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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월광에 물든 신화 작품으로 읽는 이병주 평전 격동기 지식인의 삶 이병주와 황용주 『토지』의 큰 작가 연대기로 본 박경리 평전 정한의 서정시인에서 ‘하동문학 지킴이’까지 이병주·박경리와 최영욱 낭만과 유정, 장강(長江)의 자유의지 시인 정공채 평전 현실-문학-문화 이어온 ‘글쓰기의 마라토너’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강남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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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과 대중성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가가 바로 이병주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독자들이 이병주의 소설을 읽고 거기서 이야기의 재미와 세상살이의 경륜을 함께 얻을 수 있기에, 그는 여전히 독자 곁에 살아있는 것이다.
---「이병주」중에서 황용주는 박정희의 이름으로 공간된 『국가와 혁명과 나』(1963)의 실질적 저자이다. 정수장학회의 입안자인 동시에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의 사부이다. 누구의 비유에 의하면 황용주는 박정희에게 유방의 장자방이자 이성계의 정도전이었다. 황용주는 5·16을 ‘민족혁명’으로 내세운 장본인이다. 그는 5·16을 4·19의 완성으로 믿었다. 양자를 합쳐 의식의 근대화, 제도의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황용주」중에서 이렇게 작가에게 내재된 작품의 종자가 싹이 돋는 일이 일어났다. 마침내 1968년 불교미술을 전공했던 따님이 선암사, 쌍계사로 탱화 연구차 가는 길에 “못 미더워서인지” 선생께서 동행하셨다 한다. 쌍계사 탱화를 만난 후, 하동읍 언니(이정금 여사)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평사리 한산사 탱화(경남문화재 제286호)를 만난 후, 버스를 기다리면서 평사리들판(무딤이들판)을 보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바로 여기, 여기다”라고. 이후 선생께서는 답사 한 번 오지 않고 5만분 1 지도만을 보면서 소설에 매진하였다고 하였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 연재하던 산문을 중단하는 글에서 “이제부터 나는 써야 할 작품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것을 모두 습작이라야 한다”라고 선언한 후, 세상과의 문을 모두 닫아걸고 25년에 걸쳐 집필에만 전념,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박경리」중에서 최영욱 시인은 이렇듯, 이병주 문학과 박경리 문학의 끝없는 지평 위에 ‘문학수도 하동’을 지켜가는 ‘하동문학 지킴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풍(時風)에 따라 ‘지리산-섬진강과 자연-인간’을 잇는 서정시를 쓰지만, 때로는 하동의 현실에 눈감지 않는 현실참여형 문인이기도 하다. 그가 참여 글을 쓴다는 것은, 그가 하동의 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방증이리. ---「최영욱」중에서 시문(詩文)이 잔재주를 피우지 않고 자연스럽고 훌륭하게 된 것을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시를 ‘천의무봉’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백이나 두보 이후에 천의무봉의 시인이라고 평가받은 사람은 정공채 외에는 없다. ---「정공채」중에서 강 작가는 그의 여러 시·소설과 사회활동에서 보듯, 현실에 두 발을 꼿꼿하게 버티고 서서 현실-문학-문화를 연결해온 현실 속 작가다. 그는 늘 현실과 동행하며 독자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온 것이다. 그는 지금 고향을 떠나 살고 있지만, 고향이 그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작가인들, 고향 하동에서의 출생과 성장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으리. ---「강남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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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박경리·정공채·강남주·최영욱….
