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며
다시 살아 있는 날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하여 저문 날을 건너오는 소설 그 가을의 하루 동안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상처 속에 박혀 있는 말뚝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작품 목록 |
朴婉緖
박완서의 다른 상품
|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라고, 어머니를 표현한 인터뷰어인 고정희 시인의 말입니다. 딸인 저에게도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넘나들 수 없는 거리감으로 어머니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던 그 거리감이 어머니만의 개인주의였다는 깨달음이 오면서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 p.7~8 나는 사실 ‘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합니다. 1975년에 일지사에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첫 창작집을 간행한 이후 스무 권에 가까운 작품집을 냈으니까 평균 1년에 한 권꼴로 작품을 써온 셈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축적된 에너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습작을 많이 한 것도 전혀 아니고 그렇다고 남다른 파란만장한 체험을 가졌다고 할 수도 없어요. 내 식구들마저 『나목』이 당선되기까지는 글을 쓰는지조차 몰랐으니까요. 단지 어려서부터 남의 작품을 읽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았고, 독서하는 버릇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반드시 자기 전에 책을 읽다 잠들곤 해요. 작품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소설에서의 자기 안목은 독서에서 얻은 것이고, 체험이 작품의 밑받침이 되고, 그리고 원고지 위에 쓰기까지 충분한 구상이 내 소설 쓰는 태도의 전부이지요. --- p.28 내가 여자인 만큼 학력의 고하나 신분을 막론하고 여자가 당하는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요. 단지 문제의식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소설적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왔다고 할까요. 그중에서도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은 여성 문제를 인식하고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론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고 체험으로 썼다고 할까요. 지금까지도 나는 이성에 봉사하는 일은 잘 안 되고 있어요. 그냥 살다 보면 문학이란 게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본질적으로 억압받는다든가 서러운 계층, 그늘에 가려진 층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내 경우 결혼 생활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당하게 되는 경험 이전의 문제의식이 없을 수 없지요. 남자들이 여성 문제를 건드릴 때에는 여성을 자꾸 대상화하게 돼요. 그러나 여성은 체험만으로도 여성 문제를 잘 쓸 수 있다고 봐요. --- p.36~37 사람들이 저를 페미니즘 소설가로 불러주는 것을 어쩔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앞으로 꼭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만을 다룰 생각은 없어요. 사실 제게는 지금까지 여성 문제 이외의 것을 다룬 경우가 더 많기도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여성 문제를 소설화하는 일은 제게 중요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원래 뭔가 쓰고 싶은 열정과 힘이 솟아올라야만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 쓰고 싶은 열정과 힘을 솟아오르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에요.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부당한 여건이나 운명의 장난과 같은 것에 의해서 참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생겼을 경우, 이게 아니다 싶은 일들이 눈앞에 보일 경우 그것을 증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속에서 끓어오르게 되고, 그와 같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저는 글을 쓰게 됩니다. 여성 문제 역시 제게는 그 부당함과 억울함을 고발하고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젯거리로 와닿았고, 더욱이나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지요. --- p.48 해방 후 몇 년 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들, 때론 인간 이하의 모욕도 받게 되고, 요새로선 상상도 못할 어떤 빈궁의 밑바닥에 떨어져보기도 하고, 또는 너무나 견딜 수 없는 인간관계에 휩쓸린다든가 하면서 인간의 밑바닥 생활도 해보았어요. 그러다가 가령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쳐요.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준 것도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보겠다 하는 복수심 같은 거죠. 그것이 기질이 아니었나 싶어요. 돈 꾸러 가서 안 꿔주면 나중에 부자가 돼서 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또 그것이 부자가 되게 하는 한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킬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도, 거기서 구원이 됐던 건 내가 언젠가는 저런 인간을 소설로 한번 써야지 하는, 학교 다닐 때의 단순한 문학 애호가로서의 그것과는 다른 어떤 생각이었어요. --- p.84 내가 잘 아는 세계지요. 여성으로서의 나, 노인으로서, 분단 문제……. 페미니즘을 의식했다기보다는 남자들이 쓴 인기 있는 소설의 여성상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이건 남자가 원하고 바라는 여성이다 생각해서 여성의 실제 모습을 보이고자 한 것이었지요. 남자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환상적으로 처리된 것에서 벗어나 실제 여성의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 주체적인 소설이 바로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 p.130 내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 p.119 |
|
“여성 문제를 소설화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주변화 된 여성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거 최근 미투 운동 이후 남성 중심적 질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여성 서사가 주목받고 있으며, 이 흐름을 주도하는 작가들 중 다수가 1980년 이후 생으로서 박완서 문학을 읽으며 성장기를 보냈다. 즉 부상하는 여성 작가들의 문학적 수원(水原) 일부는 박완서에게 있는 것인데, 마흔에 소설가로 데뷔하여 40년간 창작활동을 통해 여성 문제를 조명해온 박완서의 생애와 작품은 이들에게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실상 여성운동이 대중화되거나 페미니즘 문학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시절에도, 작가 스스로 여성 문제를 소설화 하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던 만큼 그 목소리는 단정한 통찰로 빛난다. 『박완서의 말』은 소설가 박완서의 이력이 절정에 다다른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모두 일곱 편의 대담을 담았으며, 이 대담들이 단행본으로 엮인 것은 처음이다. 인터뷰에는 딸이 신여성이 되기를 바란 어머니와 시작한 서울 생활, 전쟁으로 멈춘 대학 생활,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의 모순 등 그의 삶을 채워온 크고 작은 개인사가 토로되는데, 이는 박완서 개인의 삶이자 보편적 한국 여성의 그것이기도 하다. 또한 가족, 교육, 가난과 계층, 그리고 남성의 삶과 여성의 삶 등 작가는 지금도 유효한 주제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날 서지 않은 편안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서사에 가려진 여성들의 삶을 문학이라는 공간에 생생하게 살려내기까지,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의 무게가 묵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