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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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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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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군인, 세일즈맨, 사기꾼, 스파이|9

2장 멤피스거리|61

3장 100세 파티|127

4장 불 꺼!|201

5장 연꽃 먹는 사람들|285

6장 마지막 유월절|391

저자 소개 2

안드레 애치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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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Aciman

1951년 1월 2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 1965년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영어학교를 다녔고, 1968년 다시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1973년 리먼대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학교와 바드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으며 뉴욕대학교, 쿠퍼유니언, 예시바대학교에서 창작 글쓰기를 가르쳤다. 현재는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문학 이론의 역사와 마르셀 프루스트를 강의하고 있으며, 비교문학 위원장과 작가연구소 설립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다. 1995년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Out of Egypt)》
1951년 1월 2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 1965년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영어학교를 다녔고, 1968년 다시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1973년 리먼대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학교와 바드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으며 뉴욕대학교, 쿠퍼유니언, 예시바대학교에서 창작 글쓰기를 가르쳤다. 현재는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문학 이론의 역사와 마르셀 프루스트를 강의하고 있으며, 비교문학 위원장과 작가연구소 설립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다. 1995년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Out of Egypt)》로 와이팅 어워드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고, 1997년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에 선정되었다. 2007년 람다문학상 게이소설 부문을 수상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2017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각본,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수수께끼 변주곡(Enigma Variations)》은 2026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이 확정되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웃 오브 이집트》, 《폴스 페이퍼(False Papers)》,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여덟 개의 하얀 밤(Eight White Nights)》, 《알리바이(Alibis)》,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 《수수께끼 변주곡》, 《파인드 미(Find Me)》, 《호모 이레알리스(Homo Irrealis)》, 《페루에서 온 신사(The Gentleman from Peru)》, 《로만 이어(Roman Year)》, 《룸 온 더 씨(Room on the Sea)》, 《스토어웨이즈(Stowaways)》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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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신시사이저 사용 설명서를 번역한 것을 계기로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충남대학교 자치행정과를 졸업한 뒤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안드레 애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파인드 미》 《아웃 오브 이집트》 《수수께끼 변주곡》을 비롯해 《스위밍 레슨》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5년 후 나에게》 《창조적 행위 : 존재의 방식》 《타이탄의 도구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학습의 재발견》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등
스무 살 때 신시사이저 사용 설명서를 번역한 것을 계기로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충남대학교 자치행정과를 졸업한 뒤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안드레 애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파인드 미》 《아웃 오브 이집트》 《수수께끼 변주곡》을 비롯해 《스위밍 레슨》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5년 후 나에게》 《창조적 행위 : 존재의 방식》 《타이탄의 도구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학습의 재발견》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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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50쪽 | 408g | 124*188*25mm
ISBN13
9791190234184

책 속으로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고? 지금 장난해요, 빌리?” 플로라는 조롱하듯 말을 던지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또 담뱃불을 붙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역시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에스더의 아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비웃었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 빌리는 놀라울 정도로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중략) 이제 빌리가 늘 하는 그 말이 나올 차례였다. 그 말은 손가락을 푸는 피아니스트나 목을 가다듬는 배우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자신감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아치를 이루는 등,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의 떨림으로 시작하여 점점 높아지다 완벽한 높이에 이르렀다. “우린 전에도 기다린 적이 있고 이번에도 기다릴 거야.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오천 살 먹은 유대인이니까. 그래, 안 그래?”
--- p.43~44

“적어도 난 손자가 친할머니를 똑같이 사랑했으면 좋겠어.” 외할머니는 단호하고 지조 있게 사랑평등주의를 주장하듯이 말했다.
“왜 똑같이 사랑해 달라는 거죠? 원한다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나요?” 플로라가 물었다. “누가 누구를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일은 드물어요. 제대로 사랑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죠.”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여름날 오후 나와 함께 베네치아의 캄포모로시니를 걸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넌 이해 못 해, 플로라.” 성녀가 굽히지 않고 말했다. “손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길 바라는 건 그래야 그 여자가 날 질투하지 않아서야. 난 걱정돼. 내가 가 버리면 그 여자가 손자한테 어떤 할머니가 될 것 같니?”
“간다니요?”
“떠난다면 말이야, 플로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직 예순도 안 됐는데!”
“프랑스로 간다는 말이었어, 플로라. 죽는다는 게 아니라! 영국, 아니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도 있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성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은 그런 뜻도 아니고, 아예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님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더 남았겠어?” 앞으로 살날을 말하는 거였다.
--- p.70~71

