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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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6쪽 | 512g | 125*210*24mm |
ISBN13 | 9791190090698 |
ISBN10 | 1190090694 |
발행일 | 2022년 0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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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6쪽 | 512g | 125*210*24mm |
ISBN13 | 9791190090698 |
ISBN10 | 1190090694 |
분기점 0 ·007 프롤로그 ·021 막 (1) ·027 막 (2) ·073 막 (3) ·127 분기점 1 ·167 바버샵 (1) ·173 바버샵 (2) ·207 바버샵 (3) ·251 바버샵 (4) ·317 바버샵 (5) ·337 바버샵 (6) ·401 분기점 2 ·411 그리고 우리는 ·417 막 너머, 신에게 ·431 작가노트 ·437 심사평 ·441 |
【 이어서 과학자들을 놀라게 할 발견이 또 한 번 이어졌다.
아브만미르 추진기를 최초로 부착한 ‘보이저 주니어’가 우주 외곽에서 일종의 ‘막’을 발견한 것이다. 그 막은 지구에서부터 약 5광년 떨어진 곳에서 생긴, 만두피 같은 얇은 막이었다. 막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으며, 보이저 주니어가 추진기의 출력을 높여 아무리 뚫고 나가려 해도 막은 늘어만 날뿐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 ··· 중략 ···) 뒤어이 출발한 보이저 주니어 2호부터 60호까지 모두 비슷한 거리에서 막에 의해 우주가 막혀 있다는 사실을 전해 오면서 과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막에 의해 감싸진 채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 (p. 19)
2026년. 심각한 기후 변화로 인해 한국인의 절반이 굶어 죽게 되고 도덕적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식량이 고갈된지 겨우 2주만에 지옥이 펼쳐졌고, 역사는 이를 ‘병오 대기근’이라 기록했다. 그때 대한민국에는 G라는 인물이 구세주처럼 등장하여 혼란스러운 나라 사정을 살피기 시작했고, 인기를 얻어 정권까지 잡은 그는 식량난에 적합한 효율적인 인간을 만든다는 목적의 ‘신인류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들의 유전자는 모두 편집됐고, 시간이 흘러 그는 이 신인류들을 활용해 5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우주선을 보내 ‘막’의 정체를 밝히려고 까지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만 해도 70년이 걸리는 곳. 그러나 지구에서의 삶이, 배고픔이 힘들었던 아이들은 이 프로젝트에 자원하여 새로운 삶을 꿈꾼다.
【 내게는 우주가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 이대로 성인이 된다면,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형처럼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비료를 밭에 날라야 할 게 뻔했다. 나을 리 없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저 목숨만을 부지하기 위해 수십 시간 동안 매일 일하면서 G의 초상화 앞에 물을 떠놓고 살려달라 비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지옥과 진배없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하나였다.
지구를 떠나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 (p. 35)
삶이 고달퍼 지구를 떠난 이들이었지만, 우주선에서의 삶의 모습도 지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장소만 다를 뿐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살아 남기 위해서 다른 이의 것을 빼앗고, 쉽게 다른 이의 위에 올라서기도 하고, 자신만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도저히 견뎌내기 어려운 것들은 신에게 기대어 생각하고. 위태로운 삶은 새로운 곳에서도 여전했다. 어디에도 편안한 곳은 없었다.
막 너머에 도달하는 것이 그들 각자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그곳에 가기까지 생겨난 많은 희생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존재에 가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걸까. ‘1’은 결국 막 너머에서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을까.
조금 더 다듬어지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힘있게 스토리를 끌고 나가며 복잡한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선 좋은 인상을 남겼다. 생존, 인간의 본성, 권력, 신의 존재 등 이 작품은 다양한 주제에 걸친 질문들을 던진다. 흥미로운 스토리 속에서 이러한 고민들에 빠져보고 싶다면, 절망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을 읽어 보길 바란다.
5.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김준녕
하루하루 글 쓴다는 핑계로 비슷비슷한 글을 쓰는 게 지겨웠다. 지겹고 쓰기 싫어서 하루하루 글 쓴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안 썼다. 하지만 써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려고 앉았다.
조금 다른 글, 지금까지 써오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쉬운 건 오독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라도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쓰는 글.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의 서평을 예로 든다면 이 책을 내 마음대로 오독하고 왜곡해서 쓰면 된다. 아, 떠오른다. 어떻게 써야 할지가.
일단 작가의 나이를 본다. 96년생. 아주 좋다. 지금 담론계에서 대히트 치고 있는 세대론적인 분석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밀레니엘 세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작가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 한국은 IMF 사태를 맞게 된다. IMF 사태 이후의 한국은 그 이전과는 다른 세계라는 걸 나는 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향연이 펼쳐지는 시대를 한국인들은 IMF 이후로 살아가게 된다. 작가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태어나서 신자유주의로 숨을 쉬고 살아갔을 것이다. 작가의 10대 초반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덮친다. 역사상 최악의 불황 중 하나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한국 사회에 또다른 충격파로 다가온다. IMF 사태로 시작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은 청소년기를 보낸 삶을 상상해보려 노력한다. 내가 그걸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력의 부족으로 그 삶의 재현은 힘들다. 하지만 작가가 쓴 소설에서 약간의 추측을 해본다.
