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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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37쪽 | 220g | 134*224*20mm |
ISBN13 | 9788937462481 |
ISBN10 | 8937462486 |
발행일 | 2010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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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37쪽 | 220g | 134*224*20mm |
ISBN13 | 9788937462481 |
ISBN10 | 8937462486 |
페미니즘의 원조격인 희곡이다.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19세기에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당당히 문을 박차고 나가는 엔딩이 인상적인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여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시 당하기 일쑤다. 왜일까? 여성들의 개인적인 성향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구조적인 분위기에 매몰된 탓일까? 그도 아니면 '여성운동'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여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탓일까? 한참 부족한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마지막 이유 때문인 듯 싶다.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고 말하곤 한다. 여성운동이 제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산산히 흩어져버려서 흐지부지 되기 일쑤인 것은 '여성 문제'를 제대로 접근해서 남성 지배적인 사회에 당당히 입장을 발휘하려고 해도 번번히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버리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이란 여성은 '가정적'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말한다. 여성은 밖에 나가서 '자아실현'을 하기보다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늘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설령 사회에 큰 공헌을 이룰 정도로 걸출한 인재로 발탁이 된다 하더라도 '결혼의 굴레'에 갖혀버리면 임신과 출산, 자녀 양육과 교육, 살림과 가사 등을 도맡아서 해내고 난 뒤에야 허락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남편들은 직장에서 출장, 야근, 회식을 하면서도 '가정'을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아내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출장도 안 되고, 야근도 안 되며, 회식은 더더군다나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왜 이런 차별이 생겨버린 것일까?
물론, 임신과 출산이 전적으로 '여성의 몫'인 탓이 크다. 불룩한 배를 내밀고서 출근이라도 하면, 아무리 '여초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산부에게 가중한 일을 강요할 수 없잖은가 말이다. 더구나 출산이 가까워지면 짧게는 세 달, 길게는 삼 년 동안 직장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어린 젖먹이를 내버려두고(?) 출근이라도 할라치면 '독한년' 소리 듣기 십상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출세'가 하고 싶으냐..라는 빈정거림을 듣기 일쑤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식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비정한 엄마(또는 며느리)라는 불명예스런 딱지라도 받게 되면 '일과 가정'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서서 고민해야만 한다.
반대로 '남자'의 경우에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남자는 결혼을 하면 더욱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아빠가 되면 웬만해선 직장에서 짤리지도 않는다. 여자와는 달리 '처댁(시댁의 반대말, 처가의 높임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얼마든지 사회생활에 매진할 수 있다. 오히려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적인 남성을 '무능력자'로 낙인을 찍을 정도로 말이다. 오히려 가정에 소홀히 할수록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남자의 세계'다.
이런 '사회구조적인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면 느낌이 남달라질 것이다. 주인공인 '노라'는 남편을 사랑하고 가정에 헌신적이었는데도, 남편은 노라를 자신의 명예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할 뿐이었다. 노라는 남편이 쥐꼬리만한 수입으로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자녀 셋을 낳고 기르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해왔다. 심지어 신통찮은 벌이를 하던 남편이 과로로 건강이 나빠지자 의사의 권유대로 '요양'을 가서 남편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까지도 했다. 엄청난 돈이 필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물론 곤궁한 살림에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오직 사랑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매달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하면서 아끼고 또 아끼며 살림을 해나갔다. 이 모든 일을 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남편과 아이들은 좋은 음식과 좋은 옷으로 호강(?)을 시키면서도 노라 자신은 늘 싼 음식과 싸구려 옷을 챙기면서도 절대 티나지 않게 했더랬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신의 명예만을 걱정하는 쫌생이처럼 굴었다. 아내가 자기 몰래 저지른 범죄(?)가 들통나면 자신의 명예와 처신이 깎일 것만 걱정하며 노라에게 험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때 노라는 결심을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아내로서 존중하지도 않는 남편과는 같이 살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심지어 남편과 가정에 헌신적인 아내를 '법적'으로 보호하지도 않는 사회는 잘못되었노라고 당당히 선언하기까지 했다.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들의 보호'가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든 세상에 대한 경고를 던진 셈이다. 