아버지는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고 적었다. 꿈에 그리던 여인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도 않았고 생김새를 묘사하지도 않았다. 미신을 믿는 터라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피했다.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그녀라고만 했다. 그녀를 종이에 담거나 성격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너무도 복잡한 과제였으므로 그냥 이렇게만 적었다. 그녀를 생각하고 싶다.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라든가 그녀에게 마음이 향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적지 않았다. 그저 회색 스커트와 적갈색 카디건, 어머니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 어머니 카드에 눈을 고정하고 있을 때 카드 테이블 끄트머리에 닿은 무릎 피부를 묘사할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는 그에게 미소 지었다. 나른함과 가벼운 사과가 담긴 상냥하고 너그러운 미소였다.
--- p.92

바포레토는 산자카리아를 지난 후 급강하하듯 널찍하게 돌아 석호를 거쳐 리도로 향했다.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 배가 시끄럽게 통통거리며 나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안개 자욱한 시로코 날씨가 수그러들었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머리를 뒤로 젖혔다. 외할아버지의 농담을 흉내 내 이제 베네치아는 다 본 거네, 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 끝없는 밤으로 가라앉는 베네치아를 바라보며 플로라 숙모를 떠올렸다. 내가 아는 모든 도시와 해변과 여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름을 사랑한 이들, 한때 사랑했고 이제는 사랑하지도 추모하지도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집, 같은 거리,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전부 떠올렸다. 내일은 가장 먼저 해변에 갈 것이다.
--- p.125

보통 사람보다 시끄러운 어머니의 고음은 멀리까지 들렸다. 나는 매일 아침 스쿨버스를 탈 때 어머니가 창문에서 잘 다녀오라고 외치면 못 들은 척 딴 데를 보았다. 어머니가 해변에서 돌아오는 나를 보고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내 별명을 소리쳐 부르면 갓 사귄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은 그 사람이 우리 어머니라는 것도,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하기 방식 때문에 그것이 내 별명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고개를 들어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는 내가 저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어머니는 내 미소가 왜 그렇게 모호한지 정확히 알았다. 너무 더워서 식탁에 앉아 과일만 먹는 여름날 오후면 어머니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의 말을 소리 냈다. 단어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머나먼 어린 시절로 다가가는 소리였다. 함께 수영할 때 물속에서 외친 완전하지 않은 단어들, 파도 소리에 덮여 사납고 거친 느낌이 덜해진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매기 소리처럼 상냥했다.
--- p.132~133

옥상은 매우 고요했다. 저 아래에서 윙윙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손 닿는 것마다 델 듯이 뜨거웠다. 텅 빈 옥상을 돌아다니며 다른 건물들의 옥상을 바라보노라면 무한한 지평선을 따라 늘어진 거대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파란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나 나를 손짓해 부르는 바다였다.
--- p.143~144

“오늘 파도가 정말 좋구나.” 할머니가 기대에 찬 얼굴로 내 허벅지를 두드렸다. 바다는 바로 눈앞에서 봐야만 거친지 고요한지 알 수 있었다.
--- p.153

내가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물었다.
“같이 왔지.”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역장실에 구부정하게 서서 아랍어 뉴스 속보를 듣고 있었다.
“안 좋아, 안 좋아.” 아버지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이집트 전역에서 등화관제를 실시했대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공격을 개시했어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전차 옆에 선 아버지는 처음 보았다. 아버지는 항상 자가용으로 움직였다. 버스나 전차는 물론 택시조차 타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전차역에 있으니 대중교통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수수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 p.214~215

