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기 자신이 어떤 결과를 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때 자신감이 생겨요. 또 노력한 일을 인정받았을 때 하나씩 하나씩 자기 세상을 늘려갑니다. (중략) 긍정의 언어를 주고받다 보면 아이와 양육자는 점점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추게 됩니다. 반면 부정적 피드백을 자주 받은 아이는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고 쉽게 포기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등 사회적 교류 또한 낮아지게 됩니다. 아이에게 긍정의 피드백을 주는 것은 대단한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고, 잘한 일이 없더라도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진심으로 나와 내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pp.50~51, 「부모의 긍정적인 태도가 행복한 천재를 만든다」 중에서
회복탄력성을 갖추려면 시행착오와 실패를 꼭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스스로 벗어날 방법,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가 서투르고 틀린 것 같아도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경험하게 지켜봐주세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아, 실패해도 또 하면 되는구나’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하는 자신감을 배우게 됩니다.
--- p.69,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회복탄력성을 키운다」 중에서
유아기 아동의 신경은 가늘고 약한 상태예요. 무리한 학습을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로 인해 해마 기능이 억제되어 학습 능률이 제대로 오르질 않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분비되는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특히 누군가의 지시로 억지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많이 나와요.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뇌의 시냅스가 증가하지 않아 애써 공부해도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서 공부해.”라면서 짜증을 내면 그 순간 뇌 안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공부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가 학습에 흥미를 잃게 돼 진작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공부와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 p.98, 「내 아이만의 공부 시간 찾기」 중에서
아이들은 일곱 살 정도가 되면 ‘자아’가 강해집니다. 미운 일곱 살이란 말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 시기에는 자기 생각과 주장이 생기면서 자기 주도성도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떼를 쓰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싫어!’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표현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돼요. 더불어 사회성도 강화되면서 엄마나 아빠보다는 또래 집단을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드디어 유아기를 끝내고 아동기로 접어드는 시기라는 걸 의미하니까요.
--- pp.148~149, 「왜 아이들은 어른을 만나면 뒤로 숨을까」 중에서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표정으로, 울음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에게는 “말로 해야 해.” “대답 듣고 나서 할 거야.” “네 마음이 뭔지, 뭐가 하고 싶은지 말을 해야 다른 사람도 알 수 있어.”라고 지속적으로 일러주세요. 무엇보다 작은 목소리, 몇 마디의 단어라도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입을 꼭 다문 아이에게는 훈육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존중과 수용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 p.159, 「입을 꼭 다문 아이의 속마음을 엿보는 법] 중에
육아를 하다 보면 아주 소중한 ‘나’를 종종 잃어버리곤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아무리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주장했던 사람도 자녀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죠. 어쩌다 아이 마음에 상처라도 줬다가는 자신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지곤 합니다. ‘내가 좀 더 희생했어야 하는데’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하는데’ 하면서 질책하기도 하고요. (중략)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 칭찬이 필수이듯, 양육자의 자존감을 위해서도 칭찬이 필요해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칭찬입니다.
--- p.205, 「밀레니얼 부모① 부모의 자존감부터 챙겨야 하는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