여선은 어릴 때는 '아버지'의, 결혼을 하면 '남편'의,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보살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에 경종을 울린 <문제작>으로 보아야만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희곡이 초연했을 당시엔 수많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전해진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당시 사회분위기를 대변해주는 '남편 헬메르'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상식', 그 자체였지만, '아내 노라'의 대사와 몸짓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여성도 당당히 사회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이 인정하는 시대가 펼쳐졌다. 하지만 여전한 것도 있다. 바로 '현실의 벽' 말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굴레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그러한 것들이 '상식'처럼 떠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라는 말한다. 자신은 아버지의 '인형'으로 자랐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인형'이 되고 말았다고 말이다. 노라 스스로는 '남자' 못지 않은 어려운 일을 해냈고,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한 일이었다고 자부했지만, 아버지에게서도, 남편에게서도, 누구에게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에 노라는 떠날 준비를 마쳤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공부)'을 받겠노라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라는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런데도 남편에게는 '종속'을 강요받았고, 사회로부터는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사회는 노라에게 '남자의 도움(또는 보살핌)'을 받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렸다. 노라는 이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한 '교육'을 다시 받겠노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그래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
이런 노라를 비난할 수 있을까? 남편은 몰라도 자식을 버리면서까지 '교육'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여자로 낙인 찍을 수 있을까? 그래선 절대로 안 된다. 반대로 아내와 자식을 나몰라라하고 집을 떠나는 남편이 있으면 '무정하다'는 비난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사나이 가는 길'을 막지 말라는 그럴 듯한 핑계까지 마련해주면서 말이다. '여성이 가는 길'은 왜 축복해주지 않느냔 말이다.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92년 출간한 「여권의 옹호(2014, 연암서가)」에서 ‘남성은 교육과 사회활동을 통해 각자가 서로 다른 성격과 취미, 개성을 갖출 수 있지만, 여성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이나 인격을 갖출 기회도 없이 오직 하나 ’나긋나긋한 부드러움과 고분고분한 순종‘만을 갖춘 인형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p.10)’하며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p.10)”는 말로 남녀 간의 불평등한 현실에 맞섰다. 「여권의 옹호」에서 펼친 그녀의 주장을 현대 시각으로 살펴보면 그녀 역시 가부장적 사고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활동했던 18세기는 계몽주의가 유행했음에도 여성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 남성 중심 사회였기에 여성을 향한 불합리를 자각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여권의 옹호」에서 발견한 놀라움은 『인형의 집(2010.06.30. 민음사)』으로 이어졌다. 『인형의 집』은 여성문제만이 아니라 언론 조작, 이중적인 윤리, 사회와 개인의 갈등 등의 문제를 다루었던 헨리크 입센이 1879년에 발표하면서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희곡으로 주인공 ‘노라’는 남편에게 자신의 존재가 단지 ‘소유물(p.113)’일 뿐이었음을 깨닫고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p.118)’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의 집에서 나가기로 결정한다.
1막은 남편 헬메르, 아내 노라, 헬메르를 찾아온 손님 랑크 박사 그리고 노라를 찾아온 손님 린데 부인(크리스티네)과 변호사 크로그스타드가 등장한다. 헬메르는 노라를 종달새, 다람쥐라고 부른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노라에게 ‘당신은 여자라 어쩔 수가 없어(p.11)'라고 말했고 과자 가게에 들렀는지 안 들렀는지 캐물으며 아이 취급한다. 헬메르가 퇴장한 후 등장한 린데 부인(크리스티네)에게 노라는 헬메르가 저축은행 총재가 되어서 생활이 안정되리란 기대를 자랑스럽게 얘기하자 크리스티네는 일자리를 부탁한다. 노라는 혼자서 간직해 온 비밀을 크리스티네에게 털어놓는다. 죽을병에 걸린 헬메르의 치료를 위해 필요한 돈을 빌렸다는 것. 자존심이 강하고 빚지는 걸 싫어하는 남편 모르게 지금까지 돈을 갚아나가고 있은 게 뿌듯하고 헬메르가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었으니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을 상상하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변호사 크로그스타드가 찾아와 은행에서 자신의 자리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자 노라는 불안해한다. 만약 노라가 거절하면 헬메르에게 노라가 자신에게 돈을 빌린 사실뿐 아니라 차용증서에 보증인 사인을 위조한 비밀까지 알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2막에서 노라는 헬메르에게 ‘크로그스타드를 은행의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p.62)’ 한다고 설득하지만 헬메르는 ‘그의 자리를 린데 부인에게 주기로 했다(p.62)’고 대답한다. 헬메르는 크로그스타드에게 해고장을 발송하고 크로그스타드는 노라의 비밀을 적은 편지를 헬메르에게 보낸다. 3막은 헬메르 부부가 없는 집에서 크리스티네와 크로그스타드가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크리스티네는 헬메르 부부를 협박해서 은행으로 돌아가려하는 크로그스타드를 설득하는 한편 노라에게는 ‘남편에게 모두 다 이야기(p.98)’하라고 조언한다. 헬메르는 크로그스타드의 편지를 읽고 노라에게 ‘사기꾼, 거짓말쟁이, 범죄자(p.108)'라며 분노를 쏟아낸다. 어떻게 하면 사건을 축소해서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걸 막을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린다. 그런데 크로그스타드로부터 차용증서가 배달되어오자 모두 용서했다는 말과 함께 무력한 여자의 ‘피난처(p.121)’가 되겠노라 말한다. 그리고 노라를 얼어붙게 만드는 충격적인 말을 잇는다.