한 시간 가까이 어둠 속에서 다 같이 앉아 있었다. 가끔 건물 안뜰에서 “Taffi al-nur(불 꺼)!” 하고 외치는 성난 목소리나 증조할머니가 방금 누가 한 말을 다시 묻거나 라티파가 라디오 소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와 잔을 치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럴 때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었다. 우리가 이집트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새해는 다른 나라에서 맞이할 것이며 이렇게 한집에 다 같이 모이는 것도 마지막이라고.
그 뒤로 이어진 나날 동안 사촌이나 할머니들과 밖에 나갈 때마다 하루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거리를 걷거나 어디에 들르거나 익숙한 놀이를 하거나 예고 없는 방문으로 성녀를 기쁘게 해 주는 것 따위의 일 때문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고리타분한 사람들과 모여 있어야 하는 그 답답한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어서였다.
--- p.246

일주일 후 몇몇 가족이 이집트에서 추방되었다.
3개월 후에는 네 명이 스스로 떠났다.
곧바로 여섯이 더 떠났다. 다들 프랑스에 정착했다.
1년 6개월 후에는 성녀와 남편도 프랑스로 떠났다.
이제 이집트에는 엘사 할머니, 플로라 숙모, 공주, 네심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우리 세 가족 해서 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다.
--- p.274

만다라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가로 달려가 바다 상태를 확인했다. 침대에 누워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 듣고 그날의 날씨를 알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물살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소리치는 날은 파도가 거칠다는 뜻이었다. 한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파도 소리도, 아이들 소리도, 노점상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기 중의 무언가가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그런 날은 플로라 숙모의 표현대로 바다가 엷은 기름막처럼 매끄러워 잔물결조차 없었다.
집 안에 커피 가루 향기가 퍼졌다. 록사네는 아침 일찍부터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작은 주전자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이었다. 조이는 아직 잔다고 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인들도 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베란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성글게 짠 커튼을 들어 올리면 기적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주차된 차들의 후드만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그 너머로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일요일의 고요함에 잠긴 저택들, 반짝거리는 옅은 파란색 바다가 펼쳐졌다.
--- p.375

10월 초가 되면 1년 내내 이곳에 사는 베두인족 이집트인 몇 명만 남을 뿐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 여름 별장 주인들이 데려와 기르다가 여름이 끝나면 내버리는 강아지들이 들개가 되어 먹이를 찾아 헤매다 밤이면 우리 별장 앞에서 짖기도 했다. 그즈음이면 해변은 완전히 텅 비었다. 코카콜라 오두막도 문을 닫았다. 밤에 영화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면 불을 켜 놓은 집은 우리 별장뿐이었다. 압두가 라디오에서 아랍어 노래를 들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주방에서 희미한 전구 불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압두가 밤에 시내로 돌아가는 날이면 우리를 기다리는 불빛도 없고 만다라는 유령도시로 변했다. 아버지가 자동차 라디오와 엔진을 끄면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소리와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자갈길 걷는 소리, 집 뒤편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의 불부터 켜고 숨 막히는 복도를 달려가 방마다 불을 밝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베란다, 주방, 거실 불과 내 방의 라디오까지 켜고 집 안에 활기를 되살려 아직 집 안에 있는 여름 손님들이 자기 방에서 나올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혹은 곧 손님이 도착할 거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터였다.
--- p.393~394

아버지가 전 재산을 잃었다는 소식은 1965년 초봄의 토요일 새벽에 도착했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공장의 야간 작업반장이 된 카셈이었다. 그가 초인종을 눌렀고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그는 그 시간에 찾아온 자신을 보고 바로 이유를 짐작한 사장이 절망하는 모습에 미친 듯 울기 시작했다. “빼앗겼나?” 공장을 뜻하는 거였다. “빼앗겼습니다.” “언제?” “어젯밤에요. 전화도 못 하게 해서 직접 왔어요.” 두 남자는 현관에 조용히 서 있다가 주방으로 들어갔고 아버지가 담담한 얼굴로 차를 준비했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 낙담하지 말자고 서로 격려하다가 결국은 무너져 얼싸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둘이 어린애처럼 울더라. 어린애처럼.” 그날 엘사 할머니는 몇 번이고 구시렁거렸다.
--- p.400~401

