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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역삼-1 디지털미디어시티-1 역삼-2 디지털미디어시티-2 역삼-3 홍대 & 신림 디지털미디어시티-3 역삼-4 디지털미디어시티-4 역삼-5 디지털미디어시티-5 신도림 역삼-6 디지털미디어시티-6 역삼-7 역삼-끝 디지털미디어시티-끝 홍대-1 홍대-2 홍대-3 테헤란로-1 테헤란로-2 전북 군산-1 전북 군산-2 전북 군산-끝 그랜드하얏트 서울 해설 : 카타스트로프의 현기증, 나는 그곳에 없었다 _ 황유지(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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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는, 젊고 대중적인 관점에서 예쁜 종류의 여자에게 지름길을 제시한다.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풍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공모의 장에 뛰어들어 본 여자나, 실상을 정확히 아는 남자와 여자는 별로 없다. 이 산업에 뛰어든 앨리스들이 비극적 사연을 갖고 있다거나, 자신을 수치스레 생각한다는 건 덜떨어진 남자들의 희망이자 그런 남자들의 애정을 원하는 여자들의 추측이다.
--- pp.8~9 자인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살아 있는 존재였다. 이데올로기와 좀비가 아니었다. 눈빛은 부드럽고 음성은 나직했지만 말투는 단호했다. 자신을 찬양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았다. 그 애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려 했고, 그러고 있다. 난 세상이 찬양하는 아름다움의 화신이자 눈앞에 있는 여자보다, 일만 오백이십육 킬로미터 떨어진 자인의 살과 뼈를 더 강하게 느낀다. --- pp.11~12 난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자는 생각하는 게 아니라, 피부에 젖어들고 숨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진다면,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여성이라는 성별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고찰을 필요로 하는 종류가 아니다. 여자와 남자라는 건 아이덴티티(identity)가 아닌 상태(state)다. --- p.56 사대 보험도 안 되는 인턴이었을 때 잡지사도, 심지어 유흥업소에서도 내가 받게 될 돈은 일하기 전 오픈해 줬었다. 그런데 이 협회는, 그렇게 엄숙한 절차를 거쳐 뽑은 정식 직원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내 값을. 자신을 파는 건 매춘만이 아니다. 일반 노동자도 시장에 자신을 판다. 더구나 몸뿐만 아니라, 시간과 두뇌와 텅 빈 미소를 모두 팔기로 결정한 내게 그들은 마땅히 내 등에 붙은 가격표를 말해 주어야 한다. 그게 룰 아냐? --- pp.153~154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믿지 않는다. 눈동자 뒤에 있는 것만이 언제나 궁금하다. 자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찡그렸던지. 싸구려 카페에서 꿈을 이야기했을 때, 지하 바에서 몇 안 되는 학생 관객들 앞에서 노래했을 때. 다채롭게 찡그리고, 웃고, 놀라고, 울상 짓는 얼굴. 난 그렇게 살아 있는 얼굴만을 믿고, 살아 있는 사람만을 사랑한다. --- p.239 안으로 손을 잡아 이끈 자인이 문을 잠근다. 그녀는 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열어 내려간다. 드러난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자인은 스스로 홀터넥을 벗고, 그녀의 큰 가슴을 감쌌던 브래지어 끈을 푼다. 난 어쩔 줄 모르게 부드러운 그 가슴골에 얼굴을 묻는다. 옅은 땀 냄새와 바닐라 같은 체취를 깊숙이 맡는다. 이 무너질 듯한 부드러움을 난 얼마나 원해 왔는지. 한없이 포용하는 듯한 이 낯선 언덕을. 몸을 위로 끌어올려, 자인의 목선으로 입술을 옮긴다. 그녀의 숨소리. 따뜻한 체온을, 체념한 듯한 한숨을 난 모두 마시려는 듯 입술로 깨어뭉갠다. --- pp.32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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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엔 발만 삐끗하면 누구나 빠져들어 갈 수 있다”
자본주의 끝판왕 사회에서 타락한 앨리스의 방황기 모든 면접은 중개자 없는 매춘이다. 우리는 밥과 빵을 얻기 위해 자신의 어떤 것을 팔아야만 한다. 자신의 무언가를 거래하지 않으면 세상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이 재능이건, 총기건, 지력이건, 젊음과 매력과 성기건. (16쪽) 이 소설은 한국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잔혹 칙릿’이다. 주인공 채유리는 다양한 회사의 면접을 전전하며 “내심 가장 기대를 걸었던 입사 면접에서 떨어진 직후”에 “성인 인증만 하면 바로 볼 수 있는 19금 바(Bar) 알바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곳에는 룸살롱, 방석집, 보도방, 키스방, 심지어 유신시대에 사라진 줄 알았던 요정방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유리는 “이 도시 틈새에 내 방 하나를 마련할 때까지” 자신의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되고, 결국 낮에는 기획 홍보 관련 일을 하고, 밤에는 매춘 일을 하며 삶을 이어 간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낮과 밤이 교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질적이고 낯선 시공간이 뒤바뀌면서 유리의 일상을 숨 가쁘게 추격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유리는 어쩐지 낮과 밤에 겪는 일들이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예전에 어떤 여자애를 좋아했는데요, 네 동성이죠. 그게 뭐 중요한가요. 전 제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다른 사람들과 하등 상관없는데, 라 생각하지만, 제가 어쩌다 보니 좋아한 사람이 동성이었을 뿐이라는 비겁한 서사로 도망치지는 않을 거예요. 아무튼 그 애를 제가 오랫동안 환상의 제단 위에 올려놨거든요. 다른 남자애들이랑 즐겁게 계속 연애하면서. 실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이런 허무한 육체적 교통과 다른 차원에 있었다, 무의식적으론 이런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 같아요. 근데 비속과 고상, 쾌락과 정신, 이성과 동성, 이런 이분법도 사실은 다 모순이고 쓸모없는 굴레인 거예요. 제가 나갈 길은 두 개예요. 하나, 다른 여자랑 자 보거나, 둘, 남자의 몸에만 철저히 반응하면서 살아 나가거나. (326~327쪽) 이 소설에는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층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유리를 중심으로 공전하면서 ‘채유리’의 자아를 형성한다. 