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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할바탱이가 억울할 게 뭐야? 이렇게 부자면서 뭐가 아쉬워서?” 석호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유식은 알지 못한다. 아니, 누구도 자신만큼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었다. 돈 버는 일에 좋은 시절을 다 바쳤다. 부모는 원체 가난했고, 명이 짧았다. 일찍 돌아가시면서 남겨준 거라곤 가난밖에 없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을까 말까 하고, 학교 공부도 겨우겨우 공사장에 날품팔이를 해가면서 다녔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온 인생이었다. 죽을 때 떠올릴만한 즐거운 추억 한 자락도 허락되지 않는 인생이었다. 그리 악착같이 살다 죽을 때가 되고 보니, 열이 끓는 자신에게 물 한 모금 가져다주는 이가 없었다. 외롭고, 억울했다. 유식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눈치가 없지는 않아서 심각해 하는 얼굴에다 아무것도 묻지는 않았다. 다시 무겁고 어색한 공기가 사무실에 깔리기 시작했다. 석호는 이 철없어 보이는 아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유식이라는 아이가 말한 ‘폼나는 삶’이란 것은 아무래도 돈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 같았다. 자신은 지나간 청춘이 아쉬웠다. 뭔지는 몰라도 동시에 일어난 두 죽음 사이에 미지의 힘이 작용한 게 분명했다. 석호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자 슬슬 눈치를 보던 유식이 말했다. “지금부터 어쩔 거야?” 석호가 눈을 치뜨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그 반말하는 주둥이부터 쥐어 뜯어놓을 거야.” --- p.41~42 박동제의 손길에 어깨가 툭툭 밀리던 석호가 유식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들은 친구가 아닌 거지?” 유식은 잔뜩 찡그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모르는 박동제는 헛웃음을 뱉으며 석호의 어깨를 잡았다. “뭐라는 거야? 미쳤냐?” 그때였다. 자신의 어깨 위에 있던 박동제의 팔을 잡는 동시에 석호는 몸을 돌려 상체를 둥그렇게 말면서 그대로 박동제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팔을 잡힌 박동제는 순식간에 그대로 석호의 등을 타고 공중을 붕 날아 원을 그리더니 등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쿵! 육중한 몸이 바닥을 울린 뒤에 컥컥거리는 소리가 박동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석호의 뒤에 숨었던 유리가 예상한 결과라는 듯 의기양양 미소를 날렸지만, 유식은 눈앞에서 일어난 장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석호를 보았다. 석호가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이며 당당히 말했다. “취미로 유도를 배웠지.” 부자들은 취미로 별걸 다 한다, 생각하는 동시에 유식은 바로 싸울 자세를 잡았다. --- p.13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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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아도, 적어도
죽음 앞에 후회하는 건 똑같다 〈백일청춘〉은 ‘시한부 운명’과 ‘몸이 뒤바뀐다’라는 소재로 서로 다른 연령대의 두 인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회 격변의 시절을 겪어본 노년과 이제 막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대기업 회장이라는 부유하면서도 고독한 인물과 어렵게 생활하지만 따뜻한 사람들 속에 살아가는 인물로 또 한 번 대조시키면서 상반된 두 사람의 유쾌한 소통을 담아낸다. 공감대와 사회적인 입장, 모든 게 다를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 편견 속에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를수록 은은한 감동까지도 느끼게 된다. 죽었지만 되살아난다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배경으로 하지만 〈백일청춘〉이 그려내는 노년과 청소년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노년이라 해서 마냥 ‘꼰대’ 같지 않고, 청소년이라 해서 마냥 ‘철부지’ 같지 않다. 두 인물을 보고 있으면 어디서든 한 번쯤 볼 수 있을, 2021년 현대를 살아가는 육십 대의 커리어맨과 십 대 남학생이 눈앞에 자연스레 그려진다. 근래에는 할아버지와 십 대 청소년이 함께 있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어느샌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지는 않았던가? 하지만 예정된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이루지 못한 것을, 혹은 헛되이 보낸 것을 후회하는 건 남녀노소 다르지 않다. 〈백일청춘〉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두고, 죽음 앞에서 서로에게 격식 없어진 두 세대의 인물들을 통해 재치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한부’는 꼭 무거워야만 할까? 좌충우돌 사건들 속에서도 즐거움은 여전하다 흔히 ‘죽음이 정해진 시한부 삶’이라고 하면 대개 그 죽음을 앞둔 시간은 음울하거나 슬프리라 생각한다. 이에 〈백일청춘〉은 백 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쉼 없이 움직이는 두 인물을 통해 죽음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매몰되는 방식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백일청춘〉은 유쾌한 작품이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까지 했으니 두 인물에게 주어진 백 일을 그저 미련을 떨치는 데만 쓸 수 있음 좋을 텐데, 좌충우돌 벌어지는 주변의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은 그 둘을 좀처럼 가만히 두질 않는다. 갖은 사건과 돌발상황들을 함께 겪으며 두 인물도 자연스레 우정을 쌓게 된다. 전혀 통하는 게 없을 것만 같은 육십 대 노인과 십 대 소년이 투덕거리며 다툴 때면 어느샌가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백일청춘〉의 두 주인공은 죽음의 존재를 잊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에, 두 사람은 주어진 백 일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일부러 운명을 외면하지도 않고, 일부러 죽음에도 대범한 척 굴지도 않고, 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눈앞에 주어진 백 일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일상적인 즐거움 속에 죽음이라는 운명을 부드러이 녹여낸다. 능수능란하게 감정을 다루는 미스터리 작가 정해연의 첫 청춘소설 〈백일청춘〉은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홍학의 자리〉, 〈내가 죽였다〉와 같은 미스터리 소설을 집필하던 정해연 작가이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 내공을 살려 인물의 감정선을 이끌고 작품에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독자가 〈백일청춘〉을 보며 할 일은 그저 이 유쾌한 분위기 속에 마음 놓고 빠지는 것이다. 작가가 만든 흐름을 타고 엔딩까지 이르게 되면, 어느샌가 그 속에 담긴 소소한 메시지들도 자연스레 독자의 가슴에 스며들게 된다. 후회하지 않는 삶, 가족의 의미,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청춘을 응원하는 마음까지. 이 메시지들은 교훈적이라기보단 마치 모래사장에 흔적을 남기는 파도처럼 잔잔한 여운으로서 뒤따르기에, 책을 덮고 나면 마치 한 편의 극적인 영화를 보고 나온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