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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연금술에서 시민과학까지 사철제본
홍성욱박한나 그림
김영사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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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top10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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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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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실험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1부 실험실의 시작
1장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2장 프랜시스 베이컨과 실험의 등장
3장 뉴턴과 갈릴레오의 실험실

2부 실험으로의 전환
4장 실험과 실험실의 철학
5장 실험실의 인류학자
6장 내게 실험실을 달라, 그러면…

3부 열린 실험실에서 닫힌 실험실로
7장 로버트 보일의 열린 실험실
8장 누가 실험실에 들어오고, 누가 나가는가?
9장 실험실이 작아지다

4부 실험실이 만든 새로운 존재들
10장 흰 가운을 입은 미친 과학자
11장 실험실의 살아 있는 생명체들
12장 테크노사이언스 실험실의 이상한 존재들

5부 다양한 실험실
13장 물리학 실험실과 생물학 실험실의 탄생
14장 멋진 실험실 대 창의적인 실험실
15장 필드의 반격

지은이의 말
그린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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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2

물리학을 전공하던 학부생 시절 물리 공부는 안 하고 마르크스, J. D. 버날, T. S. 쿤의 저서를 잡다하게 읽다가 과학사를 시작했다. 과학의 역사 자체에 흥미가 있었다기보다는, 과학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어떻게 더 괜찮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왜 자연은 수학을 통해 이해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려 했다. 돌이켜보면 첫 번째 문제는 정책의 문제고 두 번째는 철학의 문제인데, 정작 정책과 철학은 입문하지도 못했다. 그 뒤로 흥미로운 문제를 좇아 공부하다 보니 관심의 초점이 과학사에서 기술사로, 과학기술사에서 Science, Technology and Soci
물리학을 전공하던 학부생 시절 물리 공부는 안 하고 마르크스, J. D. 버날, T. S. 쿤의 저서를 잡다하게 읽다가 과학사를 시작했다. 과학의 역사 자체에 흥미가 있었다기보다는, 과학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어떻게 더 괜찮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왜 자연은 수학을 통해 이해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려 했다. 돌이켜보면 첫 번째 문제는 정책의 문제고 두 번째는 철학의 문제인데, 정작 정책과 철학은 입문하지도 못했다. 그 뒤로 흥미로운 문제를 좇아 공부하다 보니 관심의 초점이 과학사에서 기술사로, 과학기술사에서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STS1)로, STS1에서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STS2)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 이후의 포스트휴먼과 휴머니즘 이후의 포스트휴머니즘에 매력을 느끼고 포스트휴먼 시대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조교수를 거쳐 종신교수가 되었고, 이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강의와 연구를 수행했다. 2015년에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과학기술학 연계전공]을 개설해서 첫 주임교수를 맡았고, 2022년 신설된 과학학과의 초대 학과장을 역임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과학커뮤니케이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논문과 책을 집필했다. 저서로는 『실험실의 진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융합이란 무엇인가』, 『슈퍼휴머니티』, 『21세기 교양, 과학기술과 사회』 등이 있다. 함께 옮긴 책으로는 『판도라의 희망』, 『과학혁명의 구조』 등이 있다.

홍성욱의 다른 상품

그림박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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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내고 독일에서 국제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 재학 중이며, 과학기술학 연계전공을 하면서 과학사와 STS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420g | 148*205*18mm
ISBN13
9788934992615

책 속으로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을 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과학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개념, 이론, 도구들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합쳐지고, 그중 어떤 것들은 다시 떨어져 나가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진화에서 특정한 종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를 알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과학적 발견은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말도 있다.
--- p.13