유흥업소의 포주 이 실장, 상대방에게 고가의 핸드백을 받는 것을 젊음의 권리로 여기는 희애, 언제나 나비약(다이어트 약)에 취해 있는 유흥업소 동료 서연, 유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숫총각이라고 느낀 현재, 비밀 연애를 하고 있는 서주석 등.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입체적인 인물들은 저마다 현실의 세계 이면에 있는 파편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 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은 유리의 동성애 상대인 자인이다. 유리가 처해 있는 현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인물은 자인뿐이다(자인은 독일어로 ‘존재’를 뜻하는데, 어휘적 맥락이 겹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자인은 적어도 “이데올로기와 좀비가 아니었”으며 타인의 눈에 갇히지 않은 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인물이다. “달리 한껏 고양된 자의식 덩어리로서”의 자인은 유리에게 있어서 “정신세계를 떠받치는 일종의 관념”이 되어 버린다. 하나의 이상향이 되어 버린 자인이 “거머쥐고 있는 세계만이 유리의 진짜 욕망”(해설, 황유지)을 보여 준다. 유리는 진정한 사랑으로써 자인을 갈망한다. 자인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고, 껴안는 순간만이 본인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추천사를 쓴 강영숙 소설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작품에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유리는 자연스럽게 타자에 의해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된다. 그것은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필연적인 사건으로서 발생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서바이벌 시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리가 한 칸 방을 구하기 위해 노동을 자처한 곳은 매춘 시장이다. 결국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되면서 유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이다. 매춘은 “‘몸을 파는 것’이 아니며,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무형의 운동’”이라는 자기 기만적 전략으로(해설, 황유지) 삶을 유지한다. 이 소설 속의 ‘유리’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원형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지금도 사회 어딘가에 ‘유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모두가 외면한 ‘유리’의 삶이 오롯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부패한 이 세계에 적지 않은 균열을 일으킨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들은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자전 소설이라 할 수도 있고, 그 호칭을 거부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픽션은 한정되고 편협할 수밖에 없는 작가 한 명의 경험에만 의지할 수는 없기에. 소설을 쓰며 가장 행복한 때는, 내가 좀 더 강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마치 부모의 품을 떠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경전(經典)과 교전(敎典)을 넘어 자신만의 룰을 찾는, 갓 성인이 된 존재처럼. 아직은 세계의 외곽을 베어 물 뿐일지라도. (…) 여자, 그리고 여자가 원했으나 갖지 못해 온 것들에 대해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듯한 시대다. 세상이 용인하고 찬양하는 여자의 이미지가 아직은 한정된 만큼, 소설들 역시 모든 여자들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이 소설을 읽은 분들이, 주인공에게 이건 좀 희한한 여자네? 정도의 느낌을 받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여비서’라는 호칭에 별 불만 없이 살던 내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불어넣어 주신 강영숙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날뛰던 원고가 차분한 책이 되게끔 애써 주신 걷는사람 편집부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2022년 11월 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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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사람이 평생 하고 사는 일을 그냥 ‘일’이라고 뭉뚱그려 설명하지 않고 노동, 작업, 행위라는 독립된 세 가지 요소로 구분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먹고사는 일은 다 해결됐기 때문에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채유리는 아직 먹고사는 문제, 바로 첫 번째 인간의 조건인 ‘노동’을 해결하지 못한 청년 중의 한 사람이다. 어떤 독자는 이 작품이 불편할 수도 있다. 노동의 가치를 자신의 무언가를 시장에 파는 행위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만은 아니지 않나. 또 어떤 독자는 이 작품에 더할 수 없이 공감할 수도 있다. 노동의 가치가 일을 하고 받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소설을 매춘을 소재로 한 〈베즈 무아〉 같은 작품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작품에는 그런 통렬함이나 엽기적인 살인이 주는 공포 따위는 없다. 오히려 이 작품에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 있고, 우리가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과 그 과정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기대와 실망이 담겨 있다. 흔히 한 사람의 역사는 그가 행한 노동의 역사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조금은 과장된 듯한, 그리고 조금은 센 척하는 젊고 가난한 여성 채유리는 당신이 모르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 강영숙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