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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 7
2. 난파 · 13 3. 『기파 평전』, 미래출판사, 2071, pp. 25-30. · 22 4. 승선 · 26 5. 불청객 · 38 6. 『기파 평전』, 미래출판사, 2071, pp. 33-40. · 46 7. 아누타 · 52 8. 오르카호의 성자 · 66 9. 『기파 평전』, 미래출판사, 2071, pp. 103-107. · 73 10. 기파의 그림자 · 79 11. 『기파 평전』, 미래출판사, 2071, pp. 199-204. · 99 12. 랑데부 · 102 13. 의심 · 127 14. 함께 우주를 감상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 130 15. 진짜 기파 · 133 16. 영상 기록 · 142 17. 교신 · 156 18. 기파와 이언 · 161 19. 기파의 최후 · 184 20. 에필로그 · 195 작가 노트 · 203 심사경위 · 206 심사평 · 209 수상소감 · 222 |
저박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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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속으로 뛰어드는 딸아이를 안으면, 작은 가슴에서 기계 심장의 박동이 들렸다. 딸깍이는 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고 그 박동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서 심장을 교체해주지 않으면 딸아이도 사라질 거라고, 그러니 어서 수술 비용을 마련하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들렸다.
--- p.15 그의 가족이 탄 택시가 해안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것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로 추락한 택시는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완전히 구겨져버렸다. 아내와 연이가 뒷좌석에서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오른발이 잔해 속에 끼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가족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가 좌절하고 있을 때, 차 안으로 무언가 불쑥 비집고 들어왔다. 사고 처리 로봇이었다. --- p.29 충담은 문을 닫고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지금까지 걸어왔던 복도 옆에는 청소부의 방과 같은 홈이 파진 문고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지금까지 복도라고 생각했던 벽들이 모두 사람이 생활하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람 사는 공간을 이런 곳에 만들어놓다니. 이렇게 해놓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건가? --- p.89 그녀는 이따금 골드서클사에서 보았던 광고를 떠올렸다. 특히나 그 문장이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완벽한 인간 승무원이 당신의 생활을 책임집니다.’ 골드서클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완벽한 인간 승무원? 아마 승객들은 내 얼굴을 보면 기겁을 할 테지. 기계 의안 자체는 죄가 없었다. 오히려 죄를 물어야 할 건 그녀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었지만 달리 어찌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차별적인 시선에 맞설 용기도, 의욕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야 생체 안구 이식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차별적인 시선에 편승하는 듯해 마음이 불편하긴 했으나, 그래도 불완전한 인간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안구 이식을 받든 받지 않든 나는 나라고. --- p.111 로봇의 눈빛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마치 타오르는 듯했다. 기계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느낌이었다. 충담은 두려웠다. 로봇은 충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 너머, 결코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충담은 깨달았다. 이 로봇은 단순히 인간을 닮은 게 아니다. 인간 이상의 무언가다. --- p.188 둘은 연이의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휴게실이 멀어짐에 따라 자연히 텔레비전 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아나운서, 리포터, 인터뷰에 응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들리는 목소리는 먼 거리를 뚫고 충담의 귓가에 정확히 박혔다. “…글쎄요, 왜 오지에 가서 아픈 사람들을 고치느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종의 사명처럼 느껴져요. 꼭 누군가 시킨일처럼요…” --- p.201 |
차가운 진실을 대면하는 태도, 다정한 온기를 발견하는 시선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사이, 고뇌의 흔적을 품고 있는 서사 “선과 악의 구분 없이, 오직 최선을 다해 진실을 대면하는 작가의 태도가 믿음직스럽다. 또한 차가운 진실 속에서 다정한 온기를 발견해내는 작가의 시선이, 앞으로 작가가 만들어 갈 세계를 손 모아 기다리게 만든다.” - 김초엽(소설가) 소설가 김초엽이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박해울의 소설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은 전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존재들이다. 인명을 구하기 위해선 인간의 탈을 뒤집어써야 했던 안드로이드와 그런 안드로이드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영웅의 이미지가 유지되도록 안드로이드를 파괴하려는 주인공. 