자기 아내를 용서했다는 걸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남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일이지. 자기 아내를 진심으로, 거짓 없이 용서했다는 것 말이야. 그럼으로써 여자는 두 배로 그의 소유물이 되니까. 그는 아내를 이 세상에 다시 낳아 준 거야. 아내는 어떻게 보면 그의 아내이면서 그의 아이이기도 하지. 힘없고 무력한 존재인 당신은 앞으로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될 거야.(p.113)
소설 속 주인공은 결혼 전 딸을 ‘인형 아기(p.115)’라고 불렀던 아버지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착각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취향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했던 자신이 ‘인형 아내(p.116)’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더 이상 똑같은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 노라의 결심은 『인형의 집』이 출간되던 당시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기에 헨리크 입센이 창조한 인물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노라에게는 큰 결함이 있다. ‘나는 사랑 때문에 한 일(p.47)’이라고 말한 노라는 끝까지 서명을 위조한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는 ‘아름답지만 무익한 존재로 전락한 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여권의 옹호, p.32)’이라고 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합리적 사고를 가능케 할 여성 교육을 주장했던 이유를 떠올리게 했다.
내 기억에 헨리크 입센의 작품은 『인형의 집』이 처음이다. 이 놀라운 희곡을 쓴 입센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결혼한 여성에게 친정은 기존의 질서와 궤도를 이탈하여 무심한 채로 쉴 수 있는 안온한 보루 같은 곳이다. 혈육을 나눈 식구들은 오랫동안 함께 하였던 만큼 비슷한 섭생으로 길들여져 표정만 봐도 어떤 감정인지 가늠하여 불편함을 덜어주는 이들이다. 결혼하여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문화가 다른 이들과 교유하며 소통하는 삶을 잇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그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고통은 가중되었다. 며느리·아내·어머니로서 책임을 다하는 길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처럼 높아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형성했다. 세 자녀의 어머니와 곧 저축은행 총재의 위상에 걸맞은 남편을 둔 아내의 역할을 다하려는 노라의 적극적인 모습은 여느 여성과의 차이는 없어 보였다.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미래를 대비하며 사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남편 헬레나 토르발은 필요 이상을 소비한다고 여기는 아내 노라를 ‘작은 종달새·다람쥐’ 등으로 부르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여성은 남편의 허락 없이는 돈 거래가 쉽지 않았는데 노라는 투병 중인 남편을 살리려고 이탈리아에서의 요양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 서명까지 위조해 은행에서 대출받고는 대출금을 갚아 나갔다. 그녀에게 차용증서를 받고 대출금을 내 준 크로그스타드는 직장에서 해고된 일을 원상태로 돌리려 했다. 그는 노라가 자신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비밀을 남편에게 폭로하여서라도 원하는 바를 관철하려는 듯을 강하게 드러냈다.
노라가 남편 몰래 차용증서를 작성한 일을 편지에 담아 토르발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크로그스타드의 행동으로 그녀는 기존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는 행동으로 아버지 말에 순응하며 지냈고 성인으로 아버지 슬하를 떠나서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그의 말에 순응하며 지내기 일쑤였다. 노라는 머무르는 공간을 옮겨왔을 뿐 결혼 전과 후는 달라진 것 없이 경제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의 명에 따르며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생기 있게 호흡하며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혼자 숨을 쉬며 누릴 수 있는 자유까지 빼앗아 한 생명체의 일상은 피폐해져갔다.
노라의 어린 시절 친구인 린데 부인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 부탁한 곳이 크로그스타드가 은행에서 사직을 당한 자리라니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난파당하여 제대로 항해할 수 있는 힘까지 잃은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은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라며 공조할 뜻을 실행으로 옮겼다. 편지함에 넣어 두었던 편지를 확인한 토르발은 노라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경비를 마련한 점을 간과한 채 경박한 여자 때문에 자신의 행복까지 부서지고 말았다며 격노하였다. 지금껏 쌓아온 명성을 훼손한 아내의 부정한 범법행위를 비난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편을 보면서 노라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반문하였을 것이다.
배역에 걸맞게 분장하고 가면을 쓴 뒤 연희하는 가장무도회는 민낯으로 행할 수 없는 일까지 망설임 없이 소화해 일상을 벗어난 행동이 갖는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른 편지 한 통으로 언행을 바꾼 남편은 통찰력이 부족해 올바른 판단을 못했다며 아내의 잘못을 용서해 줄 테니 8년의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지속하자고 요청하지만 노라는 그동안 자신을 갈가리 찢고 부수며 이어왔던 결혼 생활을 청산하려는 의지를 굳혔다. 아내와 어머니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남편의 만류에도 노라는 참 행복을 찾아 나섰다.
아내를 동행하는 반려자로 수평적인 관계로 여기기보다는 ‘나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 나의 것’이라 명명하며 남편에게 종속된 것으로 간주하는 토르발은 표면상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함으로써 거짓 행복을 추구해왔다. 결혼 생활을 잇는 동안 아내의 갈증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 중심으로 가정을 존속하여 왔던 토르발은 노라가 선택한 결정의 원인을 탐색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자립할 경험 없이 살아온 아내가 불안정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남편의 근시안적인 행동은 부부의 관계 회복을 위한 길과는 비껴나 있었다. 남편 보는 앞에서는 이가 상한다는 이유로 마카롱 하나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노라는 남편 몰래 맛보는 과자 하나에도 행복해하던 노라의 선택은 가면을 벗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