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인 2013년 6월 30일부터 7월 10일까지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을 잇는 이른바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주관하는 행사여서 신학생들과 교계 인사들이 동행하였다. 총원이 23명이었다. 당시 본인이 출석하던 하나교회에서 장애영 사모님과 이정란 권사님과 필자의 처인 권숙미 등 4명이 참가하였다. 여행하면서 이번 여행을 몇 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돌ㆍ물ㆍ길’이란 말이 생각났다.
성지순례 과정에서 가 보는 곳이 점점 늘어날수록 이 말이 적당하다고 생각되었다. 세 단어 모두 한 자로 이루어지고 ‘ㄹ’ 받침으로 끝나는 순우리말이고, 기독교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직에 있을 때는 글로써 종합적으로 정리할 시간이 적절하지 않았는지, 글로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머릿속에 정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정년퇴직하게 되었다. 그 뒤 백수로 놀다가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게 되고, 독립출판사를 설립하고,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다섯 번째 책을 출판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다가 80% 정도 써놓은 파일을 모두 날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기억에 의존하여 글을 다시 썼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이집트 하면 우선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거대한 피라미드다. 피라미드(Pyramid)는 보통 정사각형의 바닥 위에 옆면이 네 개의 삼각형으로 된 뿔 모양의 고대 유적을 말한다. 이집트 이외에 중국,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에서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국왕, 왕비 등 지배계층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에서 미라가 여럿 발굴되었을 뿐 아니라 미라가 안치되었던 방에서 매장에 필요한 석관,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북쪽으로 카이로 북부에서 남쪽으로 수단까지, 나일강을 따라 약 1,500km가 넘는 지역에 흩어져 있다. 대략 3,000년에 걸쳐 300개 이상 지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나일강 서안(西岸) 사막지대에 흩어져 있다.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기자(Giza) 지역에 있는 세 개의 큰 피라미드가 유명하다.” (본문 중에서)
“구약성경인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Abraham)의 외아들 이삭(Isaac)과 그의 아내 리브가(Rebekah)가 낳은 쌍둥이 아들 중 동생 야곱(Jacob)이 형 에서(Esau)의 장자의 명분을 속임수로 탈취한 후, 화가 난 에서를 피해 야곱이 외가가 있는 하란(Haran)으로 도망가던 중에 해가 져서 주위의 돌을 베고 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야곱이 자던 중에 꿈을 꾸었는데 여호와의 예언과 축복의 말씀을 듣고 아침에 깨어나서 그 돌로 단을 쌓고 서원을 하였다. 누울 때 머리를 괴는 돌을 돌베개라고 부르는데, 이 고사로 인하여 돌베개는 '고생 또는 시련의 시간'을 상징한다. 찬송가 가사에도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한영찬송가 364장 2절 앞부분)라고 나온다.” (본문 중에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Laban)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거기서 가족을 꾸려 일가를 이루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후 원래 자기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두려워서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야곱 홀로 남아 노숙한다. 야곱의 꿈에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the socket of Jacob’s hip)를 치매 위골(違骨)되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Israel)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세기 32장 26~28절). 야곱을 축복한 후 그 사람은 떠나고, 잠에서 깬 야곱이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했는데, 그 후에 야곱은 엉덩이가 위골되어 평생을 절며 살았다고 한다.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는데,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후 세계 2차 대전 후에 가나안 지역으로 돌아와서 건국하고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정하였다.”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이집트에 피신해 있다가 헤롯왕이 죽고 난 뒤에 이집트에서 돌아와 갈릴리 산지의 나사렛(Nazareth)에 정착하였다. 예수는 이 지역에서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 대부분을 보냈다. 나사렛 산지는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산지로서 길이는 약 12km이고 폭은 약 3km이다. 산지 밑의 계곡에는 비옥한 토양이 있고, 이 산지 위는 전망이 좋아 이스르엘 계곡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스르엘 계곡 평원 가까운 곳에 가파른 절벽형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누가복음 4장 28절 근처에 보면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를 이곳으로 끌고 와서 산 아래로 떠밀어 죽이려 했다고 전해진다. 신약 시대에 나사렛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이는 요한복음 1장 46절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한 말에서도 나타난다. 나다나엘의 이 말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아니라 메시아와 관련되어 어떠한 언급도 성경에 없었던 동네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사렛은 바벨론 유수 이후에 건설된 시골 동네였다고 추정된다.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나사렛 기념교회가 세워지고, 1955년에 현재의 성수태고지교회(Annunciation Church)가 개축되었다.”
“시몬 베드로는 요나 또는 요한의 아들로서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로서 그 형제 안드레와 함께 예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마태복음 8장 14, 15절에 그 장모의 열병을 예수께서 고쳤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로 보아 그는 이미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시몬은 모래라는 뜻으로 시멘트(Cement)와 어원이 같다. 지금도 시몬(Simon)은 그대로 혹은 조금 변형된 형태로 서양 사람의 이름이나 성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 시몬을 예수께서 반석(盤石)이라는 의미의 게바(베드로)라고 부르고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모래가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반석은 우리말로 너럭바위라고도 하는데, 윗부분이 테이블처럼 평평한 모양의 돌을 의미한다. 아마도 서울 반포(盤浦)에는 옛날에 너럭바위가 있어서 남태령을 걸어 넘어온 사람들이 배로 가볍게 한강을 건너 남대문을 거쳐서 한양 도성으로 들어갔을 것 같다.”