우리의 일상생활, 한 시대, 1905년 아이작이라는 청년이 확신 없이 처음 발 들인 이집트, 친구들, 바다, 옴 라마단, 록사네, 압두, 구아바, 주사위 놀이의 칩이 바를 치는 심술궂고 시끄러운 소리, 늦여름 아침에 먹는 가지튀김, 비 내리는 평일 저녁에 흘러나오는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 영화관을 전전하는 중에 아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다 누군가 전차를 타자고 제안하면 이등칸 2층으로 올라가서 산스테파노를 지나 빅토리아 종착역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알렉산드리아의 나른한 일요일. 내가 아는 모든 게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거짓된 삶이 발각된 것처럼 이제는 비현실적이고 덧없게만 느껴지는 일상이 남아 있었다.
--- p.407~408

“그럼 나는 뭘 해야 해요?” 최대한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앞으로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는 척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뭘 하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여기까지 듣자마자 나는 벌써 학교를 그만두고 매일 아침 박물관에 갔다가 북적거리는 알렉산드리아 시내를 쏘다니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그건 절대로 안 된다.”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용납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 얘는 계속 학교에 가야 해.”
--- p.408

“참 슬픈 일이야.” 엘사 할머니가 말했다. “이 방이 사람들과 촛불로 가득한 때가 있었는데. 테이블 덧판까지 펴도 앉을 자리가 모자랐지. 이제 이 집은 너무 커졌어. 네심 오빠도 건강이 좋지 않고.”
등화관제 시절 가장 나이 많은 사람과 가장 어린 사람이 백 살은 차이 나는 몇 세대가 이 집에 모여 있던 밤이 떠올랐다. 그 많던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 좋은 도자기와 화려한 은 식기는 해외로 몰래 실어 보냈기에 저녁 식사도 단출했다. 식사 시간에 라디오를 틀기도 했다. 생활비를 관리하는 엘사 할머니가 다이닝룸의 전구 와트 수를 줄여서 파리한 주황색 불빛이 남은 가족들의 얼굴과 음식을 비추었다. 우리 가족이 이집트에서 보낸 마지막 해의 그림자였다. 어머니는 휘황찬란했던 다이닝룸 샹들리에가 죽어 가는 사람 곁에 놓인 야간 등처럼 변해 버렸다고 말했다.
오래된 가구들은 더욱더 낡고 칙칙해 보였다. 이소타 프라스키니 시절부터 전혀 손보지 않은 곳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보조 계단은 너무 더러워져서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충 짜 맞추거나 망가져서 따로 치워 둔 가구들은 어느 날 귀인이 찾아와 인내심과 기술, 대를 이은 목수의 헌신으로 그동안 다이닝룸의 수많은 등의자에 붙인 접착지를 떼어 내고 오랜 시간 기다려 온 기적을 행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 엘사 할머니가 그해 유난히 심했던 모래폭풍 이후 갈색 가구에 쌓인 먼지를 만지며 동생 빌리의 말을 읊었다.
--- p.410~411

도시의 소리가 들어오게 창문을 열었다. 어디에선가 누군가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행인의 웃음소리처럼 무심하고 아득한 소리였다. 생명력 없는 암울함을 떨쳐 버리는 방법은 밖으로 나가거나 서재 한구석에서 아르노 당숙의 야한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 p.417

