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아악!” 거의 반사적으로 김 기사는 버스 짐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신옥자는 입을 벌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가 지갑을 찾기 위해 열었을 여행 가방이 저만치 나가떨어져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신옥자가 던진 모양이었다. 몇 시간 보지도 않았지만 신옥자는 유난스러운 성격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의 그 비명은 예사롭지 않았다. 유난을 떠는 정도가 아니었다. 김 기사는 신옥자 쪽을 응시했다. 열린 가방에서 뭔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등줄기가 바짝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몇 발짝을 옮겨 가방 가까이로 갔다. 그러자 확실히 보였다. 열린 가방에서 쏟아져 나와 있는 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마네킹과도 다르고, 살아 있는 사람의 것과도 시각적 질감이 전혀 다른 손. 사체였다. 피투성이의 그 손은 마치 손을 잡아달라는 듯 신옥자를 향해 뻗어 있었다. 다시 한 번 신옥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휴게소의 주차장을 뒤흔들었다.
-“아까 여행사에서 전화가 온 걸로는 이번 여행은 중단이라고 하던데요.” 아마 그럴 것이었다. 여행사의 가이드를 맡은 매니저가 경찰에 출두해야 할 것이니까. 여행의 끝까지 버스 운전기사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미 일정상 일본행 배편에 오르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박상하는 물끄러미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가 말했다. “그럼 저희 여행 경비는 어떻게 하죠?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게 됐는데 피해보상은요?”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제대로 세상의 맛을 보지도 못한 아이가 죽었다. 차가운 관광버스의 짐칸에서 남의 가방에 쑤셔 박힌 채 발견되었다. 하지만 같이 버스를 탔던 사람들에게는 피해보상이나 환불이 우선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싸구려든 아니든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피해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은 현실이 아닌가?
“여행사에서 내규에 따라 따로 연락이 갈 겁니다. 아, 그리고…….” 박상하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오늘은 짧게 사건에 관한 청취를 하지만 혹시 나중에 저희가 더 필요하면 연락을 드리게 됩니다. 그때는 경찰서로 나와 주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찰서로 나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일순 사람들의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일었다. 귀찮다, 번거롭다 하는 생각들이 공기에 떠다니고 있었다. 사람은 죽었지만, 제대로 세상의 맛을 보지도 못한 아이가 죽었지만, 차가운 관광 버스의 짐칸에서 남의 가방에 쑤셔 박힌 채 아이가 발견됐지만, 이들은 귀찮은 건 질색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부검 결과가 나왔다. 부검 결과지에 찍혀 있는 문장들은, 중년 여성의 여행 가방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만큼이나 끔찍했고, 잔인하였다. 범인은 시신을 양다리, 양팔, 몸통, 머리로 나누어 놓았다. 마치 마론 인형의 관절들을 다 분리해 놓은 것 같았다. 여섯 덩이로 나누어진 몸을 다 붙여 놓으니 어린아이의 작은 몸이 되었다. 나누어진 몸통과 다리, 양팔에 심각한 타박상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일부에서는 화상의 흔적도 발견되었으나 최근의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는 부검의의 의견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두부 골절이었다. 상태로 봐서는 사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적시되어 있었다. 미상의 둔기에 맞았을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결과 보고서를 읽던 박상하는 잔인함에 치를 떨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작은 아이가 대체 뭘 얼마나 잘못하였기에 그런 일을 당해야 했던 걸까. 아이를 보았던 목격자들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와 아버지는 전혀 여행자의 흥분이나 설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애초에 그런 목적을 두고 떠났던 여행일까. 둘이 떠난 여행지에서, 아버지 쪽은 홀로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고, 둘에서 혼자가 된 아이는 여섯 조각으로 나뉘었다.
-“아까 선생님께서는 아이에게 학대의 흔적이 있지 않은지 지켜봤다고 하셨죠? 지켜봤지만 학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요.” “네. 그랬죠. 그게 무슨…….” 담임 선생의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뭔가 잘못된 말을 한 건지 되짚어 보는 듯했다. “정말인가요? 학대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나요? 겉으로 보이는 곳이 아닌, 옷에 가려져 있는 몸 안쪽도 말씀인가요?” “그건…….” 항변하려던 말을 잃고, 담임 선생의 시선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차가워진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박상하는 이 어린 여선생을 몰아세우지 않도록 애써 흥분한 목소리를 억눌렀다. “아이의 시신을 부검했습니다. 오래된 상흔들이 많았어요. 모두 폭행의 흔적이었습니다.”
담임 선생의 입이 꾹 다물렸다. 박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교사도 직업이었다. 아이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그저 의혹일 뿐이었다.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고,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는다든가 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몸을 검사할 수 없을 터였다. 만약 그랬다가 폭행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경우 학부모의 엄청난 항의를 대면해야 할 테니. 그런 면을 생각하면서 다시 보니 아이에게 느꼈던 이상한 점들은 하나도 이상한 것 같지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3월이라고 했다. 긴팔을 입는 게 당연한 시기였다. 어째서 조금 더 파고들지 않아 일을 이렇게 만들었냐고 묻고 싶은 게 아니었다. 다만 박상하는 말하고 싶었다. 어째서 아이가 죽은 이 마당에까지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감추려고 했느냐고. 담임 선생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랬군요. 폭행이, 있었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담임으로서 인지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의 몸에 그런 흉이 남을 정도의 폭행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고개를 들고, 박상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동안 그녀는 계산을 이미 마쳤다. 혹시 진범이 잡히고, 가정 폭력으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그간 아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지탄을 피해야겠다고 결론 내린 모양이었다. 몰랐다. 도움을 요청했다면 당연히 도왔겠지만 알지 못했다. 그녀의 그 말은 ‘나는 잘못이 없다.’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박상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담임 선생도 따라 일어섰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꼭 사건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박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 선생은 단 한 번도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사냥개를 만난 어린애처럼, 뒤돌아서면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젖은 것처럼.
-정지원과 김석일. 두 사람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문득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든가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지원과 김석일의 만남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고, 아주 불행한 일을 눈앞에 둔 것 같은가. 그냥 보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어미의 처절한 울부짖음. 그것을 보면 그런 말이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게 왜 아이의 손을 놓았어, 하고. “도착했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사무실 안 공기가 일순 일렁였다. 목소리를 듣고, 심연 속에서 빠져나온 다음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다들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박상하도 천천히 일어섰다.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정지원 씨는 어디래? 연락해 봤어?” “하긴 했는데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경찰서 형사라는 것을 밝히자마자 곧 간다고, 그 말만 횡설수설 되풀이하다가 전화를 끊었거든요. 패닉 상태인 거 아닐까요. 패닉 아닌 게 이상하죠. 자기 자식이 남편 손에 죽었다는데.” 그러게 왜 아이의 손을 놓았어. “나가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