“광교산 지역에서 서북쪽으로 떨어진 비는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한남정맥의 버들치고개에서 시작하는 성복천(聖福川), 정평천(亭坪川), 동막천(東幕川) 등이 법화산에서 발원하는 본류인 탄천(炭川)과 용인시 수지구(水枝區)에서 합수되면서 탄천의 유역(流域)을 형성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한강의 수계가 된다. 탄천은 우리말로 ’숯내‘ 혹은 ’거무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아마도 상류에 탄광이 있거나 숲에서 숯을 만들어 검은 물이 생겨서 흐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수지(水枝)는 일제 시절에 수진면(水眞面)과 지내면(枝內面)을 통합하면서 두 면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식 한자로 물(水)의 가지(枝)라는 뜻이다. 이 탄천은 성남시 분당을 지나 서울의 잠실벌로 흐른다. 도중에 수서(水西)라는 지명이 있는데 탄천의 서쪽에 있다는 뜻이리라.”
“서울의 서부인 요즘의 양화대교 근처에 가면 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합정역(蛤井驛)이 있다. 조개, 큰 두꺼비, 개구리를 의미하는 합(蛤)과 우물 정(井)이 어우러진 단어이다. 아마도 옛날에 이 지역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두꺼비가 발견되지 않았을까 싶다. ‘합정역 5번 출구’라는 대중가요를 들어보면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원래의 합정(蛤井)을 합정(合情)으로 다르게 한자로 풀어쓰고 있다. 근처에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墓園)이 조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홍대 입구에 있는 젊은이의 거리가 이 지역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하고 공연장이나 카페가 많은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경기도 고양시에 화정(花井)이라는 지명이 있다. 아마도 어느 우물 근처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나 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나 매화, 벚꽃을 기대하는 건 사치일까? 그곳이 화정(花井)이 아니고 꽃이 있는 정자라는 뜻의 화정(花亭)이라도 좋다.”
“예루살렘은 사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루살렘 주변에 있는 산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의 예루살렘이 있었던 곳은 약 660m 높이의 ‘시온산성’이다. 이곳은 아브라함에게 빵과 포도주를 제공하였던 살렘왕 멜기세덱의 거처였으며 다윗이 점령하여 ‘다윗성’이라고 개명한 여부스의 요새였다. 시온산 북쪽에 모리아 산이 있다. 다윗이 통치하던 시대에 이곳은 여부스 사람의 타작마당이 있었는데 다윗이 이를 사서 번제 제단으로 삼았다. 솔로몬은 이곳에 장엄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다. 시온산의 서쪽에는 ‘서산’이라는 765m 높이의 언덕이 있다. 예루살렘 동편의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에는 810m 높이의 ‘감람산’이 있다. 예수는 생애의 마지막 주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냈는데 그동안 감람산을 자주 찾았다. 감람산 밑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은 십자가를 지기 전의 마지막 기도 장소였다. 부활한 예수는 감람산 정상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였다. 오늘날 감람산과 그 주변에는 예수의 마지막 생애와 관련된 기념교회들이 여럿 있어서 관광객을 끌고 있다.”
“이 소설은 최소한 10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95년 캐나다 선교사이자 장로교 목사인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이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당시 외래 문학책들이 대부분 중국어나 일본어 원고를 번역하여 소개되었지만, ‘천로역정’은 원본인 영어 원고를 번역했으며, 한국 근대의 첫 번역 소설이다. 한글 ‘천로역정’에는 영문판과 유사하게 본문 옆에 삽화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글 번역 원본의 서명인 ‘천로역정’을 비롯하여 사용한 인명들이 대부분 한자에 익숙한 세대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책의 이름이 요즘 말로는 ‘순례자의 길’이 적절하겠으나 지금도 이 책은 처음 소개된 ‘천로역정’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에 작가와 책 이름은 배워서 암기하고 있었으나 막상 평생 그 책을 읽어 보지 않았음을 알고, 이번 기회에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여태까지의 이러한 길은 모두 육지에 건설하였고 그 형체가 우리 눈에 보인다. 그러나 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등장하고 바다를 이용하여 항해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뱃길의 중요성이 커졌다. 나일강과 같은 강을 운항하는 배는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만, 망망대해에서는 배가 지나가는 길은 금방 없어진다. 이를 위해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발명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뱃길은 있다. 또한 비행기가 나는 하늘에도 하늘길이 분명히 있다. 비행기의 경우 방위와 고도로 가는 길을 구분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를 무시하면 비행기끼리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지상에서 자동차 운전 시에도 우리는 내비게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이제 우리 모두 가는 방향을 모르는 길치가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이 말이야말로 기독교의 교리를 집약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종교개혁을 처음으로 주창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중심 구절을 표현하면 이렇다. ‘Ich bin der Weg, die Wahrheit und das Leben.’ 독일어로 길과 진리와 생명은 각각 남성, 여성, 중성 명사로 공평하게 나뉘어 있네.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천국에 이르는 길이요, 이것이 바로 진리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끝내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