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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소설집

책소개

목차

모르모트 인간
랑고의 고백
집행자들
오늘의 사과는 레드블루
계약서에만 존재하는 집
헬로! 스트레인저
은하열차가 지나가는 동굴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추계 예술 대학교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다. 1998년 월간 「현대문학」 신인 공모에 중편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누드크로키』, 장편소설 『물탱크 정류장』을 펴냈다. 극작가로도 활동하며 「물탱크 정류장」, 「총과 바이올린」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희곡집 『총과 바이올린』을 출간했다. 다른 저서로 청소년용 평전 『과학의 전도사 리처드 파인만』과 공동작품집 『피크』, 『캣 캣 캣』, 『무민은 채식주의자』 등이 있다.

태기수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50g | 130*200*30mm
ISBN13
9791192333359

책 속으로

요컨대 그는 그리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 주변에서 별로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꼬리를 갖게 되면서 그는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꼬리뼈를 퇴화의 잠에서 깨워 일으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부모가 전해 준 유전자 지도에 꼬리 유전자가 심겨 있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르모트 인간」중에서

꼬리가 점차 자라면서 더욱 압도적으로 그를 괴롭히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글쎄 이놈이 쥐 꼬리 형상을 띠어 간다는 점이었다. “하필이면 인간들이 가장 품위 없는 동물로 치는 쥐새끼의 꼬리냔 말이지. 원숭이의 꼬리라면, 뭐 같은 영장류니까 웬만큼 수긍할 수 있겠다. 또 호랑이나 사자 꼬리라면 폼이라도 날 거 아니냐? 하다못해 고양이나 개 꼬리만 됐더라도 그렇게 절망적이진 않았을 거다.”
---「모르모트 인간」중에서

한번 상상해 보시겠어요? 옆방 미친 여자가 수백, 수천 마리의 뱀으로 몸을 바꿔 벽을 타고 넘어와 소년의 이불 속으로 기어듭니다. 그러면 소년도 뱀으로 변신합니다. 뱀이 되어, 뱀들과 한데 뒤엉켜 물어뜯고 뜯기며 사투를 벌이지요. 소년은 한 마리 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렁이로 변할 줄도 알지요. 올빼미가 되어 어둔 하늘로 날아오른 적도 있다니까요. 모두 어둠이 지닌 마력 때문이랍니다. 소년은 어느새 어둠의 광기에 감염되고 만 거예요.
---「집행자들」중에서

“그래. 스토리?머신, 이야기의 공산품 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시지. 자넨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소설은 소설일 뿐이죠.”
“자네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 회로가 그 소설이란 제품을 제조할 때, 그걸 왜 제작하려고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라도 있나?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명색이 작가라면 창작에 돌입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던져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오늘의 사과는 레드블루」중에서

여기서 그만 제 안의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말이 묘하게 거슬렸거든요.
“그래, 이 자식아! 인간은 유한하다. 네놈이 그 유한성의 비애를 알아?”
“물론입니다.”
“뭐? 기계 따위가 생명의 유한성이 불러일으키는 멜랑콜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이런! 난데없이 멜랑콜리라니요. 도대체 왜 이따위 단어가 툭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흥분했던 게 분명합니다.
“오, 그런 감정을 멜랑콜리하다고 표현하시다니. 뭔가 어색하지만 색다른 비유인 것 같네요. 기회가 되면 저도 활용해 보겠습니다. 신선한 데이터 하나를 얻은 것 같네요.”
---「오늘의 사과는 레드블루」중에서

나는 그때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박사 따위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가 한사코 밝히기를 거부했던 그 비밀의 근원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는 바 없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적에 대한 믿음을 소중한 비밀처럼 마음속에 품어 왔다. 그는 모든 비밀의 심연을 혼자서 감당하기로 결심했던 것이고, 실천으로 나아갔을 거라는 믿음.

---「은하열차가 지나가는 동굴」중에서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소설 7
태기수 『모르모트 인간』 출간

“인간은 영영 꼬리를 잃어버린 것인가?”
인간 존재의 근원을 추적하는 현실 너머의 환상적 상상력


1998년 월간 《현대문학》 신인 공모에 중편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태기수 소설가의 소설집 『모르모트 인간』이 걷는사람 소설 일곱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태기수는 극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의 장편소설 원작인 「물탱크 정류장」 「총과 바이올린」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외에도 청소년 평전 『과학의 전도사 리처드 파인만』과 공동작품집『피크』『캣 캣 캣』『무민은 채식주의자』등을 펴내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중견 작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갖추었다. 환상문학의 거장인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비교되며 국내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가를 대표하는 그가 이번에 새롭게 펴낸 『모르모트 인간』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추적해 가며 현실과 환상, 일상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 아름답고 몽환적인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비범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을 한데 묶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영역을 압도해 버린 시대 아닙니까”
예술의 영역마저 압도해 버린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과 예술에 대한 궁극적 질문

인간이 네발짐승처럼 살아야 하는 시대가 닥친다면 인간의 꼬리뼈는 기나긴 퇴화의 늪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지 않을까. 인간이 장차 어떤 환경에 놓인대도 그런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성될 리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꽁무니뼈는 바로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영겁의 세월 속에 숨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9, 「모르모트 인간」 중에서

