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덕분에 저희 쪽으로 보험금도 잘 들어왔고요. 그럼, 이제부터 천국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순조로운 사망을 축하드립니다.”
“내가 죽어서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고 싶은데.”
“수력발전소 댐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체가 발전장치에 말려 들어가서 산산조각이 나겠죠. 원격조종으로 휘청휘청 발을 헛디디게 하고, 아악! ‘살려 줘!’라고 외치게 해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은, 완벽하고 멋진 최후였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증거 사진을 찍어 뒀는데 어때요, 보도사진으로도 팔릴 만하죠?”
“그런데 이젠 어디로…?”
“물론 약속드린 대로 천국으로 갑니다. 남쪽 섬에 저희 협회가 외국 협회와 공동으로 만들어 둔 낙원이 있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뭐든 얻을 수 있는 낙원이….”
“고맙소. 그런 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줄이야. 아아, 모든 게 꿈만 같군. 그런데 저 선배들 표정은 왜 저렇게 시무룩하지…?”
---「천국」중에서
“꽃 속에는 작은 아이가 있거든.”
웬디가 어둠 속에서 요정이나 괴물을 찾아낸다는 걸 눈치채고, 부모는 온 집 안을 부드러운 조명 불빛으로 가득 채웠다. 웬디가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어둠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실내 온도를 높이고 담요를 빼앗았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서 어둠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눈을 감아서 만들어 내는 어둠에는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를 깨닫자, 부모는 결국 포기하고 웬디를 특수한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의무이기도 했다. 그대로 두고 다른 아이들한테까지 영향을 끼치게 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오랫동안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 왔던 요정이나 괴물들은 오늘날 모두 자취를 감춰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숲을 개간하면 숲에서 사라졌고, 인도나 아프리카 오지에 종횡으로 고속도로가 뚫리면 거기에서도 사라졌고, 호수나 바다 밑에서도 사라졌다. 또한 남극의 빙하 밑에서도, 달의 동굴에서도 사라졌고, 화성의 사막에서도, 상공에 조용히 떠 있는 수많은 소행성에서도 그들은 쫓겨났다.
---「피터 팬의 섬」중에서
이 글을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은 바로 저를 죽인 사람입니다.
지금 저는 홀로 밤바다의 조그만 보트 위에서 손전등 불빛을 비춰 가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용히, 하염없이 몸부림치는 바다. 보트가 파도에 흔들려서 글씨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앗, 물보라가 튀어서 잉크가 번지고 말았네요. 그러니 이 얼룩에 염분이 묻어 있어도 눈물은 아니랍니다. 죽기 직전에는 눈물 따윈 나오지 않거든요. 왠지 좀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든 것 같네요. 미련을 끊어 내기 위해 수면제 통을 열어서 열 알쯤 먹어 버려야겠어요. 뭐야, 자살이었어? 살해당한 게 아니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세상에는 자살과 타살의 구별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답니다. 실제로 제가 예전에 그런 살인을 저질렀으니까요.
---「나의 살인자 님에게」중에서
혹시 알고 계시려나? 최근 유령 인구가 부쩍 늘어나 그들을 모아 유령 회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내가 바로 그 회사의 직원이다. 어슬렁어슬렁 회사로 출근하자, 유령 P가 나에게 고함을 쳤다.
유령 P의 장황한 설교를 흘려들으며 불운한 내 신세를 절절히 한탄했다. 인간은 죽어서 절대로 유령만큼은 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 같으면, 한번 되어 보면 안다. 유령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숨을 거두는 순간 “원통하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누구나 유령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다른 동료들은 모두 유령이 되었다. 그러나 녀석들은 자기 의지로 된 경우고, 유령이 된 후에도 놀래 줄 상대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불의의 사고로 목적이 없는 유령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나처럼 특정한 상대가 없는 유령은 ‘원통하다’는 말을 깜빡해서 유령이 되지 못한 녀석들을 대신해 그들의 상대 앞에 나타나는 일을 맡는다. 녀석들은 자기 일을 남한테 떠맡기고 곧장 천국으로 갔으니 기분이 좋겠지만, 이쪽 입장에서는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순직」중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보고하겠습니다. 그 행성에서 채집한 붉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원인입니다. 귀로에 오른 대원 하나가 그것을 분석하려고 했는데, 그때 그게 손에 달라붙었습니다. 곧바로 소독은 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야?”
“그러자 그의 몸이 액체에 닿은 그 부분부터 흐물흐물 녹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붉고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변해 버렸습니다.”
“허어, 끔찍한 현상이군. 치료는 해 봤나?”
“물론 모든 치료를 시도해 봤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치료를 담당했던 동료들까지 잇달아….”
“그건 몹시 섬뜩한 광경이겠군.”
“네. 너무 끔찍합니다. 하지만 이제 곧 그 끔찍함도 사라지겠죠.”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조종실에 있던 저는 사태를 알자마자, 재빨리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붉고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문틈으로 스며들듯 파고들기 시작했거든요. 마치 동료인 저를 알아보고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우주선 내부에는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결국 그 덩어리는 얼마 전에 제 다리에 들러붙었습니다. 아, 이제 허리까지 녹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그 별에는 절대 가까이 가지 마시길….”
---「귀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