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를 생명체로 볼 때, 거기에는 독특한 생(生)과 사(死)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바이러스 연구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증식하고, 어떻게 병원성 세포 속에서 활동하며, 그 구조의 형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것은 바이러스의 ‘생(生)’의 측면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살펴보면 바이러스는 생과 사의 경계를 가볍게 초월한 존재로 보인다.
--- 「제1장」 중에서
19세기 후반 광학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병원체(=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에는 세균학의 기반 기술을 적용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일단 동물에게 병을 일으키는 힘이나 세균을 용해하는 힘을 바이러스 기준으로 삼아 연구를 해야 했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 자체가 아닌, 바이러스가 남긴 흔적을 살펴 바이러스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 「제2장」 중에서
바이러스는 동물, 식물, 세균에서 분리할 수 있다. 그중 동물바이러스와 식물바이러스는 대부분 질병의 원인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바이러스를 세균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기원이 화제가 되진 않았다.
--- 「제3장」 중에서
사람들은 생물을 관찰할 때 육안에서 현미경으로 형태를 관찰하고, 나중에는 리보솜의 유전자를 해석해서 분류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자 생물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식물과 동물은 생명의 계통수 중 작은 가지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나무의 전 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 「제4장」 중에서
인간내재성레트로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약 3천만~4천만 년 전에 영장류 사이에서 수평 감염을 일으킨 레트로바이러스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이 바이러스가 생식 계열의 세포(정자 또는 난자)에 감염된 채 게놈 에 삽입되어 숙주의 유전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부모에서 자식으로 수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수정란에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성장한 개체의 모든 세포에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 정보가 퍼져서 자손에게도 이어지는 것이다. 인간내재성레트로바이러스는 오랫동안 유전자에 다양한 변이가 일어나 복제 능력을 상실해, 지금은 인간의 DNA에 잠들어 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활동한다. 최근 이것들이 단순한 바이러스 화석이 아닌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 「제5장」 중에서
벌은 알려진 종만으로도 20만 종이 넘고, 곤충」 중에서 가장 종류가 많다. 벌의 화석을 보면 가장 오래된 기생벌은 1억 4천만 년 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맵시벌은 벌」 중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2만 4 천 종 이상으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6만~10만 종이 서식한다고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기생벌인 고치벌은 기록으로는 1만 7천 종이지만, 실제로는 3만~5만 종이 서식한다고 추정한다.
이 공생 관계에는 바이러스가 한몫한다. 먼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기생벌의 비대한 수란관에서 바이러스 입자를 발견했다. 1981년에는 암벌의 난소에 바이러스의 DNA가 흩어져 있는 것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1984년에 폴리드나바이러스라고 명명 했다. 이 이름은 바이러스의 DNA가 반지 모양(환형)이고 수많은 분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유래한다.
--- 「제6장」 중에서
바이러스는 열에 약해서 60도 이상에서는 단 몇 초 만에 사멸한다. 이것은 바이러스 소독 등 바이러스 감염 방지 대책에서 특히 중요한 특징이 된다. 또 바이러스는 세균 여과기를 통과하는 미생물로 발견 됐기 때문에 세균보다 훨씬 작은 존재로만 여겨졌다. 이 특징은 오랫동안 바이러스를 식별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사실상 바이러스를 정의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열탕에서 증식하는 고세균을 발견했다. 21세기 가 되자 세균 여과기에서 포착할 수 있는 거대 바이러스를 연달아 발견했다. 기존 상식을 뒤집은 이 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학이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과제로 등장했다.
--- 「제7장」 중에서
20세기 후반까지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20세기 육상 생물을 숙주로 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바다에 사는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수산업 확립을 위해 양식어에 발생하는 질병(어병)의 원인이 되 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정도였다. 광대한 해양에서 바이러스가 증식 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해수나 담수와 같은 수권 환경에 광대하고 지극히 흥미로운 바이러스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해수나 호수에 존재하는 이 바이러스들이 수권 생태계, 나아가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시사된다.
--- 「제8장」 중에서
천연두와 홍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준 감염증이다. 천연두는 약 30퍼센트라는 높은 치사율을 보인 질병이지만, 근절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천연두 근절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1980년, 세 계 보건 기구는 천연두가 근절되었음을 선언했다.
홍역바이러스는 세계 보건 기구의 근절 프로젝트에 의해 많은 선진국에서 배제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근절된 것은 아니다. 홍역은 바이러스가 배제된 나라에서도 드물게 발생하는데, 그것은 홍역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두 바이러스 감염증에 더해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 감염증으로는 우역바이러스가 있다.
--- 「제9장」 중에서
많은 바이러스는 외부에서 들어와 숙주를 감염시키고 짧은 시간에 증식해 병을 일으킨다. 그리고 대부분은 결국 체외로 쫓겨난다. 체외에 나온 바이러스는 거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중 일부만 다음 숙주를 다시 감염시킨다. 반면 우리 몸속에 조용히 감염해서 그대로 잠복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이 바이러스는 때때로 체내에서 증식해 병을 일으키지만, 보통은 아무 증상 없이 공존한다. 최근 이런 바이러스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부분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일부는 잠복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암 등의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반대로 인간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다.
--- 「제10장」 중에서
20세기 후반,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양돈장과 양계장을 효율화했다. 그랬더니 엄청난 크기의 과밀한 동물 사회가 탄생했다. 이는 야생 환경과 동떨어진 상태다. 돼지 와 닭의 바이러스는 이런 심한 환경 변화에 노출된 채 그 상태에 적응 해 정교한 생존 전략을 짜서 새로운 증식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 반려 동물인 개도 인간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 또 의학이 발달하면서 자연계라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여러 종류의 원숭이가 함께 사육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병원체 바이러스를 생산하는 곳이 되었다.
--- 「제11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