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도 유효한 『여권의 옹호』의 혁명적 통찰은, 당시 여성 차별의 문제를 성차에서만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차별이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신분이나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억압과 결부된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이해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 『여권의 옹호』가 출판된 후 몇백 년이 지난 현재 여성의 교육권과 참정권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권의 옹호』는 현재 진행 중이다. 교육의 평등권이 실질적으로 달성되지 않은 국가도 여전히 많고, 교육 이외에도 그가 제기한 질문들 중 많은 것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 p.35
밀의 당대에는 ‘젠더’, 즉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는 성별에 대한 관념과 그를 지칭하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여성의 종속』에서 강조하듯, ‘자연(본성)’과 관습·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자연스러움(인위)’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그의 관점은 젠더에 관한 현대 페미니즘의 논의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 밀은 ‘여성은 어떠하다’에 대한 관념은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여성에 관한 모든 ‘자연스러운’ 관습적 사유를 배격한다. 이러한 밀의 통찰은 젠더를 구성하는 내용이 다른 변수에 의해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제3물결 페미니즘의 논의와 넓은 맥락에서 함께 검토해 볼만 하다. --- p.55-56
인류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공 생식과 기계에 의한 인간의 노동해방과 같은 파이어스톤의 예측이 현실적으로 도래하지 않은 SF 수준의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의 여성 예속에 대한 원인 분석은 여성 불평등의 근본적 지점을 드러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 여성이 출산에서 생물학적으로 자유롭지 않더라도 출산 여부의 결정권은 여성이 전적으로 주도해야 하며,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몫만은 아니어야 한다. 양육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사회적 자아 이상을 실현시킬 권리를 확보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p.80
남들이 보기에 번듯하고 부유한 삶을 살며, 남편이 대기업의 높은 직위에 있는 가정주부는 딸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고 자기와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남편은 바쁘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몰두할 뿐이다. 그럴수록 가정주부는 아이들의 삶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때 어머니에게 딸은 일종의 사물, 즉 또 다른 자아 의탁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기도 한다. “가장 나쁜 것은 제가 제 배로 낳은 아이들을 질투한다는 것입니다. 전 아이들을 미워합니다. 아이들에겐 앞으로 자기들의 삶이 있지만, 전 이미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 p.97-98
초도로우와 프로이트는 같은 장면을 보았다. 같은 장면을 보았음에도 이에 대한 분석과 이를 통해 이끌어 낸 통찰은 매우 다르다. …… 초도로우는 부모의 젠더와 역할, 이성애적 섹슈얼리티의 결정론적·목적론적 심리 발달 과정을 기술하는 정신분석적 체계들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심과 더불어 아들과 딸을 가진 어머니를 상담하여 얻어낸 임상 사례로써 반증함으로써 기존의 정신분석학이 자연화하고 낭만화한 어머니의 역할과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를, 어머니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사회구조와 매개되는 것으로, 그리고 세대를 거쳐 재생산되는 것으로 상대화했다. --- p.124-125
리치는 여성이 겪는 공통의 억압과 공통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대신, 우리의 몸에서부터 시작하자고, 그리고 몸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부터 출발하자고 제시한다. …… 몸의 위치는 리치 자신을 여성일 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이 여성으로서 억압받는 존재인 동시에 흑인에 대해서는 백인으로서 특권 계급에 속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 위치에 대한 인식은 곧 타자에 대한 책임을 수반한다. 억압과 피억압이 교차되고 있는 지형 위에서 자신을 단지 권력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p.145
오늘날 가사노동이면서 재생산 노동인 이 노동은 더 이상 숨겨진 노동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도 생산관계 전체의 전면으로 부상되었다. 노동의 여성화, 노동의 정동화, 노동의 가사노동화, 그리고 인간 자체, 즉 주체성 그 자체를 생산하는 노동의 삶-정치화는 이제 산업자본을 넘어 오늘날의 인지 자본주의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생산능력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달라 코스타의 혁명적 페미니즘은, 다른 어떤 혁명 이론도 능가할 가장 근본적이고 해방적인 선언의 준거점이 될 것이다. --- p.172
『에코페미니즘』이 빛나는 것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환경에 놓인 두 여성이 머리를 맞댄 연구의 소산이자, 아직 주변부 국가에 속하는 인도 여성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칩코 여성들의 운동이 보여 주듯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입장에 입각한 여성운동과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움직이고 있다. 세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만큼 서구 여성들이 걸어왔던 것과 다른 방식의 여성주의와 대안적 길이 그들 안에서 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193-194
성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성에 대한 해방적 사유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민권 차별, 경제적?사회적 차별의 근거가 된다. …… 성소수자들은 양육법, 자격법, 이민 정책, 군대 규정 등에 의해 차별을 경험한다. “수많은 레즈비언, 게이, 창녀, 프리섹스주의자, 성 노동자, ‘문란한” 여성은 자격 없는 부모라고 공언되며, 자격법에 의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 방식이 학교 당국자들에 알려졌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해고된다. …… 그러나 최악은 따로 있다. 때때로 성소수자들은 쉽게 성 공포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7
버틀러의 ‘패러디’ 개념은 강제적 이성애 체제 안에서 그것이 부과하는 규범에 대한 재이용·재의미화를 염두에 두는 것이며, 그만큼 그러한 저항 전략은 담론 이전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상정하지도, 나아가 저항 이후의 유토피아적 낭만화로도 귀결되지 않는 진정한 ‘내재주의’를 성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재주의’는 권력 작용이 있는 곳에서는 그 어떤 장소나 시간, 어떠한 위치에서도 저항과 전복이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영구혁명’ 모델로 귀결되며, 페미니즘 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확립하게 해준다. --- p.241
우리 사회는 정의에 대한 요구들과 논의들로 팽배하다. 그러나 정의를 둘러싼 어떤 담론들은 모든 시민들이 동질적이라고 가정하면서 차이를 부정하고 은폐하기도 한다. 예컨대 여성이나 동성애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 이기적이라고 힐난하거나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은폐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 영의 주장대로, 우리가 서로 다른 차이들과 다양성, 서로 다른 특권과 권력관계들로 이루어진 ‘이질적 공중’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타자화와 배제를 통한 억압과 부정의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가 아닐까? --- p.266
모든 끔찍한 사건들 뒤에는 모두 자신과 다른 존재, 나와 다른 몸을 가진 타자에 대한 혐오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제든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취약한 몸을 가진, 일종의 타자이다. 늙고 병들고 배설하기도 하는 그런 동물성과 유한성을 함께 지닌 존재인 것이다. 누스바움의 말대로, 혐오와 수치심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인간의 동물성과 유한성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타자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과 제도를 갖춰야 한다. 그것이 이처럼 혐오의 희생양이 된 죽음들을 애도할 수 있는 길이다.
---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