연금술사로서의 뉴턴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뉴턴의 전기를 쓴 후대 물리학자들은 아예 이 부분을 빼버리거나 뉴턴이 몰두했던 것은 연금술이 아니라 화학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뉴턴의 공책에는 ‘카두세우스’, ‘태양을 먹는 초록 사자’ 같은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초록 사자는 연금술사들에게 황산을 의미했다. 태양이나 뱀을 먹는 초록 사자는 황산을 이용해서 금속의 불순물을 제거함으로써 금을 만드는 과정, 즉 철학자의 돌을 얻는 과정을 상징한다. 실제로 뉴턴은 저급한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비법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뉴턴이 우리가 배우는 화학 실험만 수행했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 p.44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과학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과학자의 실험에 대해서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제 과학자의 80~90퍼센트가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있는데, 과학에 대한 메타적인 이해를 한다는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학자들은 실험보다 이론만을 분석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다.
--- p.67

파스퇴르가 의사가 아니라는 점 말고도 이 결정은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 우선 이들을 문 개가 광견병에 걸렸다는 증거가 없었다. 병에 걸린 개가 아니라면 멀쩡한 아이들에게 효능이나 부작용을 모르는 백신을 주사한 셈이다. 반대로 광견병에 걸린 개라면 발병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백신에 부작용이 있다면 상태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이 환자들에게는 문제가 없었고, 파스퇴르는 과학아카데미에서 광견병 백신이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공표했다.
--- p.99~100

근대 실험과학의 핵심은 직접 보지 않고 논문으로만 읽은 실험을 신뢰할 수 있게 보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과학자들은 자신이 젠틀맨 같은 신사의 미덕을 지닌 사람임을 강조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믿을 만한 젠틀맨들이 보는 앞에서 실험을 수행하고, 시시콜콜한 세부사항과 실패한 실험까지 모두 보고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 p.114

지금 화학 키트에는 아이들이 손으로 만져도, 심지어 먹어도 위험하지 않은 물질들만 담는다. 실험을 하다가 펑 터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지금도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피가 나고, 축구를 하다가 팔이 부러지기도 하지만, 더는 위험한 실험실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 이런 ‘안전’에의 집착이 미래의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 p.144

전파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좀 기묘하게 들린다. 전파는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파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외계인이 1850년에 지구를 살펴봤다면, 전파를 거의 관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무선전신도, 라디오도, 리모컨이나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178

이것이 테크노사이언스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테크노사이언스는 잘 확립된 학문의 경계 속에 안주하지 않고 경계를 가로지른다. 심지어 설명을 충분히 못 해도 새로운 현상을 만들고, 이를 실험실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응용의 니치niche를 찾는다. 이 응용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낳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난제가 튀어나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새로운 연구 영역이 생겨난다.
--- p.189

화학,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토목공학, 기계공학, 전기공학의 실험실은 대학을 수도원에서 공장으로 바꾸었다. 대학은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웅웅 소리를 내는 기계가 바삐 돌아가고 화학약품의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는, 진짜 공장 비슷한 공간이 된 것이다.
--- p.206

남극의 오두막이라는 필드에서 수개월 동안 연구자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수행한 이 영양학, 생리학 실험은 과학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실험은 과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과학사가들도 주목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는 대신, 테라 노바 탐험에 관한 여행기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 과학계의 관심 대상이 되기 힘들었다. 또 이 연구가 테라 노바 탐험의 가장 중요한 목표도 아니었다. 테라 노바 탐험에서 사람들이 가장 기대했던 것은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의 알이었다.
--- p.228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는 의미의 ‘리빙랩Living Lab’은 이런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실 공간이다. 리빙랩은 삶의 터전인 필드와 실험실의 하이브리드 공간을 만들어서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시도다. 그 속에서 연구자는 시민이 되고, 시민은 연구자가 된다.

--- p.233

출판사 리뷰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은 물론, 실험실을 폭탄 머리 미친 과학자가 밤새우는 뭔가 신비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분, 교과서의 메마른 이론으로 과학에 흥미를 잃어버린 분들께 권하고 싶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_김빛내리(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기초과학연구원 RNA 연구단장)

호기심과 열정, 경쟁심과 연대감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
역사를 바꾸는 조용하고도 치열한 혁명의 현장, 실험실!


