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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렌 키르케고르 (11)
1편 집단은 거짓이다(15) 임마누엘 칸트 (41) 2편 계몽이란 무엇인가 (45) 파르메니데스 (69) 3편 자연에 관한 서사시 (73) 단편 1(74) | 단편 2(80)| 단편 3(82) | 단편 4(84)| 단편 5(86) | 단편 6(88) | 단편 7(92) | 단편 8(94) | 단편 9(104) | 단편 10(106) | 단편 11(108) | 단편 12(110) | 단편 13(112) | 단편 14(114) | 단편 15(116) | 단편 15a(118) | 단편 16(120) | 단편 17(122) | 단편 18(124) | 단편 19(126) 편집후기 (131) |
Soren Aabye Kierkega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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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것이냐 오래 전에 죽은 것이냐, 낮은 자들의 무리냐 귀한 자들의 무리냐, 부자냐 가난한 자냐 등이 아니라, 바로 그 개념에서, 거짓입니다. 집단은 단독자로 하여금 온전히 회개하지 않게 하고 무책임하게 만듭니다. 아니면 단독자의 책임을 무리의 일부로 나눔으로써 약화시킵니다. 주목하십시오.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감히 손댈 수 있는 군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집단을 자각하거나 집단적인 것을 생각한 서너 명의 여성이 있고, 누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사람들이 알아낼 수 없다는 가능성이 확실하게 주어진다면, 그때 그 여성들은 용기를 내서 그를 해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진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인지요!
--- p.22-23 집단을 사로잡기 위해서 그렇게 대단한 속임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재주와 소량의 거짓과 인간의 격정적인 감정에 관한 조금의 지식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진리의 증인 중 아무도 ? 아, 여러분과 나, 우리 모두가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할 텐데 ? 감히 집단과 상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 p.28-29 진리의 전달자는 오직 단독자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단독자에게 스스로를 내보입니다. 이런 인생관에 따르면 단독자가 바로 진리입니다. --- p.33 하지만 나는 성경에서 〈너희는 집단을 사랑하라〉는 계율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종교윤리적으로, 〈집단을 진리의 최후 법정으로 승인하라〉는 계율은 더더욱 읽은 적이 없습니다. --- p.35 계몽은 인간이 자처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미성숙이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입니다. 이런 미성숙의 원인이 지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가리켜 주지 않으면 결심도 용기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사페레 아우데! 과감하게 생각하라! 이것이 계몽의 모토입니다. --- p.46 계몽에 필요한 것은 자유 말고는 없습니다. --- p.50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계몽을 미룰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잠시 동안일 뿐입니다. 자기 자신에 관하여든 아니면 자기 후손들에 관하여든 계몽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해치는 일입니다. --- p.59 마침내 인간을 기계보다 나은 존재로서 존엄성에 맞게 대하는 것이 유익함을 발견한 정부 체제의 원리로 화답할 것입니다. --- p.67 생각되는 것은 있으며 있는 것이 생각되나니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이니 --- p.83 다른 한 길은 있음의 길이니 | 진실된 길 | 어찌 있음이 소멸하겠는가 | 어찌 없음이 생겨나겠는가 | 없음이 생겨난다면 없음이 아니요 | 앞으로도 생겨나지 않을 것임이니 | 창조는 절멸돼 있고 | 파괴는 들리지 않고 | 나뉨이 없도다 | 모두 동일하므로 | 있음은 함께 하나이나니 | 어느 곳에서도 더하지 않노라 | 있음은 충만하나니 | 어느 곳에서도 덜하지 않노라 | 그러므로 모든 것이 연속되니라 --- p.97-98 태양의 빛줄기들을 항상 바라보는구나 --- p.117 |
읽고 싶어도 구하기 어려운 텍스트들이 있다. 분량이 방대해서 미처 우리말로 번역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로 인류의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저작임에도 분량이 너무 적어서 한 권의 책으로 편찬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책은 ‘종교’와 ‘생각’이라는 두 단어를 열쇳말로 세 편의 철학 단편을 하나로 엮었다. 키르케고르의 『집단은 거짓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관한 서사시』가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다. 각 단편은 분량이 매우 적다. 그러나 그 의미는 유별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집단은 거짓이다』는 실존주의 철학의 개척자이자 기독교 사상가인 키르케고르의 사상과 문장과 신앙심이 담겨있다. 사상은 독특하고, 문장은 탁월하며, 신앙심은 독실하다. 이 책의 빛나는 장점은 ‘단독자’ 개념을 독자에게 선물한다는 점이다. 키르케고르 자신도 ‘세속적인 목적’에 관해서는 집단이 타당성이 있고 결정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이 진리인지에 관해서는 집단은 거짓이며 거짓일 수밖에 없음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집단은 회개하지 않는다. 집단은 비겁하다. 집단은 생명을 차별한다. 집단은 허위다. 키르케고르는 이 단편을 통해 진리의 전달자는 집단이 아니라 오직 단독자임을 밝힌다. 단독자가 진리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단독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단독자여야만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거짓만큼 발이 빠르지 않으며 거짓은 진리보다 맛있게 준비되어 있으니, 단독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지식, 교육, 규율, 절제, 자기 부정, 자신을 향한 정직한 염려가 필요하다. 결국 집단에 자기를 맡기지 말고 진리를 위해 생각해야 한다. 과감하게 생각하라. 다시 말하면 용기를 내서 스스로 알려고 하라, 이것이 계몽의 모토이다. 우리 인간은 과감하게 생각해야만 미성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임마누엘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쓰인 표현이다. 이만큼 계몽주의의 핵심을 설명하는 저작이 있을까?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집단에 종속되고 거짓에 현혹되며 나쁜 선동에 휩쓸리고 만다. 18세기, 19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를 향한 여전한 충고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이 단편이 지금도 읽힌다. 칸트에게 생각은 곧 표현의 자유와 연결되기 때문에, “계몽에 필요한 것은 자유 말고는 없습니다”라는 명제가 제시된다. 하지만 무제한적인 자유는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지식인으로서 자기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자유는 무제한 허용되어야 하지만, 자기 이성을 사적으로 사용한다면 자유가 제한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인간의 미성숙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며,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계몽이다. 과감하게 생각하라.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는 어느 고매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생각되는 것은 있으며 있는 것이 생각되나니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이니”라는 시구를 읊었다. 있음은 있고, 없음은 없다는 동어반복을 통해 창조도 없고 변화도 없으며 소멸도 없는 진리의 비경을 제시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탄생을 열어젖혔고 매혹적이고 황홀한 우주론을 펼친 고대의 거인 파르메니데스다. 파르메니데스의 『자연에 관한 서사시』가 이 책의 3편에 위치해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진리의 길과 진리를 닮은 거짓의 길(의견의 길)을 여신의 목소리로 전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에 관심을 가져도 파르메니데스를 만나면 절망한다. 본디 난해할 뿐더러 흔히 사용하는 우리말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저명한 서사시가 시의 형식으로 우리말로 알맞게 번역되었다. 평범한 독자들에게 선물과 같은 번역이다. 여신이 말씀하신다. 있음에도 | 부재한 것을 지켜보아라 | 머릿속에 흔들림 없이 존재하노라 | 있음으로 한몸이 된 것에서 | 있음을 잘라낼 수 없을 테니 | 우주 모든 곳으로 흩어지겠느냐 | 흩어진 것이 다시 모이겠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