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건지, 팝콘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영화가 재미있으면 팝콘도 맛있고, 팝콘이 맛없으면 스크린의 색도 갑자기 바랜다는 점이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로비에 발을 내딛자마자 고소한 팝콘 냄새가 났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요즘 영화관의 팝콘은 포장된 것으로 바뀌어, 언제부턴가 향기를 흩뿌리는 팝콘 기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점에 있어서도 ‘쓰키부네月舟 시네마’는 멋진 영화관이다. 언제 가더라도 기계에서 만들어내는 따뜻한 팝콘이 준비되어 있다.
“하나” 하고 말을 걸면 팝콘 만들기의 달인처럼 보이는 청년이 솜씨 좋게 종이컵에 한가득 팝콘을 담는다. 아슬아슬 떨어질 것 같은 팝콘은 자리에 앉기 전에 기어이 한 움큼 집어먹고 싶어진다.
예컨대 편한 구두를 신고 산책을 하면 별로 좋지 않은 풍경이라도 어딘가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맛있는 팝콘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면 다소 지루한 내용이라도 ‘뭐, 좋잖아.’ 하며 마음이 누그러진다.
쓰키부네 시네마가 있는 쓰키부네초는 작은 상가가 호젓하게 들어서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과 어울리게 영화관도 정적이고 화려한 간판 하나 없다. 그 탓인지 평일 오전에는 나를 포함해 네다섯 명의 손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학생 때는 혼자 있고 싶어서 학교를 빼먹고 가능한 한 비어 있을 법한 영화관을 골랐는데 지금은 객석이 너무 텅 비어 있으면 발 언저리에 서늘한 바람이 느껴져 마음도 불안해진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옛날 일본 영화 특집에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손님 하나하나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무슨 말이든 이야기를 걸고 싶어진다.---pp.24~25
더 이상 휴대전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 한참 지나자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 곳도 없지만 내게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도 없다. 일로 사용할 때도 그저 가지고만 다녔을 뿐 내가 먼저 거는 일은 없었다.
애당초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옛날 영화를 볼 기회가 늘어난 후로는 내 주변의 시간이 조금씩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다.
예전의 시간은 지금보다 느긋하고 두터웠다. 그것을 ‘시간의 절약’이라는 미명 아래 아주 잘게 조각내버린 것이 오늘날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명의 다양한 이기가 문자 그대로 시간을 잘라내 일단 무언가를 단축하긴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잘라낸 것은 ‘느긋했던 시간’ 그 자체임이 분명하다.---pp.40~41
이 일의 좋은 점은 선보인 것에 미소가 돌아온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예전의 나처럼 미소를 통해 정말 맛있었어요, 라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보면 회사에 다닐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아니, 미소가 있긴 있었지만, 그것이 누구의 어떤 미소였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트르와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손님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서, 일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누군가’를 가능한 한 웃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일의 정체가 아닐까. 어떤 직종이든 그것이 일이라고 불리면,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미소를 목표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샌드위치와 수프를 만들어 건네는 것은 여러 사람의 미소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귀중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돌아오는 것이 언제나 미소일 리만은 없고, 미소가 아닐 때의 불안감도 있기에 불안감 역시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내 불안은 수프를 사준 녹색 모자의 그녀가 과연 내가 만든 수프를 맛있게 먹었을까, 하는 것이었다.---pp.112~113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죠?”
“그거야 간단하지.”
아오이 씨는 왠지 묘하게 기뻐하는 듯했다.
“젊은 미남에게 해주려고 했더니 이렇게 맛있게 됐지. 그것뿐이야.”
“예?”
“저기, 오리이 군.”
아오이 씨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맛있는 걸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 다들 열심히 만들었을 테지만 열심히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지.”
“그런가요?”
“그래.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을 위해 열심이지만 그게 아니라 연인을 위해 만들려고 해야 해. 나는 그랬어. 그러면 열심히 말고도 또 하나의 소중한 게 더해지지.”
“아아…….”
혹시 아오이 씨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려는 걸까.
“놀랐지? 거짓말이야.”
“예?”
“거짓말이라고. 그런 걸 생각하고 몰두했다가는 맛있는 걸 하나도 못 만들지.”
“그런가요?”
“그래.”
어째서 아오이 씨는 나를 놀리는 걸까. 놀리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너무나 진지한 눈빛으로 거짓말이야, 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해서 모르겠다. 마담이라면 이럴 때 시원스레 웃는 눈빛이 되는데.
역시 아오이 씨는 천생 여배우인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고 보니 ‘거짓말이야’와 ‘진짜 거짓’이 무엇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저기 말이야, 연인이라는 거는 여차할 때 아무 도움이 안 돼. 이건 정말이야. 하지만 맛있는 수프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으면 어느 때나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지. 이것이 내가 찾은 진실 중의 진실이지. 그러므로 무엇보다 레시피에 충실하게 만드는 게 중요해.”
그러고 나서 아오이 씨는 진지한 눈빛으로 다시 “비밀이지만.”이라고 중얼거리더니,
“누군가에게 전수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어. 나도 계속 건강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에 들어갔을 때 반드시 읽는다는 작은 노트를 펼쳤다. 나는 그곳에 적힌 레시피를 ‘한마디 한 구절도 빠트리지 않고’ 아오이 씨가 말하는 대로 베껴 적었다.
“오늘은 연속극의 첫 회 같은 거야. 아직도 레퍼토리가 무궁무진하지.”
아오이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데운 수프를 입으로 가져가더니 어머! 하며 손을 멈추고 이쪽 수프는 좀 짜네, 라고 말했다.
내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오이 씨는 실패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아쉬웠던 것인지 얼굴을 붉히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상하네.”
정원의 빨래걸이에서 흰 수건이 흔들리고 있었다.
---pp.16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