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꼰대
평생, 역할로서 자신을 규정 지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개인으로 살아가라는 명령은 감내하기 쉽지 않은 스트레스다. 오랜 기간을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일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서 하루 24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일종의 과거 시스템과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는 현장이다. 나는 달라진 일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남들에겐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이 은퇴한 중년에겐 배워야 할 대상이었다.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다른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여행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 p.015
두고 온 유년의 밤
그리고 어린 왕자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한기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드는 몽골의 밤하늘엔 유년시절에 내가 떠나보낸 별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가슴은 금빛을 좇는 수직적 사고로 가득 채워지고, 어느덧 소년의 심장엔 시 한 줄, 눈물 한 방울 들어설 공간조차 남지 않게 된다. 더 높은 수직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이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라고 규정 짓는다. 자연히 별빛을 사랑하던 마음은 아득히 유배시키고 잊어버린다. 역할만이 나라는 정체성의 전부라 생각하며 사는 동안 내가 쫓아낸 그 별빛은 이곳 몽골 하늘에서 찬연히 빛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몽골은 처음이지? 그러나 난 널 알아. 오래전부터 널 기다렸어”라고 인사를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왜 어른을 위한 동화인지 이보다 쉽게 알려 줄 방법이 있을까?
--- p.039
신이시여
호기심만은
늙지 않게 하소서
신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 중 하나가 감각의 퇴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며 맛을 느끼는 감각도 둔화한다. 세상일을 덜 보고 덜 듣고 덜 맛보며 덤덤히 살아가라고 의도한 신의 계획 같다. 중년의 감각이 젊은이의 그것처럼 예민하다면 세대 간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크지 않을까? 다만 이런 축복과 함께 호기심의 퇴화라는 현상도 함께 주신 것은 신의 실수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신의 헤아림일까? 중년이 되어 호기심까지 스러지면 우리의 일상은 더욱 적막해진다. 세상을 다 아는 체하며 자신을 스스로 옥에 가두는 일은 정말 피해야 한다.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늘 호기심을 갖는 데는 여행만 한 게 없다.
--- p.052
사막에 가본 적이 있나요
사막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자 머릿속에 맴돌던 초극(超克)의 노랫소리는 스러지고, 가슴에서 뭉클한 뜨거움이 올라온다. 누구 자식으로, 누구 남편으로, 누구 아빠로만 살아온 사내.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소임이라고 생각한 삶. 매일 똑같은 날을 행복이라 여긴 날들. 나 자신이 아닌 것들임에도 나라고 여기며 어깨에 지고 온 30여 년의 짐을 원시의 사막 어딘가에 잠깐이나마 무단투기해도 너그러이 받아 줄 것 같은 느낌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살아내느라 황량하고 삭막해진 사내의 휑한 가슴이 모래땅 같아서였을까? 나는 그 동병(同病)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었다. 은퇴를 한다는 것은 이제 자기만의 온기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삶은 역할이 있고 없고를 떠나 지속되어야 하니까.
--- p.075
직원의 출장, 가장의 휴가, 사내의 여행
나 또한 아버지이고 남편이며 샐러리맨이었다. 정체성이 아닌 역할로서 살면서 황폐해진 가슴을 가진 평범한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처음으로 의무와 역할에서 해방되어 떠난 여행지가 몽골이었다. 그동안 돈만 넣으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나오는 자판기 같은 여행을 하고 와서는 다른 세상을 보았노라 자랑하던 사내가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진짜 여행을 한 것이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중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투명한 공기, 시리도록 푸른 하늘, 맑은 호수, 타인에 대한 환대와 사랑, 공감…. 이 목록은 무한하다.
--- p.080
백수도, 혼자도, 패키지는 갈 수 있잖아
수년 전 이곳에 온 내 가족은 어떤 생각을 하며 여행을 했을까? 아빠의 부재에 서운하다고 했을 아이들, 그 아이들을 챙기느라 온전히 여행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아내. 참 미안한 이름들이다. 그해 가을, 가족 여행을 못 떠나게 발목을 잡은 회사 일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의 추억은 단순한 기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는 기억이다. 그 위안과 용기의 창고를 많이 채우고 있어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게 직장생활이 주는 억압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 p.093
내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
소비활동으로서 하는 사치는 그 순간엔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허허로움이 들어찬다. 반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호사로운 경험은 시간을 두고도 고양된 자존감이 조금씩 배어 나오게 한다. 이런 순간이 삶을 바꾸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과 존재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 준다. 특히 나무처럼 묵묵히 삶을 견뎌 내기만 한 중년 세대가 여행을 떠날 때는 작은 사치를 누릴 시간과 장소, 비용을 안배해 그런 나를 사랑하고 위로할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것이 강 위의 오래된 목선 위에서 마시는 와인 한잔에 불과하든, 또는 지금처럼 호젓한 어느 미술관의 뜰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이든. 자존의 크기는 지출의 규모나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아닌, 마음에 새겨진 밀도에 의해 결정된다.
--- p.180
즐기려는 의지
예상치 못한 일과 만났을 때 순간적 판단과 기지로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대부분 사람이 다수의 선택과 비슷한 행동을 하여 동질화되려고 애쓰며 산다. 튀지 않아야 오래 생존한다는 사실을 본능으로 안다. 그러나 재미와 즐거움만을 추구해도 괜찮은 자유가 허용된 지금은 남다른 선택을 해 나 자신을 차별화하려고 한다. 여럿 중에 하나(one of them)가 되기보다는 유일한 하나(Only one)가 되고 싶은 욕망을 맘껏 끄집어내어 즐길 의지와 지혜도 중년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 p.201
길 위의 사람
‘지금 해야 하는 급한 일을 하기보다는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 그 당연한 것을 왜 궁금해 하느냐는 그들의 표정 앞에 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 p.261
막다른 골목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또 다른 길이 연결된다. 막다른 곳인 듯하다가 다시 길이 열리고, 사람이 북적이는 골목 다음에 갑자기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골목이 나오기도 한다. 전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순간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절정의 순간도 항상 끝이 있고 또 시작이 있다.
---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