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나는 20대에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서른 살이 되면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어떻게 살아야 좋은 걸까? 서른이 되면 여행을 떠나, 다양한 문화, 사람을 만나며 생각해보고 싶었다. 서른이 된 이제 비로소 세계여행을 떠날 용기가 생겼다. 다른 여행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의 여행은 롱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ㆍ다양한 삶을 만나게 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엔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받은 가장 곤란한 질문은 “어디가 가장 좋았어?”였다. 여행지마다 색다르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가득했기에.
ㆍ한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즐거운 방법은 보드로 크루징하는 것이었다. 트램이나, 지하철, 버스 등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도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방법, 도시와 함께 호흡하는 여행, 이것이 바로 나에게 맞는 여행의 방법이었다.
ㆍ내겐 관광뿐 아니라 현지인들을 이해하는 것. 그들과 그들 삶의 방식으로 함께 즐겨보는 것.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더 즐거울 뿐이다. 여행지가 단순히 여행지가 아니라, 현지 친구들과 연결이 되었을 때, 그곳이 어디건 최고의 여행지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우쳤다.
ㆍ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니. 이러한 질문들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 엄마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영아, 엄마가 너 대신 살아줄 수 없어.”
ㆍ화려한 기술이 아니더라도 자세히, 오래, 깊이 하는 것에도 즐거움은 있었다. 나는 남들보다 ‘잘 타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스스로 자부할 만큼 보드를 ‘잘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ㆍ처음에 일이 꼬이긴 했지만, 또 다른 즐거움이 생겼으니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걸 몸소 체험한 여행이었다. 여행뿐 아니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을 찾는 재미가 있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망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도 결국에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ㆍ유럽의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양옆으론 푸른 잔디밭이 펼쳐지고, 끝을 알 수 없는 아스팔트가 이어졌다. 보드를 타고 끝까지 간다면 대체 얼마나 걸릴까? 끝이 있기는 한 걸까?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자전거를 타고, 보드를 타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연과 드론이 날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여유롭게 흐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보드를 타다가, 잔디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시며 때론 붉게, 때론 핑크빛으로, 때론 오렌지색으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ㆍ세바스찬은 보드 한 대라도 더 많이 만들어 팔기 위해 애쓰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희생하기보다 10분, 한 시간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일을 대충 한다는 말이 아니다. 레기나와 베로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더 집중해서 일을 하고, 가족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전보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어도, 결과물은 더 좋았다. 이것이 진정한 아버지의 힘이었다.
ㆍ열정이 생기는 가장 쉬운 방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열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내가 열정적이 되어 다른 이들을 열정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ㆍ“공짜로 준다고, 스폰 받는 브랜드가 많아진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내가 재밌고, 내가 마음에 드는 게 1번이지. 남들 눈에 봤을 때 저 사람 어디서 스폰 받는 데가 1순위가 된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보드 타는 거야? 난 날 위해 타고 싶다고.”
ㆍ“솔직히, 꿈이 있든 없든 뭐가 중요해? 지금 즐겁게 사는 게 최고야.”
ㆍ막연한 미래 때문에 고민이 심할 때는, 확실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백배 나았다. 먼 미래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과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나아가야 하는 길을 밝혀주는 것 같다.
ㆍ난 일상을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여행을 더 잘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인생은 결국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진다.
ㆍ“왜 너의 일생 전부를 너한테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쏟는 거지? 모든 파도를 잡으려 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너의 파도를 잡아.”
ㆍ내 인생 목표 중 하나가 할배 롱보더가 되는 것이다. 백발을 휘날리며 여전히 롱보드 위에서 바람 맞으며 스텝을 밟고 싶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롱보드를 즐기고 싶다.
ㆍ내게 용기란 두려움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을 향해 나아가고 극복하는 모습이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있는 두려움을 찾는 것, 그것이 용기의 시작이다. 두려움을 모르는데, 어찌 용기가 있을 수 있을까? 그건 만용일지도 모른다.
ㆍ아직 인생을 잘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세상이 내게 배우도록 강요하는 게 하나 있다. 세상은 내게 작은 행복에 감탄하고, 기뻐하고, 크게 받아들이라 한다. 그것을 통해 작고 큰 불행과 고통을 견뎌내게 하는 것이다. 치사하고 짜증나지만 익숙해졌다 싶은 아픔 말고 또 다른 종류의 아픔이 내게 찾아온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건 때때로 배고픈 승냥이 떼처럼 달려든다. 이런 아픔은 처음이지 않냐고 덤빈다. 그럴 때마다 약 올라 미치겠지만, 속으로 다짐하고 만다. 절대로 안 질 거야. 그리고 작고, 소중한 내 행복들을 깊이 아껴줄 거야.
ㆍ대회 때마다 내 차례가 시작되기 전에 하는 생각이 있다. 실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거 최대한 잘해야지! 가 아니다. 이번엔 정말 잘 타서 좋은 성적 거둬야지! 도 아니다. 단지 내가 타는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이 와! 쟨 진짜 롱보드를 좋아하는구나, 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ㆍ“난 행복해. 사실 내게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야. 돈을 좇지도 않아. 날 사랑하는 엄마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클라우디아가 있지. 비록 돈을 많이 벌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서핑으로 일을 하고, 보드를 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시간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 죽을 때까지 내 사랑을 퍼트리며 사는 거야. 이게 가장 중요해.”
ㆍ1등을 하건, 2등을 하건, 3등을 하건, 혹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건 결과만큼의 순서대로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1등이라는 단어처럼 행복도 1등으로 높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행복은 이루고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었다.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였다.
ㆍ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하는 일은 다르지만, 자신의 삶을 알차게 살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다 다르기에, 살아가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내게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