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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좋은 세상
바캉스 투명 피부 냄새 황혼의 반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조종(操縱) 가능성의 나무 수의 신비 완전한 은둔자 취급 주의: 부서지기 쉬움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허깨비의 세계 사람을 찾습니다 암흑 그 주인에 그 사자 말 없는 친구 어린 신들의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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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가 그린 나무 그림
--- 김정희 (candy@yes24.com)
베르베르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단편소설이 아니라 이야기 말이다. 독자들 곁에서 이야기들을 가만가만 들려주고 싶은 기분으로 이 글들을 썼다는 그의 말마따나 소위 말하는 '문학적 완결성'에 집착하지 않는 그의 '이야기들'은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친절한 어느 대머리 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하면서도 그냥 흘려 듣기엔 아까운 메시지가 있다.
지금까지 베르베르의 소설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집의 이야기들도 기발한 착상에서 시작한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에서의 그 세상은 자명종, 실내화, 커피 메이커 같은 모든 물건이 로봇이 되어 지각을 할 수 있고,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말을 할 수 있다. 「바캉스」는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을 바캉스로 하는 세상을 그린다. 「냄새」에선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거대한 오물덩어리가 프랑스 뤽상부르 한 복판에 떨어진 경우를 그리며, 「조종」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왼손 때문에 골치를 앓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엔 이런 아이디어가 열 여덟 개가 있다. 문제는 어떤 아이디어를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고가 설득력 있게 전개시킬 수 있는 능력일 텐데 이 점에서 베르베르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 이야기의 재료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 된 덕분에 전체 이야기에 맞게 적절히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뜻밖의 해답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에 능숙한 창작자이자, 그 게임을 게임 이상으로 격상시킬 수 있도록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는 관찰자이자 사색가인 작가 베르베르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개미』『천사들의 제국』같은 전작들에서 인간 세계를 관찰하고 사색함에 있어서 그가 즐겨 사용한 '인류에 대한 외래적 시선'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발견된다. '개미'의 관점이 지극히 낮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천사'의 시각은 지극히 높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번에 그는 천사뿐만 아니라 외계인의 시선까지 빌려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본다. 특히 외계인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다른 행성의 한 과학자가 본 인간들의 관습을 이야기한다. 철저한 객관자가 본 인간은 철근콘크리트로 둥지를 만들며, 저녁마다 파르스름한 빛을 내는 상자(아마도 텔레비전)에 불을 켜고 꼼짝 않고 앉아서 그 상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별난 관습이 있다. 그들의 관습 중 제일 이상한 것은 지하철 열차 하나에 천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갇히는 일을 매일같이 되풀이하는 것. 신소도 부족하고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그 공간에 우글거리는 이유가 뭔지 아직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나무'라는 제목은 책에 수록된 「가능성의 나무」 이야기에서 따온 것. '만약 노동 시간을 줄인다면'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미니스커트의 유행이 다시 돌아온다면 같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와 잎사귀가 계속 퍼져 나가는 나무 그림으로 도식화해서 검토해본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지도 모름을 은유한 것이다. 어쩌면 여기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그러한 예측의 나무 그림을 위한 작은 가지들인지도 모를 듯. 분명한 것은 베르베르의 가능성의 나무 그리기는 진행중이라는 사실. 견고하게 그려진 그의 다음 나뭇가지 그림이 기다려진다. |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나를 재우기 전에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 나는 밤에 그 이야기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 뒤로 나는 세상살이가 너무 어려운 것으로 보일 때마다 짤막한 이야기를 짓곤 했다. 내가 겪는 문제의 요소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짓고 나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초등학교 시절에 다른 아이들은 나에게 이야기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어..."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야기들은 갈수록 환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뜻밖의 해법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 말이다. 나는 첫 장편소설 <개미>를 발표한 뒤에 이야기를 빠르게 지어내는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서 매일 저녁 한 시간을 할애하여 단편소설을 썼다. 그럼으로써 오전 내내 '두꺼운 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 상태로부터 벗어나곤 했다. 이야기를 구상할 때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주로 산책할 때의 관찰,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 꿈 등이다. 때로는 나를 화나게 하는 어떤 일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나는 이야기를 통해서 내 마음 속에 생긴 화를 몰아내고 싶어한다. <수의 신비>라는 작품은 내 어린 조카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착상되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녀석의 반에는 10까지 셀 줄 아는 아이들과 그보다 큰 수를 셀 줄 아는 아이들 사이에 서열이 존재한다고 한다. <암흑>이라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어떤 노인이 길을 건너는 광경을 지켜보던 때였다. 그 노인은 길을 건널 생각이 없었음에도 너무나 친절한 행인에 이끌려 억지로 건너가고 있었다. <마지막 반란>은 어떤 양로원을 방문하고 난 뒤에 쓴 작품이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닫힌 세계(감옥, 정신병원, 도살장 등)가 내 작품에서는 종종 우리 현대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무대로 활용되었다. <말 없는 친구>는 제라르 앙잘라그 교수와 토론을 벌인 뒤에 쓰여졌다. 그는 생명에 관한 세계적인 연구의 최선두에 서 있는 생물학자이다. <말 없는 친구>에 언급된 과학적인 발견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의 몇몇 요소는 내가 쓴 한 희곡 작품의 소재이기도 하다. 현재 초고 상태에 있는 그 희곡의 제목은 <인간은 우리의 친구>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시선을 빌어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나는 앞서 발표한 작품들 속에서 이미 '인류에 대한 외래적 시선'의 기법을 사용한 바 있다. 소설 <개미>에서 주인공 103호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려고 하는 장면, 혹은 ?천사들의 제국?에서 미카엘 팽송이 천국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행복을 건설하는 대신 그저 불행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대목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개미와 천사는 인간에 관한 상호보완적인 두 관점이다. 하나가 지극히 '낮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극히 '높은' 곳으로부터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간에 대한 지극히 '다른' 관점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작품집의 제목이기도 한 <가능성의 나무>는 컴퓨터와 체스를 두어 패배한 뒤에 떠오른 생각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컴퓨터가 체스를 두면서 다음 수(手)를 모두 내다볼 수 있다면, 컴퓨터에 우리 인간의 모든 지식과 미래에 대한 모든 가정을 입력해서 인간 사회가 나아갈 길을 단기적으로, 중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제시하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어린 신들의 학교>는 <천사들의 제국>의 후속편이 될 다음 소설의 작은 실마리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우리를 이끄는 신들의 일상생활과 교육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어찌 보면 내 장편소설들의 생성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들은 저마다 하나의 가정을 극단까지 몰고 갔을 때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만일 태양으로 로켓을 보낸다면, 만일 별똥별 하나가 파리 뤽상부르 공원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만일 인간이 투명한 살갗을 갖게 된다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독자들 곁에 앉아 그런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려주고 싶은 기분으로 여기 이 글들을 썼다. ---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