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걷기 동네 계획』을 쓰고 싶었던 오만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그것은 이제 지식 수입상을 그만하고 싶다는, 오래되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열망 때문이다. 지식 소비자에서 지식 생산자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우리 도시건축 분야에서 단지설계, 혹은 근린환경 계획의 근간으로 한동안 삼아왔던 여러 원칙, 개념, 혹은 가정은 냉정하게 말해 대부분 그 근거가 모호한 것들이 아닌가?” ---「들어가는 글, 10p
“일반인들도 즐겁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도시건축 관련 도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감성적인 장소 에세이를 서정적으로 쓰는 것은 개인의 취향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류의 책들과 같이 지식정보의 오류가 지적되지 않고 오히려 우수도서로 확산되는 상황은 충격적이다.” ---「들어가는 글, 11p
“어느 책이 공허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대부분 근거 데이터와 해석방법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나 섬세히 동네 형태와 보행행태를 연결 지어 설명해낼 수 있는가에 이 책의 진정성이 달려있다. 이 책은 GPS 기기, 가속도계, 그리고 통행일지 등을 통해 얻은 참여자들의 실증적 보행 데이터와 물리적 환경이 확연히 다른 대표적인 근린 주거지 여러 곳을 결부시켜 설명하고자 했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30대, 40대 전업주부들의 하루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이들의 일상생활 보행 데이터를 오래도록 구축했으니 그 실상도 이제 세밀하고 친절히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짠한 인구 집단이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여기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혹은 지금이라도 집을 나서면 만날 것 같은 우리 동네 풍경이 수백 장의 사진 속에 담겨 있는데, 너무나 생생하여 소리까지 들리는 느낌이다. 이처럼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은 생활현장 중심의 귀납적 연구다.” ---「전상인, 추천의 글」중에서
“북촌, 상계, 성산, 행당 모든 대상지에서 피험자들은 동네 장보기를 통 해 식재료나 물건을 구매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모두 60% 이상, 심지어 84%까지도 나왔다. 예측이 어긋날 만큼 매우 높아 놀랐다. 오래된 한옥 및 단독 다세대 동네건, 계획된 아파트 단지건, 평범한 다세대 밀집 동네건 구 릉지 재개발 단지건, 모든 동네에서 걸어가 물건 사기, 장보기를 아주 많이 하고 있었다.” ---「동네 장보기, 물건 사기」중에서
“초등학교 혹은 유치원이 동네의 중심시설들이 모여 있는 생활가로와 연계되어 있을 경우 동반보행 전 후로 발생하는 주부의 동선은 매우 풍부해진다. 아이 학교 쪽으로 가면서, 동시에 생필품이나 식료품 구입, 외식, 친목모임, 각종 민원, 은행업무 등이 같은 경로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학교 가는 길」중에서
“마을버스가 동네 걷기 행태와 연동되어 보이고 있는 시너지 효과를 확인하면서, 우리가 마을버스에 대해 이해해온 관점이 지나치게 교통공학적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성찰하게 된다. 마을버스의 존재 당위성과 역할을 전철역과의 연결로만 제한한다면 그것은 마을버스가 가진 풍부한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마을버스와 동네 보행」중에서
“관악과 분당의 오픈스페이스 비교 이야기는 우리 분야의 연구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통계분석의 결과가 얼마나 상식적으로 소통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섣부른 해석을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해결보다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더 큰 숙제를 떠안게 된 점 때문에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연구다.” ---「근린 오픈스페이스, 그리고 공원」중에서
“우리가 늘 그렇게 최단거리로 종종걸음을 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기꺼이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때도 있고, 길을 가다 만난 누군가와 안부를 나누기 위해 멈추어 서기도 한다. 동네 걷기는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 또 다른 이유와 의미를 함께 갖는다.” ---「동네 길, 돌아가기와 머무르기」중에서
서울의 경우, 주거밀도, 혼합용도, 대중교통서비스 수준 등 소위 보행환경에 필요한 기반이 미국의 용도분리 도시들보다 월등히 높다. 비교의 한 단면으로 여길 수 있는 우리 연구의 결과, 즉, 서울 가회, 상계의 주부가 하루 평균 2.69km(약 39분) 걷는데, 시애틀의 한국계 주부가 하루 평균 400m(약 6분)을 동네에서 걷는다는 이 결과로도 극명한 차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식의 흐름 방향은 여전히 북미에서 우리에게로 수입되는 일방적인 형국이다. 이게 불편하다.
---「나오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