“그럼 잘 자라.”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아버지도 지금 잘 건지 물었다.
“아니, 아직. 먼저 자라. 난 여기 앉아서 생각 좀 해야겠다.”
아버지는 오래전 할아버지의 무덤에 갔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말없이 팔꿈치를 커다란 대리석 판에 올려놓고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공동묘지와 죽음에 대해, 살아 있는 자들에게 기억되지 않을 때 죽은 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따위를 물었다. 아버지는 참을성 있게 하나하나 모두 대답해 주었다. 죽음은 조용히 잠자는 것과 같다고, 오래오래 평온한 꿈을 꾸면서 자는 거라고. 어느덧 지루해져서 그만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아니, 아직. 난 여기 서서 생각 좀 해야겠다.”라고 했다. 한참 후에 우리는 몸을 기울여 대리석 판에 입을 맞추고 묘지를 떠났다.
--- p.425~426

축축하고 오돌토돌한 방파제 표면을 만지는데 문득 이 밤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 자리에 앉아 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산책로 아래의 커다란 바위를 때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해변을 향하는 구불구불한 행렬처럼 어른거리는 아이들의 머리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갈망에 휩싸였다. 내일 밤도, 모레도, 그다음 날 밤도 다시 오고 싶었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런 밤이 다시 없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해안 도로에 앉아 질척한 팬케이크를 먹는 일은 올해도 그 어떤 해에도 다시없을 것이기에. 비록 잠깐일지라도 사랑하는지조차 몰랐던 이 도시를 갑자기 갈망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의 묘미 역시 다시는 없을 것이기에.

--- p.448

출판사 리뷰

“아름다운 기억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리뷰》

나는 수정처럼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숨결이 섞이지 않은 듯한 공기 냄새가 새롭고 신선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기 전의 여름 아침 냄새였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모래언덕마저도 깨끗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내려 저 앞의 저택들조차 보이지 않는 두 눈을 주변에 가득한 모래 색깔로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얼굴만 들면 바다가 있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실제로 작가는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이집트를 떠나지 않았고, 이집트 또한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작품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그 시작을 알고 싶어진다. 이럴 때는 작가의 세계관에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연혁을 살펴보거나 첫 작품을 찾아보곤 한다. 작품이 거듭되면서 문체에 변화를 주거나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의 개성이 일관되게 뚜렷하면 그의 삶이나 첫 번째 작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의 작품을 준비할 때부터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엘리오와 올리버 두 사람의 사랑은 여느 작품에서 그리는 사랑과 달랐고, 그들을 둘러싼 여름의 햇살은 눈부셨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첫 작품인 《아웃 오브 이집트》 출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번역 원고를 받아 본 순간 그 특유의 감성과 문체가 첫 책을 출간할 때부터 이미 완성형에 가깝게 유려하며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회고록은 행복한 선물이며 더없이 큰 기쁨이다.”
-《시카고 트리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여름은 등장인물의 사랑이 설득력을 갖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가족, 친구와 더욱 돈독한 시간을 갖는가 하면 새로운 만남을 갈망하며 나른한 기분에 젖어들게 만드는 눈부신 햇살은 여름만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자 설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를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만다라의 바닷가 별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창문을 열면 보이는 반짝이는 바다는 이집트를 떠난 지금도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공책에 머무는 4월의 햇살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법의 주문을 걸어 벽과 책, 책상, 내 손, 베껴 쓴 코란 구절에서 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볕과 따뜻한 바닷물, 친근한 바닷가 별장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내 방에 걸린 오래된 마티스의 복제화가 아침 햇살에 빛나며 손짓했다. 마티스의 니스 집 발코니 난간 사이에는 파란 공간, 언제나 그렇듯 바다가 있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피아노 카덴차는 어느 고백보다 더 달콤하고 특별하다.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마음은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속편 《파인드 미》에서도 음악은 각 장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소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독일에서 이집트로 피난 온 플로라 숙모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내내 목격했다. 그때 알았을 것이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살아 움직이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내가 그 시절에 밤마다 슈베르트를 연주한 건, 그 끔찍한 전쟁이 나에게는 망쳐 버린 인생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에 불과했기 때문이야. 난 지금 슈나벨이 연주한 것처럼 연주할 거야. 네 할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들은 내 연주니까.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오늘 밤 내 아들이 들었을 연주야. 여기 앉으렴.”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안드레 애치먼의 모든 작품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서로 얽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고대 문학에 대한 애정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와 아버지 펄먼의 대화에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유대감과 고고학에 대한 박식함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 종교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은 가정교사 시뇨르 달라바코와 이집트를 떠난 후에도 편지를 통해 깊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눈 경험에 기댄 부분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설정이나 대화는 작품마다 역할을 바꾸어 가며 등장한다.