과학지식이 태어나는 장소 ‘실험실’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최초의 책. 우리의 일상은 실험실에서 태어난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코로나19와 부족하나마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진단키트와 마스크 필터, GPS, 날마다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합성섬유와 유전자변형 식품, 휴대폰,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항생제와 각종 치료제, 줄기세포, 스마트카, 인공장기까지. 우리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의 고향은 실험실이다. 과학기술 연구의 8할은 실험이고 실험의 8할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실험실은 필수적이며 의학, 농학, 수의학, 약학, 간호학, 보건학 연구도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험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른다. 우리가 배우는 과학지식은 대개 이미 만들어진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기술학자 홍성욱 교수가 나섰다. 실험실에 대한 저자의 오랜 관심과 연구가 그의 수업을 들었던 박한나 학생의 그림을 만나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연금술사의 부엌에서 최근 시민과학의 리빙랩까지 두루 돌아보며, 그동안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과학지식을 생생하고 사실적인 그림과 함께 맥락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철학자의 돌을 구하던 연금술사의 부엌에서
시민은 과학자가 되고, 과학자는 시민이 되는 리빙랩까지
온갖 과학지식이 태어나는 장소, 그 시끌벅적한 실험실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이 책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에서 다루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연금술사의 부엌에서 찾을 수 있는 실험실의 기원, 자연을 측정 및 통제 가능한 형태로 변형하고 길들이는 실험실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 알아본다. 근대 화학자들은 ‘철학자의 돌’을 구하던 연금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연금술에서 실험실이라는 공간과 ‘실험실’이라는 이름을 화학에 들여왔다.(1장) 프랜시스 베이컨은 실험을 강조하고, 실험에 대한 자신의 이상이 담긴 가상의 공간 ‘솔로몬의 집’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했으면서도 왜 ‘실험실’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을까?(2장) 이어서 뉴턴이 프리즘을 이용해 실험했던 서재나 갈릴레오가 경사면 실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락방을 ‘실험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더불어 연금술사로서의 뉴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여전히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는 뉴턴의 실험실은 어디에 있었는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3장)

2부에서는 ‘수학’과 ‘실험’을 통해 일어난 근대 과학혁명에서 실험실이 차지하는 위상과 실험실에 들어온 '통제된 자연'이 품고 있는 철학적, 인류학적, 정치학적 의미를 살펴본다. 실제 과학자의 80~90퍼센트가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있는데, 과학을 메타적으로 이해한다는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과학사회학자들은 실험보다 이론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역설적인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경향이 1980년대 전후로 달라지게 된다. 특히 5장과 6장은 ‘실험실’이라는 공간에 주목한 브뤼노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과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실험실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만들어진 과학ready-made science’이 아닌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science-in-the-making’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3부에서는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일어났던 변화를 살펴본다. 비밀스러운 연금술과의 차이를 강조하며 목격자들이 보는 앞에서 실험을 수행하고, 시시콜콜한 세부사항과 실패한 실험까지 모두 보고하여 공신력을 얻었던 실험과학은, 실험의 목격자들을 점차 배제하며 외부 사회에 문을 닫게 된다. 이렇게 실험실에서 배제된 이들 중에는 조수, 여성, 신사들도 포함된다. 또한 집에다 실험실을 차려놓고 실험을 하던 17세기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국가나 대학에서 지원하는 실험실, 대중 강연을 위한 실험실, 아이들을 위한 실험 키트 판매 등 실험실의 전문화와 대중화가 맞물려 다층적 변화가 일어난다.

