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 사람은 세상이 그려놓은 지도를 따라 걷다가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란 생각을 막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막상 길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개척할 용기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다며 계속 그 길을 걸어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마음도 왠지 불편하기만 합니다. 그 불편함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나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 p.6
우리 안에는 주인과 노예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속 노예는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노예가 주인이 되는 순간, 마음속 주인은 자리를 바꿔 노예가 됩니다. 즉, 우리는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면서 무엇인가를 섬기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을 섬기고, 사랑을 섬기고, 자식을 섬기고, 게임을 섬기고, 섹스를 섬기고, 영웅을 섬기고, 음식을 섬기고, 내 몸을 섬기고…. 어느 한 가지에서 다른 한 가지로 옮겨가면서 무언가를 계속 섬깁니다. 진정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다면, 일단 무언가를 섬기는 행위 자체를 중단해야 합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고정관념으로부터, 맹목적인 감정으로부터, 속박하는 심리적 관계로부터, 오래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 p.35
미움받을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만큼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용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움을 견뎌낼 수 있는 철저한 준비’입니다. 심리적 준비 못지않게 경제적 준비를 비롯한 현실적 준비도 필요합니다. 후폭풍을 이겨낼 준비 없이 미움받을 용기를 실천에 옮겼다간 어떤 상황에 내몰리게 될지 모르니까요. --- pp.67-68
자기 검열은 내 생각을 스스로 진단하는, 일종의 검사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의문을 걸러냅니다. 그 후, 정신 통제도 하고, 자기 억제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때는 혁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 자기 독립에 돌입하지 않으면, 자기 파멸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독립에는 분노와 절박함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무시하고, 짜증 나게 하고, 차별할 때,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다음에 해야지, 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루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면, 그때는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절망에 빠져 주저앉으면 자기 파멸의 길을 주먹을 높이 들고 무모할 정도로 돌진하면 자기 독립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 p.108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 이들은 과정 중에 즐거운 일들을 모두 잊어먹고, 결과만 가지고 자신을 탓합니다. 이들을 보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힘’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 고통을 견뎌내는 힘은 어떤 점에서 타고난 성격의 한 측면입니다. 그런데 걱정 많고 신경질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가 야단을 많이 치는 무섭고 냉정한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면, 그런 성향이 더욱 강화됩니다. 그러다 보면 비난받지 않기 위해 완벽주의자가 되기도 합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인색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사소한 실수에도 더욱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 p.174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면 ‘내려놓으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그런 말을 듣게 되면, 모든 짐을 한순간에 내려놓고만 싶어집니다. 그런데 한번 내려놓으면 다시는 짊어질 수 없는 것이 삶의 무게입니다. 온몸으로 짊어지고 있을 때는 관성으로라도 버티지만, 일단 내려놓으면 다시 짊어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무작정 모든 삶의 짐을 내려놓아선 안 됩니다. 다만 그 짐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권하는 ‘반소유’입니다.
---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