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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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6쪽 | 150g | 188*254*15mm |
ISBN13 | 9788936472795 |
ISBN10 | 8936472798 |
발행일 | 2016년 0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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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6쪽 | 150g | 188*254*15mm |
ISBN13 | 9788936472795 |
ISBN10 | 8936472798 |
책머리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스러운 실수 인터뷰: 이야기꾼 옮긴이의 말 |
책은 무척 얇다. 강연을 엮은 책이라 30분 남짓이면 충분히 읽는다. 하지만 제목을 보고 조금 유별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가 되라니, 책을 읽기 전이라면 왜 꼭 그래야 하냐고 반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는 카프카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성별에 대한 그릇된 문화적 인식을 깨는 강력한 도끼가 될 것이다. 저자는 사전을 인용해 페미니스트를 설명한다. 페미니스트란,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을 말한다.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런 주장을 ‘과격’하다고 치부하기 일쑤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과격하다고 말하지만) 과격이란, 부자들에게 감세해준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국가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상위 1%가 가져가는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입니다.” 미국 대선 후보 경선에서 ‘민주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의 내용은 과격한 게 아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학급의 반장이 될 수 없고 무시와 경멸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며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가려야 하는 현실이 과격한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돈을 적게 받고, 같이 일하면서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하고 남자는 단지 돕는 것에 그치는 현실이 과격한 게 아닐까. 물론 제도적으로 100년 전 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성별에 관계 없이 투표를 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좋아졌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남자든 여자든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고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2015년, 캐나다의 새로운 총리가 된 저스틴 트뤼도는 내각을 구성하면서 30명의 주요 장관을 남자와 여자 15명씩 구성해 화제가 됐다. 내각을 남성과 여성 동등한 비율로 구성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It is 2015.)”였다. 왜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냐고? 지금은 2016년이니까.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권한다. |
100쪽도 안 되는 얇은 책이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화난 여자가 남자의 권리를 빼앗으려고 시비거는 사상인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너무 많다!)에게 입문용으로 권하고 싶다. 상당히 온화하게 바른 소리만 하고 있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드 연설문이 바탕인 '다 함께 페미니스트가 되자'고 권하는 내용, 친웨 아줌마를 지켜본 내용, 미즈 잡지와 대담한 내용이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은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육,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 본문 44쪽에서 인용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거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겋게 만들 수 있습니다.
- 49쪽
도서관에 강의 들으러 왔는데 좀 시간이 남아 자료실에 올라왔다. 잠깐동안 다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을 고르다보니 읽은 책인데, 친웨 아줌마가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되어 우는 대목이 되니까 그제야 기억이 났다. 나는 이 책을 전에 읽은 적이 있었다. 이미 읽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다니. 그 정도로 심심하게 바른 소리만 나오는 책이다.
이렇게나 쉽고 친절하고 상냥한 수준의 입문서가 있는데도 이상한 책이나 읽고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며 페미나치 운운하는 바부탱이들은 뭘까? 오, 그것이 (바부탱이들의) 인생인가. Oh, c'est la vie.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를 읽으며 기억 속에서 잊은 지 오래 된 두 언니가 떠올랐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알게 된 언니들인데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당시 미혼이었고 앞으로도 결혼 계획이 없던 A언니는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녔다. 언니가 반지를 끼는 이유는 타인에게 배우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독신으로 살겠다고 결정했고 가족들도 언니의 결정을 존중했지만 낯선 사람들에게까지 배우자가 없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배우자가 없다는 걸 알면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A언니와 달리 B언니는 결혼을 했다. 당시 결혼한 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병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정답게 사는 부부라는 소문이 회사 내에서 자자했다. 그런데 B언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늦은 결혼은 가족들의 성화에 시달리다 못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집안이 안 되는 이유가 결혼하지 않은 언니 탓이라고 몰아세웠단다. B언니는 견디다 못해 처음 소개받은 남자와 결혼했지만 불행하지는 않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남자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불행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B언니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연락이 두절된 지 십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A언니와 B언니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없는 걸 숨기고 싶어 하는 A언니는 스스로의 선택을 부정하는 듯 보여 모순된 삶이라고 느꼈다. B언니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가족들의 날카로운 말에 상처 입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지 못해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기 전까지 A언니와 B언니의 삶은 각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사회 안에서 누구든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였다. 어릴 때부터 남자와 여자에게 부여된 고정역할과 그런 문화 안에서 자란 구성원이 갖게 되는 가치관의 문제였다.
결혼반지를 끼지 않으면 정말로 만만하게 묵살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비해 결혼반지를 끼면 재깍 존중해야 할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p.34)
우리 사회는 일정 연령에 다다른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심각한 개인적 실패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반면에 일정 연령에 다다른 남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면 아직 짝을 고를 마음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줍니다.(p.34)
우리 사회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다움을 가르치듯이 남자아이들에게도 고정역할을 가르친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이 있다. 남자라면 감정조절을 잘 해서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는 의미이며 과묵하고 듬직해야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남자에게 눈물은 수치심과 동의어로 통한다. 왜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게 남자다운 모습이라고 가르칠까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두려움, 나약함, 결점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p.30)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p.31)
저자는 페미니즘이란 ‘좀더 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더 진실함으로써 좀더 행복해진 남자들과 좀더 행복해진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p.28)’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란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p.51)’이라고 말한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역차별과 또 다른 혐오를 말하는 건 올바른 방향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쉽게 설명한다. 크기도 작고 쪽수도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내용도 쉽고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나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글자가 눈으로는 읽히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회가 부여한 고정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는 없다. 누구든 현재 이슈화되는 젠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부터 출발하면 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기 전에 성평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현장에서부터 페미니즘을 알리면 사회 변화도 그만큼 빨라지지 않을까?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함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