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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해력 수업
누구나 역사를 말하는 시대에 과거와 마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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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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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교양서 67위 역사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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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 실용 만능 시대에도 역사를 찾는 이유

01_올바름의 기준: 역사의 심판에 기대는 세 부류의 사람들
02_방향성: 가야 할 쪽을 지시하는 집게손가락
03_정체성: 내가 선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이정표
04_교훈: 지혜롭지만 불친절한 스승
05_호기심: 우리 안의 하이디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2 역사적 사실과 진실

06_소재적 사실과 해석적 사실: 여양리 골짜기에서 발견한 그루터기 사실
07_증거를 위한 투쟁: 바르샤바 게토의 녹슨 우유통
08_딱딱한 사실, 부드러운 사실: 제주 심방굿과 영게울림
09_역사적 사실과 진실의 간격: 한국전쟁의 영웅 심일 이야기

3 역사가의 방법 사용 설명서

10_사료비판: 직업적 역사가의 첫걸음
11_비교: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지름길
12_반사실적 가정: 경험적 상상의 힘
13_계량: 시계열 속에서 변화의 추세 읽기

4 시간 감각과 역사의식
14_역사적 사고와 역사의식의 형성: PRO와 EPI의 융합
15_시간 개념의 변화: 자연의 시간, 수도원과 장원의 시간, 공장의 시간
16_역사적 시간의 세 층위: 파도의 시간, 해류의 시간, 해구의 시간

5 세계사를 읽는 네 개의 키워드: 순환-진보-발전-문명

17_순환: 금?은?동?철 시대의 반복
18_진보: 문명을 향해 달리는 우상향의 고속도로
19_발전: 문명의 진보, 문화의 쇠락
20_문명: 집단적 개체들의 파노라마

6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 개의 역사관

21_구원론: 역사란 신의 섭리가 실현되는 과정
22_관념론: 세계사는 자유를 의식하는 과정
23_유물론: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7 객관적 역사서술의 꿈

24_랑케: 역사가가 죽어야 역사가 산다
25_막스 베버: 이념형 외에는 길이 없다
26_칼 베커: 역사가에게 객관성은 없다

8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

27_역사란 기억된 과거
28_역사란 기록된 과거
29_역사란 지우고 다시 쓰는 기억의 양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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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1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근현대사와 역사이론을 전공했고,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제노사이드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국내외의 역사적 장소들을 탐사하면서 기억문화와 기념문화에 관한 비교 연구를 폭넓게 진행했다. 현재는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영향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초국가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한국 민족주의의 문화적 형성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사총》, 《독일연구》, 《서양사론》 등 여러 학술지의 편집을 담당했다. 주요 저서로 《막스 베버와 역사주의》(독문, 2000), 《서양 현대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독일 근현대사와 역사이론을 전공했고,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제노사이드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국내외의 역사적 장소들을 탐사하면서 기억문화와 기념문화에 관한 비교 연구를 폭넓게 진행했다. 현재는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영향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초국가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한국 민족주의의 문화적 형성과정을 탐색하고 있다. 《사총》, 《독일연구》, 《서양사론》 등 여러 학술지의 편집을 담당했다.

주요 저서로 《막스 베버와 역사주의》(독문, 2000),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2006), 《독일의 역사교육》(2009), 《기념의 미래》(2019)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독일 역사주의》(1992), 《원치 않은 혁명 1848》(2006),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공역, 2006),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역사》(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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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556g | 152*224*18mm
ISBN13
9791156122517

책 속으로

사마광은 역사책을 쓰는 자기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신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백성들의 애환, 경계해야 하거나 의미 있는 사건들을 골라내 편년체로 정리하고자 했으나, 각각의 사건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은 역량이 부족해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의 취지는 명료하다. 독자가 자기 책임 아래, 자기 필요에 따라, 자기 눈으로 책을 읽어보라는 뜻이다
--- p.53

역사는 불친절한 스승일 뿐이다. 역사가 거울이라면, 그것은 고대 사회의 청동거울처럼 흐릿한 거울일 테다. 역사에 관해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 유일무이한 역사의 교훈을 얻어내기는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과거를 읽는 독자로서 역사로부터 각자에게 필요한 교훈들lessons from history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 p.59

모든 역사서술이 진실이 되지는 못한다. 사실관계의 조합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확인된 사실들 사이에도 빈틈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이 공백지대를 경험에 의거한 추측, 상상, 해석으로 메워가면서 역사를 서술한다. 그러므로 최고의 역사가가 최선을 다해 쓴 역사도 실체적 진실이 아닌 부분적 진실만을 드러낼 수 있다
--- p.100

역사가는 당연히 증언에서 나타나는 착오와 혼란에 유념하고, 기억의 변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기억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이유로 삼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90세가 넘은 일본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에 대해 일본 정부와 우익 인사들이 보여준 태도가 그랬다
--- p.111

