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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 피시티 4300킬로미터에 도전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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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2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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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16g | 135*200*15mm
ISBN13 9788993690774
ISBN10 899369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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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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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검색을 통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알게 되었다. 미국 서부 4300킬로미터를 종주하는 길. 그 길을 완주한 하이커의 강연도 듣고 직접 만났다. 그 이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드디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죽어가던 심장의 불씨가 타올랐다. 2017년 2월, 나는 7년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피시티로 떠났다.
--- p.54

추위에 얼마나 몸을 떨었을까. 지평선 너머 불그스름한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학수고대하던 일출이다. 붉은 점 하나가 스멀스멀 올라오자 어둠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태양의 붉은 기운으로 바뀌어갔다. 토라진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서광은 천천히 봉우리를 모두 감싸안았다. 주변 만물은 헤엄치듯 그 품 안으로 들어갔다. 토마스와 나는 옷을 남김없이 몽땅 벗었다. 극한 추위가 온 신경을 따라 몸 구석구석 퍼졌다. 몸은 굳어갔지만 심장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동쳤다.
--- p.68

미국 서부 장거리 도보여행은 한국 국토대장정과는 급이 다르다. 한국이 아스팔트 평지를 걷는 거라면 피시티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 걸어야 한다. 물 수급에 대한 불안감도 견뎌야 한다. 한국에서는 편의점에 가서 물을 사 먹어도 되지만, 이곳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주변엔 상점 자체가 없다. 겨우 도착한 물 수급 장소에는 소금쟁이가 떠다니거나 벌레가 빠져 죽어 있는 등 오염된 경우도 있다.
--- p.96

출발한 지 한 달이 지나고 험난한 산세가 펼쳐진 캘리포니아 중부 하이 시에라 구간을 지날 때쯤 나도 모르게 몸이 장거리 하이커의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새벽 4시 반이면 눈이 떠졌다. 다리 근육도 ‘딴딴’하게 모양이 잡혔다. 휴대전화가 꺼져 내비게이션을 볼 수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이 방향이 맞겠지 하는 촉이 생겼다. 이때부터 하루하루 행복했다.
--- p.99

남편이 숨지기 여덟 시간 전 나는 그와 20분 정도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 시간으로 아침 7시였다. 남편은 전날도 힘들어서 20킬로미터밖에 못 걸었는데 오늘은 14킬로미터만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스페인 카미노 순례길은 평평해서 하루에 30-40킬로미터씩 걸었지만 이곳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힘들면 그만두고 와도 괜찮다고 말했다. 남편은 피식 웃고 목표했던 길을 떠났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 p.135

피시티는 지독하게 힘들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모인 발자국들이 4300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만들었다. 완주 뒤 나는 변했다. 노을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생이 끝날 때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답하리라.
“지독하게 힘들었던 그때 그 순간!”
--- p.158

나는 누구보다 ‘천천히’ 걷기로 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걸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리건의 고요한 숲길과 수많은 호수를 놓칠 수 없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풀벌레와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자연과 하나가 됐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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