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역자의 서문?4
I. 1902년 1차 역주본19 들어가며[Introduction]21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42 진랍의 풍토에 관한 기술47 개관[總敍]47 1. 담으로 둘러싼 도시[城郭]55 2. 주거[宮室]61 3. 의복[服飾]64 4. 관리들[官屬]68 5. 세 종교[三敎]70 6. 사는 사람들[人物]75 7. 출산[産婦]78 8. 소녀들[室女]79 9. 노예[奴婢]83 10. 언어[語言]85 11. 미개인[野人]88 12. 쓰기[文字]89 13. 원단과 절기[正朔時序]90 14. 재판[爭訟]95 15. 질병과 나병[病癩]97 16. 죽은 사람[死亡]98 17. 농사[耕種]101 18. 나라의 지형[山川]103 19. 산물[出産]103 20. 상업[貿易]109 21. 갈망하는 중국 상품들[欲得唐貨]109 22. 식물[草木]111 23. 조류[飛鳥]112 24. 네발짐승들[走獸]113 25. 채소[蔬菜]114 26. 물고기와 파충류[魚龍]115 27. 발효 음료[?釀]116 28. 소금, 식초, 간장, 누룩[鹽醋醬麴]117 29. 누에와 뽕나무[蠶桑]118 30. 기물[器用]119 31. 수레와 가마[車轎]120 32. 배와 노[舟楫]121 33. 속국들[屬郡]122 34. 마을[村落]123 35. 쓸개 채취[取膽]123 36. 기이한 일[異事]126 37. 목욕[?浴]126 38. 이주[流寓]127 39. 군대[軍馬]127 40. 국왕의 출입[國主出入]128 II. 조르주 세데스의 1918, 1933년 추가 주석133 참고자료 II-1.135 사남(?南), 불촌(佛村), 간방(干傍)135 암정팔살(暗丁八殺)138 시랄적(?辣的)138 저고(苧姑)139 진가란(陳家蘭)141 흘뢰(吃賴)141 애람(?藍)143 포릉각(包稜角)143 참고자료 II-2. 144 XXXI. 주달관에 관한 새로운 주석(Nouvelles notes sur Tcheu Ta-kouan). 『BEFEO』, II, 148~151쪽. 144 팔사유(八思惟)144 비세(備世)146 정월 초하루와 절기[正朔時序]146 피란(皮?)150 III. 유고: 보완편집본153 일러두기155 III-1. 서문157 III-2. 번역문160 총서(總敍)160 1. 담으로 둘러싼 도시[城郭]163 2. 주거[宮室]165 3. 의복[服飾]166 4. 관리들[官屬]167 5. 세 종교[三敎]168 6. 사는 사람들[人物]170 7. 출산[産婦]171 8. 소녀들[室女]172 9. 노예[奴婢]174 10. 언어[語言]175 11. 미개인[野人]176 12. 쓰기[文字]177 13. 원단과 절기[正朔時序]177 14. 재판[爭訟]179 15. 질병과 나병[病癩]180 16. 죽은 사람[死亡]181 17. 농사[耕種]182 18. 나라의 지형[山川]183 19. 산물[出産]183 20. 상업[貿易]185 21. 갈망하는 중국 상품들[欲得唐貨]185 22. 식물[草木]186 23. 조류[飛鳥]186 24. 네발짐승[走獸]187 25. 채소[蔬菜]187 26. 물고기와 파충류[魚龍]187 27. 발효 음료[?釀]188 28. 소금, 식초, 간장[鹽醋醬麴]189 29. 누에와 뽕나무[蠶桑]189 30. 기물[器用]191 31. 수레와 가마[車轎]192 32. 배와 노[舟楫]192 33. 지방들[屬郡]193 34. 마을[村落]193 35. 쓸개 채취[取膽]193 36. 기이한 일[異事]195 37. 목욕[?浴]195 38. 이주[流寓]196 39. 군대[軍馬]196 40. 국왕의 출입[國主出入]196 III-3. 판본에 관하여200 III-4. 『성재잡기(誠齋雜記)』219 III-5. 주달관이 전사(傳寫)한 캄보디아어 단어들226 III-6. 원문 해설252 총서(總敍)252 1. 주성(州城)300 2. 주거[宮室] 324 3. 의복[服飾]341 IV. 부록 : 14세기 이전 캄보디아 연관 자료 번역371 부록 IV-1. 『수서』, 권82373 부록 IV-2. 『북사』, 권95378 부록 IV-3. 『구당서』, 권197384 부록 IV-4. 『신당서』, 권222386 부록 IV-5. 『송사』, 권489389 부록 IV-6. 두우(杜佑, 735~812) 『통전(通典)』, 권188, 변방(邊防)4391 부록 IV-7. 1178년 주거비(周去非), 『영외대답(嶺外代答)』395 부록 IV-8. 1225년 조여괄(趙汝适), 『제번지(諸蕃志)』396 부록 IV-9. 진원정(陳元?, 1195~1265년 전후 생존)의 『사림광기(事林廣記)』, 전집, 권5400 부록 IV-10. 1349년 왕대연(汪大淵), 『도이지략(島夷誌略)』401 찾아보기?404 |
Paul Pelliot
폴 펠리오의 다른 상품
朴世旭
박세욱의 다른 상품
