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이웃의 닮은 사람
아는 맛 조금만 더 유명한 기름집 버스데이 살미 지키는 사람 다시, 춘천 보름의 제주 해설 지금 내가 건넨 손은, 어제 잡은 누군가의 손이다 -김미정(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
|
아버지가 누군가를 만났다. 자신과 많은 게 닮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이가 같았다. 생일은 하루 차이가 났다. 태어난 도시가 같았다. 살고 있는 동네도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거의요? 동네가 같지 않고 거의 비슷하다는 말이 이상해서 되물어 보았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올리다 말고 도로 내려놓았다. 대접 안에는 손으로 뜬 납작한 수제비가 국물 안에 가득했다. ---「이웃의 닮은 사람」중에서 아버지는 거실 가운데 앉아 두 병째 소주를 마셨다. 선화는 옆에서 콩잎을 담갔다. 양념장을 커다란 양재기에 담아 놓고 콩잎에 한 장 한 장 양념을 입혔다. 나와 재민은 놀다 말고 거실로 뛰어들어 입을 벌렸다. 벌린 입으로 선화는 콩잎을 넣어 주었다. 큼큼하고 짠 콩잎을 밥도 없이 받아먹었다. 아버지는 콩잎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 밤은 오래오래 지속되었다. 아버지는 잠들지 않았고 양념할 콩잎은 더미로 쌓여 있었다. 아무도 자러 가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와 재민은 마당을 뛰어놀며 내일을 잊었다. 무서웠던 어제를 잊었고 오지 않는 사람들을 잊어버렸다. ---「아는 맛 조금만 더」중에서 해수는 내 눈앞에 페트병을 바짝 들이밀었다. 맑은 기름이 느리게 흔들렸다. 찌꺼기가, 아니 침전물이 하나도 없지? 과연 병 안에는 가라앉은 게 하나도 없었다. 차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노란 기름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나도 해수도 한참 동안 페트병 안을 들여다보았다. 해수가 병을 흔들어 보였다. 추울렁 추울렁 느리게 흔들리는 기름이 참 맑았다. 우리도 저런 기름집 하나 차려 보려고. ---「유명한 기름집」중에서 그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로 잠시 가만있었다. 이윽고 입 옆으로 가는 주름이 여러 개 퍼져 나갔다. 그가 말을 하는 동안 주름은 펼쳐지거나 오므라들었다. 아버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말끝에 조그만 목소리로, 안타깝게도를 덧붙이고는 테이블 위에 띄운 스크린을 껐다. 두 손을 깍지 껴서 스크린을 띄웠던 자리 위에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죽었다면 내게 연락이 왔을 것이다. 오래 연을 끊은 가족이라 하더라도 정부에 의해 죽음은 즉각 친족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나는 오늘까지 어디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사망하신 것 같습니다. ---「버스데이」중에서 그때, 성배는 사랑한다고 얘기했다.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영화를 사랑해. 성배는 새벽빛을 받은 효진의 환한 얼굴을, 두 손을 마주 잡고 섰던 효진의 드러난 이마도 떠올렸다. 죽을 수도 있니? 그때 효진이 했던 말은, 영화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니? 였다. 성배는 불현듯 기억난 그 말이 낯설었다. 효진이 정말 그런 말을 했던가 싶어 두 눈을 끔벅이며 앞서 걷는 효진을 보고 또 봤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성배에게 효진이, 분명 이렇게 물었다. 비꼬지 않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목소리로, 정말 그렇게 사랑한다면 영화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 ---「지키는 사람」중에서 빛은 점점 빛깔을 달리하며 흩뿌린 가루처럼 길 위에 내려앉았다. 민주는 풀리지 않는 마음으로 입술을 다문 채 오르고 싶던 길을 내려갔다. 무리 지어 올라가는 사람들 뒤로 등을 보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빛은 내려가는 이들의 몇 안 되는 등과 뒤통수도 물들였다. 붉고 노란빛이 때때로 일렁였다. 뒤를 돌아보자 부옇게 물든 꼭대기가 보였다. 뒤따라 내려오는 주원이 보였다. 아이의 팔과 어깨에도 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민주의 머리와 팔과 어깨도 같은 빛깔로 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는 자신 위에 내려앉는 빛은 볼 수 없었다. 주원은 그 빛을 보았을 것이다. 엄마에게 내려앉고 번지다 잦아드는 빛을 주원은 내내 내려다보며 걸었을 것이다. 주원은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점점 어두워지는 길 위에서 민주는 주원이 가질 기억을 그렸다. 이른 저녁부터 취기에 흐느적대는 엄마가 아니라 다홍빛으로 반짝반짝 몸이 물든 엄마를 주원이 기억해 주었으면 했다. ---「다시, 춘천」중에서 |
|
작가의 말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등단하기 전과 직후에 쓴 것들이다. 그사이에 나는 나이를 몇 살 먹었고, 머리를 잘랐고, 보폭이 넓어졌다. 아이는 여린 초등학생에서 키가 백팔십이 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내 눈에 아이는 다섯 살 때 그대로이다. 청년을 아이로 보는 나는 그런 눈으로 내 글을 본다. 몇 년을 고쳐 써도 글이 여전하다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성숙한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듯 고치고 또 고쳐도 완성이 되지 않는 이 소설들을,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이 소설들을 나는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
|
그러면 우리는 대체 무엇인가. 근래 이렇게 도발적이고 선명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나. 우리가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 살고 있으며, 끝내 우리는 왜 우리가 되고 말았는지 이렇게 진지하고 집요하게 묻는 소설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외로운 데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 버리는 사람, 끊임없이 자신이 좋으냐고 묻거나 지치지 않고 자기 탓을 하는 사람, 그래서 너무 쉽게 미안해하고, 아주 당연히 잘 모르겠다 고백하고, 매우 마땅히 눈물을 숨기지 않는 사람, 사람들. 어디서든 밝힐 수 없고, 말해 본 적 없는 기억과 관계와 인간의 창백한 민낯과 삶의 위선을, 답보된 내일과 진실 사이에서 인간의 한계를 이렇게 뻔뻔하게 풀어놓다니. 그래서 여덟 편을 다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 후두려 맞은 기분이 든다. 기명진의 소설이어서 가능한 숙취 같은 소설. 왜 이 작가가 ‘지키는’ 일에 천착하며, ‘유명한’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는지 단번에 알게 될 것이다. - 김이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