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순간에는 언제나 알게 모르게 나를 이끌어준 책들이 있었다. 변화의 열쇠는 문장이라는 모습으로 표지 사이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무심코 펼쳐든 페이지를 뚫고 튀어나와 꽁꽁 잠겨 있던 마음의 자물쇠를 열어젖혔다. 어떤 열쇠는 만나자마자 엄청난 충격과 함께 인생을 뒤바꿀 결심을 가져왔고, 어떤 열쇠는 정작 마 주쳤을 때는 별 느낌 없이 지나쳤지만 어느 힘든 순간에 갑자기 떠올라 무너지던 나를 붙잡아주었다. (…) 말의 열쇠가 열어주는 문들을 하나씩 열고 나갈 때마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 pp.6-7 「프롤로그_그 말 덕분에 나를 만났다」 중에서
기우의 화신인 나는 여전히 매 걸음 온갖 계획에 의지해서 바들거리며 나아간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불확실 성 없이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경험칙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상태다. 언젠가는 ‘일단 가보자’가 주는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해봤으니 두 번 못 할 건 없지 않느냐는 생각까지는 종종 할 수 있게 되었다.
--- pp.40-41 「1장_꼭 이 길이 아니어도 괜찮아 : “일단 가보자.”」 중에서
인생이 축구라면 나는 전반전에만 자살골을 열 번쯤 기록한 공격수다. 때로는 남의 말을 안 들어서, 때로는 남의 말을 너무 들어서, 틀린 선택지를 무던히도 많이 집어 들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는 사이 어차피 내 팔자에 직선 고속도로는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U턴에 U턴을 거듭하더라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태평 함도 조금쯤은 생겼다.
--- p.73 「1장_꼭 이 길이 아니어도 괜찮아 :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뒤로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반 발짝 물러 설 뿐이다.”」 중에서
만약 ‘한국인의 행복과 성공 비결’이라는 기사 제목에 단어 두 개를 추가한다면 나는 100퍼센트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남의) 행복과 (나의) 성공 비결’. 하지만 그런 비결은 누구에게 권하고 싶지도, 스스로 실천하 고 싶지도 않다.
요즘 나는 지나친 눈치를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배려는 하되 비굴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기분만큼이나 내 기분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공에서 그만큼 멀어지는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남의) 행복 이 아닌 (나의) 행복을 찾고 싶다. 결국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 p.85 「2장_미운사람은 미운 사람대로 :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이전에,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 야 해.”」 중에서
“기분 나쁘지 말라”는 명령 자체가 타인에 대한 무례요, 침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여느 때처 럼 비판을 빙자한 악플을 읽으며 침울해 있는데, 문득 이 상황 자체가 우습게 느껴졌다. 아니, 내 기분을 왜 당 신이 결정하는 건데? 기분이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시답잖은 변명을 할 게 아니라 아예 말을 말아야지! 나는 큰맘 먹고 그동안 내내 눈에 밟혔던 외모 지적 댓글을 지워버렸다. 오래도록 방치해서 더러워진 방을 마음 먹고 청소한 듯한 개운함을 느끼면서. 내게 유감스러운 일을 결정할 권리, 그것은 분명 내게 있었다.
--- p.87 「2장_미운사람은 미운 사람대로 : “유감스럽게 생각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네.”」 중에서
‘아깝게 놓친 것들을 생각하며 땅을 칠 시간에 맛있는 치킨이나 사 먹을걸 그랬어.’ 새삼 이런 반성을 하게 된 것은 4등짜리 로또 덕에 친구들과 나눠 먹었던 치맥이 너무나 각별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로또를 살 날이 올 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에는 끊임없이 운명의 복권을 긁어야 할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혹시 한 끗 차이로 큰 기회를 놓치더라도, 무작정 한탄만 하기보단 최소한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려는 노력이라도 해보 자.’ 새삼 이런 간지러운 다짐을 하게 된 것 역시 그날의 치킨 덕분이었다. 그만큼 맛있었다. 틀린 숫자보다 맞 힌 숫자에 집중하며 먹었던 그 치킨은.
--- p.143 「3장_불안해도 오늘을 산다는 것 :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갖고 있는 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할 때야.”」 중에서
돌아보면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앞일에 대한 두려움이 그 모습 그대로 실현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내 삶에도 이따금씩 재난이 들이닥치지만, 그 양상은 언제나 내가 예상했던 것과 한참 달랐다. 무인도에 조난당해 상상도 못한 불운으로 죽을 뻔하고, 동시에 상상도 못한 행운으로 살아남았던 로빈슨 크루소가 말했듯, 진짜 나 쁜 것은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잘 알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무언가에 바들거리며 힌트조차 얻을 수 없는 앞일을 걱정하고 있다.
--- p.169 「3장_불안해도 오늘을 산다는 것 : “위험을 향한 두려움은 위험 그 자체보다 천 배쯤 위험하다.”」 중에서
누구는 나를 평범한 학교 친구로, 누구는 특이한 직장 동료로 기억한다. 동생 또한 누군가에게는 활기 넘치는 소 녀로, 누군가에게는 건실한 사회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오랜 시간 함께한 우리는 서로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생은 언제나 정해진 규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학기 중에는 수업 준비로 날밤을 새고, 방학이 되면 훌쩍 한 달짜리 배낭여행을 떠나 는 일상은 둘 다 지극히 그녀다운 모습이다. 나는 소심하고 정적인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늘 호기심 많은 몽상가 기질을 품고 있었다. 글과 영상을 통해 꿈꾸고 상상했던 것들을 한껏 풀어놓고, 노트북을 덮으면 다시 조용한 집 순이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내 삶의 양면은 모두 진실로 나다운 모습이다.
--- p.209 「4장_내가 내가 되는 순간 :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자아로 이뤄진 존재다.”」 중에서
가끔씩 나를 둘러싼 길고 복잡한 숫자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몇 억이니, 몇 조니 하는 돈이 얼마나 큰지도 잘 모르겠고, 평균수명을 올리다 못해 어느덧 ‘영생’을 거론하는 인간의 욕심이 때로는 징그럽다. 그런 시기에 숫자를 통해 마주한, 고대인들의 심플한 세계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꼭 고대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20세기를 살았던 문학계의 이단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인간의 삶이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 어진다고 못 박았으니까. 그는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영원히 알게 되는 순간이 우리 삶을 이루는 전부라고 말 했다. 그에게 삶이란 0 아니면 1일 뿐이다. 100억을 모았든, 200년을 살았든,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그 사람의 인생 은 0이다. 하지만 잔고가 빈약하고 나이가 모자라도 자아를 깨달은 사람의 삶은 꽉 채워진 1이다. 나는 아직 0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1의 삶에 닿고 싶다. 꽉 채워진 1을 살다가 죽는 것이 지금 내 인생의 목표이다.
--- p.235 「4장_내가 내가 되는 순간 : “아무리 길고 복잡한 운명이라 해도 모든 삶은 사실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진 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