회화에서 말하는 ‘구상’과 ‘추상’이라는 구분의 경계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다. 그 경계를 찾아야[찾도록] 하는 우리로서는 당황스럽다. 저자와 역자의 구분도 이렇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대부분이 주석과 해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 구분은 더욱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확실히 저자는 역자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 주변에서 곧잘 묻는다. 왜 역주서만 내느냐고. 여지없이 저서를 우위에 둔 질문이다. 솔직한 대답은 선행 연구보다 더 나은 진척을 내야 하건만 역량의 부족으로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점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게 되더란 말이니, 책을 쓴다는 것은 ‘위대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생선의 가시 부분은 부모가 먹고, 살은 자식에게 주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요즘은 만사가 거꾸로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이 작업도 결국 폐기물만 잔뜩 물려주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다만 ‘거친’ 일은 연장자가 길을 터주는 이치라는 생각만 하기로 한다. 참고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소위 학자들이 번역하지 않는다면, 학문의 걸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수평 이동만 할 것이다. 번역이 없으면 연구는 더뎌진다. 학자들의 학술 행위들을 검증할 수 있는 도구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랄까. 그리고 원문을 보여주면 적어도 이차적 연구에 따른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본 역주서는 폴 펠리오가 주달관의 『진랍풍토기』를 두 차례 역주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역주한 책이다. 이런 책이 왜 필요한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원나라 역사서인 『원사(元史)』 외국 열전에는 캄보디아가 없다. 말하자면, 주달관(周達觀)의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는 원나라 시기, 더 정확히는 13세기 말 캄보디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셈이다. 당시 수도였던 앙코르 지역이 고스란히 목격되어 증언으로 남겨졌다. 앙코르 와트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답을 주지 않을까 기대할 것이다. 문제는 주달관의 증언을 검증하고, 그가 옮겨 놓은 지명들과 캄보디아어 단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주달관의 『진랍풍토기』가 아니었다면, 앙코르 와트 사원의 복원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13세기 말 캄보디아 도읍 앙코르의 역사, 문화, 지리의 가장 자세하고 가장 오래된 이 주달관의 기록은 프랑스의 중국학자 아벨 레무사(Jean-Pierre Abel-Remusat, 1788~1832)의 주목을 받으면서 1819년 처음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1902년 하노이 극동프랑스학교에 교수로 부임해 있던 폴 펠리오는 레무사의 번역본을 토대로, 판본검토부터 역주까지 ‘철저한’ 학문적 고증이 이루어졌다. 펠리오는 이 책을 역주한 뒤에 둔황으로 나갔고, 캄보디아는 그의 연구 필드에서 약간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캄보디아 연구성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에띠엔느 아이모니에(Etienne Francois Aymonier, 1844~1929), 조르주 세데스(George Cœdes, 1886~1969) 같은 동료들의 지적은 마침내 1902년 역주를 고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펠리오의 ‘책임지려는’ 학문적 자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조르주 세데스는 1911년부터 발표해오던 연작, 『캄보디아 연구(Etudes cambodgiennes)』를 통해, 직접 펠리오의 『진랍풍토기역주』에 관한 추가 주석을 붙였다. 세데스의 첫 번째 주석은 『극동프랑스학교학보(Bulletin de l'Ecole francaise d'Extreme-Orient)』 1918년 호에 실렸고, 두 번째 추가 주석은 『통보(T'oung Pao)』, 1933년 호에 실렸다. 확실히 펠리오는 1918년 세데스의 추가 주석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러나 1933년의 주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펠리오가 『진랍풍토기역주』의 개정보완작업을 진행한 시기는 1918~1933년일 것이다. 