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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승람역주』 서문―풍승균
마경(馬敬)의 「서」 마환(馬歡)의 「영애승람서」 기행시 01_참파 왕국[占城國] 02_자바 왕국[爪?國] 03_팔렘방 왕국[舊港國] 04_시암 왕국[暹羅國] 05_말라카 왕국[滿剌加國] 06_아루 왕국[啞魯國] 07_사무드라 왕국[蘇門答剌國] 08_리데 왕국[黎代國] 09_람브리 왕국[南?里國] 10_실론 왕국[錫蘭國] 11_퀼론 왕국[小葛蘭國] 12_코치 왕국[柯枝國] 색인 |
馬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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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하(蕭何, 기원전 193년 죽음)가 관중(關中)에 들어와 오로지 서적을 수습한 일과, 방현령(房玄齡, 579~648)이 성을 차지하고는 유독 인물들을 사가(史家)들에게 기록하게 한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다. 우리 왕조 태종문황제(太宗文皇帝, 영락제)와 선종장황제(宣宗章皇帝, 선덕제) 모두 태감 정화(鄭和)에게 걸출한 사람들을 통솔하여 해외로 넘어가 여러 나라와 교역하도록 하였다. [그 사신단에 참가한] 인물들의 위대함, 선박들의 웅장함, 재예(才藝)의 뛰어남은 이전에 없었다. 그렇지만 두 황제의 마음이 어찌 먼 곳에 많음을 과시하고 화려함을 다투고자 하는 것이었겠는가. 대저 [왕조의] 명성이 오랑캐들에게 미쳐, 온 천하의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모두 덕으로 교화됨을 입고, 군주가 있어야 부모를 존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명을 받들어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그 일을 마치고 그 뜻을 일컬을 만한 자로 우리 산음(山陰)의 종도(宗道) 마공(馬公)을 빼면 누가 있으리오. 공은 재간이 더욱 풍부하여 이러한 선발에 맨 먼저 부응하여 세 번씩이나 바다로 나가 여러 나라를 편력했다. 금, 비단, 보화를 조금도 사사로이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영애승람』 한 질을 만들어 돌아왔다.
---p.34 성(占城)의 ‘점’은 참(Cham)을 음역한 것이고, ‘성’은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나 마을을 의미하는 푸라(pura, 補羅)를 의역한 것이다. 여기 마환의 ‘점성’은 참파의 중국식 명칭인 셈이다. 이 참파라는 명칭이 중국 문헌 자료에서 처음 언급되는 것은 7세기 중반 현장(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후 1177~1190년에는 이웃 왕국인 크메르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14세기에는 북베트남의 쩐[陳] 왕조와 30년간의 전쟁을 치렀고, 후 레 왕조(後黎)의 속령으로 전락하기도 했다(1471년). 그 후 1832년 응우옌 왕조에 정복되었다. 참파의 수도는 9~10세기에는 인드라푸라(Indrapura, 현 다낭), 이후 15세기까지는 비자야(Vijaya, 꾸이년, 1471년 정복됨)로 나타나고, 마지막 도읍은 베트남 남단의 판두랑가(Panduranga, 판랑, 1832년 멸망)에 있었다. 여기 마환의 참파 기술은 15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자세한 탐방자료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p.55 나라의 동남쪽은 대해이고, 서북쪽은 오래된 해안으로 산들과 닿아 있는데, 모두 모래와 소금의 땅이다. 기후는 아침에는 덥고 저녁에는 추우며, 밭은 척박하고 곡물은 빈약하여 사람들은 밭을 갈아 파종하는 일이 적다. 큰 시내[溪]가 있는데 강물은 아래로 흘러, 왕이 사는 집 앞을 따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왕은 시내에 나무다리를 세우고, 그 다리 위에 정자 20여 칸을 지었는데, 모든 물품의 매매가 그 위에서 이루어진다. ---p.221 풍속은 순박하다. 집은 누각 같은 형식인데, 위에는 판자를 깔지 않고, 다만 높이가 4척쯤 되는 곳에 야자나무를 쪼개 조각으로 만들어 그 위에 드문드문 깔고, 등나무로 묶어 고정하면, 양 우리처럼 자연스럽게 층이 생긴다. 침상을 붙여 평상을 만들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며, 먹는 곳, 자는 곳, 부엌 모두 그 위에 있다.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통나무를 파내어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p.223 땅에는 소목(蘇木), 후추가 나지만 많지 않고, 과일과 채소류는 모두 있다. 소와 양은 다른 곳에서 나는 것과 사뭇 다른데, 그 양은 털이 푸르고, 다리는 길며, 키는 2~3척이며, 황우(黃牛) 중에는 3백~4백 근 나가는 것이 있다. 수유(?油)를 파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를 먹고, 모두 수유를 밥에 섞어 먹는다. ---p.358 |
저자인 마환의 출신은 회계(會稽)이고, 자는 종도이며, 정화의 원정에 3차례(3차, 4차, 7차)에 걸쳐 통역관 자격으로 수행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마환은 이슬람교도로, ‘곽숭례’라는 사람과 동행하여 20여 개국에 관한 해외 정보를 기록했다. 책의 제목은 ??영애승람??이고, 한 시기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1416년부터 1433년에 걸쳐 추가되고 교정되어, 1444~1451년에 완성본이 나왔다. 그러나 마환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6세기 이후 총서에 수록된 판본으로만 원서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명나라 초기의 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이 역주서는 판본들 중의 가장 권위 있는 풍승균(핑청쥔, 馮承鈞)의 교주본인 『영애승람교주(瀛涯勝覽校註)』(商務印書館, 1935 간행)를 역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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