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서의 일’을 생각할 때 어떤 균형이 필요할까. ‘일과 삶’ 간의 균형이 아니라 ‘보상(報償)과 스트레스’ 간의 균형이 요구되는 건 아닐까. 그것이 앞으로의 일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균형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느냐 안 받느냐의 균형이 중요하다.
하루 종일 일이나 어떤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해도, ‘노는 요소’를 도입해 스트레스를 컨트롤하고 있다면 바람직하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스트레스받는 가정생활보다 스트레스 없는 장시간의 회사 생활이 낫기도 하다. 이런 원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행동한다면 앞으로 등장하게 될 싱귤래리티 시대 이전의 글로벌 인터넷 시대에서 최적의 삶이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p.36~37, 「01. 워크 라이프 밸런스」 중에서
즐거움과 행복과 두근거림 따위의 감정을 안겨 주는 ‘보상’이라는 존재를 모르면 일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그 일을 계속함으로써 얻는 즐거움, 행복 등을 모르니 계속할 동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워라블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업무를 게임과 같은 프레임으로 생각해 ‘놀이’로 만들어 가야 한다. 업무를 놀이로 만들어 하루 종일 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업무라는 작은 놀이를 생활 속에 많이 집어넣으면 풍요로운 인생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한 삶을 위한 도구는 많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해도 좋고, NPO를 만들어 커뮤니티를 시작해도 좋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인터넷에서 프로그래밍을 할 수도 있고, SNS에서 커뮤니티를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게임하듯이 업무와 놀이를 연결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문이 열린다. 도구는 많다. 나머지는 문제, 해결, 보상이라는 3가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든 놀이가 된다.
--- p.78~79, 「08. 게임성과 놀이」 중에서
지금까지는 독창적인 천재가 세상에 나타나 독창적인 물건을 만들었다. 그 천재성이 세상에 넘쳐났다는 식으로 위인전이 쓰였고, 다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시각에 이의를 달고 싶다.
한 사람의 특징이란 어떤 문제가 설정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즉 그런 과정을 거쳐 아이덴티티가 생성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은 순서다. 선천적으로 ‘특징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환경과 배움을 통해 후천적으로 특징을 갖춘다.
놀이를 생각해 보면 그러한 점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놀이를 하다 보면 사라지지 않는 특징이 나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놀이에 몰입해야 한다.
--- p.89, 「10. 아이덴티티」 중에서
컴퓨터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됐는데 굳이 나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나? 내 뉴스를 알릴 필요가 있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을 움직이고 프로그래밍하는 언어는 인간이 가장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역시 인간이 활용해야 한다.
추상적인 것은 인간이 다루고, 고도로 구체적이고 수리적인 것은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 반대되는 상황도 반드시 일어난다. 이는 엔지니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남들과 다른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알려야 한다. 자신만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고, 타인에게는 없는 특징을 홍보해야 한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을 알려야만 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모두가 같은 일을 평균적으로 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 기술과 지역성, 나만의 캐릭터, 특수성 같은 것을 적극 알려야 한다.
--- p.136~137, 「20. 소셜미디어」 중에서
‘타인이 보기에 내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평균치보다 낮다고 여기는 데서 온 콤플렉스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무시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제1부에서 지적했듯이 앞으로 우리의 싸움은 블루오션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런 자세가 확립되어 있으면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레드오션 환경으로 들어가서 싸우려고 해서 콤플렉스가 생기는 것이다.
20세기는 평균 사회였기 때문에 평균치가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평균적인 것은 모두 컴퓨터가 담당하게 되므로 평균치 대신 ‘최고치’가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 p.178, 「29. 콤플렉스와 평균치」 중에서
많은 경우 인간성을 ‘감정’에서 찾으려고도 하는데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의 메커니즘 역시 명확히 규명되고 기계가 감정을 판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성역의 위상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넘어, 다음 차원의 세상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앞으로 ‘고전적 인간다움’과 ‘디지털 휴먼다움’의 대결이 벌어질 것이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잘 다루는 디지털 휴먼 집단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신념 때문에 고전적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고전적 인간 집단 사이에 대립이 발생한다. 기계와의 대결을 통해 성장한 인간성이 기계와 인간의 융합에 의해 자멸한 뒤 신체의 울타리를 넘어설 것이다.
--- p.220,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티쿼터스 사회에서 디지털 네이처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