. 오대수는 미도와의 관계를 폭로하려는 이우진을 향해 몸부림을 치며 사과하고 자신의 혀를 잘라내 버리지만, 조각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않는 것인지, 못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p.130)
투우는 게임을 하고 싶었다. 잔인한 게임을 말이다. 스무고개를 넘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오대수를 가지고 노는 이우진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막상 먹잇감을 앞에 두고는 확실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여자 킬러를 찾아내 죽이는 것이 목표였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삶은 잔인하다. 예측하지 못한다. 방향을 설정하고 그곳으로 제대로 걸어가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생각일 뿐인 경우가 많다. 뒤늦게 잘못을 발견하지만 이미 갈 만큼 가버려 돌이킬 수 없다.
“이거 소질 있네.” (p.166)
조각이 ‘류’에게 발탁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미군의 목에 꼬챙이를 찔러 넣은 것도 조각이 예상하고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일은 벌어지고 삶은 마음대로 움직였다.
“주무시는 동안 새벽 시장에서 사 온 겁니다. 취향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비슷해 보이는 걸로 골랐는데 어떠세요.” (p.88)
방역을 하다 다친 몸을 끌고 찾아간 병원의 장 박사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얼마간의 돈도 찔러 줬겠지. 오랜 인연을 이어가다 보니 척하면 척이다. 우연히 장 박사가 부재한 시간에 찾아간 병원에서 낯선 의사 ‘강 박사’를 만난다. 장 박사가 아닌 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치료가 끝난 이후였다. 장 박사보다 더 입이 무겁고 신중하며 살뜰한 사람이었다. 뭉개져 가는 노년의 킬러에 불과한 그녀의 마음 한켠으로 강 박사가 들어왔다. 밀어내려 하지만 이겨낼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강 박사라는 사람을 만나고 삶은 또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p.342)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녀가 방역업을 그만두고 더 이상 킬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여느 방역이 그러했듯, 투우를 방역하고 잡히지 않아 세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여전히 꼬장꼬장한 할머니로 예의 “어머~ 어머님~”이라고 만면에 웃음을 띤 서비스 업종의 장사치들에게 일갈을 날린다. 이제는 한쪽 손밖에 네일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뭉개져 가는 제멋대로인 자신의 삶에 반짝이는 웃음을 짓는다. 잠시나마 반짝이다 사라질 네일처럼 비록 파과(破果)되었지만, 다시 한번 반짝일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를 찬란한 햇빛에 흩뿌린다.
책을 읽는 내내 아내의 “윤여정이 딱이야.”라는 말이 맴돌았다. 오기는 아니지만 다른 배우를 떠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말이 옳았다. 윤여정 배우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개봉하자마자 아내 손을 잡고 보러 가고 싶은 내용이다.
검색을 해보니 윤여정 씨가 47년생이시다. 아이구 이런~ 작품 속 ‘조각’보다 10년이나 더 위다. 더 늦기 전에 영화로 만들어지고 ‘조각’을 열연하시는 윤여정 씨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