<막 너머에 신 있다면>은 참혹한 소설이다. 소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걸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온난화를 겪고 몰락한 소설 속 지구는 대기근이 덮친 뒤에 최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실에 더해서 지구인들은 우주 탐사를 통해 태양계를 감싼 막을 알고 있다. 인간들은 막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다. 우주로 더 나아갈 수도 없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몰락해가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독재자 B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주선 무궁화 호를 띄우고 막에 가닿으려고 한다. 마치 그것만이 희망이라는 듯.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고, 굶주림 속에서 괴로워하던 첫 번째 주인공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우주선 승선을 선택한다. 140년이 넘게 걸릴 우주 항해이기에 아이들을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아이로서 나에게 새로운 희망은 우주선 탑승 밖에 없다고 여기며. 나는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부모를 죽인 냉혹한 형섭의 도움을 받아가며 온갖 참혹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주로 나아간다. 우주선에서 형섭이 냉정한 독재자가 되었다가 살해되었음을 알리며 일종의 1부격인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시간이 흐른 뒤에 우주선의 현실을 바탕으로 2부격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새로운 ‘나’가 등장한다. 1부의 주인공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들이 주인공이 된 우주선 무궁화는 철저한 계급제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이다. 이들은 철저한 효율을 추구하며, 비효율적인 건 최선을 다해 처리한다. 인간의 죽은 몸은 비료로서 우주선 속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규율을 지키지 않은 이들은 철저하게 죽음을 내리는 식으로. 나는 우주선의 이발사로 죽을 이들의 머리를 깎고, 죽은 이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스팀기를 작동시키는 인물이다.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성 속에서 살아온 나는 이 삶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우주선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내와 아내가 임신한 배 속 아이에 작은 희망을 거는 나에게 우주선의 현실을 뒤바꾸려는 반란군이 접촉해오고, 동료의 잔혹한 죽음 앞에서 나는 우연히 그들과 함께 반란에 나서서, 막 너머로 향하는 발걸음을 향하게 된다.
위에 적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에 희망이나 이상이 들여설 여지는 거의 없다. 대기근을 겪은 지구에서부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막으로 가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고 이용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고 짓밟고 이용하는 게 일반화된 현실의 모습. 어쩌민 이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삶을 숨쉬듯 살아온 밀레니얼 세대에게 내면화된 삶의 또다른 문학적 형상화가 아닐까. 이것이 오독이고 왜곡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드리운 신자유주의적 삶의 모습들이 이런 식으로 형상화되는 게 일말의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느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이 쓴 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게 진실이기에.
일전에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본 만화 <원피스>와 <진격의 거인>을 쓴 작가는 전혀 다른 삶을 그리고 있다고. <원피스> 속 세계는 꿈과 희망, 동료애, 우정이 넘쳐흐른다. 넘쳐 흐르다 못해 폭발할 정도로. 그에 비해 <원피스>보다 후대에 나온 <진격의 거인>에는 냉혹하고 잔혹한 현실이 담겨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중요한 건, 꿈과 희망, 우정이 아니라 ‘생존’이다. 이 두 만화의 차이는 그 만화가 시작된 일본 삶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이 말을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에도 쓰고 싶다. 이 소설에 담긴 현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을 반영한다고. 물론 소설에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2부의 주인공인 나와 지구인으로 우주선에 건너온 이아의 우정, 나를 돕는 유전자 인간 백팔의 행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절멸 시킬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막으로 향하는 나의 행동과 사고 속에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비정하고 냉정하고 참혹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추구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진실, 그 의미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희망을 걸 수도 있고, 믿음을 가질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진실. 거기에 인간 삶과 문학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포기할 수도, 폭주할 수도 없는 삶 앞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태풍처럼 큰 바람이 함께 동반하면 더욱 그랬다. 천둥과 번개 치는 어느 여름 날, 아버지는 굵은 양초를 꺼내셨다. 전기가 나가자. 거실을 진동 시키는 TV소리가 멈췄다. 번쩍거리는 브라운관 불빛도 멈췄다. 저녁 8시가 되면 아버지가 즐겨보시던 뉴스가 입을 다물자. 더이상 내가 사는 세상에는 살인도, 강도도, 주가 폭락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 안을 가득 매운 것은 가벼운 순풍에도 살랑거리는 양초 위 촛불과 흔들 흔들거니는 그림자 뿐이었다. 