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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알리스 슈바르처
프랑스어판 서문│시몬 드 보부아르 나는 페미니스트다 우리는 모든 비판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제2의 성』 30년 후 회고록을 다시 써야 한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 세계에 반대하는 투표 하나 여자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옮긴이의 말 연보 찾아보기 |
Simone de Beau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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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페미니스트란 계급투쟁과는 무관하게 말 그대로 여성의 요구 사항에 관해서 싸우는 사람을 의미 합니다. 지금도 동일한 정의를 유지하고 있어요. 즉 여성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 물론 계급투쟁과 관계를 맺되 그것의 외부에서, 이 변화를 사회의 변화에 완전히 종속시키지 않은 채 싸우는 여자들, 나아가 남자들까지도 페미니스트라고 부릅니다.
--- pp.29~30 가장 하잘것없고 귀찮고 빛나지 않는 일을 하던 사람은 언제나 여자예요. 발언을 하고 기사를 쓰고 가장 흥미로운 일을 하고 큰 책임을 도맡는 사람은 항상 남자들이었어요. --- p.30 제 시대에는 직업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 적었어요. 저는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여성들 사이에서 특권적 위치에 놓이게 됐죠. 그 결과 남성들에게 받아들여졌어요. 그들은 자기들만큼 성공한 여자 한 명을 친구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죠. --- p.36 우리는 여성이 자유롭게 아이를 낳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 특히 탁아소를 통해서 모성 부담을 견딜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피임과 낙태 때문에 원치 않는 모성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청중에게 설득하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우리는 낙태가 자유롭기를, 여성이 홀로 그것을 결정할 수 있기를 요구합니다. --- p.52 이론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여성해방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당신조차도 여성들이 자기의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공유하진 않아요.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MLF와 아주 가까운 실비와 제가 그 점에 대해서 자주 당신을 공격하죠. 예를 들어 알리스가 최근 다시 한번 말한 것, 로마 거리에서 산책할 때 항상 위협을 느낀다는 사실을 남성인 당신은 몰라요. --- p.70 여성이 결혼과 아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갖고 싶더라도 아이를 키워야 할 조건들에 대해 잘 숙고해봐야 합니다. 현재 모성은 진정한 예속 상태이기 때문이죠. 아버지와 사회는 아이에 대한 책임을 여성들에게, 오직 여성들에게만 맡겨놓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여성이에요. 아이가 아플 때 집에 남아 있는 사람도 여성이에요. 아이가 실패했을 때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여성입니다. --- p.84 우리는 알제리전쟁에 대항해 외부에서, 한계 속에서, 지하에서 투쟁했습니다. 여성들이 진정으로, 근본적으로 사태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이처럼 외부에서 싸워야만 합니다. --- p.118 여자들에게 냄비를 닦는 일이 신성한 임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아이를 기르는 것이 신성한 임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냄비 닦기와 무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여자가 집에 남아 있도록 강요하기 때문이죠. 이는 여자를 상대적인 존재, 열등한 위치로 퇴보시키는 한 방법입니다. --- p.136 사랑은 변하지만, 여성들의 우정은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남자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극히 드물어요.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죠. --- p.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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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과 『레 망다랭』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을 재발견하다 『제2의 성』으로 20세기 후반 여성운동의 등불을 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터뷰집 『보부아르의 말』이 마음산책 말 시리즈 스무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여섯 번에 걸친 보부아르의 인터뷰가 담겼다. 인터뷰어는 저널리스트 알리스 슈바르처. 독일의 여성운동을 견인하는 젊은 페미니스트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년의 지식인은 10년간 진행된 대담 내내 정력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본래 비타협적인 성정인 데다 타인에게 곧잘 냉정한 평가를 내리던 보부아르지만, 서문에서 “페미니스트적이고 개인적인 우리의 우정 덕분에 그녀는 나의 관심을 끄는 것들을 곧장 질문했고, 나는 아주 자유롭게 답변할 수 있었다”라며 슈바르처를 향한 신뢰를 드러낸다. 보부아르는 대담이 이루어지던 당시 한창 꽃피우던 여성운동에 대한 참여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주도한 행동들을 상세히 술회한다. 또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르트르를 비롯한 타자와의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논한다. 특히 한 번의 대담에는 사르트르도 동석하여 평소 잘 언급하지 않던 둘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두 여성의 대화는 모성, 여성과 일, 정치활동, 노년, 우정,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보부아르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들을 아우르고 있어, 보부아르라는 인물의 생의 궤적을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련의 대담이 시작되기 전해인 1971년, 보부아르는 생애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을 맞닥뜨린다. 프랑스의 급진적 여성단체인 ‘여성해방운동(MLF)’의 요청으로 낙태와 피임 합법화를 요구하는 ‘343인 선언’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고 서명까지 한 것이다. 그는 이를 기점으로 그때까지 거리를 두고 있던 여성운동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여생을 보낸다. 