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자기 인정 그리고 참여―사라 카를로타 헤쉴러, 클레르 멜로, 클레르 토마젤라
이 책이 나오기까지 대화 발문│대화를 이어가기― 폴 파스칼리 옮긴이의 말│‘밋밋한 글쓰기’의 사회학: 상속자와 계급 탈주자, 그리고 남성 지배 연보 찾아보기 |
Annie ERNAUX,アニ- エルノ-,아니 뒤셴느Annie Duchesne
아니 에르노의 다른 상품
Rose-Marie Lagrave
윤진의 다른 상품
|
어쨌든 난 그때 내 책의 대상,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계급 탈주자가 지나온 경로’라고 부를 그것이 여성에 국한된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 p.39 버지니아 울프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죠. 나는 『자기만의 방』은 마흔 살이 돼서 읽었지만, 『댈러웨이 부인』과 『파도』는 글을 쓰기로,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읽었어요. 소설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는 남자들이 지배하던 문학사에서 등대 같은 존재였죠. 나에게 자극과 힘을 주었어요. 버지니아 울프가 해냈으면 나도 해낼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거죠. --- p.49 『얼어붙은 여자』의 출발에는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솟아오르면서 점점 더 강박적이 되어간 한 가지 생각, 나에게 글을 쓰라고 부추기던 그 생각이 배어 있어요. ‘나도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여기저기 데려다주고 병원에 데려가는 건 언제나 내 일이다. 난 단 한 번도 혼자 극장에 가지 못하고, 남편이나 아이들 없이는 휴가를 떠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죠. 내가 상상하던, 스무 살의 내가 바라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바뀌고 말았을까요? 난 그 답을 알아요. 간단해요. 내가 대대로 상속된 가부장제를 대표할 만한 남자와 부르주아적인 결혼을 했기 때문이죠.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책의 제목처럼 나 스스로를 ‘가누기’ 위해서 글을 썼지만, 또한 나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 희미하게나마 변화를 촉발하기 위해서 한 일이기도 해요. 책이 출간되고 1년 뒤에 남편과 헤어졌고요. --- p.55~56 보편적인 페미니즘은 불가능해요. 페미니스트 투쟁을 사회 투쟁과 분리할 수 없죠. 나에게 교차성은 명백한 일이에요. 여자들은 어떤 사회계급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인종화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남성 지배라는 조건을 같은 방식으로 겪지 않으니까요. 내가 겪고 분석한 체험들에 근거하는 확신이죠. --- p.61 부르디외를 필두로 한 남자 계급 탈주자들이 남성의 특권에 대해 충분히 자문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이에요. 그 문제에 관해선 책을 한 권 쓸 만하죠! 지식인이든 예술가든 정치가든, 남자들은 보통 남성의 조건과 남성다움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p.64 『빈 옷장』의 경우는 아무도 모르게,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썼어요. 책 내용이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그래도 흔들림 없이 썼어요. 다 쓰고 나면 출판사에 보내게 되리라는 것도 알았고요. 그 글이 출간되리라는 생각이 어째서 단 한순간도 날 멈춰 세우지 않았을까요? 텍스트의 힘, 글쓰기 자체의 장악력 때문이에요. 텍스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텍스트가 내 안에서 만들어내는 발견들, 드러내는 진실들이 힘을 발휘하는 거죠. --- p.73 생각해봐요. 교실에 들어가고, 노르망디 말을 쓰고, 빌어먹을 억양이 있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가 가요?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말 때문에 ‘지적’받았어요. 그 안에 얼마나 큰 폭력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봐요. 심지어 2학년 때까지도 그랬죠. 말하는 방식뿐 아니라 소위 ‘천박한’ 태도도 지적받았어요. 하지만 그 천박함이 이미 당신 몸에 배어 있는 거고, 당신 부모의 것이고, 그래서 당신한텐 천박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의 세상이라면? 몸에 밴 것들을, 말하는 방법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거죠. --- p.98~99 거의 모든 계급 탈주자들이 스스로 부당하게 누리고 있다고 느껴요. 반면 지배계급 출신의 사람들은 자기가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가 아닌가에 대해 결코 질문을 제기하지 않죠. 그들은 ‘저절로’ 정당하니까요. --- p.100 나는 늘 교사라는 직업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단지 은퇴할 때까지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일을 화해시키기는 쉽지 않았죠. 내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글을 써서 먹고살기’를 거부하게 된 데에는 아마도 기적이 멈출지 모른다는, 다음번 책은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을 거예요. 사실 지금도 난 내가 쓰는 글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 확신이 없거든요. 독자들의 반응이 그에 대한 유일한 증거가 되죠. 그리고 나보다 앞선 세대들, 노동을 해야만 가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세대들의 기억도 고려해야 해요. 나는 바로 그런 세대 속에서 자라났으니까요. 가난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거죠. --- p.117 |
|