춘천전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확증되지 않은 육탄 호국용사의 자기희생 자세를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는 요청이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춘천전투의 교훈은 매뉴얼에 따라 훈련된 군대가 이긴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영웅적 희생의 서사를 강조했던 일본군의 최후를 우리는 이미 반면교사로서 잘 알고 있다
--- p.121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는 수많은 별이 경연을 벌였다. 그 찬란한 문예 스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로렌초 발라(1407~1457)다. 그는 …… 문헌학자로서 …… 강직한 성품과 꼼꼼한 고증으로 교황청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진장Constitutum Constantini〉이 허위임을 밝혀냈다
--- p.128

서양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가 아마추어 역사가와 전문 역사가를 구별하는 첫 번째 기준을 사료비판에서 찾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료 없이 역사 없다”는 프랑스 역사가 랑글루아와 세뇨보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문서만이 사료는 아니다. 인간 삶의 흔적을 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료다
--- p.130

프랑스 아날학파의 거두로 불리는 브로델(1902~1985)일 것이다. 브로델에 따르면, “역사는 세 종류의 운동, 즉 빠르게 움직이는 것, 느리게 움직이는 것, 그리고 움직임이 아예 없어 보이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랑케 이후 정치사가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마치 연극배우의 말이나 발레리노의 발걸음에 집중하는 아마추어 평론가처럼 말이다
--- p.212

브로델은 …… 장구한 지구의 시간이나 인간 역사의 긴 시간을 외면하고 하루살이처럼 덧없는 것에 집착하는 역사학의 관행에 비판적이었다. 종래의 역사서술은 지배 엘리트의 사사로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한 대가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시야에서 놓쳤다는 것이다
--- p.213

역사의 시간 가운데 두 번째는 사회경제적 시간이다. 경제는 주기를 타고 움직인다. 이 주기에 해당하는 프랑스어가 콩종튀르conjoncture다. 흔히 ‘국면’으로 번역하는 콩종튀르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한두 세기 간격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리듬이다.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직항로 발견과 더불어 후추값이 폭락하고, 여기에 더해 아메리카에서 대량의 은이 유입되면서 유럽사의 무게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했던 변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 p.214

역사적 시간의 마지막 층위는 ‘사건들의 역사’로 통칭되는 정치적 시간이다. …… 프랑스대혁명이 대표적이다. 1789년 5월 삼부회 소집으로 시작된 파리의 혁명은 10년 후인 1799년 11월 나폴레옹이 일으킨 브뤼메르Brumaire 18일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어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대혁명을 교살했다고까지 표현한다. …… 역사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연극에서 중시된 것은 정치적 투쟁과 군사적 승패와 명사들의 지략이었다
--- p.214

별다른 특징 없는 민중의 일상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오랫동안 규정해온 저변의 힘들을 읽어낼 수 있는 사료의 암석층이라고 할 수 있다. 퇴적층의 단면에서 누적된 지각운동을 발견하는 지질학자와 비슷하게, 역사가는 그루터기처럼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린 채 지속되어온 민중의 삶 속에서 빠르지 않게 진행되어온 변화의 단서들을 찾기 위해 애쓴다. 이것이 바로 ‘밑으로부터의 역사’다
--- p.218

막스 베버는 한때 역사의 진보에 대한 선배들의 낙관적 신념을 계승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의 역사가 주술적 단계에서 합리적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증거를 자본주의 발전과 관료제의 출현에서 찾았다. 베버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국민경제학의 역사학파에 속한 거장들도 서구 역사를 고대 가내경제에서 중세 도시경제를 거쳐 근대 국민경제로 진보해온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이 추세가 이어져 가까운 미래에 세계경제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p.231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양육강식, 자연에 의한 도태, 적자생존으로 요약되는 진화의 세 법칙은 같은 시기에 근대화를 강박적으로 도모한 일본, 중국, 한국 지식인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는 한동안 문명사 연구가 크게 유행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세계사적인 문명의 발전을 아시아에서 일본이 완성하겠다는 후발주자 특유의 과대망상의 결과였다. 이 점에서 보면, 진보에 대한 맹신과 자기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가 인류의 진보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 p.237

청년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역사관에 도달하기까지는 네 개의 강을 건너야 했다. 헤겔의 역사변증법,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생시몽과 푸리에로 대표되는 초기 사회주의 사상, 리카도와 스미스가 제시한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설이 바로 그것이다
--- p.283

청년 마르크스는 이제 파리의 지붕 밑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했다. 자본은 돈이 아니라 과거 노동의 집적물이라는 것이다. 파리에 머물던 시절, 마르크스는 아직 온전한 공산주의자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의 마르크스를 ‘인간학적 유물론자’라고 평한다
--- p.287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천명했다. 계급투쟁은 착취-피착취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를 이해할 때 중요한 점은 이러한 착취-피착취 관계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 p.291

칼 베커(1873~1945)는 1931년 미국 역사학회 회장 취임 강연에서 객관성에 대한 동료 역사가들의 자신감 상실을 이렇게 밝혔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역사가다!” …… 베커가 말하는 모든 사람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시민이다
--- p.331