마지막 대담이 1986년 타계하기 몇 해 전 성사되었음을 생각하면, 『보부아르의 말』은 보부아르가 ‘여성의 동행자(친구)’로서 여성의 해방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가장 뜨겁게 투신하던 시기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페미니즘 이론가가 21세기 벽두에는 거의 잊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녀를 재발견하는 일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시몬 드 보부아르는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문제들에 정확히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_서문에서(알리스 슈바르처) “저는 사르트르에게 의존하고 있지 않았어요 제 책들을, 저 자신의 소설들을 쓰고 있었습니다” 독립적인 삶에 대한 열망, 실현을 위한 글쓰기 젠더 규범이 사회에 의해 의도적으로 구축되고 공고해졌다고 주장한 보부아르의 역작 『제2의 성』은 출간 당시 수많은 항의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제2물결 페미니즘 초기의 주요 저작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보부아르는 그 책 말미에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썼다. 사회주의가 이룩되면 자연스레 성평등이 이뤄지고 여성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출간 이후 20여 년이 지나도록 프랑스 내 여성의 상황과 조건들은 나아지지 않았고, 사회주의국가에서도 성평등이 실현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그는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지식인의 의무가 여성을, 나아가 인류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보부아르는 변화를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즉 여성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 물론 계급투쟁과 관계를 맺되 그것의 외부에서 이 변화를 사회의 변화에 완전히 종속시키지 않은 채 싸우는 여자들, 나아가 남자들까지도 페미니스트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 저를 이런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꿈꾸는 사회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여성의 구체적인 조건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국가에서조차 이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므로 여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걸머져야 합니다. 그 결과 저는 지금 여성해방운동과 관련되어 있죠. _29~30쪽 한편, 보부아르는 일찍이 여성을 한자리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원한 여성’의 신화와 ‘모성’의 절대 숭배, 다시 말해 여성을 가사 노동에 예속시키는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보부아르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독립적인 삶을 위해 직업이 필요했고, 그 직업은 글쓰기를 통해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여성의 자유가 극히 제한적이던 시대, 여성들이 직업적·경제적으로 자율성을 획득하고 자립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역설한 것이다. 저는 언제나 제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사르트르를 알기 훨씬 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죠. 그를 만나기 한참 전에 이미 환상, 동경, 욕망, 관능 같은 것이 아닌 아주 명확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삶을 성취해야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취란 무엇보다 일을 통해 얻는 것이었습니다. _128쪽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는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만년까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얻고자 행동한 지성 『보부아르의 말』은 보부아르가 만년에 천착했던 연구 주제인 노년과 나이 듦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덜 치열해진 일상으로 더 많은 자유 시간을 확보하게 되어 흡족하다면서도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이행”이며, “더 이상 미래가 없고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외모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쉰, 쉰두 살 무렵에 마흔 살 때 얼굴과 비교해보고 차이를 확인하는 게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고 천진한 구석까지 내비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부아르의 주관적인 노년 체험을 넘어 노년층이 겪는 빈곤이나 고립감, 남성과 여성 간 노년의 차이에까지 논의를 확장해간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노인들의 삶의 조건은 정말 끔찍합니다. 저는 그들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사회복지사 친구들 덕분에, 우리가 읽는 모든 것을 통해 꽤 가까이서 알고 있었어요. 노인들에 대해 많은 아픔과 호감을 느끼고 있었죠.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_104쪽 젊은 시절, 정치적 사안에 대해 ‘관중’의 태도를 견지하던 보부아르는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1960년에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며 ‘121인 선언’에 서명했고, 베트남전쟁에도 반대 의사를 확고히 표명했다. 나아가 선거에서 정당을 선택하는 원칙, 후보와 투표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도 밝힌다. 선거를 보이콧하고자 한다면 소극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해요. 우리가 왜 다시 그 정당들과 의회 원칙을 문제 삼는지 말해야 합니다. 집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함에 백지 용지를 넣거나 아무것도 넣지 말아야 해요. 그것이 결국 선거 보이콧이 우파에 득이 될 부메랑으로 바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하나의 보이콧은 바로 완전히 의식적인 투표, 즉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에 반대하는 투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_115쪽 현대 여성운동의 기수로 손꼽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만약 누군가 한 사람이 현재 국제 여성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는 시몬 드 보부아르다”라고 했다. 이처럼 보부아르는 일생 동안 책과 행동으로 여성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자 분투했고, 그 진실된 생애는 후대 여성들에게 뿌리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폭넓은 연대의 장을 만들려고 했던 위대한 인물의 초상을 덧그려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