해당 인물들은 자신이 선인지 악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뇌의 과정을 통해 박해울은 좁게는 선과 악, 넓게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마저 허물어뜨린다. 박해울은 이 고뇌의 결과물을 특정 문장이나 대사로 내뱉지 않는다.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 구조와 장면을 통해, 어느 순간 독자가 윤리적 딜레마에 걸리게끔 설계한다. 『기파』에선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데, 이때 주인공들은 당연하게도 인간의 편을 든다. 속사정이 어떻든 간에, 인간의 입장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안드로이드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대할 때, 우리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한계로 작용한다. 이는 비단 인간과 비인간 간의 문제만이 아닌 다수와 소수의 관계에선 항상 등장하는 문제이며, 『기파』는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지독하게 파고든다. 정의가 실패하고 진실이 왜곡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줄 때, 우리는 저자가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더라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소설은 언뜻 보기엔 건조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질 만큼, 대사와 내적 진술이 극히 절제돼 있다. 그러나 서사 속에 담긴 고뇌의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무뚝뚝함은 믿음직스럽게 다가온다. 『기파』는 회유의 손길을 뿌리치며 진실을 향해 밀고 나간다. 그러나 그 끝은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 달리, 정의의 패배로 끝을 맺는다. 그 패배의 순간은, 우리 모두의 선택 때문에 맞이한 것으로 설계해놓은 터라, 지독히도 차갑게 다가온다. 하지만 『기파』의 세계엔 패배의 기록만 남게 되는 건 아니다. 정의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지언정, 결코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는 걸 저자는 마지막에 보여준다. 그렇다면 패배한 정의는 어디에 남아 있는가? 바로 주인공의 가슴속에, 깊숙한 통증으로서 남아 있게 된다. 6년간 정교하게 다듬어진, 현실을 비추는 SF세계관 ‘투명인간’들을 포착하는 SF만의 독특한 리얼리즘 저자 박해울은 사회복지사로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보살피는 틈틈이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 밖에서나 안에서나, 그는 사회적 약자에 시선을 관심을 멈추지 않는다. 하루에 단 1시간이라도 투자하여, 6년간 마이너리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가 바로 『기파』다. 박해울은 오로지 SF에서만 설계 가능한 공간을 가져와,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분명히 드러낸다. 또한 공간은 특수할지언정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 윤리적인 층위로까지 나아간다. 그 대표적인 공간과 상황이 우주크루즈선 ‘오르카호’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파와 주인공 간 추격극이다. ‘완벽한 인간 승무원이 서비스를 책임집니다’라는 슬로건을 자랑스럽게 내건 채 호객하는 이 거대한 우주선은 작중 세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저 슬로건에 숨어 있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란 바로 사이보그다. 생체 장기보다 못한 기계 장기는 가난과 추(醜)의 상징이 된 세계에서, 사이보그는 사이보그화되지 않은 이들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노예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질 낮은 서비스로 치부돼 오르카호에선 채용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 눈가림에 불과했다. 사이보그로 구성된 비공식적 승무원 ‘섀도 크루’가 존재했던 것이다. 승객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되는, “명칭 그대로, 그림자같이 행동해야” 하는 투명 인간들은 벽장처럼 협소한 공간에 숨어 살며 궂은일을 도맡는다. 복도 옆에는 청소부의 방과 같은 홈이 파진 문고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지금까지 복도라고 생했던 벽들이 모두 사람이 생활하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 본문 중에서 오르카호에서 섀도 크루는 인간이라기보다, 작중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우주선을 돌아가게 하는 부품”에 가깝다. 이런 섀도 크루는 우리 사회에도 있다. 강남 빌딩으로 출근하는 청소 및 경비 노동자들. 분명 존재하나 우리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섀도 크루다. 이처럼 박해울이 상상한 근미래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투명 인간들을 보게 만드는 굴절렌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본디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을 융합할 때 탄생한다고들 한다. 신예 작가가 한국 고전문학과 SF를 접목한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박해울은 한발 더 나가, 자신의 오랜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였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담아낸다. [찬기파랑가]의 영웅 기파가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짜 영웅은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패배하고, 잊힌 존재들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박해울의 소설에는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