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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축간사 제1부 방촌 황희의 리더십과 묘제의 특징 ‘동방의 소공(召公)’ 방촌 황희의 리더십 憲章의 수호자, 세종시대 黃喜의 정치적 역할 조선 전기 방촌황희 묘제의 특징과 요(凹)자형 봉분사례 연구 제2부 방촌 황희 향사서원의 역사와 그 문화재적 가치(1) 玉洞書院의 문화재적 가치 玉洞書院 淸越樓 吟詠詩人과 작품세계 상주 옥동서원의 건축과 청월루 제3부 방촌 황희 향사서원의 역사와 그 문화재적 가치(2) 華山서원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龍津서원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남원 楓溪서원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滄溪서원의 역사와 현황 山陽서원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부록〉 1. 방촌 황희 연보(年譜) 2. 열성공 황수신 지석(誌石) 3. 방촌 황희 학술연구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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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것처럼 황희는 60여년의 관직생활에서 24년간 재상으로 일하고 또 18년 동안 영의정으로 봉직하였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의 정대한 인품과 경세의 실천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황희 자신이 지니고 있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재상으로 24년을 근무한 것도 모자라 영의정에 재임한 기간만도 18년에 이른다는 것은, 특히 작금의 현대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볼 때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현대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수많은 정치인이 청문회에 나와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드물고, 설혹 총리나 장관에 임명되었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불과 몇 달을 넘기지 못한 경우조차 많았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볼 때 황희에게는 분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별한 리더십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작금의 정치현실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모범적 요소가 황희의 리더십에 내재되어 있다면, 이에 대한 철학적 반추가 요청된다. 황희 관련 몇 가지 상징요소들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황희의 리더십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목하는 상징요소는 대체로 황희의 시호인 ‘익성’(翼成)에 내재된 철학적 의미 분석을 통해 황희의 인품과 리더십의 핵심내용에 다가가보는 일이다. 그리고 ‘소공대’(召公臺)와 거기에 세워진 ‘소공대비’(召公臺碑)라는 역사유적을 통해 황희 리더십의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보고, 이를 근거로 그동안 망각되어온 ‘동방의 소공(召公)’ 황희의 면모를 복권시켜보고자 한다. 또한 파주에 세워진 ‘반구정’(伴鷗亭)의 존재를 통해 황희 리더십의 또 하나의 특징을 살펴본 후, 남원에 건립된 ‘광한루’의 전신인 ‘광통루’(廣通樓)를 통해 황희 리더십의 이상적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