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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이 인용 게임 프랑스 영화처럼 해변의 밤 주례 태풍을 기다리는 저녁 망원 해가 지기 전에 해피 투게더 해설 어떤 사람 A_인아영(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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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민주가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민주를 만났던 일이며 마주 앉아 나누었던 이야기 전부가 잠깐의 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민주를 기억했고, 또 민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므로 계속 소설을 썼다. 다만 그럴수록 내가 쓴 소설들은 민주에게서 멀어져서, 결국에는 민주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곤 했다.
---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중에서 기선은 쾌청한 하늘에 방금 전에 보았던 빛의 부스러기를 그려 보았다. ‘작고 초라하다.’ 그런 말밖에는 해줄 수 없는 빛이었다. 기선은 일몰을 기다리지 못하고 폭죽에 불을 붙이는 누군가를 잠시 동안 상상해 봤다. 심지의 끝에 불붙은 성냥을 가져다 대는 손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뒷모습을. 그리고 빛보다 더 오래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연기를. 차가 어느새 해변 도로를 완전히 지나쳐서, 더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 「해가 지기 전에」 중에서 나는 눈이 오는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흰 눈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영은 그러면 언젠가 함께 눈을 보자고 내게 말했다. 그건 고백에 가까운 말이었는데, 나는 물론 받아들였다. 언젠가 함께 흰 눈이 덮인 풍경을 보자고, 어느 여름날에 우리는 그런 약속을 했었다. --- 「이 인용 게임」 중에서 “가시가 박혔어.” 우리는 오래된 빌라에 함께 살았는데, 방바닥에는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유행대로 목재 장판이 깔려 있었다. 거기서 나무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그런 작은 부스러기가 발에 박힌 모양이라고 유재는 말했다. 다만 내 눈에는 가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 「프랑스 영화처럼」 중에서 아내의 마음 한구석에선 분명 아들의 죽음에 관해 얼마간 나의 책임을 묻고 싶은 감정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그저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둘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렇게 했다. 학원을 정리하고 아파트를 팔아 이곳으로 이사한 것이 나로서는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 「해변의 밤」 중에서 너는 그렇게 아내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거야. 모든 것을 강탈당하겠지. 그리고 버려질 거야. 그것이 남자의 삶이니까. 결혼하는 제자에게 하고 싶은 진심 어린 주례사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신혼여행을 마친 용주가 찾아올 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 「주례」 중에서 해주가 아이를 낳지 않기를 은밀하게 원했고, 홀로 되어 우리가 좀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해주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즘, 해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주는 데리러 가겠다고,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의 어디쯤일 뿐 내가 있는 곳을 설명하기는 어려웠으므로, 나는 그저 네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만 대답했다. 축축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 「해피 투게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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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작가 덕분에 깨닫게 될 것이다.
버려두고 까맣게 잊어버린 삶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발굴되는 오해와 상실, 지나쳐버린 균열의 징조들 단편소설 「해가 지기 전에」로 ‘이 시대의 서글픈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성공적으로 연출해냈다’는 평을 들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서장원의 첫 소설집이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교묘하게 무너지는 일상을 그려온 그는, 이번 소설집으로 자신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꾸준히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온 작가의 찬란한 시작을 우리는 이 책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서는 “무대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인아영 평론가).” 아들과의 관계가 오래전에 어긋나버렸다는 사실을 애써 묻어두거나, 친구의 임신중절 수술에 동행하고, 참석하지 못하는 ‘이 인용 게임’을 지켜본다. 그들은 조금씩 무너지는 자신의 무대를 그러모으면서도, 선명하게 남은 균열의 흔적들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서장원 소설의 힘은, 예고 없이 등장했다고 믿어온 파국의 순간들을 그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온다.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돌연한 고백은 봉합되려 했던 갈등을 다시 헤집어놓으며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서장원의 소설은 인물들에게 하나뿐인 조명을 비추고 그들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꼼꼼하고 사려 깊게 마련해준다. 그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해서 자신을 이해하는 결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대체로 곤경으로 가득해서 실패로 끝나기 쉽더라도, 서장원의 소설은 그 흔들리는 시간 옆에 머물며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인아영(문학평론가) “삶의 어떤 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가버린 삶의 여백 근처에 존재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날들에 대한 회고 서장원이 그려내는 일상의 풍경은 우리 근처에 있다. 시골에 내려간 중년 부부는 삶을 다시 일구고(「해변의 밤」), 제자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러 가다 늦기도 하며(「주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친구의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가거나(「이 인용 게임」), 아이 갖기를 포기한 부부가 여행을 떠난다(「태풍을 기다리는 저녁」). 그러나 단조로워 보이는 이들의 일상은 조금씩 비틀려 있다. 중년 부부는 아들을 잃었고, 퇴임한 교사는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도 소원하며, 다정해 보이는 친구는 누군가에게 소중할지 모르는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데다, 자상한 남편은 지나간 외도의 기회를 곱씹는다. 서장원은 이 일그러진 틈새를 차분히 직시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탓에 변명을 할 여지도, 사과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조각 난 일상을 여러 겹의 감정으로 덧댄 채 덤덤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파문은 오래 번지며 소설과, 우리를 에워싼 삶의 여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가장 최근 소설이자 표제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의 화자는 또 다른 도약을 시도한다. 죽은 연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레즈비언 친구의 부탁을 받은 소설가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잊고 있던 과거와 재회한다. ‘나’는 동성애에 유한 분위기가 감돌던 여고에서 친구 선유를 마음에 두었던 일을 떠올리며, 견고하게 닫혀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앞서 발표된 소설들과 달리 ‘나’는 발굴된 기억을 외면하지 않으며 친구와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로 다시 써나간다. 이는 익숙한 곳의 탐색을 끝내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가겠다는 작가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작가 서장원을 오래 지켜봐야 할 이유다. “나는 네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낙태 여성과 트랜스젠더… 섞여들지 못하고 흩어진 자들을 응시하는 조용한 시선 서장원의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도 확장된다. 구두와 운동화의 중간쯤 되는 못생긴 신발을 신는 이모(「망원」), 성소수자에게 ‘친절한 세계’인 프랑스행을 꿈꾸는 유재(「프랑스 영화처럼」), 대학 친구의 임신중절 수술에 따라 나서는 트랜스 젠더 ‘나’(「해피 투게더」)는 ‘자신’으로 살기를 결심한 시점부터 ‘평범함’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인물들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한 계단 낮은 곳에 위치해야 했던 이들의 표정을 서장원은 세심한 문장으로 매만진다. 그들은 무대 위 주인공들의 “불행을 반가워하며” 존재를 위협당하고 환상통에 시달리지만 내밀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예상하다시피 그 욕망은 무참히 좌절된다. 그럼에도 소설은 “네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대답하며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흩어진 존재를 기억하며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장원의 소설이 꾸준히 만들어온 이런 태도는 다른 궤도를 도는 생을 조용히 긍정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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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별안간 뒤통수를 때리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따지려는 순간, 작가는 그동안 모아온 균열의 기미를 보여준다.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거기 버려두고 온 뒤에 까맣게 잊었을 뿐인 삶의 진실에 대해. 그건 저지른 잘못과 덧난 상처와 일그러진 관계를 모두 끌어안고 갈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방식이다. 서장원 작가 덕분에 우리는 겨우 우리 사이에 놓인 커다란 무지와 오해의 강을 건널 수 있게 될 것이다. - 한소범 ([한국일보] 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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