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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 어느 약을 먹을 텐가? 1. 혁명,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기: 마이클 하트와의 대담 2. 사건/이념이 아닌 물질적 구축으로서의 코뮤니즘: 안토니오 네그리와의 대담 3. 코뮤니즘, 역사의 기차를 멈추는 비상 브레이크: 슬라보예 지젝과의 대담 4.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일회적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나 파워와의 대담 5. ‘코뮤니즘’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알베르토 토스카노와의 대담 6. 코뮤니즘이 아니라 코-이뮤니즘을: 페터 슬로터다이크와의 대담 7.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의 탈신비화: 존 그레이와의 대담 8. 새로운 공통적 세계의 구축으로서의 혁명: 자크 랑시에르와의 대담 후주 추천도서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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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덞 명의 정치철학자가 다시 장전하는 맑스주의라는 비판의 무기
21세기 초반 전 세계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경제ㆍ금융 위기는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정녕 더 쉬운 일일까? 새천년의 처음 10년이 끝나갈 무렵 전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를 능가하는 금융ㆍ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조심스레 타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칼 맑스’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에 대한 세인의 관심 역시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 은 바로 이런 배경, 즉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만큼이나 당대의 금융ㆍ경제 위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미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2011년 아르테 TV 상영)를 통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영국의 이론가ㆍ영화제작자 제이슨 바커는 이 책 맑스 재장전 에서 위 물음을 한층 더 밀고나간다.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구상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바커의 대담자로 등장하는 여덞 명의 정치철학자들은 맑스에 대한 각자의 평가에서 시작해 계급투쟁, 착취, 상품물신주의 등의 전통적인 맑스주의 개념들을 거쳐 ‘비물질노동’이나 ‘공통적인 것’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다루며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각자가 생각하는 코뮤니즘의 이념에 대해, 그것의 가능성과 난점에 대해, 그것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의 모습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한다. 그럼으로써 이 책 맑스 재장전 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현대 맑스주의 입문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그 구체적인 상은 조금씩 달라도 이 여덞 명의 정치철학들은 적어도 한 가지 점에 대해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것을 ‘코뮤니즘’이라고 부르든 안 부르든, 새로운 사회는 뭔가 거대한 일회적 사건 (가령 지금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통진당 일부 세력 식의 ‘무장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더디고 지루할지언정 굳건한 협력과 구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것이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침 오는 9월 27~29일에는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의 주창자들인 슬라보예 지젝과 알랭 바디우의 주도로 서울에서 또 다른 관련 국제 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이다. 이 책 맑스 재장전 과 더불어 바커도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의 불씨를 던져줄 것이다. 새로운 코뮤니즘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이 계기가 되어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경멸이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제ㆍ정치 체제에 대한 능동적 합의로 변형될 수 있을까? 저 유명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매트릭스』 2편(Matrix Reloaded)을 패러디한 맑스 재장전 은 그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먼저 ‘맑스.’ 마이클 하트에서부터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 니나 파워, 알베르토 토스카노, 페터 슬로터다이크, 존 그레이, 자크 랑시에르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쟁쟁한 현대 정치철학자들이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박제화된 국가이데올로기로서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맑스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이 여덟 명의 정치철학자들은 자본주의를 가장 철저히 분석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맑스의 사상, 그 사상의 현재성을 다룬다. 그리고 ‘재장전.’ 2007년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 금융ㆍ경제 위기를 배경 삼아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이 책의 대담자들은 맑스(주의)의 개념들을 뻔한 상투어라고 내치거나 마냥 반복하며 자본주의의 안전성 혹은 위기를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계급투쟁, 착취, 상품물신성, 코뮤니즘 같은 개념들의 장점ㆍ단점을 ‘지금, 여기’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자본주의가 불러온 작금의 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개념들 안에 새로운 의미를 다시(re-) 채워넣는다/장전한다(load). 그런데 왜 이토록 어렵고도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본주의의 한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진 오늘날이야말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이들의 논의를 하나로 꿰어주는 두 개의 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주체의 욕망이 발휘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하트는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삶이 문제적인 것은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삶에서는 욕망이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혁명의 효소는 더 크고 더 많은 욕망에, 즉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60쪽). 파워는 “더 단순하지만 더 창조적인 삶을 살려는 욕구나 욕망,” 즉 “상품물신주의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진정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125쪽) 노력이 실재한다고 말하며, 이런 욕망의 추구나 좌절이 고립된 개인의 차원에서 해소되는 것을 경계한다. 다른 하나는 혁명을 폭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느릿한 협력과 구성의 과정으로 보는 태도이다. 요컨대 토스카노의 말처럼 “‘단박에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매력적일지는 몰라도 관념적”(156쪽)이다. 네그리가 “현실의 변형과 현실을 만들고 구축하려는 의지 혹은 결정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무엇”(71쪽)이 코뮤니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코-이뮤니즘을 “치명적인 것에 맞선 동맹”으로, 코-이뮤니티(공동면역체)를 “자원 분배나 연대 협정을 토대로 구축”(173쪽)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는 슬로터다이크 역시 협력과 구성의 차원을 언급한다. 이렇게 주체의 욕망을 키우고 그것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면, 그리고 그 과정을 협력과 구성의 과정으로 사유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코뮤니즘 사회란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이 책 맑스 재장전 은 전지구적 위기의 시대에 혁명은 없고 파국만 있으리라는 냉소뿐만 아니라 혁명이 일거에 모든 것을 바꿔놓으리라는 판타지를 동시에 논파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의 궁극적인 의미이자 쓸모일 것이다. 이 책 맑스 재장전 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