그는 1945년 10월 26일 죽었다. 의문스럽게도 펠리오는 작업을 완성하지 못했다. 펠리오에게는 여러 작업이 걸쳐져 있었을 것이다. 미완성 원고라고 해서 낙담할 정도는 아니다. 사실상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중요하게 수정되거나 보완되어야 할 부분들은 이미 다 채워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진랍풍토기역주』는 1951년 동료와 후학이 유고(遺稿)에 약간 보완하는 주석을 붙여 출판되었다. 보충 주석을 단 두 학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르주 세데스와 폴 드미에빌(Paul Demieville, 1894~1979)이다. 둔황 석실에서 나온 문서에서 부(賦) 작품들을 다루고 있었던 나는 매일 같이 드나들던 파리 한학연구소 도서관에서 1951년 이 사후 보완 교정본을 접했다. 당시는 한 페이지만 읽으면 되었기 때문에, 1997년 재판본은 구입하지 않았다. 내가 쓰다듬을 고양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났다. 현재까지 역자는 『진랍풍토기』에 있어서 펠리오의 성과를 넘어선 역주서를 보지 못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들은 펠리오의 역주를 쫓아가는 데 급급하며, 그를 넘어설 만한, 이렇다 할 의견도 개진하지 못했다. 중국의 시아 나이[夏?] 씨는 펠리오의 두 역주본, 조르주 세데스의 두 추가 주석과 사이공, 랑군 등지의 영사를 지낸 미국의 로렌스 브릭스(Lawrence P. Briggs, 1880~?)가 조르주 세데스의 연구를 따라간 『고대 크메르 제국(The Ancient Khmer Empire)』(Philadelphia, 1951), 그리고 타카하시 타모츠[高橋保]의 ?진랍풍토기에 보이는 캄보디아어에 관하여(『眞臘風土記』にみえるカンボジア語について)?의 연구를 따르고 있다. [夏?, 『眞臘風土記校注』, 中華書局, 1981] 사실 시아 나이 씨가 교주(校注)한 책의 십중팔구는 펠리오의 해설과 주석을 분석하는데 할애되어있다. 게다가 펠리오의 첫 번째 역주와 세데스의 1918년 주석은 펑 청쥔[馮承鈞] 씨의 중국어 번역본을 따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불어 원문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펠리오의 두 번째 역주본과 세데스의 1933년 주석은 상당 부분 오독과 오해로 원만하지 못하다. 타카하시 타모츠의 설명은 펠리오의 두 번째 역주본을 따르고 있으며, 의견을 개진한 부분은 극히 적고, 있더라도 수긍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 타카하시 씨의 논문을 개진한 역주본이 바로 와다 히사노리(和田久德)의 『진랍풍토기―앙코르 시기의 캄보디아(眞臘風土記―アンコ―ル期のカンボジア)』(1989)이다. 펠리오의 사후 역주본은 미국 외교관 존 질만 다르시 폴(John Gilman D'Arcy Paul, 1887~1972)이 1993년 처음 영어로 번역되었고, 2001년 마이클 스미시스(Michael Smithies)가 번역 출판한 바 있다[『The Custom of Cambodia』, Bangkok, The Siam Society]. 이러한 펠리오의 역주본을 번역한 것 이외에 『진랍풍토기』의 영어번역본은 2007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A Record of Cambodia, the Land and Its People』, Silkworm Book, Chiangmai, 2007]. 이 영어 역주본은 시아 나이 씨의 교주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이러한 성과들은 펠리오의 사후 역주본에서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들이 근거 삼고 있는 펠리오의 원문을 여러분 앞에 역주하여 내놓는다. 최소한, 오해가 오해를 낳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유의미하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주달관의 기록은 이미 우리에게 소개된 바 있다. 먼저 2003년 서규석 씨가 펴낸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리북, 2003)에서 해당 번역문이 선보였다. 이후 전자불전 문화재콘텐츠연구소에서 『사고전서』본을 저본으로 번역해 낸 『진랍풍토기: 앙코르 문명에 관한 최초의 기행문』(백산문화, 2007년)으로 이어졌다. 이 작업이 한문 원문을 바탕으로 번역해 낸 첫 성과인 셈이다. 이로부터 6년 뒤인 2013년 최병욱 씨가 대만 진 롱화[金榮華]의 『진랍풍토기교주』(中正書局, 1976)를 저본으로 번역하고 ‘현대적인’ 해설을 붙인 책이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첫 역주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작업이다. 