태기수는 일곱 편에 담긴 가지각색의 이야기로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모르모트 인간」은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프로 활용하여 쓴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꼬리뼈에 자극을 받고, 엉덩이에 쥐꼬리가 돋아나 버린 주인공. 그에게 ‘쥐꼬리’는 생존 본능의 발현이며, 스토리가 전개되는 동안 꼬리는 자본의 욕망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언제든 동물적 욕망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작가는 인간의 육체와 동물의 꼬리를 결합시켜 욕망과 이성의 경계를 가늠하고 실존의 의미를 되묻는다. 또한 태기수 소설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SF 작품인 「오늘의 사과는 레드블루」에서는 2040년, 인공지능 로봇 휴머노이드가 일상화된 시대를 다룬다. 시대는 어느덧 인공지능이 일상화되어 “문학판 역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인공지능 로봇들이 작가랍시고 쏟아낸 작품들이 싹쓸이하는 상황”이고, “그 작품들도 문학상 심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불려 가고 있는”, 이른바 예술의 영역마저 압도해 버린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주인공은 픽토피아 전속 작가로 활동하는 휴봇과 협업해서 소설을 완성해 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주인공은 휴봇의 한계를 의심하고 시험하지만, 모든 인간의 감정과 데이터화된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학습한 휴봇은 3분도 걸리지 않은 채 단편소설을 써낸다. 이 작품에서는 이성과 감성으로 세계를 대변하는 예술가의 본질을 묻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적 자아를 인식하는 단계로 진화하는 로봇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 또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오래전 카프카가 했던 인간 실존의 문제를 태기수는 현시대로 끌어와 “벌레가 되고 유인원이 되었던 사내가 이제는 로봇과 존엄을 겨루게 된 시대”(추천사, 한지혜)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삶이 각박할수록 실제 아닌 환상에 기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진짜를 삼켜 버린 가짜의 시대, 판타지에 기대는
불안한 현대인들의 심연을 탐구하는 디스토피아 소설


(잠시 가쁜 숨을 가다듬고) 마을에 대한 원한이나 원망도, 복수심 따위도 그때 몽땅 불태워 묻어 버렸단 말입니다. 지금의 제겐 미워하고 증오할 만한 어떤 대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분노도 없고, 웬만해선 화도 잘 내지 않아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요. 감정이란 게 사라져 버렸단 말입니다. 감정을 조율하는 뇌의 변연계가 파괴되었거나 아예 삭제되어 버린 듯해요.
--- p.105, 「집행자들」 중에서

태기수는 현시대에 처한 불안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다. 「계약서에만 존재하는 집」에서는 인간의 기본 존재를 상실한 중년의 가장이 등장한다. 어느 날 아내는 “자기가 딸을 돌볼 테니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며 계약서를 보여” 준다. 가족의 신뢰를 잃고 존재감이 희미해진 가장은 오래된 집에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얼마 가지 않아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시간 속을 헤맨다. 본인도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최소한의 존재 조건을 잃은 한 인간의 악몽을 생생하게 펼친다. 범지구적인 인류 문명의 위기감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초상이 아리게 전해져 온다.

또한 「집행자들」에서는 어느 사이코패스의 자기고백적인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느 날 자신을 병원에 가두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가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온다. 상담이 시작되고, 의사는 차츰 환자의 페이스에 말려 정신과 의사로서의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소년기의 트라우마로 인해 인간적인 감정이 모조리 파괴되어 사이코패스가 되어 버린 한 인간의 이야기. 작가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자리한 악마성에 대해 쫓는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패러디한 작품 「은하열차가 지나가는 동굴」에서는 바틀비와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김 박사는 소위 사회가 제시하는 ‘우수한 인간’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개천의 용’으로 추앙받는 그는 “국내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내처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온 마을 사람들을 ‘용꿈’에 취하게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김 박사는 어느 날 돌연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를 쫓아 내려온 ‘은하철도 999’의 메텔을 연상시키는 여자까지. 모든 것이 미스테리한 상황인 가운데, 김 박사는 모든 마음의 문을 닫고 어느 날 동굴로 잠적해 버린다. 책을 읽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김 박사. 바틀비처럼 소심하고도 견고한 저항으로 그는 세계에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 이외에도 한 10대 소녀의 자살사건을 중심으로 실체 없는 존재들에 집착하며 자신의 정체성마저 위협당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그린 「헬로, 스트레인저」, 동물원 고릴라 ‘랑고’를 시점 화자로 내세워 인간과 동물의 경계, 공존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 「랑고의 고백」까지. 문학의 본질인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고 숨가쁘게 전개된다. 태기수는 작가의 말로 ‘크로스 오버’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그의 작품들이 “소설 작업과 극작을 겸하고 있는 탓, 덕분”이라며 이 소설집 안에는 “하나의 극적 상황 안에서 전체 스토리가 완결되는 작품”, “모노드라마 또는 2인극 대본에 가까운” 작품, “희곡, 시나리오 장르와 융합된 소설적 퍼포먼스 같은 작품”도 있다고 밝힌다. 이처럼 다채로운 창작법으로 구사한 다양한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고전적인 깊이와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추천평

오늘날 나는 인간이다, 라는 선언은 자기 존엄에 대한 믿음일까 아니면 그저 허세 가득한 오만에 불과한 것일까. 인간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왜, 언제부터 스스로 인간이다, 라는 선언을 해야만 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사실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 것인가. 오래전 카프카가 했던 그 질문을 태기수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다시 묻고 있다. 물론 배경은 달라졌다.

벌레가 되고 유인원이 되었던 사내가 이제는 로봇과 존엄을 겨루게 된 시대가 된 것이다. 카프카의 시대에 진짜 같은 가짜의 등장이 인간성에 대한 도전이자 위기로 인식되었다면 태기수의 소설 속에서는 진짜를 넘어서는 가짜의 등장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하나의 가치로 평가받으며 이를 거부하면 도태된다. 한 인간의 정체와 존엄이 스스로의 선언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 그런 시대에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는 한지 이해받지 못한 인간도 인간일 수 있는지, 작가의 질문이 소설마다 따라붙는다. 그리하여 고민 끝에 작가는 그 답을 찾았을까. 작가의 질문을 따라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 서늘한 질문이 그림자처럼 달라붙는다. -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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