시대와 긴밀하게 호응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문학과 계급의식 ‘체험하지 않은 현실은 쓰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했던 작가 아니 에르노는, 사회와 역사, 개인의 관계를 파헤쳐 건조한 문체로 서술하는 특유의 글쓰기로 평단과 독자의 찬사와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곤 했다. 『아니 에르노의 말』에서 에르노는 작품을 쓰던 당시의 경험과 시대적 배경을 함께 이야기하며, 사회 변화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어떤 위치에 놓였는가에 대해 흥미롭게 들려준다. 출간 당시 20만 부 넘게 팔리며 폭발적 반응과 논란을 일으켰던 『단순한 열정』(1991)과 달리, 『사건』(2000)은 2만 부에 불과했으며 반응 또한 대부분 무관심이었다. 그러나 20~30여 년이 지나 두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영화화되었을 때, 『사건』을 각색한 영화 〈레벤느망〉은 임신중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 일찍이 예민한 시선을 지니고 있던 아니 에르노는, 스스로의 자각에 ‘독서’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자신에게 충격을 안긴 첫 번째 책으로 꼽는다. 이밖에도 에르노와 라그라브는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도리스 레싱도 언급하며 남성 위주의 문학사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를 키운 책들이라면 당연히 『제2의 성』부터 꼽아야 해요. 열여덟 살의 나에게 결정적인 발견이었죠. 그때까지 난 남자 여자의 관계에 대해, 여자들이 처한 조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거든요. 남자들과 함께 있기가 왜 그렇게 불편한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 나에게 『제2의 성』은 마치 환한 빛 같은 책이었죠. 좀 서정적인 표현일 수는 있지만, 정말로 루앙에서 이제르 대로를 걸어 내려갈 때 느낀 그 감정이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나요. 보부아르의 가차 없는 증명이 나의 세계관을 찢어버린 거죠. 사회가 성차로 구분되어 있고 남자들이 특권을 누린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 얼마나 흥분되던지……. _본문에서 아니 에느로와 로즈마리 라그라브는 둘 다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났고 비슷한 나이인 데다, 서민에서 부르주아로 계급 이동을 경험한 ‘계급 탈주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소상인의 딸이었던 에르노는 사립 가톨릭 학교를 다니며 부르주아 계급과 자신이 속한 서민 계급 사이에서 자주 ‘분열’을 느끼곤 했다. 피지배 계급 출신 여성이라는 자의식을 지닌 에르노에게 문학은 결코 정치와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고, 지배계급에 맞서는 무기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아니 에르노는 엘리트의 언어가 아닌 출신 계급의 언어를 사용하여 이른바 ‘밋밋한 글쓰기’를 시도했는데, 이는 보수적인 문학의 관점에서는 일대 파격이었다. 그러나 기존 질서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 에르노는, 지배계급의 교묘한 차별을 폭로하고 진실을 드러내며 그만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라그라브는 그런 에르노에게 “당신의 책들은 우리에게 든든한 고리이자 버팀목”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그래도 난 오랫동안 배신의 느낌을 떨칠 수 없었죠. 그나마 지금은 조금 덜해졌어요. 왜 그럴까요? 글을 쓰기 때문이죠. 난 젊을 때부터 “나의 종족의 복수를 위해 글을 쓰겠다!”는 바람을 지녔고, 그래서 내가 쓰는 책들의 내용과 형식이 그 목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끔 해야 했어요. 처음 만난 세계의 경험을 글쓰기가 최대한 직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 거죠. 내 책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식을 만나기도 하고, 묻혀 있거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솟아오르게 만들기도 했을 거예요. 내가 정말로 배신을 했다면,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글을 씀으로써 속죄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_본문에서 “난 노년이 향유의 시기가 되면 좋겠어요. 다시 말해서 끝내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싶어요” 두 여성이 나누는 노년에 대한 생각 사회적 계급과 자전적 글쓰기,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전개되던 아니 에르노와 로즈마리 라그라브의 대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노년’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어느덧 노년에 다다른 두 여성은 자율성이 약해지고 있는 몸의 변화를 깊이 인식하고 이에 대해 털어놓는다. 죽음을 금기시하거나 생물학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대신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며 사유를 주고받는다. 자신의 노화 경험에서 출발한 이러한 사유는 “고통과 쇠락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만 끝내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공통적으로 이어진다. 페미니스트로서 ‘자발적 임신 중단’의 권리를 외쳤던 그들이 ‘자발적 노화 중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가장 강렬했던, 가장 충만감을 느꼈던 시기는 마흔다섯 살에서 예순 살 사이 같아요. 로즈마리, 난 당신과 달리 늙기를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은퇴를 준비하고 해오던 일을 일찍 중단할 수는 있지만, 10년 뒤, 20년 혹은 30년 뒤의 우리 몸과 마음을 미리 겪을 수는 없으니까요.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해도, 노년을 위해서 집 안을 개조해도, 물론 안 한 것보다 낫겠지만, 별 소용이 없죠. 어차피 노년은 갑자기 닥치니까요. 그냥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야 해요. _본문에서 『아니 에르노의 말』은 예리한 시선으로 논쟁적인 작품을 내놓았던 아니 에르노의 작가적 면모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여성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근원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동시대 작가로서 아니 에르노가 던지는 주제들이 유효할 수 있는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이 실존적 선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들과 맞물려 있는 것임을 일깨우는 엄정한 인식과 성찰에 있다. 그 성찰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한 사유의 나침반을 제공한다. 또한 명징하고 명료한, 아니 에르노의 육성을 통해 그의 작품들을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