처음은 항상 서툴기 마련이다. 그러나 2016년 이 책의 ‘개정본’이 나왔지만 아쉽게도 ‘개정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제 소개하는 펠리오가 남긴 미완의 책도 완역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를 고대한다. 본 역주서는 크게 4부로 구성한다. 1부에서는 펠리오의 1902년 역주본을 우리말로 다시 역주했다. 또 펠리오가 가장 완전하고 가장 오래된 판본이라 확신한 『고금설해(古今說海)』본의 원문을 그대로 옮겨 두었다. 2부에서는 조르주 세데스의 1918, 1933년의 추가 주석을 역주하여 펠리오가 수정과 보완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3부에서는 1951년 사후 보완본을 역주하여 완결성을 더했다. 4부는 별첨 자료로 14세기까지 캄보디아와 관련된 중국 사료들을 소개하여 후속 연구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대강’ 전체적 내용을 파악하고 싶은 독자라면, 3부, 즉 1951년 미완의 보완편집본부터 읽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결국 미완이므로 그 이후는 다시 1902년 역주한 것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이러한 회귀는 또 다른 의문을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자의 의도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펠리오 씨의 학문적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순차적으로 편집했다는 점에 유념해 주기 바란다. 이 책으로 폴 펠리오의 굵직한 연구들은 어느 정도 국내에 소개된 셈이다. 동서양 교류와 연관한 주제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펠리오가 1933년 『통보』(237~452쪽)에서, 뒤펜다크(J. J. L. Duyvendak)가 마환(馬歡)의 『영애승람(瀛涯勝覽)』을 소개한 『다시 검토한 마환(Ma Huan Re-examined)』(Amsterdam, Noord-Hollandsche uitgeversmaatschappij, 1933)을 중심으로 쓴 ?15세기 초 중국의 대항해(Les Grands voyages maritimes chinois au debut du XVe siecle)?라는 방대한 작업이 남아있다. 이 성과는 이미 역주해 놓고 있지만, 내가 수행한 『영애승람역주』가 미출간 상태이므로, 미뤄두고 있다. 또 다른 펠리오의 역작은 바로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관한 주석으로 1951년 사후 유작으로 발표된 영어본이다. 이 책만 역자의 짐으로 남겨둔다. 몇 페이지씩 역주하고 있지만, 진척이 미미하다. 돌아보면 아쉬운 작업이 많다. 2019년 조여괄의 『제번지』를 역주했다. 캄보디아 조목을 참고하여 다시 보니 ‘이 책을 읽고 낼 껄’이라는 후회가 몰려온다. 부디 개정본을 낼 기회가 주어지기만 간절히 바란다. 이 바람은 몇 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제번지』를 번역할 때, 펠리오의 이 작업이 번역되어 있었더라면, 얼마나 나의 역주가 탄탄해졌을까? 이것이 바로 역주서가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 『진랍풍토기』는 그런 아쉬움이 적을 것이다. 펠리오의 작업이 매우 치밀하여서 나는 그의 뜻만 잘 살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평가하는 사람들은 작업의 효용과 가치랄까, 또는 기대효과를 많이 운운한다.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어떻게 알 것이며, ‘필요한 것’만 공부할 것인가? 앞서 언급한 저 사람들은 왜 이러한 작업을 남겼겠는가? 정말이지 작업의 기대효과를 작업자에게 묻는 것은 그야말로 우문(愚問)이다. 고양이가 관절이 좋으므로, 그 고기를 먹으면 관절에 좋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조금이라도 감염병 상황이 안정되면,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필요한 시각 자료를 첨부하고 싶었다. 아쉽지만, 이후 다시 보완하고 고치기로 하고 옛 연구자료에서 필요한 그림이나 사진을 몇 장 첨부했다. 2019년에 마친 초고를 붙들고 서문을 쓰노라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누가 이 책을 출판해 줄까! 내 탄식을 들은 벗이 선뜻 나서 주었다.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역자의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