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학교에 다니는 게 힘든 친구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버텨 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자신에게 어떻게 힘이 되었는지 쓴 댓글을 읽으며 한참을 울었다는 출연자도 있었다. 더 이상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학생들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한때 자기 자신이 너무 싫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당당하며 용기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 p.6-7
왕따가 되면 진짜 무서운 게, 내가 나를 놓아 버리는 게 다 합리화가 되는 거예요. ‘너는 챙길 가치도 없는 애야.’ ‘그냥 이대로 있다가 먼지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거야.’ ‘이유는 없어, 그냥 너니까.’ 진짜 웃지도 못했어요. 학교생활 하다 보면 반 전체가 빵 터지거나 하는 일 있잖아요. 저는 웃으면 “이빨 깐다”고 화장실에 끌려갔어요. “너 왜 이빨 까냐, 네가 왜 이빨을 까냐고!” 그랬죠. 집에서 웃을 때도 반사적으로 엎드려서 끅끅거리며 웃는 게 습관이 됐어요.
--- p.44
정신과에 갔더니 보통은 불면증이나 기면증 둘 중 하나만 걸리는데, 몸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2가지 증상을 혼합시켜 둘 다 걸리게 된 형태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약으로 낫기도 어려워서 제가 가진 문제나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고 해결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주로 상담을 많이 했어요. 처음이었어요. 저의 아픈 과거를 토해 내듯이 쏟아 내며 울었던 날이.
--- p.78
어떻게 보면 남이 내 하얀 도화지에 얼룩을 묻힌 거잖아요. 근데 그 얼룩이 내가 잘못해서 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도화지에 얼룩이 조금 튀었다고 해서 전체를 다 구겨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 p.98
정의로운 일진 솔직히 한 번도 못 봤어요. 언어도 좀 그래요. “쟤 내 인사 받아 줬어. 착한 일진이야.” “쟤는 나 안 때렸어. 되게 좋은 일진이야.” “쟤는 일진인데 성격은 착해.” ‘착한 일진’ ‘좋은 일진’이 어디에 있어요? 일진이면 일진이고, 좋은 애면 좋은 애지.
--- p.110
누군가의 아픔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예로 ‘인종 차별’이 있잖아요. 오랫동안 피 흘려 싸워 왔다지만, 인종 차별은 아직도 남아 있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지금도 싸우고 있잖아요. 왕따 문제도 아직 싸워야 할 게 많아요. 제가 겪어 왔고 조금이나마 알기에,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좀 더 앞에 서서 싸우고 있는 거죠. 다음 세대 역시 싸우게 되더라도, 지치지 않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어요.
--- p.113-114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그 일’ 이전의 내 모습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곤 해요. 제 결론은 하나를 끄집어내면 100퍼센트 다른 기억과 연결되기 때문이란 거예요. 관련된 모든 기억을 다 차단하지 않으면 또다시 고통스러워지니까. 그래서 기억이 없어요. 이제야 그때 일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고, 그러니까 동시에 조금씩 그전 또는 그 이후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어요.
--- p.170-171
가끔 그런 생각도 해요. 물론 자살 시도라는 게 하면 안 되는 거고 죽었으면 끝이었겠지만, 저는 그 이후로 엄청 잘살고 있어요. 내가 왕따당해서 신경 못 쓰던 것들을 다시 느끼게 해 줬어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저를 챙겨 줬던 사람들도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부모님도 챙기게 됐어요. 나는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그 대다수의 마음을 무시한 채 1명이 괴롭힌다고 내 목숨을 버리려던 게 어리석었다 싶고. 최대한 그렇게 안 살려고 하고 있어요.
--- p.191
또 수학여행 가서 잘 때 애들이 다 편안한 잠자리를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는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는 거예요. 마룻바닥에서도 거의 문 쪽에 가까운 끄트머리. 봄이나 가을에는 밤바람이 되게 차잖아요. 진짜 소외당하는 애들은 제일 찬 데로 밀려나요. 전 한번은 신발 놓는 데 에 발 걸치고 잔 적도 있어요.
--- p.201-202
솔직히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 스스로가 정답은 알 것 같아요. 단지 환경과 상황과 남들의 시선이 문제여서 그렇지, 분명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거나 뭘 하고 싶다고 하는, 본인 스스로 정한 답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면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처는 일단 생기면 오래가니까 본인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꿈이 아니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괜찮으니까 둘 중 하나는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 p.217
저는 피해자였기 때문에 솔직히 피해자한테 마음이 더 갔어요. 일진 애들에게 소홀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걔네랑 친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더라고요, 부모님한테조차. 그래서 마음이, 한쪽으로는 되게 미운데 한쪽으로는 뭔가 도움을 주고 싶더라고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애들을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 줬어요. 그렇게 몇 개월 안 했는데 애들이 바뀌는 거예요. 공부해야겠다는 목표도 세우고, 피해자 애들한테 진짜 “미안하다”고 하면서 눈물로 고백을 하더라고요.
--- p.231
어떤 이유가 있든지 간에 폭력을 정당화해선 안 돼요, 절대로. 그리고 내 편 없이 힘들 때 그래도 믿어요, 자신을. 이렇게 같이 싸워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 혼자 있지 마요. 내가 겪은 아픔들을 조금이나마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꼭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누군가에게 말해 줘요. 숨 막힌다고. 괴롭고 힘들다고. 살려 달라고. 같이 있어 줄게요. 포기하지 마요. 그리고 미안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요. 더 노력할게요. 힘내요. 우리.
---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