4부에서는 실험실과 관련된 다양한 존재들, 인간과 비인간을 살펴본다. 여기에는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와 수많은 실험동물, 실험실이 생기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파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과학자’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흰 가운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10장) 실험실이 만들어낸 새로운 존재에는 초파리와 쥐 같은 모델생물처럼 생명체도 있고,(11장) 전파처럼 자연적으로도 존재하지만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전파를 만들기 전에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비생명체도 있다.(12장) 실험실은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현상과 물질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5부에서는 다양한 실험실의 모습을 살펴본다. 19세기 초반까지도 큰 틀에서 중세 대학을 벗어나지 못했던 대학에 실험실이 정착되면서, 대학은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웅웅 소리를 내는 기계가 돌아가고 화학약품의 냄새가 진동하는 공장 비슷한 공간이 되었다.(13장) 근사하고 멋진 연구소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과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저자는 2004년에 완공된 MIT의 ‘레이 앤드 마리아 스테이타 센터’ 건물을 예로 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이 건물은 마치 ‘술 취한 로봇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는’ 듯한 모습으로 MIT의 명물이 되었다. 이어서 저자는 대학 캠퍼스처럼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대지에 지은 멋진 연구소들에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성과가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지적하며, 지금의 ‘스테이타 센터’ 자리에 있었던 MIT의 20동 건물을 소개한다. 낡은 창고 같은 이 건물에는 전자공학 실험실, 핵물리 실험실이 있었으며, 나중에는 보스 스피커를 만든 음향학 실험실, 촘스키가 재직한 언어학과, 중력파 간섭계를 만든 LIGO 연구팀, 고속 카메라 연구팀 등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계속했다. 중요한 것은 건축가의 명성이나 멋진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어떻게 만나고 교류하느냐인 것이다.(14장) 필드는 실험실 이전 단계인 ‘프리-랩pre-lab’이거나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를 적용해보는 ‘포스트-랩post-lab’일 뿐일까? 실험실과 필드는 어떤 관계일까?(15장) 실험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뛰어난 구성력으로 탄생한
생생하고 사실적인 그림과 함께하는 실험실 여행


『실험실의 진화』에서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수록된 그림이다. 디지털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종이와 펜만으로 그린 흑백의 세밀한 그림들은 독특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린이 박한나는 뉴턴과 갈릴레오의 방에서 바라보는 창문 밖 풍경을 그리기 위해 현재 박물관이 된 뉴턴의 집에 방문했던 관광객들의 리뷰 사진들을 조합하고, 갈릴레오가 살던 집 주변 거리를 구글 지도로 탐색했다. 또한 실제로 프랑스의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 해양생물들을 그리기 위해 세계 어류 도감과 프랑스 해양생물 보호 사이트, 심지어 프랑스 낚시꾼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직접 생물 목록을 작성하고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을 했다. 그렇다고 고증에만 충실한 그림들은 아니다. 벨 연구소의 ‘무한한 복도’를 나타내기 위해 네 페이지 연속으로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생화학자 로제 기유맹의 노벨상 수상 업적인 TRF(Thyrotropin Releasing Factor. 갑상선자극호르몬 방출 인자)는 ‘발견’된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라는 브뤼노 라투르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해당 논문을 잘게 잘라 붙이고, 파스퇴르가 푸이르포르의 한 농장에서 수행한 탄저병 백신 실험은 실험실에서 이미 검증된 백신의 효능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시연이었다는 것을, 연극 무대의 전면과 뒤편로 표현한다. 이렇게 철저한 자료 조사와 뛰어난 구성력이 바탕이 된 탄탄한 그림들은, 책의 곳곳에서 때로는 텍스트를 보완하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보는 재미를 선사하며 독자를 실험실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추천평

연금술사의 부엌에서 현대의 대형연구소까지 실험실의 많은 것이 변했지만, 호기심과 열정, 경쟁심과 연대감으로 펄펄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은 물론, 실험실을 폭탄 머리 미친 과학자가 밤새우는 뭔가 신비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분, 교과서의 메마른 이론으로 과학에 흥미를 잃어버린 분들께 권하고 싶다. 과학기술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그 조용하고도 치열한 혁명의 현장을 보여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기초과학연구원 RNA 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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