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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
명희진
걷는사람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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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요강 파수꾼과 시간의 집

1 요강 파수꾼
2 신은 죽었다
3 공중변소에 미녀
4 이름 없는 소녀들
5 미래 도시

2부 태풍 전선, 선과 악의 경계

1 태풍 전선
2 돌을 미는 아이들
3 신의 부재와 파수꾼의 몰락
4 토성의 아이들은 권태로 달을 깎고

3부 최초의 신, 최후의 시위

1 백골단이 온다
2 권태, 기록되지 않는 역사
3 개 잡는 날
4 최초의 신, 최후의 시위
5 무너진 베를린 장벽, 그리고 집

해설
사투르누스 신화의 귀환: 소멸과 증언에 대한 각주
-허희(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소설 창작을 전공했다. 민중문학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2025년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상을 받았다. 한국과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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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44g | 130*200*16mm
ISBN13
9791175010550

책 속으로

우리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산동네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화장실이 없는 집에 산 건 아니다. 지난 장마 때, 화장실이 무너졌다. 고무 대야 위에 나무판을 올리고 그 주변에 흙벽돌을 쌓아 올려 지은 허술한 화장실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흙벽돌 위에는 시멘트가 덧발라지고 다시 또 덧발라졌다. 좁고 냄새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었다.
--- p.13

아쉽게도 시간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시간을 죽인다 해도 다른 시간이 온다. 다른 시간을 죽여도 또 다른 시간이 같은 시간으로 온다. 오늘의 오전 열한 시는 지나고 내일의 오전 열한 시가 오듯이 말이다. 시간은 다람쥐가 돌리는 쳇바퀴처럼, 언제나 우리를 같은 자리에 부려 놓는다.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며 숨을 헐떡이는 다람쥐처럼 우리도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다가오는 시간은 과거와 같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과거에 묻힌 시간은 현재의 시간에 불쑥불쑥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니 시간을 온전히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을 죽인다는 그의 말이 좋아, 기억했다.
--- p.16

나는 아나운서의 불량 주거지라는 말을 집어삼켰다. 수현과 나는 불량이라는 말에 익숙했다. 아파트 사람들에 의하면 산동네에는 불량 청소년들이 많았고 우리는 그들처럼 불량해질 거였다. 하지만 수현과 나는 불량 식품을 좋아해서 조금 불량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 p.131

나는 밤하늘의 쌍둥이자리를 찾았다.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수현과 나처럼 쌍둥이였다. 카스토르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폴룩스는 죽음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 없는 불사신이었고 그래서 제우스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감동한 제우스가 그들을 쌍둥이자리로 만들었다. 나는 수현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쌍둥이였다.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는 살 수 없다. 그게 쌍둥이의 운명이다. 토성을 떠날 수 없는 토성의 고리처럼.
--- p.166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기계 속으로 머리가 딸려 들어간 사람도 봤다. 얼굴의 반을 잃었다. 얼굴을 잃고도 그 사람이 뭘 걱정했는지 아냐?”
(??)
“더는 숟가락을 만들지 못할 걸 걱정했다. 숟가락을 못 만들면 식구들이 밥숟가락을 잃을 테니까.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 얼굴을 반이나 잃었는데, 숟가락을 걱정하다니 말이다. 거길 나와서야 깨달았지, 우린 기계보다 못한 존재였다는 걸. 네 말이 맞다.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국엔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게 된다. 그게 어떤 일이든지 말이다.”
--- pp.173-174

영수는 나도 어딘가로 떠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는 산동네가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영수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영수는 잘못 알고 있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순진했고 나는 그런 그가 걱정됐다.
--- pp.187-188

나는 어떤 역사는 굳이 기록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산동네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이 그랬다.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부서지고 던져지고 잊히는 것-그건 우리의 몫이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겪은 일들을 잊을 거다. 아니, 우리는 잊히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 pp.201-202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는 줄곧 산동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곳에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지붕을 덮은 빛바랜 방수포와 좁은 골목, 무너진 붉은 흙벽돌집 같은 풍경이 잃어버린, 그래서 꼭 찾아야 할 유년의 한 조각 같았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추억이라 믿던 흑백 사진들이 서서히 색을 얻기 시작했다. 그 골목에는 폭력과 공포가 있었고, 아이들이 목청껏 부르던 노래 속에는 잔인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어린 나는 결코 알 수 없던, 가난의 질서를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

이 이야기에는, 과거의 한때를 함께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가 내 소설 안에 오래 머물길 바란다.
그가 거기 있어 마음이 놓인다.

『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6년 1월
명희진

추천평

작가 명희진이 비 오는 날 우산 아래 모아 놓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리고도 아련하다. 산동네의 긴 계단 한가운데에 모여 온전치 못한 우산들로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만들 수 없는 자기들만의 지붕을 만들어 낸 요정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십장이 꿈인 잡일꾼, 잡일도 못하는 잡놈, 굴 껍데기도 되지 못한 바지락 껍데기 같은 어른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지붕을 건설했던 그 아이들의 꿈이 만든 세상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놀랍게 보여 준다. - 방현석 (소설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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