제1차 세계대전은 국민들 간의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가들 간의 이전투구였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독일의 많은 역사가가 총 대신 펜을 들고 조국을 위해 치열한 선전전에 참가했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났을 때, 역사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 역사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독일의 황제를 현대판 ‘아틸라Attila’로 폄하한 영미권 역사가들과, 영국의 공리주의를 ‘장사치의 철학’이라고 비난한 독일 역사가들 사이에 신뢰의 가교는 사라지고 말았다
--- p.335

베커를 위시한 20세기 역사가들은 무질서한 사실들의 더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역사가 역사가를 통해 스스로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역사를 통해 자기 말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p.336

헤겔은 두 가지 종류의 역사에 관해 말했다. 첫 번째인 ‘res gestae’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뜻한다면, 두 번째인 ‘historiarerum gestarum’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앞의 것을 객관적 역사, 뒤의 것을 주관적 역사라고 바꿔 부르기도 한다
--- p.358

직업적 역사가는 관점의 지배만 받지 않는다. 역사가의 작업 결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학자들의 공동체 속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료를 적절하게 인용했는지, 사료와 주장 사이에 너무 큰 간격은 없는지, 확인된 사실과 해석 사이에 불일치는 없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동료 평가peer review다
--- p.362

과거의 어느 한 시대, 어떤 인물이나 당파에 대한 평가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와 사회 구조, 그리고 그 변동이 초래하는 정치의 변화다. 예를 들면, 19세기 후반 대중mass의 등장과 더불어 …… 지배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이들이 어렵게 쟁취한 보통선거권에 힘입어 정치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사료 속에서는 통치 받는 사람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주요 행위자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 p.363

역사학도 재조명과 재해석과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왔다. 이러한 과정은 양피지 위에 적었던 글씨들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는 것과 흡사하다

--- p.364

출판사 리뷰

역사의 쓸모를 궁리하다-토마스 뮌처와 던전

지은이는 1부 ‘실용 만능의 시대에도 역사를 찾는 이유’에서 역사의 효용으로 올바름의 기준, 방향성 제시, 교훈 등을 든다. 그중 역사의 심판과 관련한 종교개혁가 토마스 뮌처의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뮌처는 목사직 제의를 거부한 채 농민군을 이끌고 제후 측에 저항했다가 패전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물. 루터는 이를 두고 하나님의 법정이 내린 형벌이라 했지만, 지은이는 영주들 편에 섰던 루터와 달리 농민군 편에 섰던 뮌처가 지금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교회가 지녀야 할 사회적 양심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는 점을 들어 역사의 법정은 뮌처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중세 유럽의 성에서 포도주 등 음식물 저장고로 쓰이던 지하의 던전이 컴퓨터게임에서 몬스터들의 소굴로 변신한 예를 들어 호기심을 풀어주는 역사의 쓸모로 언급하기도 한다.

역사의 본질을 파고들다-한국전의 영웅 심일과 브로델

2부 역사적 진실과 사실, 4부 시간 감각과 역사의식, 8부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에선 역사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아나선다. 이를테면 한국전쟁 초기 춘천전투에서 북한군 탱크 여러 대를 육탄으로 파괴해 호국영웅으로 대접받는 심일의 사례를 통해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촘촘하게 따지는 식이다. 여러 사료의 교차검토를 통해 “최고의 역사가가 최선을 다해 쓴 역사도 실체적 진실이 아닌 부분적 진실만을 드러낼 수 있다”고 인정하는 대목은 신선하다. 그런가 하면 시간의 층위를 예리하게 구분한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역사 무대의 전면에 부각되었다든가 조선 말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농민군 봉기가 동학란에서 80년대 ‘동학농민전쟁’으로, 이제는 ‘동학농민혁명’으로 불리는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역사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역사학의 역사를 짚어내다-로렌초 발라와 칼 베커

3부 역사가의 방법 사용설명서, 5부 시간 감각과 역사의식, 6부 세계사를 읽는 네 개의 키워드, 7부 객관적 역사서술의 꿈은 숱하게 명멸해간 역사가들의 방법론과 역사관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시대 활약한 이탈리아 문헌학자의 사례에서 역사가의 가장 기본인 사료 비판을 보여준다. 발라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자신의 나병을 치료해준 실베스터 교황에게 감사의 표시로 서로마제국 전체를 로마 가톨릭교회에 헌정한다는, 이른바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진장〉을 두고 엄밀한 교황청의 허위 주장을 폭로했다. 1931년 미국 역사학회 회장에 취임한 칼 베커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역사가”라며 객관적 역사의 가능성을 부인한 사실이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황제를 현대판 ‘아틸라Attila’로 폄하한 영미권 역사가들과 영국의 공리주의를 ‘장사치의 철학’이라고 비난한 독일 역사가들의 예는 중국의 동북아공정을 둘러싼 ‘역사전쟁’을 떠오르게 한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깊이가 있고,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관념적인 설명 대신 동서양의 풍부한 사례를 유려하게 엮어낸 덕분이다. 지은이는 당초 80개의 주제를 꼽았다가 그중 29개만 골랐다고 하는데 어느 글 하나 그냥 지나갈 것이 없다. 감히 말하자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 역사학도, 역사교사 등의 책꽂이에서 맨 앞에 놓여 마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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