그 삶·문학의 평전적 기록 한국의 ‘천재적 대문호’ 이병주(李炳注),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낭만과 유정의 시인’ 정공채(鄭孔采), 현실-문학-문화를 이어온 ‘글쓰기의 마라토너’ 강남주(姜南周), ‘정한(情恨)의 시인-하동문학 지킴이’ 최영욱(崔榮旭). 그 ‘하동이 사랑한 문인들’의 삶과 문학에 관한 평전적 기록이다. 다섯 작가의 작품 또는 연대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생애와 활동, 인생관을 전한다. 하동은 ‘문학수도(文學首都)’라 할 만큼, 쟁쟁한 문인을 쏟아내며 사랑받는 문학작품의 무대로 우뚝한 문향(文香)의 고장이다. 한국의 근·현대사 100년을 배경으로 한 3대 명작 대하소설 중 『지리산』과 『토지』의 무대가 하동이다. 하동을 배경 삼은 문학작품과, 하동이 낳고 키운 작가는 즐비하다. 하동은 특유의 자긍과 저력으로 나라를 대표할 문학관을 안고 문학축제를 꾸려오고 있다.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그는 “나폴레옹 앞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엔 발자크가 있다”는 자기 다짐처럼, 마흔네 살 늦깎이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 80여 편의 작품을 남긴 ‘천재적 대문호’다. 문·사·철을 아우르는 박학다식·박람강기와 화려한 문체,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걸출한 작가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 『산하(山河)』의 아포리즘처럼, 역사의 문학화 또는 문학의 역사화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그는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의 가장 큰 성취로 평가받는 대작 『토지』를 썼다. ?그는 지나다 본 하동 평사리 들판에서 소설적 영감을 얻어, 1969년부터 25년 동안 소설을 집필했다. 선생은 하동 출신은 아니다. 그는 경남 통영 출생이지만, 하동과는 운명적 인연을 나눴다. 그를 상징할 소설 『토지』를 쓰며 하동을 무대로 삼았고, 하동 평사리에 그의 문학적 혼을 담은 ‘박경리 문학관’과 ‘토지 문학제’를 남겼다. 『토지』의 무대, 악양 평사리와 전통고택 ‘최참판댁’은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 테마 관광지다. ‘낭만과 유정의 오만한 황제’ 정공채(鄭孔采). 그는 스승 박두진 시인으로부터 ‘천의무봉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았을 만큼, 전후파(戰後派) 특유의 도시적 감성으로 실존적 고독과 고뇌를 노래한 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세상의 수없이 많은 갈래의 길 중에 시(詩)의 길을 외곬으로 걸은 숙명적 시인이다. 현실-문학-문화를 이어온 ‘글쓰기의 마라토너’ 강남주(姜南周). 문학적 글쓰기에 관한 한 경계가 따로 없는 유명작가다. 언론사 기자로 시회에 진출, 대학 교수-총장을 지낸 부산지역 대표적 지식인이다. 그는 짧지 않은 세월, 시·소설·산문을 쓰고 문학이론을 연구하며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로 살아왔다. 거기에, ‘옛날 같으면 고려장 나이도 넘긴’ 75세에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 장편 역사소설을 펴내고 있는 탐험가적 작가다. 정한(情恨)의 시인 최영욱(崔榮旭). 그는 지리산-섬진강과 자연-사람을 잇는 서정시인이다. 그는 타고난 열정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병주·박경리의 문학세계를 지키는 ‘하동문학 지킴이’다. 생전에 쌓은 박경리와의 교분과 함께, 하동 평사리를 바탕으로 ‘박경리 문학’을 새기며 그를 하동으로 모셔온 인연의 인물이다. 그는 오늘 ‘이병주문학관’과 ‘박경리문학관’의 관장이다. 이 책은 부산 언론인 황용주(黃龍珠)의 언론활동을 함께 다룬다. 그와 이병주의 각별한 인연을 바탕으로, ‘언론인 이병주’를 함께 조명한 것이다. 남천(南天) 황용주-나림(那林) 이병주는 부산 언론계가 키운 한국 현대사의 두 거인이다. 남천은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나림은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며 부산 언론의 황금기를 함께 주도했다. 4·19와 5·16 같은 현대사의 격동기마다, 진실을 밝히는 기개와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용기로 사관(史官)·언관(言官)의 역할에 당당했다. 집필에는 문학평론가 김종회 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황용주 평전』을 집필한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하동 출신 언론인 차용범, 하동 출신 문인 최영욱, 하아무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들의 삶과 문학활동을 엿볼 귀한 사진들도 수록,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은 ‘하동이 사랑하는 문인들’, 그 작가들의 삶을 평전 형식으로 정리한 첫 기록이다. 글쓴이들은 이 책이 다섯 작가의 생애와 작품활동을 전하는 문학적 텍스트를 넘어, ‘문학수도 하동’의 역사적·문학적 가치를 찾는 내외 탐방객에게 친근한 인문학적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