나는 이번 여름에, 앞으로 맞이할 모든 여름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뇨르 달라바코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기뻐하면서 이탈리아어 수업이 끝난 다음에 가르쳐 줄 텐데 배우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정원의 오래된 문을 열면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안드레 애치먼은 최근 발표한 에세이 《호모 이레알리스》의 비현실적 서법(Irrealis mood)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이어 나가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나 바람에 대한 주제로 자신의 경험과 프로이트를 오가며 논리를 펼치는데,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그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 첫 작품을 쓸 때부터 20여 년 후에 출간될 새로운 에세이를 구상해 둔 것처럼.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건물 사진. 그 건물 앞에 선 내 사진. 건물 앞에 선 나를 찍는 아내 사진. 아내는 할머니들이 몇 층에 살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5층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5층을 올려다보았다. 엘사 할머니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는 불도 꺼지고 덧문도 내려져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당연히 불이 꺼졌겠지.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지 20년이나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파트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워 둘 리 없는 터, 분명히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것이다. 빌리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판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병원으로 실려 가기 전에 떨어뜨린 포크와 카디건도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자아 준 생명력으로 영원히 할머니 것일 수밖에 없는 평생 모은 가구와 그릇, 옷가지가 제자리에서 할머니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면?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이 외에도 작품이 거듭될수록 깊이를 더하며 겹겹이 쌓여 가는 특유의 세계관은 《아웃 오브 이집트》에서 그 모든 실마리를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독자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마음껏 상상하게 만든다. ‘어쩌면 엘리오는 내성적이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가슴을 가진 소년 시절의 작가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물론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아웃 오브 이집트》은 읽는 재미와 감동까지 흡입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한 사람이 나고 자란, 지금은 사라진 영원하고 무한한 세상이 기억을 통해 재탄생되는 순간의 감동을 생생히 목격할 것이다.


◆ 언론 호평

“지금은 사라진 세계의 매혹적인 초상. 황홀하다.”
-《뉴욕 타임스》

“이 책은 사랑했던 장소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애정 가득한 회고록이자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연대기다.”
-《워싱턴 타임스》

“아름다운 기억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리뷰》

“선명한 기억과 숭고한 언어로 탄생한 감동적인 작품.”
-《예루살렘 리포트》

“이 우아한 회고록은 과거의 향수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절 모든 냄새와 소리까지도.”
-《뉴 리퍼블릭》

“잊힌 장소와 시간, 사람에 대한 경이로운 기념물.”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제는 영원히 사라진 세상과 그곳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아이러니하고 다정한 모습을 훌륭히 재창조해 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회고록은 행복한 선물이며 더없이 큰 기쁨이다.”
-《시카고 트리뷴》

“한 가족과 그들이 사는 세계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 작가 특유의 언어와 자세한 기억이 아니었다면 1960년대 알렉산드리아는 모래로 뒤덮여 사라졌을 것이다.”
-《뉴스데이》

“놀랍도록 자세한 기억은 이 회고록을 더욱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만든다.”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젠서》

“실제로 작가는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이집트를 떠나지 않았고, 이집트 또한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묘한 매력이 있는 소박한 기억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다민족 도시의 아름다운 매력을 책 속에 스며 넣었다.”
-《뉴요커》

추천평

“장밋빛 이야기와 선명한 기억으로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이 회고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 제임스 메릴 (『The Changing Light at Sandover』 작가)
“별난 가족, 흥미로운 환경, 복잡하게 얽힌 문화에 대한 특별한 회고록이다. 지금은 사라진 세상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 에바 호프먼 (『Lost in Translation: A Life in a New Language』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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