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되 우매하진 말라는 말 안에는 두 가지 주문이 있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자주 비도덕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게 첫 번째고, 노신사의 말처럼 ‘인생이 열어주지 않은 문 앞에서 너무 오래 서 있지 말라’는 게 두 번째 주문이다. 꼭 손해가 손해가 아니듯 포기 역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고 포기를 함으로써 지켜지는 인생도 존재한다. 각자의 인생에서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한두 개씩은 존재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택하지 않고 흘려보낸 덕분에 우리의 인생이 이만큼 지켜진 측면이 있다. ---「내 것이 아닌 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중에서
자신에게 다가올 변화를 기다리는 대신 관점을 바꿔 도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인생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인생의 변곡점은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다. 준비 없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사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나갈 때 인생이 가장 안전해진다. (중략)
언제나 의미 있는 성장은 흔들림이 있을 때 있어왔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융합과 해체를 반복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적인 시기가 바로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화가 두려워 지금 모습 그대로 있기를 원하고 행동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 지금 내 앞의 조건들, 인간관계를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 또한 바뀌게 되어 있다. ---「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살 만해진다」중에서
자존감도 나이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젊을 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금세 회복할 만큼 자신을 믿는 것이 자존감이라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는 힘이 자존감이 된다. 못난 나, 잘난 나, 잘린 나, 올라간 나 이 모든 모습을 평이한 수준으로 믿고 지지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인 것이다. ---「이제 외피와 내면의 균형을 맞춰나가자」중에서
체코 출생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저서『무의미의 축제』에서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무의미’에 대해 기록했다. 하찮고 의미 없음이 존재의 본질이고, 삶의 무의미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무의미를 사랑하라고 한다.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듯 ‘일상의 무의미’를 인식할 때 비로소 의미를 향한 발걸음도 시작된다. 평범한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 무의미에서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삶의 비범함이다. ---「보통이 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중에서
“넘치게 기대하지 말자.”
나의 클리닉을 찾은 분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인생은 생각만큼 거창한 것이 아니다. 대단한 존재가 돼야 하고, 그게 아니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그냥 멍 때리고 있고, 잠도 달게 자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이다. 다 큰 어른에게 건네는 조언치고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야말로 행복의 기본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대전제를 두고 보석이 되고 꽃이 될 만한 일을 찾아간다면 무기력에 울거나 행운에 웃는 ‘일희일비의 삶’을 견제한 채 나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시야에서 현실의 나를 바라봐야 할 때」중에서
직장을 바꾸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것 같은 환상이 있듯, 우리는 관계 문제도 대상을 바꾸면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발상이다. 이 세상에는 마냥 좋고 행복한 관계란 없다. 좋은 때는 어느 한때 잠시 주어질 뿐이다. 마냥 좋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짜 관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관계가 제대로 시작되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애증이 교차하지 않으면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중에서
철없던 젊음을 지나 미들 에이지(middle age)가 시작되면 삶에 꼭 필요한 핵심과 본질이 보인다. 그래서 마흔 언저리가 부차적인 것, 과시적인 것을 걷어내고 삶을 받쳐줄 ‘진짜 자존감’을 만드는 최적의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무렵에는 빈 공간을 채우겠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해야 할 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에만 매달리느라 미처 하지 못한 ‘하고 싶은 일, 나를 위한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을 ‘다시 나를 채우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에게만 가 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놓는 일, 해야 할 일만 하느라 꽃도 피지 못한 내 소망을 찾아 키우는 일, 세속적인 가치에 밀린 인문학적 소양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 등 지금까지 소홀히 대했던 인생의 기초를 다져나가야 한다. 이런 삶의 베이직을 쌓아간다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 대해 온전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가짜 자존감에 그만 매달릴 때도 됐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