얇은 샤시 창을 사이에 두고 몰아치는 태풍 뒤에서 나는 적막을 즐겼다. 낙뢰가 내리치고 하늘이 잠깐 밝아지면, 하나.. 둘... 셋... 하고 천지를 흔드는 천둥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으면 무료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심심한 말을 했다. 밖에는 무시무시한 것들이 위협하고 있어도 얇은 창을 사이에두고 조용히 적막을 즐긴다는 것은 무언가 거대한 보호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이 나를 가로막고 보호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드는 것은 맑은 하늘이 아니라, 하늘이 산산조각나던 지랄같은 날씨였다. 하늘이 와장창 깨지고 굵은 빗방울이 옆으로 몰아치면 조용히 창을 닫고 살랑거리는 촛불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찾을 수 없는 안락하고 평온한 마음은 그런 환경의 반전에 극대화 됐다. 늦은 밤 일부러 공포영화를 찾아본다. 공포영화를 보기 적합한 시간은 잠들기 직전이다. 그 무시무사하던 '컨저링'을 나는 무려 5번이나 봤다. 다만 다른 이유로 그 영화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영화가 공포의 극한이라고 말했지만, 중간정도를 볼 때 쯤, 꼭 골아 떨어지곤 했다. 수차례나 이 영화를 완주하겠다고 다짐했으나 4번을 실패하고 대략 10년이 흘렀지만 '컨저링'이라는 영화는 내게 자장가 같은 역할을 했다는 기억뿐이다. 극한의 공포가 되려 사람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현실과 괴리에 따른 안도 때문이다. 화면 뒷편 이야기는 삶에 실제하지 않는다는 믿음.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라 관전자라는 안도. 이것은 공포를 통해 극한의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감정은 '안정'과 '위기'가 양극으로 나눠진다. '해칠 수 있느냐, 해침을 당하느냐'라는 우주이 설계한 자연법칙에 따라 '먹이사슬'의 중간 지점에서 우린 진화했다. 토끼나 고양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안도감을 느끼고 호랑이나 사자와 함께 있을 때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앞서 말한 자연의 매커니즘 상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고양이의 머리를 쓸어 내리는 일이 인간에게 평온한 감정을 주는 것은 고양이가 자신을 해치지 못하며, 자신은 얼마든 상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신감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현실에서의 안도와 반대로 자신과 관련없는 다른 상황의 관전은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을 좇던 사나운 개를 따돌려 높은 나무 위로 도망갔을 때, 인간은 안도감을 형성한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내려다 본 '토끼'를 봤을 때와 사뭇 다르다. 위협적인 상대에게서 완전히 격리됐다는 안도감은 어린시절 내가 느꼈던 나쁜 날씨의 촛불 같은 존재였다. 김준녕 작가의 '막 너무에 신이 있다면'은 철저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개인적으로 여타 재난 혹은 SF소설이 서술하는 극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진과 테러 등 극단의 상황에서 인간은 되려 침착했고 이성적으로 대처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가장 기아 빈곤상태가 심각한 '차드, 라오스, 동티모르'의 살인 발생률은 세계 평균 보다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배고프면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이것은 극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설정이다. 극이 극단적으로 변하면 변할수록 그것이 실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반대편에서 들기도 한다.
소설은 꽤 염세적이다. 세계관은 충격적일 만큼 폭력적이다. 소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향해 달려간다기 보다, 세계관의 묘사에 더 깊은 신경을 쓴듯 보였다. 잔혹한 공포영화 중, 눈을 가리며 영화관 스크린에 엔딩 크레딧 스탭롤까지 지켜보는 심리라고 할까. 일단 진행된 소설은 불쾌할 정도로 잔혹하지만 속도감있게 진행된다. 작가가 독자의 멱살을 끌고 '휘리릭'하고 이야기를 끌고 다니듯 몰입감있다. 이런 염세적인 세상을 지켜보다가도 문뜩 문뜩, 따뜻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입을 위해 눈을 떼고, 눈 앞에서 재롱을 떠는 아이에게 눈을 마주친다. 몰아치는 태풍 한 가운데 얇은 샤시 창문을 닫고 촛불을 바라보는 심정은 그렇게 전개된다. 2026년 극심한 지구온난화로 전세계가 식량위기를 겪는다는 설정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소설의 배경으로 끌고 들어왔다. 여기를 도망하기 위해 유전 조작된 어린이들을 우주선으로 쏘아 우주 끝에 있는 막에 도달시킨다. 다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더 잔혹한 이야기들은 '도망친 곳에 천국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가 못마땅해 도망치는 대부분의 것들에 '신'은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책을 덮으면 더이상 이야기 진행이 되지 않는 소설처럼, 영상을 꺼버리면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 공포영화처럼 눈을 감아버리면 혹은 바쁘게 돌아가는 부정적인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놓아버리면 사실 모든 것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공포를 즐기는 '관찰자'만 남게 되는 법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는 말이 있다. 공포를 즐기는 방법은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존재임을 인지하는 것이고 그것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실로 안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망' 없이 현재를 담담히 맞이할 수 있게 한다. 끔찍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은 되려 삶을 돌이켜보고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는 관찰자로 만든다. 망해버린 책을 덮으며 '오호. 내용 괜찮네!'라고 한마디하며 디스토피아가 주는 안정감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